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아침이 되어 눈을 떠 보니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권채우가 이곳에 머물렀다는 흔적이라곤 찰과상에 바르는 연고와 꽉 여며진 그녀의 샤워 가운이 전부였다. 특히나 가운은 얼마나 세게 묶어 놨는지 풀어 헤치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볼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어젯밤 로비에서 그런 소란을 피웠으니,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다녀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연은 아침부터 몸이 축 처졌다.
“어이―, 소 원장. 안색도 안 좋은데 요령껏 해. 요령껏!”
심사 이틀째의 아침.
솔개 박 원장의 말에 이연은 머쓱하게 제 뺨을 쓸어내렸다.
“저더러 방심하라구요?”
“에헤이, 사람 마음을 그렇게 곡해하면 섭하지!”
팔자로 축 떨어진 눈썹과 달리, 씰룩거리는 입 모양은 도통 모를 조합이었다.
박 원장은 테이크아웃 커피 컵 위에 대충 담배 끝을 비비고, 고철 덩어리가 모여 있는 쪽에 휙 꽁초를 던졌다. 이연은 곧장 인상을 찌푸렸다.
“원장님, 여기다가 버리시면 어떡해요.”
“어차피 쓰레기 더미잖아. 미안, 미안.”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내려가는 박 원장의 모습에 기운이 빠졌다.
“휴우…….”
그녀는 묵직한 한숨을 내뱉으며 바위에 잠시 걸터앉았다.
점점 창백해지는 이연의 낯빛을 본 추자가 약을 사 오겠다며 산을 내려간 지도 벌써 삼십 분이다. 이연은 숨 가쁘게 일만 했던 오전 스케줄을 떠올리며 이마에 송골송골 난 땀을 훔쳤다.
붉은 속살이 파헤쳐진 땅.
이제는 쓸모없어진 고철 조각들이 둥글게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살려 달라는 신음이 산속을 뒤엎고, 사람과 비행기의 잔해가 가장 많이 널브러져 있던 곳.
이연은 여태 치우지 못한 기체들을 보며 탁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시커멓게 탄 고철들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권채우가 떠올랐지만, 그녀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지워 냈다.
저벅저벅.
그때 흙 알갱이와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커다란 실루엣을 본 이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햇빛에 비춰 날카롭게 번뜩이는 낫이 시선에 박혀 들었다.
“…….”
“…….”
저지를 턱 끝까지 얌전히 올린 매무새가 멀끔했다. 난폭했던 어제와 다르게, 푸른 잎사귀 아래의 그는 순진한 청년 같은 인상을 풍겨서. 이연은 말없이 눈만 끔뻑거렸다.
낫으로 풀숲을 헤치며 나타난 권채우는 분명 이연을 발견했음에도 아는 척 대신 엉망인 숲속부터 둘러보았다.
미미하게 일그러진 콧잔등에선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읽혔다. 어젯밤, 그렇게나 몸을 섞었음에도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겠다. 이연은 손가락을 쥐었다 펴며 입을 열었다.
“어제……, 잘 잤어요? 내 옆에서 잔 건 맞아요?”
“네, 푹 잤어요.”
의외로 부드러운 대답이 돌아왔지만 이연은 떠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연 씨 좋은 곳에 있었네요.”
“네?”
여기가요……?
수거되지 못한 잔해들이 흉물스레 모여 있고 나무들은 죄다 찢어졌다.
이연이 황당하단 눈으로 권채우를 바라보자 그는 감정 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사람 없는 곳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연 씨랑 대화를 나눌 시간이 부족했잖아요. 깨어나자마자 바로 심사 일정도 잡혔고.”
그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낫을 고쳐 잡았다.
“사례금이 뭐예요?”
“……!”
“내가 모르는 이야기라 궁금했어요. 말해 줄 수 있어요?”
“그게…….”
다짜고짜 과거를 들추는 말에 그녀가 움찔거렸다. 이연은 괜스레 땀이 나는 손바닥을 마주잡았다.
“그냥, 오래됐고 별것 아닌 이야기예요.”
목소리가 기어가듯 줄어들었다. 그렇게 소극적으로나마 불편한 티를 내 보았는데도 권채우는 흔들림 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해하고 말간 담갈색 눈동자. 동공 위에 흩뿌려진 잿빛 돌 부스러기까지 전부 다 보이는 투명한 눈빛. 이연은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게 더 힘들 지경이었다.
“……급해 보이는 어떤 분을 도와준 적이 있어요. 예전에, 내가 신령목 앞에서 노래하는 나무 얘기했던 거 기억나요? 채우 씨 잠들기 전에요.”
권채우의 한쪽 눈썹이 약하게 꿈틀거렸다. 꼭 신령목 앞이 아니더라도 그녀와 집 안에서 나누었던 나무 이야기는 장범희가 건네준 보고서에 퍽 자주 나와 있다. 그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언니였어요. 언니라기엔 아들이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젊어 보였거든요. 한 달 좀 넘게 우리 집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는데……. 짧은 인연이었지만 언니네 집에서 고맙다고 사례금을 줬어요. 삼촌이 아플 때라, 그 돈은 삼촌 병원비로 썼구요……. 그냥 그런 얘기예요.”
이상하게 말을 하면 할수록 고개가 굽어 들었다. 심장이 쿡쿡 찔리고 입이 말랐다. 이연은 목덜미 어딘가를 긁적이며 낮게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 노력했다.
그때 권채우가 허리를 숙여 이연의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이연 씨, 거짓말은 그쯤 하라고 했잖아요.”
“……!”
속을 꿰뚫어 보는 눈동자에 이연은 순간 오한이 들었다.
