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2/158)

#81

권채우는 한창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하얀 안개가 빽빽이 끼어있는 시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 곳에서 대체 몇 시간, 아니 며칠을 정처 없이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걸음을 옮길수록 줄을 긋고 비트는 소리가 점점 크게, 귓가를 칼처럼 베고 있다는 것이다. 

“윽…….”

권채우는 지독한 두통과 이명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속을 게워 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었지만 제멋대로 움직이는 다리는 고압적이었다. 

아름답지 않은 선율이 점점 격정적으로 치닫는다. 잡아채고, 할퀴는 소리가 사람의 성대를 닮은 비브라토를 통해 울려 퍼졌다. 

사뭇 불쾌하기까지 한 비명인데 머릿속에선 걷잡을 수 없이 부피를 키워 갔다. 팽창하고, 팽창하다 결국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을 때.

답답했던 눈앞의 안개가 순식간에 싹 걷혔다.

“……!”

땀에 젖어 줄을 긋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권채우 자신이었다. 

잘 차려입은 검은색 연미복에 불그스름한 첼로를 다리 사이에 둔 그는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연주를 했다. 팔, 손목, 손가락이 절제되어 움직이다 때로는 격랑이 치밀 듯 격렬히 흔들렸다.

권채우 한 사람만 내리비추는 핀 포인트 조명. 무저갱의 한가운데서 그를 물어뜯으려는 줄 네 개를 과격하게 잡아 누르고 가를 때마다 머리카락 끝에서 땀방울이 흩어졌다. 

숨을 죽인 관객들은 무대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이 농밀한 소년이 왜 악기 과르네리를 가장 잘 연주한다는 평을 듣는지 그들은 단번에 이해했다.

파가니니가 죽는 날까지 사용했다던 과르네리. 악기 스트라디바리는 사랑을 하지만, 악기 과르네리는 강간을 한다는 속설대로 어느 날 지하에서 나타난 듯한 동양의 소년은 작은 몸에 갇힌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진하고, 어둡고, 깊은 곳까지 끌고 내려가는 연주를 해 댔다. 그럼에도 조잡하거나 천박하지 않았다. 

그 독보적인 스타일은 극과 극의 평으로 나뉘었지만, 악기를 찍어 누르며 길들이는 데에 천부적인 자질이 있던 권채우는 과르네리의 완벽한 뮤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채우야, 그 여자가 죽었다.

댐이 부서지듯 모든 기억이 쏟아져 나왔다.

스무 살을 앞둔 어느 날.

제네바와 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콩쿠르를 최연소로 석권하며 열셋이라는 나이에 데뷔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악마 같은 재능이 어떻게 한순간 사라졌는지. 

감히 값을 매길 수도 없었던 그 영감의 원천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회수가 됐는지.

모든 건 형에게 걸려 온 그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었다.

“형, 다 썩어 빠진 시신이라도 좋으니까―”

―…….

“그 여자 마지막 모습 좀 보여 줘.”

이제 첼로는 한낱 나무 판때기에 지나지 않았다. 평생을 이 악기에만 집착하며 살았는데. 빼앗기듯 잃어버린 감각은 그를 지독한 슬럼프에 처박아 버렸다. 첼로를 단 한 줄도 켜지 못할 정도로.

“끄으, 으아아악!”

처절한 비명에 권채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린다. 그는 상대의 등을 무릎으로 누르고, 줄로 휘감은 목을 자비 없이 들어 올렸다. 

활어처럼 휘어지는 허리에 걸터앉은 남자는 느긋하게 줄을 바짝 조였다. 하나같이 피투성이인 사냥개들이 철장을 마구 치며 거칠게 환호했다.

“그, 그만……! 끄으으!”

“…….”

상대의 호소에도 권채우의 눈은 무감했다. 눈매는 미동도 없는데 끝까지 당겨 올린 입매만이 섬뜩할 뿐이었다. 힘이 들어간 목선은 울긋불긋했고, 솟아오른 힘줄은 손등에서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져 있었다. 

