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9/158)

#98

달그락, 달그락.

식기 부딪치는 소리를 빼면 오고 가는 대화가 전혀 없는 식탁 위.

“…….”

“…….”

이연은 연거푸 반찬을 놓칠 정도로 권채우를 열심히 흘긋거리고 있었다. 

퇴근 후 신발을 벗는 순간부터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홀린 듯 부엌으로 향하자 식탁에는 저녁 밥상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마침 수저와 젓가락을 놓던 권채우가 턱짓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따라온 거냐고 한 소리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담담한 그의 얼굴을 보니 혼자만 열을 내는 게 어쩐지 무안해져서 그녀는 순순히 손을 닦고 왔다.

“조금 있다가 발 주물러 줄게요.”

권채우는 자꾸 헛손질하는 그녀 대신 반찬을 집어 주었다.

“왜, 왜요?”

이연은 제 밥그릇 위에 얹힌 계란말이를 보며 물었다.

“하루 온종일 걸어 다녔으면 발바닥 아플 거 아니에요.”

“그건 그런데…….”

권채우는 그녀의 경계 어린 반응에 비웃음이 새 나가려 했다.

“나랑 허벅지도 얽는 사이면서 겨우 발 가지고 뭘 그래요.”

“……!”

“그리고 부러뜨리는 게 아니라 주물러 준다고 했어요.”

그 부연 설명이 더 이상한데요……. 

이연이 딱딱하게 웃으며 그가 준 계란말이를 한입 베어 문 순간이었다. 

지이잉, 울리는 핸드폰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얼핏 액정을 보니 동호회 회장인 청년이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대충 뒤풀이라는 단어까지 읽었을까. 탁, 하고 권채우가 소리 나게 젓가락을 놓았다. 

“지금은 나랑 밥 먹는 시간이잖아요.”

목을 스치는 싸늘한 음성에 이연은 눈동자만 돌렸다.

“퇴근도 했고요. 근데 애새끼들 응석은 대체 어디까지 받아줄 생각이에요?”

“응석이라뇨, 이거 다 돈 받고 하는 건데.”

이연의 태평한 대꾸에 권채우는 짜증스러운 숨을 삼키느라 속이 다 탈 지경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깟 돈 때문에 밥상머리에서 한눈을 팔겠다고요.”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이연 씨 먹이려고 맨손으로 생선도 구웠으니까 나만 보라고요.”

그가 식탁 모서리를 부서져라 붙잡자 그릇들이 진동하듯 바르르 떨렸다.

“돈 준 사람이 대수야? 난 너한테 몸도 대 주는데.”

“……!”

“여기에만 집중하라고. 그까짓 돈은 나도―”

확 내지르려던 그가 돌연 입을 꽉 다물었다. 

네 집 뒷산이 내 소유라고. 화이도의 반의반이 내 산이라고. 그 말이 목구멍 끝까지 치솟았지만 그는 뿌드득 어금니를 갈며 물만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이연도 덩달아 얼굴을 굳히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깟 돈이라니, 사회 초년생이 말이 심하네요.”

“…….”

“권채우 씨처럼 돈 무서운 줄 모르면 우리 집 가계는 망해요!”

그녀가 엄한 얼굴로 혼내듯 바라보았다. 치켜뜬 눈은 우습고, 고랑처럼 파인 미간은 귀여웠다. 

권채우는 인상을 와락 찌푸린 채 가슴 어딘가를 손목 안쪽으로 꾹 눌렀다 뗐다. 제 발아래에 꿇려야 할 여자인데, 그녀를 제 어미보다 더 비참하게 만들어 줘야 하는데. 그는 혀를 짓씹으며 욕설을 삼켰다.

이 와중에도 이연은 식탁을 콩콩 두드리며 계속 바가지를 긁고 있었다.

“잊었나 본데, 권채우 씨는 여기에 몸만 들어왔어요. 집, 차, 가전제품, 전부 다 내 꺼라고요. 심지어 대출금 이자도 나 혼자 갚는데! 지금 응석은 누가 부리고 있지요? ……아, 2층은 빼고요.”

