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권채우는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내지르는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먼지와 이끼 때문에 연탄재처럼 새까매진 얼굴을 단번에 찾아냈다.
허리에 밧줄을 감고 나무 위로 올라간 이연의 모습은 마치 단두대에 선 듯 아슬아슬했다. 그러나 정작 떠는 건 그녀가 아닌 전동 톱이었다.
그녀는 굉음을 내는 전동 톱을 들고 죽은 나뭇가지를 호쾌하게 잘라 나갔다. 그 모습이 꼭 의사가 아니라 환경 파괴범 같아서, 권채우는 남몰래 입꼬리를 올리고 제 아내의 과감한 수술을 지켜보았다.
우지직 쿵. 우지직 쿵.
나뭇가지가 바닥으로 추락할 때마다 사람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아아아아!’
노인들은 바닥에 풀썩 주저앉거나 “저년 안 잡아가고 뭐해!” 라며 소리를 질러 대기 일쑤였다. 권채우는 날 선 비난을 쏟아 내는 자들의 모가지를 죄다 꺾어버리고 싶어 저도 모르게 손이 움찔거렸다.
“똥구멍 찾았어요!”
이윽고 이연의 우렁찬 목소리가 추자를 향했다.
부패한 구멍을 찾고 보니 이미 그 속에는 벌레들이 득실거렸다. 사람으로 치자면 척추에 난 구멍이 곰팡이처럼 썩고, 염증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연은 확 퍼지는 악취에 잠시 숨을 참고 고개를 돌렸다. 이내 부패한 부분과 죽은 나뭇가지를 천천히 정리해 나가다 보니 숱한 벌레의 껍질과 똥이 수북하게 쌓여 갔다.
권채우는 그렇게 몰두하고 있는 이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앙다문 입술은 비장했고, 눈초리는 평소와 달리 진중하다 못해 살짝 매서운 기까지 돌았다. 그건 처음 접한 표정인지라, 남자는 하릴없이 목젖만 초조히 움직였다. 문득 햇살이 시야를 찌르듯 내리쬔다. 권채우는 한쪽 눈가를 찌푸리며 그녀를 삼키듯 바라보았다.
“이연 씨.”
이마에 달라붙은 젖은 앞머리를 떼어 주고, 나무에 쓸리는 무릎을 감싸 주고 싶어 애가 닳는다.
그때 무심코 인파 속에 있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튀는 옷차림이지만 낯설지 않은 행색. 지난번 이곳에서 굿판을 벌였던 무당이 권채우를 탐색하듯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미간을 좁힌 채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이쪽을 예의 주시하는 무당의 시선을 받아쳤다.
“…….”
“…….”
다소 먼 거리에서 무당이 소리 없이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저 누군가의 혼잣말이라고 받아넘기기엔 희한하게도 그 입 모양이 전부 읽혔다.
‘달이 전부 차오르면 개가 울부짖는다.’
무당이 입꼬리를 쭉 찢어 웃어 보였다. 입매는 기이할 정도로 위를 향하는데 눈썹은 팔자로 뚝 떨어졌다. 마치 권채우를 조롱하듯, 안타까워하듯, 무언가를 우스워하는 것 같았다.
동시에 둔기가 연달아 내리쳐지는 느낌에 머리가 깨지듯 아파 왔다. 사람들의 농성과 규칙적인 북소리가 권채우의 지끈거리는 두통을 더욱더 부추겼다.
‘갑자기 이게 무슨……!’
권채우는 피 맛이 날 때까지 혀를 꽉 깨물고 버텼다.
딛고 선 땅이 뒤집히는 듯한 전복감에 얼굴은 사납게 일그러지고 눈빛엔 살기까지 지펴 올랐다. 무당을 찾아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그녀는 온데간데없었다.
신령목의 몰골은 시시각각 변했다. 더 이상 웅장하고 신비롭던 예전의 신목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너는 돌아오겠구나. 오늘 밤.’
권채우는 나비 날개처럼 은근하게 속삭였던 무당의 마지막 말을 정확히 들었다.
확실히 무언가가 바뀌고 있었다.
* * *
“추자 씨, 수고하셨어요.”
장장 다섯 시간에 걸친 수술이 마침내 끝이 났다.
이연은 링거까지 주입하고 나서야 휴우― 하고 긴 숨을 내쉬었다.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가자 비로소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사람들은 한낱 전봇대처럼 보이는 앙상한 신목을 보며 넋을 잃었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쾅쾅 발을 구르며 이연에게 달려들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을 간단히 밀쳐 낸 권채우가 보란 듯 이연의 곁에 섰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남자가 차갑게 주위를 훑자 뭐라도 쏟아 내려 했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어? 채우 씨, 여긴 어떻게 왔어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예고도 없이 등장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눈동자 속에 반가움이 스미고 입술은 환하게 벌어졌다. 권채우는 별안간 목이 따끔거려 혼이 났다. 두말할 것도 없이 영원히 새기고 싶은 순간이었다. 이연의 정수리에 한쪽 뺨을 대자 기겁을 한 그녀가 커다란 몸을 밀어냈다.
