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퍽, 치받는 성기에 이연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내벽의 진동을 견뎠다.
“흣……!”
음부가 갈라진 자리를 빠듯한 부피감이 채웠다.
“이연 씨, 힘 좀 풀어 봐요.”
좁은 길을 무작스레 메웠던 것이 스르르 빠져나가자 이연은 안도하듯 숨을 내쉬었다.
권채우는 그녀의 목을 한 손으로 가볍게 쥔 채 부드러운 살결을 만끽하고 있었다. 평소 그의 악력을 생각한다면 느슨하다 못해 헐렁한 접촉이었지만, 그럼에도 이연은 구속구나 목줄이 채워진 것처럼 답답했다.
“아―, 이연 씨는 원래 내 말 잘 안 듣죠.”
귀두만 간신히 걸쳐 있던 성기가 다시 뿌리 끝까지 쾅 들이받았다.
“하으……!”
이연의 이마가 욕실 벽에 부딪쳤다.
“말 잘 듣는 건 나였지, 이연 씨는 부리기만 했고.”
권채우는 그녀의 엉덩이에 하반신을 바짝 붙이고 골반을 틀어쥐었다. 이연은 가만히만 있어도 아래가 뜨거워진 탓에, 남자의 딱딱한 음성을 제대로 귀담아듣지 못했다.
“하아……!”
조금씩 몸이 흔들리고 숨이 가빠졌다. 길쭉하고 우람한 페니스가 짓쳐들어올 때마다 엉덩이가 매타작을 당한 듯 얼얼했다. 커다란 성기뿐만 아니라 권채우가 밀려들고 있었다.
남자는 이연의 브래지어를 풀고 풍만한 가슴을 손에 넘치듯 쥐었다. 젖가슴이 둥글게 출렁이고 유두가 지그시 눌린 채 압박당한다. 절로 달뜬 숨이 터지고 아래가 조여들었다.
이연은 눈을 질끈 감고 이 익숙한 고양감을 버티었다. 그러나 영 개운치 않은 감정이 가슴 속에 쌓여 갔다.
“흑, 아읏, 채우 씨. 이런 건, 나는 이런 게―”
“싫어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치미는 신음을 참아 냈다.
“섹스하는 게 싫어?”
“읏…….”
“그럼 상대가 내가 아니면 좋았을까요?”
들이받는 힘이 너무 강해 숨이 턱턱 막혔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아내한테―”
몸 안을 가득 채운 성기가 이상한 각도로 그녀의 내벽을 찔렀다.
“정중히 허락까지 받아야 돼요?”
이연은 머리끝이 저릿해지는 새로운 쾌감에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그저 턱만 벌렸다.
그는 처음부터 절정에 다다른 사람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성기를 박을 때마다 여자의 목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하, 아윽.”
“이제 와서 약한 모습 보이지 마요. 계속 뻔뻔하게 굴어야 소이연이지.”
귓가에 훅 끼치는 짐승 같은 숨결이 뜨겁다.
“고개 돌려요.”
이연이 무력하게 고개를 돌리자 대뜸 아랫입술이 씹혔다. 치아 뒤쪽을 핥고 유약한 혀를 옭아매는 힘이 강압적이다.
그는 이연의 혀 밑을 찌르고 왈칵 새어 나오는 타액을 허기진 사람처럼 받아 마셨다. 그렇게 이연의 숨을 남김없이 빼앗으며 더욱 몰아붙였다.
“흐으…….”
동시에 이연의 아랫배를 타고 내려가 음핵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뜨거운 한기가 온몸에 확 끼치고 다리가 떨렸다.
권채우의 손을 떼 보려 해도 울퉁불퉁 힘줄이 솟은 손등은 돌처럼 미동도 없었다. 씨앗처럼 단단해진 음핵만이 사정없이 눌리고 마찰되었다.
“하으, 흐으읏……!”
질벽에선 애액이 흘러나오고 내벽은 콱 조여들었다. 그러자 이를 씹는 듯한 신음이 등 뒤로 떨어졌다. 그는 이연의 젖가슴을 터트릴 듯 움켜쥐고 춥춥 혀를 세게 빨았다. 엉망진창으로 젖은 회음부는 김이 나듯 뜨거웠다.
“으, 으읍, 흐……읏!”
