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내 이럴 줄 알았데이!”
추자가 질척한 땅을 밟으며 혀를 쯧쯧 찼다.
현재 이연은 4차 심사 공지를 받은 후, 산사태가 났던 현장을 재방문한 참이었다.
악몽으로 남아 버린 이곳은 여전히 복구가 되지 않아 엉망인 상태였다. 특히나 권채우를 잃을 뻔했던 순간이 어제처럼 선명하게 떠올라 온몸에 한기가 끼쳤다.
무언가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걷어 내지 못한 진흙 덩어리는 강둑처럼 쌓여있었다. 밑동이 시꺼먼 나무와 찌꺼기들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이제 이곳은 이연을 다시 시험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 양반이랑은 이렇게 만나게 될 줄 알았제!”
화이돔 프로젝트 4차 심사에서는 드디어 고대하던 D 병원과 맞붙을 예정이었다.
주제는 가드닝.
두 번의 산사태로 쑥대밭이 된 숲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화이돔은 곧 개장을 앞두고 있었고, 이번 심사를 통과하면 마침내 최종 후보 여섯 안에 들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입찰 경쟁에 지나지 않았으나, 심사를 계속해 나갈수록 이연은 방어적이기만 했던 지난 과거를 정리하고 새로운 막을 여는 듯했다.
그래서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갈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최종 낙찰이 간절해졌다.
화이도에서 제일가는 나무의사가 되고 싶다고.
‘내가 조금 더 잘나지면……, 권채우 씨도 나를 다른 눈으로 봐 주지 않을까?’
그저 하루하루를 무탈하게 살기 바빴던 이연은 비로소 욕심이란 걸 내기 시작했다.
“그러게 솔레 아들래미랑 진작 만나 보라 안 캤나!”
“솔레 조경 회사요?”
“솔레만 꽉 잡아 놨어도 이깟 심사는 식은 죽 먹기였다! 이 난장판을 우얄 낀데!”
추자는 팔뚝에 곧잘 달라붙는 모기들을 탁탁 내리쳤다.
이번 4차는 주민 참여제 심사로, 더 많은 표를 얻은 쪽이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조건은 딱 하나. 그들이 잃어버린 숲을 더 많이, 더 생생하게 되돌려 줄 것.
그런데 일개 개인이 어떻게 숲을 어떻게 복구해? 이연은 늪에 파묻힌 폐광산 같은 숲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머릿속이 텅 비었다는 것이 고스란히 표정에 드러났는지 추자가 에잉, 하며 언짢은 소리를 냈다.
“조경천이는 분명 솔레한테 의뢰 넣었을 끼다. 그럼 결혼식장맹키로 억수로 화려하게 바꿔 놓겠제!”
각 병원이 맡게 된 구역은 하필이면 두 땅덩이가 마주 보는 위치였다. 두 구역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결과물이 더욱 비교되기 쉬운 입지였는데. 한쪽이 화려한 가드닝을 선보인다면, 다른 한쪽은 필연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왜인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꽃을 많이 심어서 더러워진 땅을 덮는 게 과연 이 심사의 전부일까요?”
집이 무너지면서 어쩔 수 없이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참여하는 심사다.
피폐해진 건 땅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분들을 초대해 놓고 겉치레만 선보이는 게 왜인지 우습게 느껴졌다. 씻을 수 없는 악취를 비싼 향수로 뒤덮는다 한들 그게 주민들이 바라던 숲일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숲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들어오는 상황에서, 유명 조경 회사의 방식은 보는 이의 씁쓸함까지 해결해 주기엔 턱없이 부족해 보였다.
‘가드닝’이라는 단어에 너무 현혹되어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숲을 더 많이 되돌려 준다는 건 결국 위로와 맞닿아 있어야 했으므로.
“기왕 할 거면 제대로 속이란 말로 들려요.”
“야가 뭐라카노.”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요, 진짜로 숲을 불러와야 할 것 같아서요.”
“그기 뭔 소리고?”
