소설리스트

102화 (103/158)

#102

사람이 나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연은 그때 처음 알았다.

늦은 밤, 예고도 없이 찾아왔던 그 여인은 점점 앙상한 가지처럼 말라갔다. 울고 애원하며 문을 긁었던 게 언제냐는 듯 손님은 하루하루 사그라들었다. 말수가 줄어들고, 곡기를 끊으며, 종내엔 방 한구석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입술엔 어느새 거스러미가 일고, 수분이 빠져나간 얼굴에는 나무껍질처럼 까칠까칠한 버짐이 피었다. 시선은 언제나 허공을 향해 있었고, 눈꺼풀이 깜빡이는 것조차 숫자를 세어볼 수 있을 만큼이나 느려서 도무지 살아 숨 쉬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는 건가?

이연은 딱딱하게 말라붙은 밥상을 치울 때마다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눈물을 쏟으며 절박하게 굴었던 때가 더 나아 보일 지경이다.

여인에게 스며들기 시작한 죽음의 행색은 암으로 입원해 있는 삼촌과 특별히 다를 것도 없는 모습이어서. 이연은 두 팔을 걷어붙였다.

“……어, 언니, 이건 죽이라서 넘기기 쉬울 건데……. 딱 한 숟갈만 뜨면 되는데…….”

“저 내일은 학교 안 가요.”

“이게 요즘 유행하는 예능이래요. 틀어놓고 갈게요……! 엄청 크게 틀고 보셔도 돼요!”

그때부터 이연은 대꾸가 없어도 스스럼없이 말을 걸었다. 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열일 곱 이연의 눈에는 자신의 태생만큼이나 이해되지 않는 게 윤주하였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다시 생기를 되찾길 바랐다. 돌이켜 보면 이연이 기를 쓰고 달려든 첫 번째 나무인 셈이었다.

“언니, 가문비나무는 아무리 어두운 곳에 있어도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가지를 뻗으며 자란대요. 어떻게든 살려고 빛을 향해 뻗어 오르는 거래요.”

“……!”

“언니의 햇빛은 어디서 비추는데요? 내, 내가 대신 나가서 찾아줄 수 있어요.”

그 말에 윤주하는 처음으로 고개를 움찔했다. 드디어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전보다 더 깊고 어두워져 오래도록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며칠이 흘렀다. 그동안 그녀는 잠도 자지 않고 무언가에 골몰한 듯 느닷없이 눈물을 뚝 떨어뜨리기도,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이연은 그게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미숙한 통찰력으로는 판단할 수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렸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로 전화해 줄 수 있을까요?”

“……!”

그녀가 내민 건 다름 아닌 윤주하를 찾는 전단지 한 장이었다. 이연은 그걸 본 것만으로도 나쁜 짓을 한 것처럼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다만, 조금 더 색이 누렇고 낡은 것으로 보아 제가 가져온 건 아닌 듯 싶었다. 얼마나 꼼꼼하게 손톱에 힘을 주어 접었는지 종이가 너덜너덜했다.

“언니, 이, 이건…….”

이연은 찰나나마 흔들렸던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성대마저 메말라 쩍쩍 갈라져 나온 목소리는 의외로 힘이 있었다.

“괜찮아요, 우리 아들이 사는 집이에요.”

“…….”

“……덕분에, 마지막까지 보고 싶은 게 뭔지 알게 됐는데, 신세를 진 집에도 단비가 내리면 좋겠어요.”

그녀는 거칠거칠한 손으로 이연의 작은 손등을 덮어주었다.

그 이후로 윤주하는 조금씩 어린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그녀가 내뱉는 숨결마다, 단어마다 애틋한 그리움이 손에 잡힐 듯 흘러넘쳤다. 어미의 정을 모르고 자란 이연은 그 모습이 신기하고 내심 낯설기도 했지만, 사랑을 듬뿍 받았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비어있던 속이 뜨뜻해졌다.

“부끄럽지만 가문비나무라면 나도 잘 알거든요. 그 나무는 어둠 속에 파묻힌 잔가지들을 스스로 떨궈내요. 버릴 건 버려야 울림이 좋은 악기가 되니까. 그래서 노래하는 나무는 반드시 죽음을 거쳐요.”

윤주하가 제 발로 들어가려는 곳이 어떤 곳인 줄도 모르고, 그녀가 어떤 각오를 마쳤는지도 모르고, 이연은 그저 말이 많아진 손님이 보기 좋아 물색없이 웃기만 했다.

그때, 갑자기 배경이 일그러졌다.

