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신령목에 길게 널려 있는 새끼줄과 형형색색의 깃발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머리 위에서 칼을 휘두르는 여인이 펄쩍펄쩍 뛸 때마다 붉은색의 한복 치마가 너울거렸다.
웅장한 그늘 아래, 꽹과리를 두들기는 박수와 현란하게 움직이는 무당의 합이 구경꾼의 혼을 쏙 빼놓는다. 굿판이 한창이었다.
수령이 오백 년이 넘는 이 소나무는 성인 남자의 손바닥을 웃도는 잎사귀와 우람한 줄기를 가진 커다란 나무였다. 사람 열댓 명이 손에 손을 잡고 나무를 둘러 안는다 해도 이 나무를 품기란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무슨 굿판에 군청 사람들까지 왔는지를 모리겠네.”
추자가 혀를 내두르며 어떤 인물을 턱짓했다. 북적거리는 주민들 사이에서 양복을 입은 그들은 튀어나온 못처럼 눈에 걸렸다.
갱개갱개 읏개개갱, 꽹과리 소리가 연신 귓전을 때리는 그때 미 병원 원장이 느긋하게 부채를 부치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이연은 밀짚모자를 살짝 올리며 예의상 안부를 물었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
“에이, 우리 쪽으로는 토사가 별로 안 쏟아졌다니까. 고생은 소 원장이 다 해 놓고 무얼. 나는 천만다행으로 운이 좋았지. 근데……, 그쪽 병원도 굿판 보러 온 거야?”
그의 시선이 추자와 권채우를 한 번 슥 훑었다. 주말이라고 동행해 준 권채우의 존재감이 이연의 등을 껍질처럼 덮고 있어서, 단지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 저절로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냥 심사 전에 한번 봐 두려고 온 건데 굿하는 날인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말이야―”
중년의 그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쳐져 있던 실눈이 굽어지자 언뜻 다정하기 짝이 없는 잔주름이 진다. 그 얼굴만 봐서는 무슨 말을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몇 주 전에 직원들이랑 술 한잔을 했는데 다들 그러더라고. 가문비랑 붙으면 운이 나쁜 것 같다고. 그때는 그냥 웃어넘겼더니 진짜 그런가 봐. 신목 이거 무지 머리 아파.”
그는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로 대수롭지 않게 부채만 휘휘 부칠 따름이었다.
“소 원장 혹시, 어디 윗사람한테 밉보인 거 있어?”
“……네?”
“아니, 그렇잖아. 처음엔 30m짜리 나무를 타더니, 다음엔 산사태, 이제는 신목이야?”
미 병원 원장은 막 사우나를 다녀온 듯 반질거리는 얼굴로 악의 없이 흘흘 웃었다.
“소 원장, 잘 생각해. 신목은 치료하는 게 정답이 아니니까.”
“……네?”
이연의 반문에도 그는 뜻 모를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에 토너먼트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았다. 분명 주제는 죽어 가는 신목을 고치는 일이었고, 수술할 수 있는 자격은 치료 계획서를 통해 보다 수준 높은 쪽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치료하는 게 정답이 아니라고……?
“혹시 괴담 때문에 그래요?”
고심 끝에 찾아낸 대답에 원장은 어깨만 으쓱였다.
“글쎄다, 나는 귀신보다 돈이 더 무섭던데.”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끝에 다다르는 무당의 몸놀림이 정신없이 고조되고 있었다.
마침내 굿이 끝나고, 구경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이연은 소형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가며 신목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면서 잘라야 할 가지와 치료해야 할 부분의 도면을 머릿속으로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만 갔다.
“보나 마나 또 같잖은 것들이 도끼질이나 하려는 게지!”
그때, 웬 허리가 굽은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이연의 신발을 툭 쳤다.
“……어, 안녕하세요, 어르신.”
노인의 서슬에 바짝 긴장한 이연이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그런 얼굴로 여기서 얼쩡대는 꼴을 보니, 아가씨도 나무의산지 뭔지 그거구먼.”
하얗게 샌 머리가 무색하게도 목소리와 눈빛이 형형했다.
“사람은 절대 신을 고칠 수 없는 법이야. 그러니 허튼짓 하지 말고 썩 꺼져!”
“어르신, 저 나무 진짜 심각하게 방치되고 있거든요. 수술해야 돼요.”
그러나 이연이 귀밑을 긁적이며 별다른 동요 없이 받아치자 노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뭬야? 수술?!”
드높아진 목청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안 돼, 절대 안 돼! 너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 줄 알고!”
“제 눈엔 중증 환자로 보이는데요.”
“이놈―!”
노인의 호통에 이연은 흠칫 한 손으로 귓구멍을 막았다.
“마을 사람들을 살려 준 고마운 나무다. 옛날에 전쟁이 났을 때, 십 년밖에 안 된 어린 나무에다 큰 북을 매달고 죽을힘을 다해 쳤다는 기록이 있어. 그 소리를 듣고 모두가 피난을 갔고, 온통 불바다가 된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바로 이 나무야! 자기 몸통보다 커다란 북을 짊어지고 그 울림을 견뎌야 했으니 허리 중간이 이렇게 휘어진 채 자라난 거고!”
“네, 보니까 허리 디스크도 심각하네요.”
“뭬야?!”
당장이라도 눈물을 찍어 낼 듯 우수에 젖어 있던 노인이 확 성질을 냈다. 이연은 동그래진 눈을 끔뻑이며 씩씩대는 어르신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귀하다는 소나무치고 이끼랑 때가 엄청 묻었던데요. 빗자루로 한 번이라도 쓸어 주거나 물걸레로 닦아 준 적은 있어요?”
붉으락푸르락했던 노인이 별안간 멈칫했다.
