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원장님, 가까이 가면 안 됨다!”
“괜찮아요, 나무 상태만 볼게요.”
겁 없이 척척 나무로 향하는 이연을 잡으려던 주동미는 헛손질만 했다.
화이도의 15m짜리 인공 산.
이연은 전화를 받자마자 당연하게 따라오는 권채우를 달고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고, 이미 그곳에는 구조 센터 직원들이 만반의 장비를 갖춘 채 나무 주변을 에워싼 상태였다.
대한민국에 있는 은행나무 중 두 번째로 커다란 나무. 과거, 댐 공사로 수몰될 위기에 처했던 은행나무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이 문화재 하나를 살리기 위해 몇 년에 걸친 공사 끝에 15m의 인공 산이 만들어졌고 나무는 새 보금자리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이 나무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연 씨, 조심해요.”
순간, 몇 걸음 뒤에 있던 권채우가 한 손으로 이연의 배를 끌어당겼다.
“……!”
쉬이 쉬익―! 푹 파인 나무 구멍에 똬리를 튼 커다란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성인 남자의 팔뚝만 한 그것은 독니를 드러내며 한껏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빳빳이 세운 기다란 몸체, 세로로 가느다래진 동공. 그 기이한 눈알을 마주하자 등허리에 소름이 일었다.
하지만 배 중앙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따뜻한 온기에 이연은 그만 허둥거리고 말았다.
“고, 고마워요.”
권채우는 그녀의 윗배를 두어 번 토닥여 준 뒤 매정할 정도로 깔끔하게 손을 딱 뗐다.
어젯밤, 다소 과격했던 스킨십보다도, 잠깐 닿았다가 떨어지는 이 짤막한 접촉이 이연을 더욱 흔들었다. 코끝에 맴도는 권채우의 잔향. 그녀는 잘게 떨리는 심장을 애써 밀어 넣으며 말했다.
“줄기 반 이상이 소실됐어요. 그래서 텅 빈 내부가 생겼고, 그 안에 뱀이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저놈이 나무한테 해가 되진 않슴까?”
“그건……, 글쎄요.”
어딘지 묘한 대답에 주동미는 숱 많고 미끈한 눈썹을 이마로 당겨 올렸다.
“그게 무슨 말임까?”
“어차피 여기에 오는 사람도 없는데 굳이 잡을 필요까지 있을까요? 제 소견상, 나무 걱정은 딱히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뱀이 들어앉았는데도 말임까?”
“이건, 뱀이랑 나름대로 동거를 하고 있는 걸로 보이거든요.”
썩어 문드러진 공동이 셀 수도 없이 많아 신령목처럼 수명을 갉아 먹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은행나무는 속만 텅 비어 있을 뿐이다.
그 상태 그대로 자연에 적응해버린 모습은 인고의 세월, 그 자체였다. 다행히 생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가끔씩 문화재청 사람들이 확인차 걸음을 한다지만 그것도 1년에 한두 번쯤 될까 말까.
보살피는 이도 없고, 찾아오는 이도 없는 인공 산. 적막강산인 이곳을 재차 둘러보는 이연의 얼굴에 문득 쓸쓸함이 스친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권채우에게 시선이 닿았다.
“뱀마저 없으면 이 나무는 또 혼자가 돼서요.”
그녀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자의 눈동자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외로움에 지친 나무가 그걸 모를 것 같진 않아요.”
* * *
남은 건 폐허가 된 산자락이었다.
드디어 공개된 3차 심사를 확인하던 이연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무거운 침음을 흘렸다.
“아…….”
사고 당시의 충격을 말해 주듯 소나무 200여 그루가 뿌리째 뽑혀 있었다. 항공기의 잔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불길과 연기가 치솟았다.
열흘 전쯤, 중국 국제항공공사의 보잉 762-7이 착륙하려다 김해에 있는 못대산 자락을 들이받으며 추락했다. 최소 백 명 이상이 숨진 대형 참사. 이연은 모니터를 보며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잡아 뜯었다.
