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100/158)

#99

깊은 밤, 뜬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자니 별안간 스륵, 하고 이불이 바스락거렸다.

“이연 씨, 잠이 안 와요?”

권채우가 널찍한 손바닥으로 옆머리를 받친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뜨끈한 호흡이 콧등에 내려앉을 만큼 바짝 밀착된 자세였다.

얇은 여름용 이불을 코 밑까지 끌어 올린 그녀는 데굴 눈동자만 굴렸다.

“사실, 아까 채우 씨 없을 때 커피 마셨어요.”

“왜요?”

“안 자려구요. 오늘은 채우 씨가 먼저 잠들 때까지 버틸 거예요.”

“…….”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으나 이미 소등을 마친 침실은 모든 것을 덮었다.

“요즘은 맨날 내가 먼저 잠드는데, 일어나 보면 채우 씨는 벌써 깨어 있고.”

“그게 문제라도 돼요?”

“그런 건 아니지만, 하루 정도는 바뀌어도 괜찮잖아요.”

권채우는 졸음기라곤 하나 없는 그녀의 눈을 보며 입 안쪽을 혀로 꾹 눌렀다.

수면을 취하지 않은 지 벌써 닷새째. 그로서도 슬슬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고 나머지는 약으로 버틸 생각이었다.

그런데 소이연이 느닷없이 잠을 자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절로 입매가 굳어졌다.

이내 본심을 감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일 규백이랑 약속 있다고 했잖아요.”

“아…….”

이연은 까먹고 있었다는 듯 입을 살짝 벌렸다.

“가서 하품이나 하고 있을 거예요?”

“그치만…….”

이연은 무언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머뭇거렸다. 그를 살피는 시선이 늘어지는 반죽처럼 도무지 끊어지질 않는다.

권채우는 그것이 걱정이건 의심이건 관심을 끄도록 만드는 게 낫겠다 싶어, 불쑥 이연의 잠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

깜짝 놀란 이연은 옷 위로 두툼하게 올라온 손을 제지하듯 잡았다.

“뭐, 뭐 하는 거예요?”

“그냥 이대로 자요. 오늘 피곤했잖아요.”

그가 태연자약하게 이연의 배를 둥글게 문질렀다. 차가웠던 아랫배에 훈기가 스며들자 이연은 온천에라도 들어온 양 몸이 푹 퍼지려고 했다.

“권채우 씨 자는 얼굴 못 본 지 오래됐단 말이에요……!”

“한 달 내내 그 얼굴만 봤으면서 또 보고 싶어요? 질리지도 않아요?”

“그게…….”

물론 그때는 도통 깨어나지 않는 얼굴이 야속했지만, 지금은 관점이 달라졌다. 이연은 제 품에서 자고 제 손길에 일어나는 권채우가 보고 싶었다.

“읏……!”

아랫배를 배회하던 손이 잠옷 바지를 들추고 그녀의 팬티를 건드렸다. 이연이 움찔하며 그의 손목을 재차 붙잡았지만, 권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갈라진 틈 사이를 손톱으로 파내듯 문질렀다.

“하아…….”

어쩌지 못하고 달뜬 숨이 섞여 나갔다.

그는 속옷을 비집고 들어가 연약하고 매끈한 살점을 단번에 벌리고 쓸었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싹이 트듯 쾌감이 일었지만 불편함도 함께였다.

“권채우 씨, 하지 마요,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허벅지를 꽉 붙이고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나 남자의 팔뚝에 막혀 버린 몸은 다시 속수무책으로 침대에 눕혀졌다.

“그냥 이대로 자요.”

“흣……! 어떻게 이 상태로 잠을 자요? 나 이, 이럴 기분 아니에요!”

그는 곧장 작은 살점을 찾아내 교묘하게 누르고 흔들었다. 예민한 살성을 간지럽히듯 비빌 때마다 숨이 터질 듯 부풀었지만, 이연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신음을 억지로 삼켰다.

권채우가 그녀의 뺨에 입술을 문지르는 순간―

“얌전히 잘 테니까 저리 비키라고요!”  

이연이 고개를 홱 돌리며 단호하게 외쳤다.

“…….”

“…….”

