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90/158)

#89

“추자 씨, 그거 주세요!”

이연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코끝에 와 닿는 매캐한 냄새가 사고의 잔상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미끄러졌을 기체, 부서진 기내를 휩쓸던 초록색 나무들, 소나무에 부딪혀 떨어진 사람들. 숲 중앙이 쓸려 나간 자리엔 시뻘건 황토만이 드러나 있었다.

“추자 씨, 여기 절단 부위에 도포제 발라 주시구요, 여기 구멍 좀 뚫을게요!”

“이걸 우야마 좋노…….”

이연은 추자의 탄식을 받아 삼키면서도 꿋꿋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치료를 하거나, 밑동을 잘라 내면서 회생 가능한 것과 그렇지 못한 나무들을 과감하게 구분했다. 

그렇게 이연은 이곳에서 자랄 어린 유족 나무를 위해 엉망이 된 자리를 조금씩 정리해 나갔다.

“그런데 권 서방은 와 이리 안 보이나.”

때마침 추자가 아고고, 소리를 내며 허리를 폈다. 

숲 주위에는 두 부류의 센터 직원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다친 동물들을 찾아내 옮기는 쪽이었고, 다른 하나는 심사 중인 이연을 유심히 관찰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권채우는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채우 씨도 열심히 일하고 있겠죠.”

“소 원장아. 요즘 권 서방 이상한 거 없드나?”

“네?”

“마 다른 게 아이고…….”

뜸을 들이던 추자는 이내 이연을 취조하듯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가끔 대화가 끊긴다든지, 애정 표현이 줄었다든지, 싸하게 거리감이 느껴진다든지.”

“어…….”

“느그들 마지막으로 입술 부딪친 게 언제가.”

이연이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자 추자가 가슴팍을 쳐 대며 성을 냈다.

“이보소, 이보소! 육십 먹은 내도 어제 했구만 니는 머릿속을 뒤져야 나오나!”

“아, 아니, 추자 씨는 대체 어디서―”

“그기 중요한 게 아이고, 권 서방 권태기 일지도 모른데이!”

“……권태기요?”

이연은 살면서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단어를 더듬듯 발음해 보았다.

“진돗개 맹키로 네 꼬리만 핥아 재끼던 머슴아가 와 보이지를 않노. 요즘 놈들답지 않게 잘생기고 듬직해서 억수로 예뻐해 줬더니. 벌써 심드렁해진 모양이제? 이건 권태기가 틀림없구마!”

목장갑을 꼈음에도 손과 신발은 이미 더러워진 상태였다. 시꺼멓고 미끌미끌한 항공유와 온갖 먼지, 그리고 피와 재가 엉킨 돌멩이를 치우다 보니 어느새 이연의 얼굴까지 꾀죄죄해져 있었다.

이연은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추자에게 어색한 미소만 건넸다.

“권태기라는 게……, 원래 예고도 없이 오는 거예요?”

“질리면 그랄 수 있제. 내한테도 자주 왔다 갔다.”

“……그럴 때 추자 씨는 어떻게 했어요?”

“기냥 알아서 칵 죽어 삐던데.”

“네?”

“영감들 나이가 많았다 안 카나.”

“…….”

“내는 항상 둘 중 한쪽이 죽으면 끝났다.”

추자는 새삼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이연의 낯은 어두워졌다.

‘질린…… 걸 수도 있다고?’

그녀의 심장이 엇박자로 무겁게 뛰기 시작했다.

한편, 권채우는 산을 수색하고 내려오는 길에 두 동강 난 나무를 끌어안고 끙끙 애쓰는 이연을 보았다. 

그녀는 더운지 밀짚모자도 벗고, 뚝뚝 떨어지는 땀을 무정히 흘려보내며 가끔은 한숨짓곤 했다. 지친 기색으로도 총총거리며 돌아다니는 그녀는 혼자만 색감이 다른 듯 눈에 띄었다. 

그때 앞서가던 주동미가 퍽 다부진 목소리로 선언했다.

“나는 무조건 우리 원장님 원픽임다.”

그러자 다른 팀원들도 권채우의 눈치를 보며 하나둘씩 말을 얹었다. 권채우는 별다른 대꾸 없이 조용히 이연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심각한 표정을 본 주동미가 히죽 웃으며 놀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도와주고 싶슴까?”

“…….”

권채우는 눈썹만 까딱했고, 주동미는 다시 웃음을 머금고 혼잣말을 했다.

“원장님은 신기하게 나무랑 있으면 더 예뻐 보임다.”

“저 여자는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주동미는 무심한 듯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진원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딱딱하게 굳은 안면에 흠칫 놀란 것도 잠시, 매정해 보이던 입술은 정반대의 말을 내어놓았다.

“나무 밑에서 잠들던 얼굴이 가장 예뻤는데. 여태껏 나무 주변을 떠나지도 못하는 게 웃기기도 하고.”

그가 찰나에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빠르게 지웠다. 

가만히 듣고 있던 주동미는 “부부라 그런지 닭살이지 말임다.”라며 질색하듯 팔뚝을 쓸어내렸고, 권채우는 잠에서 깬 듯 눈이 또렷해졌다. 자신이 생각 없이 뱉어 낸 말을 깨닫는 순간,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 * *

이연은 힘겨워 보이던 추자를 먼저 보내고, 해가 다 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산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주린 배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미리 배정받았던 모텔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체크인을 위해 일렬로 서 있었는데, 때 묻은 복장만 보더라도 못대산 사고와 관련하여 차출된 인력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소방대원, 경찰, 군부대 장병, 공무원 등 모두가 피로에 찌든 얼굴이었다. 