그녀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소심하게 덧붙였다. 

“부부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구요.”

“이연 씨, 변했어요.”

순간 어둑해진 눈동자가 이연을 향하자 그녀가 흠칫 숨을 죽였다.

“뭐, 뭐 내가 뭘 변해요. 지금 누가 할 소리를……!”

“예쁘고 좋은 것만 보자면서요.”

“……!”

“내가 불면 날아갈까 전전긍긍했잖아요. 감춰 두고 싶어 할 만큼 예뻐했잖아요. 그래서 좋은 건 혼자만 보는 거라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했으면서. 사람이 어떻게 변해요.”

그 말을 직접 들은 건 아니었지만, 어찌 됐건 차별은 나쁘지 않나. 두 남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나 다르니 권채우는 배알이 살살 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랑 밥 먹는데 한눈이나 팔고, 앞으로 섹스할 때도 그럴 거예요?”

“…….”

“한번 해 봐요, 어떻게 되는지 나도 좀 보게.”

이연의 동공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그의 지적에 말문이 막힌 건지, 아니면 대화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게 충격인 건지, 이연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의 얼굴을 탐색하듯 살폈다.

“코흘리개는 코흘리개예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놈들이 돈은 무슨 돈.”

그의 입매가 위악적으로 비틀렸다.

“어린놈이랑은 아예 상종을 말아요. 아직 좆도 설익은 걸 어따 쓴다고―”

그때, 신나게 툴툴대던 권채우가 입을 조개처럼 닫아 버렸다. 갑자기 잿빛이 된 안색이 이상했다. 확 다물어지듯 조여드는 동공에, 조금씩 찌푸려지는 미간. 그의 목울대가 찰나에 몇 번이나 일렁였는지 전부 다 세지도 못했다.

“……왜 그래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묻자 남자는 단숨에 물 한 잔을 비우고 시선을 피했다. 

“……내가―”

소이연보다 네 살이나 어린 권채우도 상대적으로 어린놈이라면 어린놈이라서.

좆 됐다는 감상이 일시에 스쳤다.

“잠깐, 경솔했어요.”

“네?”

한 차례 얼굴을 쓸어내린 그는 돌연 뇌리를 스치는 목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어린 원숭이는 냄새가 좋대요.”

씨발, 이상하게 기분이 더럽다. 그는 입맛이 뚝 떨어져 더 이상 한 숟갈도 뜨지 못했다.

* * *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되도록이면 드시지 마십시오.”

의사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듯 약병을 내밀면서도 끝까지 손아귀에 힘을 풀지 않았다. 

권채우는 의사 나름대로의 염려가 담긴 경고에도 약병을 단번에 휙 낚아채 갔다. 

잠깐 슈퍼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집을 나왔으니 얼른 돌아가야 했다.

“차라리 주무세요!”

의사는 미련 없이 나가는 그의 등에 대고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중추 신경 각성제는 함부로 먹으면 안 됩―”

문을 쾅 닫으며 나오자 세상은 한결 조용해졌다. 신경질적으로 금이 가 있던 미간도 얼굴을 바꿔 낀 듯 깨끗하게 펴져 있었다. 

소란스럽지 않은 병원 복도를 뚜벅뚜벅 걷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권채우는 표정 변화 없이 전화를 받았다.

―권기석, 움직임 없습니다.

“소이연은?”

―화단 정리를 하고 계십니다.

권채우는 눈썹 끝을 꺾어 올리며 낮게 혀를 찼다.

“다리도 아픈 주제에 빨빨거리는 강아지도 아니고.”

―도련님.

그때 장범희가 다소 걱정스럽게 그를 불렀다. 권채우는 내용을 듣지 않고도 알 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가 주머니에 넣어 둔 약병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약 드시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올라가는 게 어떻습니까. 말씀만 해 주시면 당장 준비해 놓겠습니다.

“…….”

권채우는 통화 중인 사람답지 않게 안면 근육을 조금도 쓰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이도에 계속 남아 있는 건 시간 낭비 같습니다. 그냥 소이연 씨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주무십시오. 제가 본가까지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수면 과다증에 시달리는 권채우를 소이연만이 깨울 수 있다는 환상은 이제 없다. 