음부를 가르고 마찰하던 움직임이 일순 멈칫했다. 권채우가 고의로 유도한 항복이었지만, 그녀가 스킨십까지 거부하니 묘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남자는 목뼈가 툭 불거질 정도로 돌아간 이연의 턱선과 쇄골을 천천히 훑었다. 마치 벌레라도 묻었다는 양 필사적으로 피하려는 모습이 제 못된 성질을 부추겨서. 그는 구멍 안쪽으로 두터운 중지를 푹 찔러 넣었다.

“아흑……!”

이연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거 알아요? 이연 씨는 나한테만 박해요. 다른 남자한테는 잘도 웃어 주고 친절하면서, 나한테만 이래.”

다른 권채우라도 네가 그랬을까? 한심한 열등감이 그를 갉아 먹었다. 최근 들어 그녀의 사소한 행동들이 미치도록 거슬렸다. 아직 젖지도 않은 내벽은 손가락을 뿌리 끝까지 잘만 삼키는데, 정작 그녀는 그를 밀어내듯 군다.

“쿨……. 쿠울…….”

이연은 어쭙잖게 코 고는 척까지 해 가며 애무를 피하려 들었다. 그 어설픈 농간이 오히려 남자의 속을 간지럽힌다는 걸 알기나 할까.

속이 빤히 보이는 꿍꿍이가 괘씸해서 권채우는 처음과 달리 그녀를 깨우기 위해 열심이었다. 구멍 안쪽을 푹푹 쑤실 때마다 이연이 움찔거렸으나 그는 모른 척 속삭였다.

“이연 씨 첫사랑이 누구예요?”

그는 중지를 넣은 채로도 음핵을 연신 건드리고 압박했다.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는 아래를 들락거리며 질컥대는 손과 사뭇 달랐다.

“도대체 왜 순서를 매기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첫사랑이요.”

“…….”

“난 세 번 묻는 거 싫어해요.”

“……나무.”

그러자 이연이 잠꼬대하듯 말을 스윽 흘렸다.

“남우? 그 새끼 이름이 남우예요?”

“…….”

“사는 데 알아요?”

“…….”

“어떻게 생겼는데요? 지금이라도 몽타주 그릴 수 있어요?”

이연은 숫제 머리가 띵해졌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꼬투리를 잡는 솜씨는 어째 변하지를 않는다. 안도인지 피로인지 모를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만해요. 자고 있잖아요……. 얌전히 자는데 왜 이래요……!”

그녀는 권채우의 어깨를 꾸욱 밀어 봤으나 꿈쩍도 안 했다.

“이해가 안 돼서요.”

그러는 사이 음부를 헤치던 손은 세 개까지 늘어났다.

“남편이랑 침대에서 노는 게 그렇게까지 질색할 일인지.”

“흣……!”

“왜 자꾸 신경을 긁지?”

그는 내벽을 거침없이 쑤시며 애액을 퍼 올렸고, 안쪽을 죄다 긁어낼 듯 천장을 자극했다. 구부러진 손가락이 대신 추삽질을 하며 내벽 어딘가를 탁, 탁 건드렸다.

다리 사이에 심어 놓은 불덩이가 자꾸만 커져 갔다. 이연은 엉덩이가 들썩거리려는 것을 혀를 깨물고 참느라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하아…….”

애타는 신음은 그녀가 아닌 권채우에게서 나왔다. 어느새 바지 너머로 존재감을 드러낸 페니스가 이연의 골반 부분을 뭉툭하게 찌르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눈을 번쩍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지금 깔끔하게 손 안 떼면 권채우 씨랑 다시는 섹스 안 해요.”

“……!”

노골적인 애무를 하면서도 내내 반듯하기만 하던 그의 안면이 된통 일그러졌다.

“권채우 씨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요?”

“손가락이 너무 얇았어요?”

“…….”

“아니면, 뻑뻑해서 아팠나? 처음부터 입으로 빨아 줄 걸 그랬나 봐요.”

이연은 그에게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명상하듯 깊이, 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게 아니라……! 원래는 내 기분에 무지 예민하게 반응해 줬잖아요.”

차분한 타박이 그를 향했다.

“그런데 요즘은―”

“개새끼가 주인을 못 알아봐요?”

그가 불시에 이연의 음핵을 꼬집어 당겼다. 그 흡입력이 평소 입으로 해 주던 것과 똑같아서 하마터면 신음을 크게 내지를 뻔했다.