저 그악스러운 악력이 얼마나 끔찍한지, 철장 밖에서 지켜보던 장범희는 몸을 떨었다.

“이 정도에 오줌이나 싸지를 거면 여기는 왜 들어왔어?”

“으, 으윽……!”

“목숨이 그렇게나 아까워서 이 짓은 어떻게 해.”

“끄으으, 하악……!”

“직업이 칼 들고 설치는 조폭 새끼면 적어도 애완견 소리는 듣지 말아야지.”

권채우가 힘을 탁 풀고 물러서자 상대는 기절하듯 바닥에 엎어졌다. 

넓은 정사각형의 싸움판 안은 녹슨 쇠 냄새가 진동을 했다. 권채우는 정제되지 않은 눈초리로 철장 밖 너머의 사내들을 훑었다.

“도련님.”

그때 장범희가 다가와 수건을 건넸다.

권채우가 본가로 돌아와 우연히 맛본 폭력에 중독된 지도 벌써 6년. 

스무 살이 되자마자 무대에서 잠적한 그는 현재 폭력의 일선에 서서 가업을 돕는 사냥개가 되었다. 자진해서 들어간 강제 수용소는 권 가(家)의 사설 교육대대였고 그곳에서 권채우는 지옥 같은 훈련 과정을 거쳐 사회의 어둠 속으로 완전히 스며들었다. 

한때 클래식계를 장악하던 천재 첼리스트가, 극악무도한 채귀(債鬼)가 되어 빚을 받아 내고야 마는 천박한 고문 기술자가 되기까지. 권채우가 폭력에 빠지게 된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사람의 음역대와 가장 닮았다는 악기, 첼로.

“흐아아아악!”

그는 뻗어 있는 놈의 요추를 한 번 더 짓밟았다.

무아지경으로 음을 만들어 냈던 그때의 감각은 이미 다 죽어 버렸지만, 폭력은 그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살점이 썰리고 비명이 난무하는 곳일수록 둔해진 신경에 바늘이 푹푹 꽂혀 드는 것 같았다. 

그러면 바라보는 것조차 힘겹던 첼로 활도 한 번쯤은 쥐어볼 수 있었던지라.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듯 그는 가학적인 행동에 끝없이 빠져들었다. 

“어떻게 됐어?”

권채우는 미련 없이 철장 밖을 나서며 퀴퀴한 지하실을 가로질렀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조금씩 보이는 빛살에 이마가 절로 찌푸려졌다. 그 뒤를 장범희가 곧장 따라붙어 목소리를 낮추었다.

“의심스러운 사람을 하나 확보해 두긴 했습니다.”

“누군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본가에서 일하던 가정부였는데 말을 못합니다.”

“혀가 잘린 거야, 아니면 타고난 거야.”

“잘린 겁니다.”

천재와 광인은 한 끗 차이였다. 권채우는 오로지 폭력에 대한 광기 하나로 사냥개를 휘어잡았다. 그는 가문의 존속이 아닌, 자신의 쾌락을 위해 더러운 일도 서슴지 않았으며, 특히나 사냥개는 역대 대통령들이 이용했던 집단인 만큼 그 방면에 있어서는 완전한 선수였다. 

그렇게 음지에서 자그마한 세력을 형성하게 됐을 때 그는 힘이 없어 미뤄 두었던 일을 시작했다.

“손가락만 남겨두는 게 힘들어서 이러는 건 아닐 테고.”

“그게…….”

장범희가 머뭇대자 앞서가던 권채우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성질 돋우지 말고 말해.”

“……아무래도 권 이사님이 도련님께 거짓말을 한 것 같습니다.”

장범희는 차마 그의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윤주하 씨는 평범한 사고사가 아니라…….”

그 여자를 지칭하는 말은 다양했다. 

윤주하, 그 여자, 미친년. 

그리고……, 어머니.