옛 기억을 되찾으면서, 소이연에 대한 맹목적인 감정이 사라지면서, 그 황당하기 짝이 없던 고리는 진즉 부서졌다. 

그건 절대적인 직감이었고, 권채우는 그 부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벌써 며칠째 잠을 자지 않았다. 

―목표는 처음부터 권기석 아니었습니까. 

“그랬지.”

가족들은 십 년 만에 돌아온 막내를 하루빨리 권가(家)에 걸맞은 일원으로 키워 내기 위해 애를 썼다. 

악습과 병폐를 이어 가던 가문은 그 무엇보다 결속력을 강조했지만, 윤주하의 아들로 살았던 소년에겐 전부 부질없는 일이었다. 

권채우는 핏줄로 이어진 유대를 끝까지 거부했고 스스로 고립되기를 택했다.

시간이 지나 첼로를 그만둔 남자가 사냥개를 장악했을 때. 그는 기다렸다는 듯 윤주하에 대해 파고들었다. 

그리고 저택 지하에 윤주하를 가둬 둔 이유가 단순히 친부모의 분노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윤주하는 과거, 수국 제약이 자행해 오던 불법 인체 실험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녀가 열 살일 무렵, 어느 양심적인 연구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시설을 탈출했고, 그 후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후원자를 만나 재능을 꽃피웠다. 

끔찍했던 과거는 잊고 아름답게 성장한 윤주하였지만,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권기석의 악기 선생님으로 권가(家)를 드나들게 되면서 그녀는 조금씩 변해 갔다.

수국 제약의 모체가 다름 아닌 권가(家)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고작 스물 한 살이었던 윤주하는 과거의 악몽에 한순간 집어삼켜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사람들의 비명, 비쩍 말라 죽어 가던 남동생, 곰팡이가 서려 있던 지하 시설은 화려한 정원을 지날 때마다, 권기석의 사립 학교 교복을 볼 때마다 썩은 물처럼 넘어왔다. 

욕지기를 매일같이 삼킨 윤주하는 상냥한 선생님이었지만, 결국 권가(家)의 신뢰를 얻은 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그들의 세 살배기 막내아들을 첼로 가방에 넣어 도망쳤다.

하지만 그녀의 복수는 성공하지 못했다.

훔쳐 냈으면 그녀가 당했던 대로 망가뜨리기라도 하지.

악심을 품었으나 사랑으로, 혹은 복잡한 다른 무엇으로 아이를 길러 낸 것부터가 패착이었다. 

그렇기에 권채우는 대신 이뤄 주고 싶었다. 어머니의 못다 이룬 염원을.

“권가(家)를 증오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어디 나 하나뿐일까.”

복종만을 바라는 그들의 과격한 방식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지금껏 한 명도 없었을까. 

그런 사람들을 처리하는 일이 사냥개의 주된 업무였으나 권채우가 집단을 장악한 이후로는 몰래 외국으로 빼돌리는 일이 잦아졌다.

권채우가 오래전부터 준비해 오던 것. 

그건 권가(家)의 해체였다.

―예, 그러니 고작 소이연 씨 하나 속이자고 도련님 몸까지 상해야겠습니까?

“고작이라.”

그는 별다른 감흥 없이 장범희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확실히, 하잘것없는 일이긴 한데.”

권채우의 걸음이 점점 느려지더니 어느새 그가 우뚝 멈춰 섰다.

“요즘 그 여자가 눈은 그대론데 입만 웃어.”

―……네?

“해 봐서 알잖아, 범희야.”

권채우는 병원에서 진동을 하는 소독용 에탄올 냄새를 들이마셨다.

“곧 도축당할 걸 눈치챈 동물들이 어떤지.”

―…….

“몸부림을 치면 육질이 뻣뻣해져.”

그러나 창밖을 바라보는 옅은 홍채야말로 보잘것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맛없는 걸 먹으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게 아닌데.”

그가 눈을 깊게 내리 감았다 떴다. 슬슬 갈 준비해 놔. 칼자루를 쥔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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