순식간에 미라가 된 여인이 구멍이 숭숭 난 입을 쩍 벌리며 이연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그 애를 지켜줘……!”

쨍그랑―!

고막을 찌르는 소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난밤, 이연을 찾아왔던 꿈을 곱씹어보느라 잠시 멍해져 있던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채우 씨, 괜찮아요?”

물컵을 잘못 치기라도 했는지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이 위험스레 번뜩였다.

그도 그럴 것이, 좁은 식탁을 한가득 메우고 있는 접시들은 다시 봐도 아슬아슬했다. 언제부턴가 반찬의 가짓수가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식탁을 너끈히 메꾸는 정도가 됐다.

“채우 씨, 오늘은 대체 몇 시에 일어난 거예요?”

“얼마 안 됐어요.”

“진짜 이렇게 안 해도 된다니까 그래요.”

이연이 깨진 유리잔을 치우려 하자 그녀를 만류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길게 느껴져서요.”

부엌 옆, 작은 창고로 들어간 권채우는 별안간 기다렸다는 듯 휘청거렸다. 그는 벽을 짚고 서서 흔들리는 시야를 고정하기 위해 미간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숨이 차고 식은땀이 났다.

씨발, 욕이 절로 나왔지만 그는 혀를 깨물면서까지 치미는 현기증을 끈질기게 밀어냈다.

이제 잠 못 드는 날도 오늘부로 끝이다.

온갖 같잖은 이유를 들먹이며 본가로 돌아가는 날을 미뤄왔으나 이제는 정말로 한계였다.

권채우는 핸드폰으로 장범희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예, 도련님.

“…….”

그가 가만히 숨만 내쉬고 있자 덩달아 침묵하던 장범희가 나직이 말했다.

―준비하겠습니다.

권채우는 붉게 충혈된 눈을 몇 번이고 깜빡거리며 가까스로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핸드폰을 쥐었던 손에 이번에는 빗자루를 들고 창고를 나왔다.

“오늘 이연 씨 심사잖아요. 든든히 먹고 가요.”

권채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상하게 덧붙이며 바닥을 깨끗하게 쓸었다.

“채우 씨, 분명 오늘 온다고 그랬죠?”

이연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먼저 가서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채우 씨도 밥만 먹고 꼭 바로 와야 돼요!”

오늘은 대망의 4차 심사 날.

이연은 장장 일주일 동안 준비한 모든 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숲속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 그 내밀한 추억을 권채우에게 선물처럼 주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한 숲을 보여주며 오해를 풀고 싶었다.

“아아, 전리품?”

아무래도 비아냥거렸던 그 말이 이연의 기억 어딘가를 세게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지난 일주일 동안 어딘지 예민하고 피곤해 보이는 남자의 모습에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랬더니 무려 십오 년 전의 일이 꿈으로 나왔다. 그때의 상황이, 그때의 손님이, 꿈으로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특히나 마지막 외침은 완전히 허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에게 붙잡혔던 팔목이 아프게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보러 가야죠.”

“마지막이라뇨……! 꼭 끝까지 갈 거예요!”

“좋죠, 끝은.”

그가 묘하게 미소 짓자 이연도 헤실헤실 웃었다.

아침 일찍부터 정말 어렵게 섭외한 타 지역 구청의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리허설이 있다. 그녀는 씩씩하게 젓가락질을 하며 반찬을 입에 넣었다.

“…….”

그러나 음식을 씹을수록 안면이 어색하게 굳어지고 턱의 움직임도 둔해졌다.

이로써 이연은 모든 반찬의 간이 엉망일 정도로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순간 소금 덩어리가 씹히는 바람에 얼굴을 찌푸릴 뻔했으나 물을 마시면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어떤 건 너무 짜고, 어떤 건 너무 달다. 설탕과 소금이 헷갈렸던 것 같은데, 그래, 사람이 이 정도 실수도 안 하면 인간이 아니지.

이연은 괜히 그가 민망해질까 봐 맛있는 척 탄성까지 곁들어가며 꾸역꾸역 입속에 집어넣었다.

사나웠던 꿈자리, 어긋나 있는 간, 이연은 당장 코앞의 문제에 정신이 팔려 젓가락질도 못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권채우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 * *

시꺼멓게 죽은 숲.

그러나 새하얀 와이셔츠와 원피스로 옷을 맞춰 입은 연주자들은 마치 백목련처럼 화사했다.