이연은 심란한 눈빛으로 처참한 광경을 다시 한 번 훑어보았다.
“어쭙잖게 인테리어에만 신경 쓰지 말고, 아예 접근을 달리해 보자는 거예요.”
“하모 우얄 생각인데?”
별안간 이연의 눈동자에 한 줄기 이채가 내리꽂혔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을 심어 주는 게 이번 가드닝의 진짜 목적이지 않을까.
“이 산을 전부 커버할 수 없다면 눈은 버리죠.”
“머?”
“대신에…….”
어린 시절, 이연이 경험한 숲은 딱 하나였다. 그렇기에 꼭 시각적인 방법으로만 숲을 재현해야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언제나 바람을 타고 들어와 눈앞에서 피어났던 사계. 이미 만신창이가 돼 버린 땅에서 가장 극적으로 숲을 느낄 수 있는 건―
“어이, 소 원장―!”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뚝 잘라 버렸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D 병원의 조경천 원장이 정강이까지 오는 긴 장화를 신고 질척이는 땅을 풍덩풍덩 넘어오고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아아, 소 원장도 사전 조사하러 나왔어?”
“네, 뭐…….”
이연이 예의상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다 문득 퍼즐이 하나 빠진 것 같은 어색함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진드기 같은 선배가 딱히 궁금하진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축하연 이후 단 한 번도 보지를 못했다.
“교수님이 어쩐 일로 황조윤을 놓고 다니세요?”
“아―”
그는 깜빡 까먹고 놓고 온 물건을 이제야 떠올린 듯 가볍게 손뼉을 쳤다.
“걘 이제 없어.”
“다시 서울로 보내셨어요?”
“뭐, 어디론가 가긴 갔지.”
제 알 바가 아니라는 듯 턱을 문지르며 대답하는 눈빛이 사뭇 냉정했지만, 황조윤에 대해 더는 묻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대단하네, 용케 4차까지 올라오고.”
축하하는 것도 비꼬는 것도 아닌 묘한 어조였다. 이연이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그도 거리낄 게 없다는 듯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떨어져도 진즉에 떨어졌어야지.”
“……!”
너무나 평범한 표정으로 푹 찌르고 들어오는 목소리가 기이해 이연은 움찔 떨었다.
“나는 여러 번 기회를 준 것 같은데, 이러면 정말 곤란해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연아.”
별안간 조 원장이 어린 제자를 달래듯 조용히 불렀다. 그는 저번에 보았던 웬 커다란 남자가 곁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추자는 “이 늙은이가 뭐 하는 짓이가!”하며 조경천의 손을 찰싹 때렸지만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빠르게 속삭였다.
“화이돔에 가까이 갈수록 한 번쯤은 듣거나 만나게 될 거다.”
“……뭘요?”
“수국 제약.”
“거긴 유명한 제약 회사잖아요.”
“그 뒤에 있는 권가(家).”
처음 들어 보는 얘기에 그녀가 눈썹을 구겼다.
“혹시나 그쪽 집안사람들이 접촉해 오려고 한다면…….”
조경천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게 보였다. 평소의 호탕함이 싹 빠진 얼굴 때문인지 덩달아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게 됐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라.”
”……네?’
“그냥, 권씨 성을 가진 사람은 일단 피하고 보란 얘기야.”
“……!”
순간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이름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의문이 남았다.
“왜요?”
조경천은 말을 고르는 듯 잠시 입을 다물고 침음을 삼켰다. 토해 내고 싶은 말들이 앞다투어 고개를 내밀었지만, 권가(家)에 메여 있는 몸은 배신자의 말로를 기억해 내곤 식은땀만 흘렸다.
과거, 소이연이 발견한 희귀 식물이 지금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결국 조경천은 가지를 다 잘라 내고 껍데기 같은 말만 읊조렸다.
“순진한 나무의사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으니까.”
