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연이 맞닥뜨린 건 텅 빈 침대였다. 그녀는 거실이며 부엌으로 헐레벌떡 뛰쳐나가 남자를 찾아보았으나 돌아오는 건 제 발걸음 소리뿐,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채우 씨?”
이제 이연은 두 계단씩 뛰어넘으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
그리고 그곳엔 덩달아 샤워를 마쳤는지 머리가 젖은 권채우가 우뚝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헐렁한 잠옷 바지만 걸친 그가 이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일자로 쭉 뻗은 단단한 어깨, 여전히 남아있는 복근, 견고한 상판과 이어지는 맵시 좋은 허리…….
“다 봤어요?”
“읏…….”
그가 불시에 이연의 턱을 붙들어 올렸다. 그 바람에 혀끝이 살짝 씹혔으나 은은한 수면 등이 권채우의 얼굴을 밝히는 순간, 그녀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캄캄했던 그림자가 물러나면서 귀, 코, 입술, 그리고 형형한 두 눈이 차례로 드러났다. 부드러운 담갈색 홍채를 드디어 마주하자 예고도 없이 코끝이 찡해져 왔다.
이연은 그의 요소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자못 노골적이었는지 권채우가 슬쩍 미간을 좁혔다.
“아직도 볼 게 남았어요?”
“……채우 씨 잠들어 있는 동안 이 눈동자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
“눈꺼풀 깜빡이는 것만 봐도 좋아요.”
“그럼 입으로는 하지 말까요?”
그가 이연의 아랫입술을 엄지로 매만지다 치아까지 건드렸다. 사소한 자극에도 어깨를 움칫 떠는 그녀를 볼 때마다 권채우의 눈빛은 매캐하게 짙어졌다.
“내가 이연 씨 목구멍에 이걸 넣으면―”
그가 바지를 슬쩍 내리자 음영이 진 장골과 불그스름하게 커진 성기가 일시에 드러났다. 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눈가에 열이 몰렸다. 그가 손바닥으로 성기를 가볍게 훑었다.
“역겨워서 구역질이 날 텐데.”
“그 정도로 별로예요?”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요?”
“네에…….”
그녀가 얌전하게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이연 씨는 겁이 많은 건지, 없는 건지 헷갈려요.”
권채우는 그녀의 순진한 얼굴을 보며 속으로 비웃음을 삼키었다. 다른 건 다 잊었어도 소이연을 벌리고 박아 댔던 느낌만은 또렷한데. 그동안 성기도 입에 안 물리고 뭘 했을까. 대체 뭐가 그렇게 아깝고 소중해서. 남들과 똑같은 입술이 뭐가 그리도 애가 닳고 특별하다고.
“괜찮아요, 우리한테 시간은 충분하니까.”
권채우는 묘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자신이 우습고 불쾌했다. 얼빠지게 굴었던 스스로를 조롱하고 싶어 입 안에 새까만 침이 고일 지경이었다.
그가 이연의 가슴팍을 툭 밀었다.
“……!”
얼떨결에 침대에 풀썩 주저앉은 이연은 그의 거친 손속이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입 안으로 손가락 세 개가 푹 들어온 순간 그녀는 뻣뻣하게 굳고 말았다.
“할 거면 제대로 벌리고 시작해야죠.”
“읏……!”
“이 정도로 놀라면 어떡해요, 재미없게.”
번들거리는 정욕이 그녀에게 내리꽂힌다. 두툼한 손이 축축한 점막을 간지럽히듯 문지르고, 말랑거리는 혀를 세게 눌렀다. 그 사이 손가락 하나가 또 들어왔다.
“읍……!”
권채우는 이연의 턱을 붙들고 계속해서 입 안을 휘저었다. 내벽을 연상시키는 부들부들한 안쪽 살을 쓰다듬고, 어금니와 치아 뿌리까지 살살 건드려 보면서 예민한 부분을 찾아 갔다.
“하아, 흐…….”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해서 정신을 쏙 빼고 있던 그녀도 조금씩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침이 나오고 자꾸만 목덜미가 오싹해졌다. 그러자 손을 뺀 남자가 불시에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 눌렀다.
“으읍!”
불덩이처럼 뜨거운 성기가 입천장을 긁으며 들어왔다. 목구멍 바로 앞쪽까지 우악스럽게 쳐들어온 그것은 손가락 네 개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으로 이연을 숨 막히게 했다.
“더 힘줘서 물어요. 이 세우지 말고.”
“흐으…….”
“입은 닫고 빨아야죠, 침만 흘리라고 쑤셔 넣은 거 아닌데.”
입 안은 터질 것처럼 부풀고, 낯선 향은 숨을 쉴 때마다 밀려들었다. 이연은 빠듯하게 벌어진 입술이 무서워 권채우의 허벅지를 꽉 붙들었다. 그러자 다리 근육이 딴딴해지고 그의 복근까지 눈에 띄게 선명해졌다.
“하….”
그는 열이 스민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다시 이연의 머리를 눌렀다.
“깊이 삼켜요.”
“흐읍, 윽.”
눈높이의 차이가 꽤나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연은 흔들리는 눈으로도 그를 믿고 따랐고, 남자는 흥분을 억누르는 듯한 얼굴로 명령했다.