산 아래에 도착을 해 보니, D 병원 측이 웬 가벽을 세워 본인들의 구역을 철저히 가려놓았지만 이연은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악기를 조율하며 음을 맞춰나가는 연주자들에게 시선을 몽땅 빼앗겨버린 후였다.

청명한 공기 중으로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어린 시절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녀는 다급히 시계를 확인하며 얼른 권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심사가 시작되기 전에, 그러니까 사람들이 빽빽이 몰려들기 전에 그를 첫 번째 관객으로 삼고 싶었다. 이윽고 초조할 정도로 길게 이어지던 통화음이 끝나자 이연이 반색하며 물었다.

“여보세요? 채우 씨, 오고 있어요? 어디쯤이에요?”

―…….

그런데 들려오는 응답이 없다. 찰나의 정적은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이 비집고 들어갔다.

“채우 씨?”

이연은 핸드폰 액정까지 다시 확인해봤으나 통화 시간은 멀쩡히 흐르고 있었다.

“여보세요? 권채우 씨, 내 말 들려요?”

―…….

여전히 구멍뿐인 침묵이었다. 이연이 한쪽 귀를 막고 자리를 피하듯 몸을 돌린 순간, 수화기 너머로 기묘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허탈한 듯 한숨짓던 소리는 이내 울음처럼 끅끅대는 무언가로 점점 번져갔다.

“……잊지 못할 선물이네요, 이연 씨.”

지독히도 낮은 목소리에 이연이 움찔거렸다.

“……!”

마침 멀리서 권채우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핏기가 싹 가셔 푸른 기가 도는 얼굴이었다.

더군다나 이연이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새까만 슈트 안에 위에서부터 단추 몇 개를 푼 와이셔츠를 받쳐 입은 상태였다.

“……채우 씨?”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답가를 해 줘야겠죠.

희미한 물기가 고인 눈이, 실핏줄이 터진 흰자위가 이상해서. 이연은 심장이 차갑게 식는 듯했다.

그건, 틀리지 않을 어떤 예감이었다.

―완벽한 피날레예요.

권채우는 천천히 웃음기를 거두어가더니 이내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남자는 이연을 그대로 지나쳐 연주자들이 있는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의 눈빛이 꼭 잠에 취한 듯 몽롱해 보였으나 걸음걸이만큼은 날이 서 있었다.

예고도 없이 난입한 웬 남자 때문에 연주자들의 튜닝이 별안간 뚝 그쳤다. 이내 권채우는 누군가의 첼로를 과격하게 뺏어 들더니 야구 배트처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순간, 꺅― 하는 비명과 함께 연주자들이 일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쳤다. 권채우는 빈 의자를 향해 첼로를 내리치고, 내리치고, 또 내려쳤다.

“……!”

이연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그저 덜덜 떨리는 입가를 두 손으로 꽉 틀어막았다. 심장이 새빨간 경고등을 켰다 껐다 하듯 요란하게 쿵쾅거렸다.

우지끈 우지끈 앞판이 부서지는 소리가 기대했던 선율 대신 이연을 맞이했다. 나무 조각이 불티처럼 튀고, 네 개의 현이 뒤틀리며 고통에 찬 소리를 냈다. 첼로는 도무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채, 채우 씨, 대체 지금 무슨…….”

권채우는 첼로의 기다란 목 부분이 완전히 두 동강으로 박살이 날 때까지 치고, 또 쳤다. 밟고 또 밟았다.

하얗게 질려 경련하는 입술, 날붙이처럼 시퍼런 손아귀의 혈관, 그리고 담갈색 눈동자를 뒤덮어버린 흐트러진 머리칼. 그 모든 것들이 권채우를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보이게 했다.

그는 처참하게 널브러진 붉은 첼로를 밟고 잠시 숨을 골랐다. 적막한 숲 한가운데, 그보다 더 엉망인 건 없는 것 같았다.

이내 권채우는 뒤엉킨 머리를 떨리는 손으로 정리한 뒤 바짝 얼어붙어 있는 여자에게 휘청거리며 다가갔다.

“왜 그렇게 괴물 보듯이 봐? 무서웠어?”

그는 희게 질려있는 이연의 뺨을 눅눅하게 문지르며 말했다. 단지 손일 뿐이었는데도 그녀는 어깨를 크게 움츠렸다.

“언제부터 눈치 챘어?”

그가 영문 모를 말을 했다. 이연은 뭐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뭐라도―

“알고 있었잖아, 내가 네 남편 아닌 거.”

“……!”

“병신 권채우는 이제 여기 없는데―”

그가 단숨에 이연을 찌르고 들어왔다.

“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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