“나 몸에 이끼 가루 많이 들어갔어요, 다 묻어요!”
“괜찮아요.”
웬일로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에 이연이 멈칫했다.
“채우 씨,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혹시 어디 아파요?”
“…….”
“열이라도 나는 거예요?”
이연이 황급히 그의 이마를 쓸어 보았지만, 열은커녕 오히려 얼음장처럼 차갑기만 했다.
“별거 아니에요.”
권채우는 기묘했던 무당의 혼잣말을 떠올리곤 곧장 얼굴을 굳혔다. 설명할 수 없이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연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고 더욱 달라붙었다.
“나무 상태는 어때요? 잘 될 것 같아요?”
“앞으로 2주간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급한 건 다 마무리했는데, 과연 잘 버텨 줄지는…….”
“고생 많았어요, 이연 씨.”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다. 제비꽃을 물에 풀어 놓은 듯한 색은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오묘했다.
바람이 불자 서낭당 처마 끝에 걸어 두었던 풍경이 딸랑, 하고 영롱하게 울었다. 이연은 그 누구보다 힘겨웠을 아픈 나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채우 씨, 생각해 보면 그것도 나한텐 신목이었던 것 같아요.”
“노래하는 나무 말이죠?”
권채우가 그녀의 손을 찾아 잡았다. 이내 두 사람은 해체된 나무 앞에 섰다.
“가장 큰 추억이고, 가장 큰 위로였으니까 내 수호신이라고 부를 만하잖아요.”
“그 얘기 들을 때마다 숨겨진 첫사랑 같아서 기분 별로예요.”
권채우가 미묘하게 얼굴을 구겼다.
그는 이연이 종종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던 노래하는 나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 섹스를 마치고 여운을 나눌 때, 꼭 껴안고 잠이 들 때. 그 짤막한 여백을 함께 할 때마다 이연은 조심스레 자신을 꺼내 보여 주었고, 언제나 그 주제는 어릴 적의 나무였다. 이연이 웃으며 펼쳐 놓는 추억은 고작 그것뿐이었다.
나무가 노래를 한다니…….
그건 외로움에 지친 이연이 만들어 낸 상상일 수도 있지 않나. 그래서 권채우는 그 일화를 들을 때마다 그녀의 시간 속에 자신을 욱여넣고 싶었다. 기억 상실은 저인데 왜인지 가끔은 이연이 휑하니 빈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채우 씨한테만 알려 줄게요, 내 신목이 누구였는지.”
“알고 보니 수나무였다, 이런 말만 하지 말아요. 하다 하다 나무 성별까지 트집 잡는다고 이연 씨한테 미움받기 싫으니까.”
“여자였어요.”
“여자?”
우습게도 권채우의 얼굴에 안도가 스쳤다. 그는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바람에 날리는 이연의 잔머리를 귀 뒤로 넘겨 주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그때 고등학생이거든요? 동화를 믿기엔 너무 커 버렸죠.”
아닌데, 믿었던 것 같은데. 권채우는 피어나려는 미소를 억지로 누르며 감추었다.
“처음에만 당황했지, 그게 사람이 연주하는 소리라는 건 금방 알았어요.”
“…….”
“어느 날 내가 울면 위로하는 멜로디가 들리고, 내가 웃으면 춤곡이 들렸어요. 어느 날은 장난치듯이 일부러 음을 다 틀려서 연주하기도 했구요.”
그때 권채우의 시야가 예기치 않게 흔들리며 이연의 얼굴이 두세 개로 흐릿해졌다. 서른이 넘은 그녀의 옆얼굴이 불현듯 교복을 입은 십 대 소녀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는 눈의 초점을 다잡으려 미간에 힘을 주었다.
“그 후로 나무에 포스트잇이나 쪽지 같은 걸 자주 두고 왔어요. 누구냐고 묻기도 하고, 무슨 노래였는지 알려 달라고도 하고, 일기처럼 내 기분을 쓰기도 하고요. 부끄럽지만 만나고 싶다고도 했어요. 어쩌면 나한테도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혼자 들떴었거든요…….”
“…….”
“물론 답장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권채우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이연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녀를 지금 잡지 않으면, 품에 안고 있지 않으면―. 그런 이상한 생각이 새카만 잉크처럼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다가, 마을이 좀 시끄러웠던 적이 있어요. 그때 어떤 언니를 숨겨 준 적이 있는데 그분이 떠나기 전에 그러는 거예요. 내가 자주 갔던 나무 밑을 파 보라구요.”
“…….”
“그게 태어나서 처음 받아 본 선물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그 언니가 노래하는 나무였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있던 낡은 음반은 전부 내가 듣고, 나한테 들려줬던 곡들뿐이었거든요.”
속을 게워 내고 싶을 정도로 강한 구토감이 찐득찐득한 늪처럼 밀려들었다. 듣기 좋은 이연의 목소리가 살갗에 뾰족하게 박혀 들어 기어이 어딘가를 가른다. 권채우는 입술 안쪽을 와작 깨물며 치미는 거부감을 애써 내리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