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괴담, 그거 진짜더라니까?”
미 병원 원장이 목을 좌우로 스트레칭하듯 쭉쭉 당기며 말했다.
이연은 신목의 널찍한 둘레를 따라 걸으며 수술 경과를 꼼꼼히 메모하고 있었고, 그 뒤를 원장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소 원장은 집에 뭐 안 좋은 일 없었어?”
“……없어요.”
“희한하네, 신목도 사람을 가리나?”
남자는 가볍게 인상을 쓴 채 흉물스러워진 신목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심지어 폐차도 했잖아. 수천 번도 넘게 다녔던 도로인데 갑자기 바위가 굴러떨어질 줄 누가 알았겠냐고. 나 그거 피하느라 중앙선까지 침범했어. 30년 무사고 운전 인생에 빨간 줄 그어질 뻔했다는 거 아니야.”
“…….”
“다친 게 나라서 천만다행이지, 남이라도 다쳤어 봐.”
그는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부르르 떨었다. 그때 이연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마주 보았다.
“원장님, 괜찮아요. 수술하기 싫어서 내뺀 거라고 오해 안 하니까.”
“뭐?”
“그러니까 저한테 변명하듯이 읊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이에요.”
정곡을 찔렸는지 순간 원장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헛기침을 하자 이연이 이어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저는 꼭 화이돔 따낼게요.”
“……어?”
“그렇잖아요, 괴담에서도 살아남은 나무의산데.”
이연은 여전히 빗발치는 주민들의 원성을 뚫고 2차 심사에 무사히 통과되었다.
신령목 특유의 웅장함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후,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혀를 차거나 애써 고개를 돌렸다. 이연만이 꾸준히 들러 나무의 치유 과정을 한 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미 병원 원장이 주절대는 족족 한 귀로 흘리며 나무에게 링거액을 달았다. 썩은 공동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지라 유난히 회복 속도가 더뎠다.
이연은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머리끈이 헐렁했는지 자꾸만 삐져나오는 잔머리를 별생각 없이 넘기는데, 문득 떠오르는 다정한 손길이 있었다.
“…….”
손끝이 잔머리와 함께 뺨을 쓸며 귓바퀴를 문지르듯 넘기는 감각. 그럴 때면 귓가는 오싹해지는데 목덜미는 더워졌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한 느낌에 이연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긴 숨을 들이마셨다 뱉었다.
“추자 씨, 다 됐어요.”
이윽고 그녀가 굽혔던 허리를 폈다. 추자는 습관처럼 이연의 안색을 살피며 말없이 따라 일어섰다.
무표정해진 이연이 가방을 들고 먼저 앞서 나가자 추자는 미 병원 원장을 향해 입에 지퍼 좀 잠그라는 식으로 격한 제스처를 해 댔다. 강하게 쏘아붙이는 눈빛이 무서워 남자는 흠칫 발을 물렸다.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권채우가 잠이 든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 * *
“정확히 언제 잠에서 깰 지는 지금으로서 알 방법이 없습니다.”
패닉 상태가 되어 주치의에게 허겁지겁 연락을 했던 그날 이후―
그는 처음으로 돌아간 듯 다시 긴긴 잠에 빠져들었다. 예전처럼 의료진들이 방문해 그를 씻기고, 체크하고, 적절한 주사를 놓을 때마다 이연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 날은 차갑고, 어느 날은 온기가 도는 몸. 그런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이연의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널을 뛰었다.
“채우 씨, 대체 언제쯤 일어날 생각이에요?”
오늘도 그녀는 나무토막 같은 권채우의 옆에 꾸역꾸역 몸을 누였다.
함께 자지 않으면 그는 더 헤맬지도 모른다. 이연은 여태 그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을 강제로 묶고 있던 끈이 잘려 나갔다는 것, 그의 필요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숲속의 공주도 이렇게 오래 자지는 않을 거예요.”
이연은 반응하지 않는 그의 옆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 말 들려요? 만약 듣고 있는 거면, 얼른 거기서 나와요.”
“…….”
“악몽만 꾸는 사람이, 혼자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계절은 한여름을 지나고 있는데 권채우의 곁에 눕기만 하면 뼛속까지 시려 왔다. 가끔은 제가 죽은 사람을 붙들고 있는 건 아닌지,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서 그의 호흡을 확인하기 일쑤였다.
또 어느 날은 움직이는 권채우가 너무나도 그리워 그가 언제쯤 화장실을 갈까 밤새 기다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꼬박 한 달이었다.
분명 살아 있으나 눈을 마주치거나 그 어떤 응답도 하지는 않는 남자. 수마에 정신을 맡기고 깊게 가라앉은 권채우.
그가 더 이상 이연에게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하게 밥을 먹고, 일을 하고, 퇴근하는 일상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내일을 기대하면서도 기대되지 않는다. 아침도 밤도 그녀에겐 전부 고역이었다.
“그래도 기다릴게요.”
이연은 다짐하듯 눈을 내리감았다.
“예전에도 말했었는데,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환자들이 비교적 수월하거든요.”
“…….”
“나무도 동면에 들어요. 잎을 훌훌 털어 버리고 잠을 자는 건 봄을 위한 작업이에요. 어쩌면 채우 씨도 의미 없이 자고 있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러니까 준비가 다 되면 천천히 깨어나 줘요. 나무가 회복하는 속도에 맞춰 살다 보니 인내심이 강해졌거든요.”