“신물 난다고.”
“아…….”
목구멍이 꽉 막히고 혀가 딱딱하게 굳었다.
“이연 씨, 나는 사람한테 진실을 뜯어낼 줄 알아요. 그런 일은 나한테 손쉬워요.”
이연의 동공이 어지러이 떨렸다.
“그래도 이연 씨한텐 힘들이지 않고 듣고 싶거든요. 명색이 남편인데, 아내한텐 다정하게 굴어야죠.”
권채우는 화이도에 와 식물인간이 되기 전, 권기석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그녀를 회유했다.
목소리는 시종일관 나긋했고 급격한 기복도 없었다. 그러나 이연은 저도 모르게 자꾸만 뒷걸음질이 쳐졌다.
겉은 매끈하고 유한데 정작 그는 뾰족한 낫을 들고 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부터 먼저 움직였다. 돌멩이들이 신발 밑창에 끼어 자잘한 소리를 냈다.
“왜 그래요? 부부가 더 깊이 과거를 공유하는 게 꺼려져요?”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여상히 물었다.
“하지 말까요?”
“…….”
안 그래도 권태기다, 뭐다, 심란한데 관계를 빌미로 협박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입만 달싹이며 얼마나 서 있었을까.
순간, 권채우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냄새를 맡듯 잇따라 구겨졌다 펴지는 콧대가 신경질적이다. 눈살을 찌푸린 그는 마구잡이로 쌓여 있는 조각난 기체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무언가 졸졸졸 흐르는 소리가 그의 기민한 청각에 꽂혀 들었다. 풀 향 너머로 웬 기름 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있었다.
권채우는 잠시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이제 모든 건 이연 씨한테 달렸어요.”
툭 두드러진 그의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대체, 뭘 했어?”
이윽고 그녀에게 똑바로 겨누어진 시선이 총부리처럼 차가웠다.
아무래도 더위를 먹은 걸까, 이연은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한여름 낮의 온도에 머릿속이 늪처럼 끓고 끈적거렸다.
그렇게 물렁해진 생각 사이로 낡은 전단지 한 장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을 찾습니다.
‘누, 누가 쫓아오고 있어서요. 제발, 제발 저 좀 숨겨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사례금은 2억.
누구의 사정이 더 급박한지보다 난생처음 들어 보는 숫자에 넋이 나갔다.
우연히 시내에서 발견한 전단지 속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이연은 그 종이 쪼가리를 주머니에 쑤시듯 구겨 넣었다.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반복해야 한다는 추자의 연약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래서―
“……내가 전화했어요.”
낫을 쥐고 있던 권채우의 주먹에 와락 관절이 불거졌다. 어머니께 소녀의 집을 가르쳐 주었던 건 권채우 자신이었는데.
“그 언니, 여기 있으니까 데려가라고.”
“…….”
“나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고, 삼촌을 택한 걸 후회하지 않아요.”
“후회하지 않아요?”
미약한 웃음이 밴 목소리가 이연의 말을 가로챘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어머니는 소년의 방 지하에 갇혀 있었다고 했다. 그의 발밑에서 죽어 갔다고. 권채우는 정물처럼 생기가 빠져나간 눈으로 폐허가 된 숲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았다. 이연을 철저히 비껴 나간 시선이 공허했다.
“그 여자가 어떻게 됐는지는 안 궁금해요? 아무리 남이고, 옛날 일이라도, 그 여자 팔아서 삼촌 수명까지 늘렸는데.”
묘하게 가시가 돋친 말에 이연은 목 아랫부분까지 턱을 수그렸다.
“……분명 집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동안 잘 지내셨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편리해서 좋겠어요.”
그 말은 권채우 자신을 저격하는 말이기도 하여. 무기가 된 자기혐오가 괴물처럼 자라났다.
“원래 사냥감이라는 게, 살아선 나갈 수 없는 건데.”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이며 한 발, 한 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점점 벌어지는 두 사람의 거리에 이연은 희미하게 미간을 좁혔다.
이해되지 않는 대화, 짐작할 수 없는 그의 마음, 불안했던 순간들이 그녀를 머뭇거리게 한다. 이연은 멀어지는 남자를 하릴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래도 첫 단추부터 잘못 꿰맸나 봐요.”
“……지금 채우 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괜찮아요, 이해 못 해도.”
“…….”
“내 여기가 원래 좀 뒤죽박죽이잖아요.”
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가리켰다가, 조소를 흘리며 팔을 툭 떨어뜨렸다.
“이연 씨 대답은 잘 들었어요.”
웃는 듯, 우는 듯 찌푸려진 얼굴이 뇌리에 깊게 남는다. 이내 남자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들고 있던 낫을 휘둘러 나무 기둥에 콱 박아 버리고는 유유히 산을 내려가는 것이다.
“권채……!”
이연은 초조한 마음에 그를 붙잡아 보려 했으나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광―!
커다란 폭발음이 터진 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어서.
화들짝 놀란 그녀가 두 팔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버려진 기체에서 불기둥이 맹렬하게 치솟고 있었다. 매캐한 냄새는 순식간에 퍼졌고, 이연은 손등으로 코를 막으며 다급히 거리를 벌렸다. 타고 있는 불길이 얼마나 뜨겁던지 시꺼먼 연기만으로도 피부가 벗겨지듯 따끔거렸다.
잔여 항공유의 갑작스러운 폭발이었다.
그러나 세찬 불길 속, 이연은 남자가 사라진 자리를 더듬으며 황망히 서 있기만 했다.
퍼퍼펑―!
다시 한번 큰 폭발이 산속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