“추자 씨, 이게 최근이라구요?”
“요즘 내내 난리였는데, 니가 정신을 빼놓고 있어가 몰랐을 기다.”
마침 통화 중인지 거실에서 “네, 권채웁니다.” 하는 음성에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러나 보고 있던 사진들이 워낙에 참혹했던지라 이연의 시선은 금세 모니터로 당겨졌다.
항공기가 추락한 못대산 정상 아래는 마치 폭격이라도 당한 모습이었다. 항공기는 세 동강이 나면서 머리와 동체 부분만 알아볼 수 있을 뿐, 나머지는 심하게 일그러진 채 나뒹굴었다. 그런 거대한 잔해가 산 정상에 흩어져 있었고, 커다랗고 오래된 고목들은 무참하게 짓이겨졌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구출된 생존자 삼십 명.
대형 항공기 사고임에도 기적적으로 생존자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높이 10m 이상의 빽빽한 소나무 숲이 충격을 완화시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못대산 소나무들이 온몸을 바쳐 인명을 구한 셈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나무들 차례라는 거죠.”
이연은 미간에 힘을 준 채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대형 사고에 투입되는 만큼 이번 심사는 화이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모든 나무의사에게 공통으로 부여되는 과제였다. 그중 첫 타자로 지목된 <가문비 나무 병원>과 <솔개 나무 병원>이 맡게 된 일은 다름 아닌 유족 나무 수습.
희생된 나무들이 남긴 작은 새싹들을 지키고, 온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게끔 터를 닦아주는 일이었다.
이연은 마침 통화를 마치고 들어온 권채우를 난감한 듯 바라보았다.
“채우 씨, 어떡해요.”
“뭐가요?”
“나 집 비워야 할지도 몰라요. 근처 육지로 출장 가게 생겼어요.”
“…….”
이연은 눈썹을 팔자로 내렸지만, 권채우는 조용히 그녀를 관찰할 따름이었다.
“2박 3일이라는데, 김해는 여기서 멀지도 않으니까 내가 왔다 갔다 할게요.”
이연의 눈에 걱정이 주렁주렁 달렸다. 하필이면 권채우가 깨어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심사 일정이 잡혔다.
그러나 그녀가 없으면 잠에서 깨지도 못할 남자를 두고 차마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이연은 모니터 속의 처참한 나무와 매끈하게 잘생긴 권채우를 번갈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느 쪽도 다 문제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랐다.
“됐어요, 내가 밤마다 이연 씨 방으로 갈게요.”
“네?”
“내가 가는 건 싫어요?”
“……!”
이연이 재깍 대답하지 못하자 그가 미간을 좁혔다. 예전과 똑같은 목소리에, 기억의 상실이 묻어나는 우묵한 동공은 여전했지만, 이상하게 낯선 힘이 느껴졌다.
“남편이 자기 아내가 묵는 방도 못 드나들어요?”
“…….”
“혹시 이불 속에 감춰 두는 게 있나?”
눈동자만 내려 이연을 들추듯 보는 눈빛이 사뭇 날카로웠다. 이연은 괜스레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그게 아니라…….”
“소 원장아―!”
그때 스크롤바를 내리던 추자가 눈을 크게 뜨고 목청을 높였다.
“이거, 동물 구조센터도 같이 간다카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연이 홱 고개를 돌려 공문을 마저 확인했다.
추자의 말 그대로였다.
이번 심사의 특이점은 다친 동물들을 수색 및 구조하기 위해 함께 파견되는 야생동물 구조센터 직원들이 나무의사를 점수 매긴다는 점이었다.
기준은 품행, 성실성, 정확성, 협동심, 소통 능력, 리더십 등 세부적으로 나뉜 항목을 합산하여 더 높은 쪽이 채택되는 방식이었다.
“못대산에 채우 씨도 간다고요?”
“방금 전화 받았어요.”
이연이 멍하니 그를 쳐다보자 남자는 입매를 들어 올리며 핸드폰을 살살 흔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협업에 그녀가 어리둥절해하는데, 권채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이었다. 좋게 말하면 태연한 것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어찌 됐건 상관없다는 식의 무성의한 태도였다.