“…….”
“우리, 앞으로 해야 될 이야기가 많아요.”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럼에도 그의 손가락은 일말의 움직임도 없이 잠잠할 따름이었다.
“원장 선생님, 수놈이 안 보입니다.”
잘 훈련된 애기 군인처럼 행동의 순서가 늘 정해져 있는 규백이 오늘따라 집 안 곳곳을 산만하게 쏘다니다 말했다.
도장이라도 찍듯 지정석에 먼저 앉고 나서야 무엇이든 시작하는 애가 잼잼 손바닥을 연신 쥐었다 펴며 주위를 둘러본다. 규백이 찾고 있는 사람은 퍽 명백했다.
“……아.”
그러자 의미 없이 TV를 켜 놓고, 멍하니 있던 이연의 얼굴에 난감한 빛이 스친다.
“원장 선생님, 수놈 버렸습니다.”
“어?”
“역시 늙은 원숭이의 마지막은 그런 것입니다. 제 지식이 맞습니다.”
규백이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권채우가 자주 운동을 하곤 했던 앞마당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연은 쓴 미소를 지었다.
권채우는 알게 모르게 이곳에 퍽 많은 것들을 남긴 모양이다. 추자, 주동미, 규백이까지. 한 달 내내 그의 안부를 묻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벌써 이만큼이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줬으면 했다.
“버린 거 아니야, 규백아.”
가끔은 권채우라는 사람이 이대로 사라지면, 그 남자를 기억하는 게 저 한 사람뿐일까 봐. 그런 터무니없는 불안에 잠식될 때가 있어서. 이연은 새삼스럽게 반갑고 안심이 되는 마음으로 규백을 응시했다.
“권채우 씨는 지금 자. 2층에서 자고 있어.”
“…….”
좀처럼 표정이 없는 규백이었지만 별안간 황당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수놈, 미쳤습니다.”
“어?”
“암컷 곰은 동면을 하면서도 출산을 하는데 수컷은 냅다 잠만 잡니다. 새끼를 돌보지도 않고 암컷이랑 같이 살지도 않습니다. 이 늙은 수놈이 흉내 낼 게 없어 곰이나 따라 하고 있습니다. 충격입니다. 매우 충격입니다.”
규백이 흥분하여 말을 와다다 쏟아 냈다.
“원장 선생님은 암컷 사마귀가 돼야 합니다.”
“으응?”
“암컷 사마귀는 수컷을 잡아먹습니다. 원장 선생님은 그 수놈을 봐주면 안 됩니다.”
“그 수놈은, 아니, 권채우 씨는 곧 깨어날 거야.”
그러자 규백이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고개를 정확히 다섯 번 저었다.
“아닙니다. 보나 마나 수놈 또 잡니다.”
“뭐?”
한심하다는 뉘앙스에 이연은 바짝 마른 입술로도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 수놈을 한두 번 본 게 아닙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술만 먹습니다. 우리 삼촌도 비슷합니다. 안 변합니다. 처음부터 글러 먹은 수놈은 분명 있습니다. 곰은 오래 자는데도 근육이나 뼈가 상하지 않습니다. 수놈은 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규백은 불안한지 자리에 풀썩 앉아 책장을 마구 빠르게 넘겼다.
“수놈은 얼른 정신 차려야 합니다. 게으름을 부리면 어린 원숭이에게 영역을 빼앗기는 법입니다.”
“그러게.”
이연은 아이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처음엔 멈칫하던 규백도 더 해도 좋다는 듯 힘을 줘 정수리를 들이밀었다.
추자와 규백이가 있는 가문비 병원의 일상은 모든 게 그대로였다. 다만, 안 그래도 칙칙했던 그녀의 얼굴에는 더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될까?’
앞으로도 더? 이번 한 번만이 아니고?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피곤한 눈가를 한쪽 손바닥으로 덮었다. 이렇게 또다시 혼자 남는 이 기분을 매번 느껴야 한다는 건가?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는 남자와 산다는 건 생각보다 더 고된 일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꽃처럼 짧게 피어나고 이연은 감내하는 계절이 되어 홀로 흘러가야 했다. 그 불규칙한 하루를 위해 기다림을 바쳐야 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권채우가 선물해 준 목각을 닳도록 만지작거렸다.
* * *
신목 수술 이후, 의도치 않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인지 병원으로 오는 문의가 늘었다.
이연은 가리지 않고 모든 일거리를 받았다. 그나마 바쁘게 살아야만 수시로 찾아오는 무기력증을 딛고 일어날 수 있어서 이연은 오늘도 테니스장 공사가 한창인 현장을 둘러보며 견적을 내는 중이었다.
“나무들 숨구멍을 다 막아 버렸으니까 죽죠.”
이연은 공사장 흙으로 잔뜩 뒤덮인 수맥을 발끝으로 툭툭 짚으며 지적했다.
“일단은 나무 우물부터 만들어야―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이연은 바지 주머니에서 지이잉 울리는 핸드폰을 느끼고는 곧장 양해를 구했다.
그러나 액정에 뜨는 이름을 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눈에 띄게 딱딱해졌다.
권기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