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세금 내는 소나무, 석송령입니다.”
이연의 목소리에 아직 풋내가 가시지 않은 대학생들이 시선을 집중했다. 총기가 반짝이는 수십 쌍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담겼다.
역시 소나무를 사랑하는 모임이라 그런지 저마다 나무의 나이를 측정해 보고, 나무의 상태도 진단해 보는 모습이 꽤 그럴 듯했다.
같은 직업군도 아닌데 이렇게나 나무에 애정을 가져 준다는 게 고마워 어느새 이연의 입가는 흐물흐물 풀어졌다.
“혹시 이 중에서 재산세 내는 친구 있나요?”
학생들이 잠잠하자 이연은 “그쵸, 아직은 그럴 거예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나무는 냅니다. 엄연히 주민 등록 번호도 있는 땅 주인이에요.”
“땅 주인이요?”
“네, 토지 만 이천 평을 물려받았거든요.”
“……!”
학생들의 눈이 커다래졌다.
“나무가 상속을 받은 경우는 전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거예요.”
안 그래도 한 폭의 수묵화 같았던 소나무였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 그 위용이 더욱 대단해 보였다. 학생들은 입을 반쯤 벌리고 그들의 머리 위를 거대하게 덮어 주고 있는 잎사귀를 올려다보았다.
“이 땅에서 곡식을 얻으면 소득세는 물론이고, 토지세까지 내는 성실 납세자입니다. 근처 학생들에게 장학금까지 주는 후원자이기도 하구요.”
이연은 의식적으로 시선을 단속하며 말을 이어 갔다. 학생들을 두루두루 쳐다보기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몇몇 남학생들에게만 눈길을 주었는데, 그럴 때마다 옆얼굴이 꼭 타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그렇다고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
히익, 이연은 기겁을 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렇지 않으면, 마을을 지키는 정승도 아닌데 남들보다 두 뼘이나 더 큰 키에 서늘한 표정을 한 권채우와 정면에서 딱 마주쳐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그래서 매년 음력 정월이면 마을 주민들은 제사를 지내요.”
이연은 학생들을 향해 억지로 웃어 보이느라 입매가 벌벌 떨렸다.
대체 여기엔 어떻게 온 거예요?!
아니, 왜 온 거냐고요!
이연은 찔리는 게 아주 많았다.
어젯밤, 권채우를 피해 사무실에 콕 들어가 박힌 것부터 그랬다. 혹여나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아닌지 신경이 곤두서 있었지만 다행히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발소리 하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적막 속. 이연은 방문을 연신 곁눈질하며 밀린 치료 일지를 작성해 나갔다. 그렇게 새벽녘이 돼서야 다시 거실로 나갔더니―
“헉……!”
어둠 속에서 칼날처럼 번뜩이는 동공과 맞닥뜨렸다.
남자는 이연이 마지막으로 보았던 자세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오자마자 마주치는 게 권채우의 서리 낀 눈이라니. 왜인지 머리털이 쭈뼛 섰다. 대체 얼마나 집요하게 방문을 노려보고 있던 건지 이연의 상식으로는 가늠조차 어려웠다.
“다 끝났어요?”
권채우는 막대기로 사체를 들추어 보듯 그녀를 한 차례 탐색해 내려갔다. 이연은 곧장 고개를 끄덕거렸다. 섬뜩한 분위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인내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자 중저가의 값싼 가죽이 탄력을 잃고 움푹 파였다.
남자는 앞장서지 않고 이연을 뒤따라 걸었다. 그게 마치 더 이상의 퇴로는 없을 거라는 뜻으로 들려 침실까지 몇 발자국 안 되는 걸음이 후들후들 떨렸다.
그래도 잘 자고, 잘 일어났는데. 평범하게 아침을 먹고 권채우를 출근시켜 보냈는데.
분명 그랬었는데…….
왜 저 남자가 저기에 끼어 있어?
센터 저지를 입은 그는 주변 학생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굳이 한 가지를 찾아내자면, 공부하는 학생답지 않은 저 흉흉한 눈빛이라는 건데. 이연은 자꾸만 한곳으로 신경이 쏠리는 것을 애써 끊어 내며 해야 할 일을 했다.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땅 주인이 이 나무한테 땅을 물려줬습니다. 벌써 구십 년도 전에 등기를 마쳤고, 유산 문서를 남겨 두어서 정식으로 상속을 받게 된 거예요.”
슬슬 목이 말라 왔다. 이연은 밀짚모자 창을 살짝 들고 시계를 확인했다.
“그럼 다음 소나무로 갈까요?”
그때 동호회 회장이란 녀석이 타이밍 좋게 시원한 음료수를 건넸다.
“선생님, 이거 드세요.”
“아…….”
이연이 머뭇대는 기색을 보이자, 청년은 말없이 알루미늄 캔을 딴 뒤 다시 내밀었다.
그녀는 마지못해 캔을 받아들었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이상하게 손끝이 떨렸다.
“선생님, 예전에 K 일보에 나무 이야기로 칼럼 내신 적 있죠.”
“그걸 어떻게 알아요?”
빠르게 목을 축인 이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냥 우연히 삼촌 신문에서 보게 됐는데, 그때 이후로 쭉 찾아 읽었어요. 선생님 관점이 멋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렇게 나무 입장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지 계속 궁금했고요. 그 칼럼이 정기 연재가 아니라 아쉬웠어요.”
서글서글한 인상의 청년이 순하게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이 정도면 팬은 되는 거 같지 않아요?”
“패, 팬일 것까지야.”