“흐읏…….”

그러나 한번 불편한 마음이 일자 쾌감은 즐거움이 아니라 그녀를 짓누르는 약점이 되었다.

그의 힘 아래, 무력하게 누워만 있는 건 이연이 원하던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전에는 없던 권채우의 무례를 이런 식으로 확인받고 싶지 않아서, 아직은 그 무엇도 확신하고 싶지 않아서.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진짜 내 기분은 안중에도 없어요?”

“없어요.”

“……!”

권채우는 일말의 고민거리도 안 된다는 듯 평연하게 일축했다.

“그러게 애당초 날 왜 피해?”

이연은 목구멍이 꽉 막히는 기분에 애꿎은 시트만 움켜쥐었다.

“나는 너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이 죽을 끓는데.”

그가 번들거리는 눈을 찡그리며 이연의 아랫입술을 와락 짓씹었다.

“이깟 걸로 우는소리 하지 마요.”

입술 끝이 벌어지고 혀가 밀려들었다. 어딘가 빨리고, 뚫리는 느낌은 위아래가 구분되지 않았다. 츠읍, 츕, 타액을 핥아 먹던 그가 이연의 침샘을 건드렸다. 남자는 혀뿌리에서 솟아나는 것을 죄다 빼앗아 갔고, 그럴수록 이연은 알 수 없는 원망만 자라났다.

“이 쌍놈이…….”

뭉개진 발음으로 그렇게 속삭이자 권채우가 입술을 뗐다.

“뭐라고 했어요?”

“이 쌍놈이, 쌍놈이 지 멋대로…….”

실망이 넘실대는 그녀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룽어룽 고여 있다. 권채우는 열이 울긋불긋 오른 여자의 눈 밑을 혀로 쓸어 보았다.

“그걸 이제 알았어?”

남자는 일부러 예민한 지점을 긁고 나오며 손가락을 뺐다. 허리가 바르르 떨렸지만 이연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권채우는 손가락에 묻은 투명한 애액을 무표정하게 바다보다, 돌연 제 바지를 내리고 붉게 일어선 성기 끝에 치덕치덕 펴 발랐다.

“나랑 다시는 섹스 안 할 거라고요?”

그는 핏줄이 넝쿨처럼 돋아난 성기로 이연의 손을 끌고 왔다. 이연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을 주고 버텨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연의 손을 겹쳐 잡으며 페니스를 꽉 쥐었다.

“살 떨리는 협박이긴 했어요.”

이연은 손바닥 안에서 기이하게 꿈틀거리는 물건에 기겁을 했지만 곧 그럴 새도 없이 위에서 아래로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귀두 부분을 잡고 흔들다가, 다시 뿌리에서부터 쭈욱 길게 쓸어 올렸다. 마찰열 때문에 손바닥이 타들어 갈 듯 뜨거웠지만, 동시에 축축한 무언가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연 씨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이연의 떨리는 눈동자에 발톱을 콱 박아 넣듯 시선을 고정했다. 거친 숨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올 때에도 집요한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편편했던 미간이 한 번씩 일그러지고, 목에 핏줄이 곤두섰다.

“원래 쌍놈들은 따귀 맞을 짓을 좋아하거든요.”

“으…….”

이내 권채우의 손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치대기 시작했다. 팔과 손목이 아프고 손아귀는 얼얼했다.

이내 빛깔 좋은 입술이 벌어지고 묵직한 신음이 들끓는다. 살짝 들추어진 턱 아래로 튀어나온 목울대가 풍랑처럼 일렁였다.

손 위로 뜨끈한 무언가가 터지자 이연은 진한 냄새에 현기증이 일었다.

“씨발, 섹스를 안 하기는. 이연 씨가 싫어해도 나는 계속 싸지를 건데. 뭣하면 침이라도 뱉을래요?”

이연은 백 미터 경주라도 한 듯 온몸이 나른하게 풀렸다. 덩달아 아랫배가 욱신거리고 온 감각이 예민해졌지만 도무지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 올릴 힘이 없었다.

권채우는 그녀의 귓가에 짧게 촉, 입을 맞추며 다정하게 읊조렸다.

“그럼 오늘 밤은 같이 악몽이나 꿔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