“이연 씨 입에서 피 맛이 나요.”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촌에게 얻어맞아 터졌던 입꼬리에 다시 피가 고이고 있었다.
“내가 너무 세게 빨았나 본데.”
“흐으, 아!”
일순 배뇨감이 들었으나 그는 속도를 좀처럼 줄이지 않았다. 성기가 빠르게 치달았다. 내벽을 거칠게 긁어내리는 귀두에 이연의 허리는 속절없이 움찔거렸다.
“알 게 뭐예요. 땀이든, 피든, 보짓물이든 없어서 못 먹지.”
권채우는 점점 차오르는 입가의 피를 다시 혀로 훔쳐 그녀에게 밀어 넣었다.
“으읍……!”
입 안에 비릿한 혈향이 퍼졌다. 이연은 미간을 찌푸렸으나 권채우는 짙게 웃으며 이연의 입술을 당겨 빨았다.
아래로는 굵은 성기가 드나들고 몸은 정신없이 흔들렸다. 퍽, 퍽, 강하게 치대 오는 하반신이 아프고, 짜릿했다. 남자는 이연의 귀를 입에 넣어 우물거리고, 씹기도 하며 심지어는 뺨을 깨물기까지 했다. 그는 바르작거리는 이연의 엉덩이를 강하게 주물러 댔고, 요의는 점점 심해졌다.
“나, 이상해요. 그만해요! 흣, 흐으……!”
“이연 씨만 이상해진 거 아니니까 억울해하지 마요. 아마 좆같기는 내가 더 더할 거예요.”
철퍽, 철벅, 권채우는 힘없이 벌어진 구멍 사이를 난잡하게 드나들었다.
“하으으……!”
그는 여린 등을 찍어 누르듯 제 가슴을 바짝 붙이고 푸욱, 푹, 쑤시듯 찔러 넣었다. 흥분으로 돌아 버린 눈은 반대로 지독히도 무표정이어서, 그는 쉼 없이 내벽을 짓눌렀다.
‘권채우 씨, 약속 하나만 해요. 읏……!’
그때 아득하지만 맑은 목소리가 유성처럼 뇌리를 스쳤다. 순간이나마 권채우는 심장이 멎듯 숨이 막혔다.
‘……절대로, 읏, 기억은 찾지 않겠다고요. 절대로.’
불현듯 떠오르는 잔상에 고개를 털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더욱 허릿짓에 몰두했다. 섹스와는 상관없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한 심장이 달갑지 않다. 그래서 좆을 더욱 곧추세우고 질구 안쪽을 쩍쩍 짓찧어 댔다. 본능적인 위기감이었다.
‘설령, 과거의 내가 돌아온대도, 우리가 왜 변하겠어요. 내가 이연 씨한테 이렇게나 목을 매는데. 대체 뭘 무서워하는 거예요.’
제 목소리였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아니었다. 기록용 글자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감정이 물처럼 흘러들어 온다. 와락 일그러진 콧잔등에 땀이 뚝 떨어졌다. 권채우는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지지직거리는 제 머리통을 손목 안쪽으로 툭툭 쳤다.
“필요 없어.”
“흐읏, 네?”
이연이 되물었으나 권채우는 턱을 악물고 추삽에 열중할 뿐이었다.
‘위험하든 급한 상황이든, 그런 거 상관없이 날 떼어 놓지 말라고 하면,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 같아요? 그래도…… 그게 어디든 날 데려가 달라고 하면, 그래 줄 수 있어요?’
‘그냥 매 순간, 본능적으로 당신을 구하고, 당신을 좇아요. 그게 지금처럼 이기적으로 보일 때도 있겠지만, 이미 내 세상의 기준이 이연 씨인 걸 어떡해요.’
그러나 또다시 가슴이 서걱 베이는 느낌에 속이 울렁거렸다.
“씨발…….”
권채우는 질 천장을 콱콱 박아 대던 귀두를 뿌리 끝까지 넣고 입구를 틀어막았다. 그 상태로 가장 깊숙한 곳을 노리고 허리를 흔들었다. 성감대 구석구석을 짓누르고 비비자 그의 등 근육이 뚜렷하게 갈라졌다.
“하읏, 흐으응……!”
그녀는 울음 같은 소리를 내뱉으며 허리를 비틀었다.
권채우는 떠오르는 단상들을 의식적으로 없애며 한 가지 생각에만 집중했다.