이연은 처음 들어 보는 말에 당황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이에요. 아픈 나무들의 관점에서 사람들한테 일침을 가하는 게, 저한테는 충격이었거든요. 사실은 꼭 만나 뵙고 싶어서 삼촌한테 조른 것도 있어요.”
“…….”
“나무 얘기만으로도 하루를 꽉 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거든요.”
그가 귓불을 붉히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에 이연이 반색하며 모자챙을 홱 들었다.
“아저씨들도 괜찮아요?”
곱고 선명한 눈썹부터 시냇물처럼 맑은 눈망울까지 단번에 드러났다. 청년은 입을 열었다 닫으며 굳어 버렸다.
“나무만 가지고도 동틀 때까지 수다 떠는 아저씨들이라면 많이 알거든요.”
“그게, 저는 그게 아니라…….”
청년은 당황한 듯 잠시 허둥대더니 이내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선생님, 혹시 남자 친구 있으세요?”
이연은 가뿐한 마음으로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다가 사레에 걸렸다. 다행히 볼썽사납게 콜록거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코끝이 매운 게 곤혹스러웠다. 그녀는 숨을 참듯 자신의 콧방울을 부여잡았다.
“어…….”
이연은 말을 늘이며 저도 모르게 권채우를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살기 띤 눈빛이 청년의 뒤통수를 향해 있었다. 당장이라도 이연을 끌어낼 듯, 혹은 남자애를 사정없이 걷어찰 듯 화를 삭이고 있는 얼굴이 귀신보다 더했다.
그렇게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그는 다 들었다는 양 턱관절이 나무뿌리처럼 툭 불거져 있었다. 이내 그 살벌한 시선은 이연에게까지 옮겨붙었고, 별안간 팔다리가 사슬에 묶인 듯 저릿저릿해지기 시작했다. 피가 통하지 않았다.
그때 지이잉, 목에 걸고 있던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확인하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아서, 이연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남편이 있다고 네 입으로 말해.
칼 같은 목소리가 펄떡펄떡 뛰고 있는 경동맥에 닿는다.
―말해.
그는 앳된 청년의 머리통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밟아 터트리고 싶다는 충동이 묘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서 떨림으로 배어 나왔다.
앞으로 괴로워하고 애원해야 하는 건 소이연이지, 그가 아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우위가 뒤바뀐 듯해 속이 울컥거렸다.
설명할 수 없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 때에는 이게 누구의 감정인지, 누구의 기억인지, 그 구분마저 무의미해졌다.
―여기서는 문도 못 잠그는데 어떻게 할래.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녀를 떠보듯 부추겼다.
―어제랑은 달라. 네가 입을 다물면 비명은 저 새끼가 지르게 될 거야.
“……!”
―그러니까, 그 입 떼.
경련하듯 미간이 떨려왔지만 이연은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남편이 있어요.
그는 감정이 싹 빠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정답을 일러주었다. 이연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얼결에 그를 따라 했다. 그녀는 조종당하는 목각 인형처럼 입을 뻐끔거렸다.
“……남편이 있어요.”
“네?”
그러자 청년의 얼굴에 크나큰 실망이 비쳤다.
―남편 취미는 발골이에요.
“남편 취미는, 으, 네?!”
―자지는 모자라지 않으니 하나면 되고요.
순간 얼굴이 화르륵 불탔다.
―복창 안 해요?
잠시 압도당했던 정신이 와장창 깨지는 기분이었다.
―이연 씨는 단일 성능을 좋아하니까 당연히 쓰던 것만 써야죠.
그녀가 검지를 부들들 떨며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이내 씩씩거리며 그를 노려보자 권채우는 백치인 척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서려 있던 한기는 그대로였다.
한편, 청년은 눈꺼풀을 몇 번 빠르게 감았다 뜨며 목에 힘을 주었다.
“삼촌이 분명, 선생님 아직 미혼이시고, 솔로일 거라고 했는데요.”
이연은 바싹 약이 오른 호흡을 정리하며 목덜미를 문질렀다.
예전에는 나도 내가 미혼인 줄 알았지…….
“그렇게 아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말이 뭐라고, 청년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알 수 없는 침묵에 이연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자, 귀엽게 머리를 땋아 내린 여학생이 청년을 힐끔대며 불쑥 끼어들었다.
“선생님은 이상형이랑 결혼했어여?”
“…….”
그에 이연은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했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였다.
마침 권채우도 그녀의 입만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이연은 그 시선을 기꺼이 받아 내며 턱을 문질렀다.
“……그게 이상형이면 큰일 날 것 같은데요.”
“네?”
“결혼에 너무 환상 갖지 말아요. 어차피 이혼하면 남인 걸.”
“아, 그렇져…….”
깜찍하게도 이십대 초반의 여자애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얼마나 사귀시고 결혼한 거예여?”
“어……,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결혼했어요.”
그 말에 여학생은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을 빛내면서 와― 하고 작게 감탄했다.
“그 정도로 첫눈에 반했던 거예여? 혹시 첫사랑이었어여?”
까르르 밝게 터지는 웃음이 순진했다. 그러나 이연은 웃을 수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권채우의 자리를 더듬거리며 찾아가는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생각보다 더, 권채우가 그녀의 삶을 많이 차지해 버렸다는 것을 이 순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에.
‘첫사랑이에요.’
그러나 이연은 속에다 그 말을 깊이, 깊이 파묻고는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이윽고 그녀는 학생들을 인솔하여 다음 소나무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그녀의 등을 좇는 눈동자에 파직 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