“채우 씨가, 날 점수 매긴다고요?”
이연이 조금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 잘 보이는 건 어렵지 않잖아요.”
“그게 무슨―”
“그동안 해 온 대로만 해요. 그게 이연 씨가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
아리송한 말이었지만 나무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라 여기고 이연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산사태 때 보았다시피 살릴 수 있는 나무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잔해 처리와 수습이고, 그런 막노동은 결국 한 사람의 소명 의식과 책임감이 완성도를 결정지었다. 그렇기에 숫자가 아닌 사람들의 시선으로 채점표를 구성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 보기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일해야겠어요.”
“하이고, 곧이곧대로 몸 축낼 생각만 하지 마라.”
추자가 옆에서 혀를 찼다.
“구석탱이에서 백날 쌔빠지게 그캐 바라. 상황에 따라선 커피 돌리는 사람이 더 훌륭해 보일 수도 있는 기다. 덥고 피곤한 입장에서 둘 중 누가 더 품행이 바르고, 협동적이고, 소통 능력도 좋아 보이겠나!”
그녀의 지적에 이연이 머리를 긁적였다.
“쉬지 않고 계속 돌아다니면 눈에 띄지 않을까요?”
“비행구 몸통이 시커멓게 다 타 널브러진 데서? 순진한 소린 하덜 말어라!”
“그래도 진짜배기가 되고 싶으면 처세보다는 기본에 충실해야죠.”
“하모, 맞지. 가장 가까운 것부터 충실해야제!”
별안간 추자가 눈을 부드럽게 휘며 손뼉을 짝 쳤다. 그에 이연은 더욱 경계하듯 턱을 당겨 넣었다.
“바로 코앞에 권 서방 뒀다 우얄래? 학연 지연보다 더 쎈 게 베갯머리송사라고 너는 알랑가 모리겠―”
“추자 씨!”
이연은 숨을 씨근덕거리며 볼을 붉혔다. 그때 피식, 옅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연은 괜스레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고 추자는 대놓고 욕심을 드러냈다.
“권 서방, 그리 해 줄기제? 요 연약하고 불쌍한 마누라한테 점수 잘 줄 끼지?”
“그래도 처갓집 말뚝에 절부터 할 수는 없죠.”
그가 힐끗 눈만 움직여 그녀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
“아뇨, 아뇨, 다들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그때 이연이 벌떡 일어서며 두 사람에게 주의를 주듯 눈에 힘을 주었다.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뽑아야지, 그런 사적인 청탁은 기대하지도 않아요! 저한테도 평판이랑 체면은 중요해요. 특히 나무를 대하는 일에 계산적으로 굴었다는 말은 절대 듣고 싶지 않아요.”
“옴마야, 평판이 중요하단 가스나가 사람들을 그래 들쑤시고 다녔나.”
추자가 귀를 후비적거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럼에도 이연은 최악의 상상을 하며 한숨을 곁들었다.
“부정행위라고 찍히면 끝이란 말이에요.”
권채우는 그녀의 얼굴에 어리숙한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지금 센터 내부 에어컨이 싹 교체됐다고 들었어요, 최신 제품으로.”
“……!”
남자는 입을 벌리고 굳어 버린 이연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게 가문비가 보낸 게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고.”
“어…….”
“이미 판 자체가 그렇게 깔렸는데, 이연 씨는 앞으로 누구한테 아쉬운 소릴 해야겠어요?”
이연은 누가 봐도 어색하게 입꼬리만 늘렸다.
“정 불편하면, 부정 떼고 행위만 해요.”
“……!”
그가 책상을 짚고 이연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녀를 깊이 응시하는 눈동자가 문득 햇살을 받아 오묘한 빛을 낸다. 언젠가 이연이 받았던 목각 공예품처럼 희미하게 붉은 기가 서린 모습이었다.
“벌써부터 머릿속에 온갖 것들이 떠오르는데, 이연 씨는 안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