“이연 씨, 나는 입 밖으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싫어요.”
열세 살에 본가로 돌아왔을 때 소년은 모두를 배척했다. 가족들은 깨진 유리를 만지듯 시종일관 조심스럽고 상냥했지만, 그는 친부모도, 위로 셋이나 있던 형들도 낯설기만 했다. 제아무리 핏줄이라고 옆에서 떠들어 대 봤자 자신과 어머니를 떼어 놓은 방해꾼으로만 보였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는 건 없었다. 마음을 열기는커녕 오히려 굳게 걸어 잠그고 첼로에만 집착했다.
가족을 거부하는 증상은 병세처럼 심각해져 갔고, 누군가 그를 만지기라도 할라치면 곧바로 물어뜯었다.
그렇게 인간적인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어둠 속에서 첼로만 켜고 있던 아이.
가문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은 결국 신분을 철저히 가린 채 외국으로 보내졌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딱 하나였다. 그러나 절대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잡히지 않은 어머니를 위해서.
소년은 속이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그 말을 묻고, 또 묻고 살았다.
어머니가, 아니, 그 유괴범이 그립다고, 보고 싶다고. 그 유괴범에게 다시 가고 싶다고.
“나는 이제, 유난스러운 건 지긋지긋해요.”
“흐으, 흣……!”
내벽 깊이 숨어 있는 지점까지 귀두가 잇따라 처박혔다. 그는 이연의 아랫배를 더욱 힘주어 안으며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었다.
서로의 생살이 꿰였다. 고지가 머지않았다.
“하으읏……!”
눈앞에서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지는 통에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비었다. 이연의 아랫배가 경련하듯 수축을 반복했다. 그럼에도 남자는 다리가 풀린 이연을 끌어안고 허릿짓을 계속해 나갔다.
그녀가 기억하기로 권채우는 끝끝내 사정하지 않았다.
* * *
“사, 살려줘……!”
자기가 포식자라도 되는 양 악만 쓰던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권채우는 남자의 입에 붙은 청테이프와 입속에 쑤셔 박힌 천을 빼주었다. 소이연의 사촌은 이미 공포에 질려 한껏 쪼그라든 상태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흙과 피가 묻어 찐득거리는 걸 보니 알만했다.
“묻다 왔어?”
“네, 근처에 산이 워낙 많아서.”
대답을 한 건 옆에 서 있던 장범희였다. 그가 예의를 차려 짧게 고개를 숙였다.
“이런 버러지 같은 게 줄줄이 있단 말이지.”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에 사촌이 움찔했다.
별안간 권채우가 트렁크 테두리를 잡고 허리를 깊이 숙였다. 꽉 압축한 쓰레기 같은 남자를 훑는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날카롭게 빛났다.
“집구석에서 배운 게 남 괴롭히는 것 말곤 없었어?”
“……!”
“긴장하지 마. 나도 집에서 배운 게 칼질 도끼질밖에 없으니까. 어쩌면 통하는 게 있겠지.”
도무지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그건 미소라기엔 속이 비었고, 단순한 움직임이라기엔 의미심장했다.
사촌은 기묘한 예감에 심장이 폭주하듯 뛰었다. 소이연, 너는 대체 누굴 만난 거냐……!
“지금부턴 너한테 아주 지독한 개새끼가 붙을 거야.”
“……!”
“어쩌면 사는 내내, 네가 죽을 때까지.”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 주십시오……!”
사촌은 간절히 애원하기 시작했다. 자존심 따위는 땅속에 파묻히고 건져진 순간부터는 하등 쓸데없는 것이 되었으니까.
그러나 권채우는 남자의 입속에 다시 천을 쑤셔 넣으며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화목하게 살아갈 때마다 마주치게 될 거야. 결혼식장에서, 유치원 셔틀에서, 집 앞 골목에서. 너는 절대 그 그림자를 떨쳐 낼 수 없을 거고 분명 허튼짓도 하겠지.”
“…….”
“한번 해 봐, 발악.”
순간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가 그의 턱을 붙들어 올렸다. 두 팔이 결박된 채 덜덜 떠는 몸통은 아무리 봐도 볼품이 없었다.
권채우는 다시 트렁크를 세게 닫았다. 그 안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비명이 울렸지만 그 소리는 미비했다.
“나한테 밤은 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