이연은 꽤 깔끔한 모텔 내부를 훑어보며 줄의 맨 끝자락에 섰다. 다양한 사람들이 눈앞을 왔다 갔다 했지만, 이연이 찾는 로고는 보이지 않았다.

‘채우 씨한테 전화나 해 볼까?’

그녀가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켠 순간이었다.

“……!”

그때 퍽, 하고 누군가 이연의 뒷덜미를 때리듯 움키고 돌려세웠다. 눈 깜짝할 새에 멱살이 잡힌 그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으나 그럴 새도 없이 바싹 끌어당겨졌다.

“이 쌍년, 너 오랜만이다?” 

상대를 마주한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불길하게 뛰는 심장이 귀청을 울리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발끝으로 간신히 서 있던 무릎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디에 숨었나 했더니 여기였어?”

우악스러운 손아귀를 치워 보려 했던 미약한 시도는 시작도 전에 전의를 잃고 말았다. 두 손이 벌벌 떨렸다.

그녀가 육지를 떠나 화이도에 숨어든 뒤, 처음으로 마주하는 그녀의 사촌이었다. 아버지의 친자식. 이연에겐 사촌이자, 동시에 이복 남매가 되는.

남자는 마침 통화 중이었는지 한쪽 귀에 대고 있던 핸드폰을 더욱 굳게 쥐며 말했다.

“이야―, 형, 내가 지금 누굴 만났는지 알아?”

그것은 반가움이었고 또 악의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들의 원망도 깎여 나가기를 내심 바라 왔던 소망을 단번에 깔아뭉개는 시선. 진한 눈동자 속에서 피어오르는 은근한 희열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월척을 낚아버렸네?”

“…….”

“혹시 형 어제 꿈자리 좋았어?”

이연은 숨도 못 쉬고 있는데, 눈앞의 사촌은 그녀를 노골적으로 비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나 그랬듯 이연을 망신 줄 심산으로 죄다 들으라는 식이었다. 놀이터, 학교 복도, 시내 바닥, 직장, 등 장소만 바뀌었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형 말대로 역시 독한 년이었네, 이거. 주소 열람도 막아놓고 튄 년이, 꼬라지 보니까 뻔뻔하게 잘 살고 있나 본데.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키워 준 가족도 나 몰라라 하는 게 때깔은 좋아요.”

“…….”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했으면, 적어도 고개는 처박고 살아야지.”

그가 표정을 싹 굳히고 이연의 멱살을 앞뒤로 거칠게 흔들었다. 

“그게 염치라는 거 아니냐?”

이연은 아프게 꽂혀 오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살점이 베여 나가는 듯했다. 별안간의 소란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사촌오빠가 입고 있는 주황색 복장 때문인지 그 누구도 섣불리 끼어들지 못했다.

“너한테는 세상이 만만한가보다, 이연아.”

“……이거 놔.”

이연은 사촌의 손등을 손톱으로 세게 누르며 노려보았다. 옛날과 달리 쉽게 복종하지 않는 시선. 그 같잖은 저항에 남자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형, 잠깐 끊어 봐. 조금 있다 다시 통화해.” 

그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자마자, 찰싹―! 소리와 함께 이연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그러자 주위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려왔다. 남자가 다짜고짜 이연의 뺨을 후려갈긴 것이다.

입술이 터졌는지 피 맛이 났다. 이연은 불이 난 듯 화끈거리는 뺨에 차마 손도 갖다 대지 못했다. 

삐이이, 하고 한쪽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 사이, 어릴 적 사촌들의 욕받이가 되어야 했던 순간들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게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끔찍하리만치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안 그래도 이번 심사는 사람들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는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연은 극복할 수 없는 패배감에 또다시 발목이 잡혔다. 

“오빠, 비켜. 줄 서는 데 방해되잖아.”

이연은 차갑게 식은 손을 온 힘을 다해 말아 쥐었다.

“이연아, 너 뭐 잘못 먹었냐?”

“아니, 배가 고파서 그런가. 오빠가 나잇값 못 하는 진상처럼 보여.”

“……!”

“오랜만이야, 오빠. 못 본 새에 많이 늙었네.”

“너, 이―”

“괜찮아, 나무는 나이테가 매력이니까.”

이연의 유년 시절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매장을 목격하고도, 약물에 정신을 잃고 도축장에 끌려가고도, 마약 밭에서 머리가 깨질 뻔하고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남은 자신이 눈앞의 사촌보다는 한 수 위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들어서.

“오빠가 사람은 아니잖아.”

철썩―!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녀의 뺨이 한 차례 더 돌아갔다.

“이 미친년이, 너 오늘 나 반가워서 이래? 그래서 몸이 쑤셔?”

이연은 어쩌지 못하고 픽 비웃음을 흘렸다. 진짜로 무서운 건 근력이 약한 이연을 괴롭히는 사촌이 아니다. 그런 일은 힘이 센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제가 데리고 사는 남자는 달랐다. 조폭과 멧돼지를 맨손으로 때려잡고도 이연의 잔머리를 조심스럽게 넘겨 주는 사람. 이미 커다랗게 자리한 그 남자야말로 그녀가 진실로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내 피가 더럽긴 한데, 오빠는 그 천박한 입이랑 손버릇이 더럽네.”

그러므로 사촌들이 쏟아붓는 비난은 더 이상 이연에게 일말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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