“그,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허면 우리가 나무를 목욕이라도 시켜야 한단 소리냐? 아무튼 저, 저 나무한테 손끝 하나라도 대기만 해 봐라! 네들 입맛대로 신목을 자르고 흉측하게 만드는 꼴은 절대 용납 못 한다!”
노인이 화풀이를 하듯 지팡이를 탁탁 치며 멀어져 갔다. 뒤늦게 다가온 추자가 빌어먹을 노인네라며 투덜거렸지만 이연은 빙그레 웃어 보였다.
“저는 알 것 같아요.”
“머를?”
“어……, 근데 채우 씨는 어디 갔어요?”
이연이 발뒤꿈치를 들고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밖에서는 자제해 달라 눈치를 줘도 따개비처럼 붙어 있기만 하던 남자가 어느 순간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연이 안절부절못하며 손톱을 깨무는데 마침 굿을 마친 무당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그렇지 않아도 채 풀지 않은 새끼줄과 깃발 때문에 묘하게 서늘한 나무 아래서. 혼자만 다른 계절에 사는 듯한 눈초리를 맞닥뜨리자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후다닥 시선을 피했으나 무형의 화살촉이 옆얼굴을 계속 파고드는 것 같았다.
“이연 씨, 안 더워요?”
그때 커다랗고 거친 손바닥이 목덜미에 맺혀 있던 땀을 스윽 훔쳐 갔다. 차가운 온도보다도 친밀한 접촉에 놀란 이연이 재깍 뒤를 돌았다. 시원한 음료수가 벌겋게 익은 그녀의 뺨에 톡 닿았다.
“뙤약볕에 너무 오래 서 있었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권채우야말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슈퍼는 본 적 없는데, 뛰어갔다 왔어요?”
이연이 멍한 눈으로 신기루처럼 나타난 남자를 허겁지겁 바라보았다. 남자는 말없이 입꼬리만 올린 채 캔 뚜껑을 시원하게 따 주었다.
음료수를 건네받은 이연은 엄지로 알루미늄 표면을 가만가만 쓸기만 했다. 태양처럼 직선으로 꽂혀 드는 남자의 눈빛은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언제나 전전긍긍하는 건 이연 자신뿐인 듯하여, 열자마자 쏟아진 마음이 무서웠다.
“나 없는 사이 무슨 일 있었어요?”
순간 흐려진 이연의 표정을 놓치지 않은 남자가 미간에 얇은 금을 그었다.
“아, 다른 게 아니고요…….”
권채우 씨가 보이질 않아 그런 거라는 말을 하기엔 너무 애 같아서, 이연은 말을 돌렸다.
“유명한 모델이 교통사고로 실려 왔어요.”
뚱딴지같은 소리에 권채우의 오른쪽 눈썹이 한 차례 들렸다 내려왔다.
“뼈도 맞추고, 상처도 꿰매고, 나중엔 흉터 제거술도 하면서 말짱하게 돌려보냈어요. 그런데 자꾸 이 환자가 시름시름 죽어 가는 거예요. 왜 그럴 것 같아요?”
“다른 병이 있었겠죠. 교통사고 말고, 속에서 곪아 가는 근본적인 병.”
이연이 고개를 마구 끄덕거리자 남자는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얼굴을 붙잡아 주었다.
“그런데 깨끗이 나으려면 머리카락도 밀고 어깨선부터 양팔을 잘라 내야 된대요.”
착잡한 낯으로 나무를 올려다보는데 동시에 두 사람에게서 대답이 들려왔다.
“우야겠노. 그래도 목숨이 먼저래이.”
“두 팔 잘리는 게 왜요.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데리고 있을 거예요.”
분명 추자와 비슷한 대답인데 남자 쪽은 어딘지 모르게 기묘하다. 반쯤 입을 벌리고 있던 이연이 고개를 털며 벙쪘던 정신을 추스렸다.
“그치만 이건 나무예요.”
추자는 그제야 이연이 하려는 말을 알아차린 듯 짐짓 심각하게 나무를 쳐다보았다.
“심지어 이거 보호수예요. 한 마을의 재산인데다가, 가슴 찡한 스토리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였겠죠. 한 번 보호수로 지정되면 겸사겸사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멋지고 웅장한 나무가 한순간에 흉측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과연 좋아할까요?”
추자는 심란한 듯 고개를 저었고 이연은 목소리를 한층 더 낮추었다. 다행히도 막 울기 시작한 매미가 그들의 대화를 장막처럼 가려 주었다.
“병원 측은 옴팡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방치된 기간이 워낙에 길어서 잘못 건드렸다간 고사할 수도 있는 건데. 그 원망을 감수하면서까지 나무를 난도질할 자신은 없었겠죠.”
“…….”
“그래서 대충 돈만 받고 모양은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실리만 챙겼을 확률이 커요. 여기저기 너트로 고정돼 있는 게 엄청 조잡하거든요.”
이연은 들고 있던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뒤, 소매를 걷어붙였다.
“신목이랑 관련된 괴담도, 아무래도 나무의사들이 만들어 낸 것 같아요.”
“머라꼬?”
―오백 년 보호수를 죽게 했다는 책임을 피하고 싶어서요. 그녀의 목소리가 덩달아 낮아졌다.
“이건 군청, 마을 사람들, 무당, 그리고 나무의사들 간의 눈치 싸움이에요.”
사실은 신목이 죽든 말든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다. 주민들은 나무의 생명보다도 그럴싸한 모양을 우선시했고, 의사들은 책임지기를 무서워했고, 군청과 무당은 어쩌면 찬조금을 서로 나눠 먹었을 수도 있다.
이연이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며 미간을 종잇장처럼 구겼다.
“내가……, 싹 다 뒤집어 놓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