* * *
먼지가 쌓인 오래된 라디오를 꺼내자 이내 코끝이 간질간질해졌다. 이연은 누군가가 선물처럼 남기고 간 CD를 넣고, 촌스럽게 튀어나와 있는 딱딱한 버튼을 딸깍 눌렀다.
Shostakovich: Sonata for Cello & Piano in D Minor, Op. 40.
이연은 케이스 뒷면에 적힌 곡의 제목을 더듬더듬 읽어 내려갔다.
쇼스타코비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단조. 이윽고 부드럽지만 어딘가 우울하고 애절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녀에게 숲은 곧 음악이었다.
습한 바람만 부는 황무지에 시원한 우물을, 혹은 벼락이 번쩍이는 하늘을 불러올 수 있다면 그건 음악뿐일 것이다.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경치를 보여 주는 것. 특히나 폐허가 된 땅에 다시 한번 초목이 우거지고 봄꽃이 피어나는 싱그러운 산야를 그리게 할 수만 있다면. 기약 없이 기다리는 주민들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연은 그런 기대를 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가장 적합한 악기와 곡, 그리고 연주자들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연 씨.”
그때, 소리가 점차 커져 가는 현의 비브라토를 뚫고 묵직하게 쿵, 권채우가 노크를 해 왔다.
남자는 문설주에 기대 오래된 라디오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의 안색이 창백해 보였다.
“채우 씨, 어디 안 좋아요? 안색이 나빠요.”
“…….”
“혹시 체했어요?”
그러나 한동안 말이 없던 권채우는 별안간 주먹을 꽉 말아 쥐고 턱짓으로 물었다.
“웬 클래식이에요?”
“아……, 심사 준비 좀 하느라 오랜만에 CD 좀 꺼내 봤어요.”
“…….”
“시끄러웠어요? 이어폰 끼고 들을게요. 채우 씨는 침대에라도 좀 누워서―”
“아니요, 내버려 둬요. 정신도 번쩍 들고 오히려 좋은데요.”
그가 한쪽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끅끅 웃었다.
또다시 그녀가 모르는 모습. 이연은 입술 안쪽을 깨물며 치미는 불안을 어떻게든 흐트러뜨리려 노력했다.
“……채우 씨가 자기만 하면 악몽도 꾸고 울었었는데, 희한하게 이걸 틀어 주면 괜찮아 보였어요.”
“그랬겠죠.”
“네?”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는 다정한 미소 뒤로 온갖 찐득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눌러 담았다.
“어……, 그러고 보니 채우 씨 요즘은 안 우는 것 같아요. 예전엔 채우 씨 우는 소리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깼는데 최근엔 그런 낌새가 전혀 없었거든요. 혹시 내가 못 들은 거예요, 아니면 편안히 잘 자고 있는 거예요?”
이연이 걱정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첼로 소리가 점차 격하게 고조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현을 누르고, 튕기고, 활의 각도를 달리하여 줄을 베어 내듯 짧게 긁어야 하는 모든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곡을 연주하던 어머니의 모습까지도.
권채우는 경련하듯 떨리는 눈썹에 꾹 힘을 준 채 욱신거리는 귀를 눌렀다.
“눈물도 마르나 봐요. 그런데 그 CD는…….”
“아, 이건……. 저번에 말했던 그분의―”
“아아, 전리품?”
“네?”
이연은 눈앞의 남자가 지금 빈정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미묘한 어조에서 느껴지는 무형의 질책에 이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제가 그때 말이 부족했죠?”
그러나 권채우의 시선은 이미 그녀를 한참이나 비켜나 있었다.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CD 케이스. 척 보기에도 얼룩덜룩 손때가 묻고 금이 간 저것이, 한때는 소년의 조각이었다는 것을 이 여자는 꿈에도 모를 테지.
이내 남자는 손바닥으로 눈가를 가리며 서늘하게 읊조렸다.
“듣기 싫으니까 그만 꺼줄래요?”
“……네?”
“저 음악이요. 나 귀가 아파요, 이연 씨.”
며칠째 억지로 깨워놓은 몸은 조금씩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