“뱉어 내지 말고 구멍 더 열어요.”
기둥 위로 튀어나온 핏줄이 혀에 닿는다. 점막을 쓸고, 입천장을 비비고, 종내엔 목구멍을 때리는 귀두가 조금씩 깊은 곳까지 미끄러져 들어왔다.
굵고 긴 것이 드나들 때마다 강하고 비린 향이 몰려들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럼에도 이연은 본능적으로 볼을 조이고 얼굴을 앞뒤로 움직였다.
처음엔 그녀의 턱에 쓸리기만 했던 남자의 고환이 이윽고 철썩철썩 강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읍, 윽, 으흑.”
이연은 구역질을 피하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다.
“이연 씨, 나는, 고민이 많아요.”
이를 악문 듯한 목소리에는 달뜬 숨이 섞여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흣….”
권채우는 이연의 귀를 막듯이 감싸고 허릿짓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샅이 그녀의 얼굴과 입술을 엉망으로 짓뭉개 놓았다.
“그동안 이연 씨한테 받은 걸 돌려줄 수 있을까요.”
“읍, 우.”
“정말 보답하고 싶은데.”
이연은 그저 입만 벌린 채 허덕거릴 뿐이었다. 생리적으로 눈물이 고이고 호흡까지 버거워졌다. 막힌 귀 때문에 소리는 연신 웅웅거렸지만, 이쪽을 내려다보는 시선만큼은 명확했다.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목을 조이고 푸는 것도, 숨을 쉬는 타이밍도 전부 어려워서, 이연은 간신히 성기를 물고 있는 데에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의 페니스가 다시 관통하듯 들어왔다.
“내가, 앞뒤 없이 물어뜯기만 하는 사냥개도 아니고.”
권채우는 긴 잠에서 깨어난 이후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엔 사납게 올라가 있던 눈매도 지금만큼은 진실로 즐겁다는 듯 휘어져 있었다.
“흐으브, 으.”
우둘투둘한 입천장에 귀두가 사정없이 문질러지자 소름이 돋고 신음이 샜다. 이연은 저도 모르게 이를 세워 기둥 표면을 긁어 댔다. 그러자 입 속을 드나드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권채우는 숨을 나눠 뱉으며 아랫입술을 짙게 핥았다.
“후…. 씨발….”
힘이 바짝 들어간 그의 복근이 꿈틀거렸다.
“이 생활이 아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으, 흐으.”
“사실은 내가, 사는 동안 이연 씨 얼굴을 자주 떠올렸거든요.”
“…….”
“보고 싶어서.”
내내 눌려 있던 혀를 처음으로 움직여 그의 기둥을 쓸어내린 순간, 입 안에 뜨거운 무언가가 확 퍼졌다.
이연은 노골적인 정액 냄새를 참지 못하고 그를 확 밀쳤다. 그러나 권채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온 점막에 끈적한 액을 치덕치덕 발라대기만 할 뿐이었다. 울컥대는 성기는 도무지 빠져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으, 읍……!”
이연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의 배를 솜방망이처럼 두들겼다. 그제야 남자는 느긋하게 성기를 빼내며 귀두 끝에 묻어 있던 정액을 그녀의 뺨에 문질러 닦았다. 이연은 곧장 바닥에 불투명한 액체들을 뱉어 냈다.
“컥……! 켁켁……!”
목이 따끔거리고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그녀는 찢어진 입 안 어딘가를 혀로 꾹꾹 누르며 씁쓸한 피 냄새를 억눌러 보았다. 그러나 이연을 바로 일으켜 세워 주는 남자의 눈빛은 여전히 살뜰하고 다정했다.
“힘들었어요?”
“그게…….”
“울었네?”
권채우는 이유도 모른 채 인상을 찌푸렸다. 목울대가 거칠게 일렁이고 기분이 더러워졌다.
“말했잖아요, 구역질 날 거라고.”
그는 이연의 붉어진 눈가를 툭 건드리며 단조롭게 말했다.
“그러게 입으로 뭔가를 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죠.”
* * *
“헉……!”
이연은 기억나지 않는 악몽을 꾸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멍하니 눈만 끔뻑이고 있던 그녀는 불현듯 휑한 옆자리를 보더니 짧게 숨을 들이켰다.
목구멍이 붓고 쓰린 것은 둘째였다. 이연은 부스스한 머리카락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갔다.
자지 않기로 했었는데……! 언제 잠이 들었지?
‘권채우 씨는?’
안 좋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이연은 더욱더 마음이 급해졌다.
“일어났어요?”
그때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부엌 쪽에서 들려왔다. 프라이팬 위에서 무언가가 지글지글 익는 고소한 냄새가 그녀의 발걸음을 잡아끈다. 이연은 계란 프라이와 소시지를 능숙하게 뒤집고 있는 권채우를 보고 우뚝 멈추었다.
“잘 잤어요?”
“…….”
아직도 꿈속을 헤매는 듯 몽롱한 기분이었다.
“좋은 아침이에요, 이연 씨.”
눈이 마주친 남자는 친숙하게 웃어 주었고, 이연은 내내 불안했던 마음이 별것 아닌 음식 냄새와 수북이 쌓여있는 계란 껍데기를 보며 천천히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일상을 완벽히 되찾았다고 믿고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