지금도 눈만 감으면 선율처럼 떠오르는 얼굴이었다. 따스한 햇빛, 바람에 흩날리는 고운 머릿결, 허름했던 초가집, 커다란 나무. 

사랑과 헌신으로 길러 주고, 음악의 원천을 한가득 만들어 주었던 어머니. 나무의 울림과 첼로를 가르쳐 주었던 다정한 여인. 

매일 밤 자장가를 불러 주고,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을 해 온 은인. 당시 세 살밖에 안 된 권채우를 첼로 가방에 넣어 유괴했다는 죄인.

“말해.”

그의 안면이 딱딱하게 굳었다.

“권 가(家) 지하에 오랫동안 감금돼 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 순간 권채우는 갈비뼈가 부서지는 격통을 느끼며 마침내 눈을 떴다.

“허억……!”

남자는 허겁지겁 숨을 들이켜며 상체를 일으켰다. 익사 직전에 숨구멍이 뚫린 사람처럼 가슴팍이 거칠게 요동을 쳐 댄다. 

씨발, 권채우는 묘하게 변한 목소리로 욕설을 읊조렸다. 언제나 뿌옜던 머릿속이 잔인할 정도로 쾌청하다. 쥐어짜듯이 와락 찌푸린 안면에 고통스러운 주름이 졌다.

이윽고 그는 익숙하지만 낯선, 기묘한 느낌이 드는 집 안을 둘러보았다.

“…….”

처음 보는 무늬의 천장, 기억에는 없는 가구, 바이탈이 체크되고 있는 의료기기. 그는 제 몸에 붙어있던 패드를 확 뜯어내고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 

가장 먼저 보이는 야생동물 구조센터 잠바를 벽지 보듯 무심히 지나 서랍장 위에 깔끔하게 정리된 지갑, 핸드폰, 신분증을 차례로 훑었다. 

“……이게 다 뭐야.”

미간을 와작 구긴 그가 신분증을 들어 올렸다. 거기에 박혀있는 건 분명 제 사진이 맞는데 웃기지도 않는 숫자들뿐이었다. 

가짜 생일에 가짜 출생년도. 원래보다 네 살이나 더 많아진 나이에는 코웃음까지 나왔다. 

잘 만들어진 세트장처럼 현실감이 전혀 없는 이곳. 권채우는 찌뿌둥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집안을 연신 낯설게 쳐다보았다. 

서랍을 뒤지고 옷장을 열어보는 손길이 거칠었다. 그럼에도 발걸음은 어디를 향해야 할지 정확히 아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몸은 앞서는데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다. 권채우는 확연히 느껴지는 기억의 공백에 성가시다는 듯 혀를 찼다.

“대체 무슨 약물을 쓴 거야, 이 씹새끼들이.”

권채우는 딱딱하게 뭉친 목과 팔, 그리고 허리와 다리를 잇달아 뚝뚝 꺾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눈에 보이는 광경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실내화 두 켤레, 파스텔 톤의 쿠션, 커플 머그컵, 쌍둥이 화분, 드림 캐쳐 등, 아래층은 누가 봐도 간질거리는 인테리어였다.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

그 순간 욱, 하고 신물이 역류를 하듯 올라왔다. 권채우는 계단 난간을 붙들고 갑작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이를 악다문 채 심호흡을 할 때마다 이마 중앙에 불끈 돋아난 핏줄이 꿈틀거렸다. 

가짜, 가짜, 가짜. 가증스럽게도 전부 가짜였다. 몸이 발작적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열 셋에 알고 있던 세계가 뒤집힌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역겨움이었다. 

이윽고 자석처럼 날아드는 조각들이 권채우의 뇌리에 달라붙으며 콰과광, 눈앞이 번쩍거릴 만큼의 충격을 주었다. 

“아―”

목젖이 한 차례 출렁이며 의미심장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남자는 충혈된 눈시울을 들어 천천히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래…….

그는 소이연을 잡으러 이 화이도에 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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