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7/158)

#66.

정수리를 간지럽히던 그의 콧바람도 잠시 멎었다.

이연은 눈동자만 도르륵 굴려 잘게 떨리는 그의 목울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팽팽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메우고, 남자의 혀가 초조한 듯 마른 입술을 슬쩍 문질렀다. 덩달아 숨을 죽이고 있던 이연이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이연 씨, 다친 덴 없어요?”

“…….”

평연한 그 한마디에 야릇하게 돌던 기류가 한순간 흩어진다. 기분 탓일까, 권채우가 꼭 말을 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걸음까지 물리며 거리를 두었다.

“여기 안 아파요?”

그가 이연의 배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 돌연 주먹을 쥔다. 배낭을 차면서 그녀의 복부까지 쭉 밀었던 것이 어지간히도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괜찮아요.”

이연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권채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용기란 용기는 전부 긁어모아 말했던 부탁 두개가 재고의 여지도 없이 잘렸다. 화끈거리는 뺨은 둘째 치고 이상한 오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그럼―

“취업하지 말아요.”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한 어조였다. 

권채우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눈썹 끝을 긁었다. 이연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내심 당황하는 중이었다.

“남편이 돈 벌어 오는 거 싫어요?”

“권채우 씨가 산에만 들어가면 자꾸 다치니까 안 되겠어요.”

“그건 내가 할 소리 같은데.”

그는 이연의 환자복을 탐탁지 않게 노려보았다.

“돈 안 벌어 와도 돼요. 내가 잘 나가는 나무의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권채우 씨 배곯게는 안 해요.”

다짐이 서린 눈이 이슬처럼 빛났다. 

권채우는 그 순진한 진심을 오래 보지 못하고 왜인지 쫓기는 사람처럼 산만하게 굴었다. 고개를 홱 돌린다던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린다던지, 깍짓손을 정수리에 올려놓고 잠시 천장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읊조렸다. 그러나 이연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여서, 얼핏 봤을 땐 그저 입만 달싹이는 것 같았다.

“……이연 씨, 날 무능력한 남자로 만들지 마요.”

열기를 가라앉힌 남자가 제법 중심을 잡고 눈을 떴다.

“우리가 일이 년 살 것도 아니고. 멀리 봐야죠.”

그 말에 이연이 멈칫했다. 고개를 수그린 그녀가 남자의 소매를 맥없이 잡아당겼다.

“내가…… 떼를 써도요?”

“떼?”

“정말, 정말로 일 안 해도 되니까 집에만 있어 달라고, 부탁해도요?”

“…….”

“그래도 꼭 나가야겠어요?”

머뭇대며 권채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흔들린다.

“내용은 다르지만 나 벌써 세 번째 부탁하는 중이에요.”

권채우는 제 소매를 움켜쥐고 연신 조몰락거리는 이연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그를 두려워했을 때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녀는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지만 그게 저 때문은 아닌 듯했다. 엉덩이를 빼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파고들지 못해 안달이 나지 않았나. 

길고 길었던 기다림에 드디어 마침표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권채우는 즉시 타들어 가는 도화선이 되었다.

“지금 바가지 긁는 거예요?”

그는 욱신거리는 맥박을 무시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내 말 귓등으로 듣지 말라고?”

남자는 성마른 표정을 가까스로 감추었지만 목소리에 스민 웃음기는 어쩌지 못했다.

“내가 집에만 있으면 뭐가 좋은데요. 계속 떡이라도 쳐 줄 거예요?”

“……네?”

“이연 씨가 날 얼마나 희롱해 줄 수 있는지 궁금해서요.”

면접관 같은 태도에 이연은 일순 어깨가 굳었다. 이, 이게 아닌데? 그녀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그 정도 메리트는 있어야 내가 얌전히 집에만 있죠. 가진 게 몸뚱이뿐이라 이렇게밖에는 협상이 안 돼요. 앞으로는 야생 동물 잡으러 다닐지도 모르는데, 그런 혈기 왕성한 남편을 묶어 두려면 재주는 이연 씨가 부려야죠.”

“……뭘, 어떻게, 몇, 몇 번을 원하는데요?”

“횟수는 의미 없고, 매일 밤낮으로 끝은 내가 내요.”

“……권채우 씨, 사람들이 주 5회만 근무하는 건 이유가 있어요. 과, 과한 건―”

“빛 한 점 못 보게 가둬 두겠다면서 심보가 왜 이렇게 물러요?”

“…….”

“나는 이연 씨 하는 거 봐서 결정할 생각인데.”

이연은 숫제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 

그녀는 기껏해야 응석이었던 말을 희한하게 왜곡하는 권채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나가는 문을 힐끔거렸다. 그러자 대번에 낮아진 목소리가 경고를 해 온다.

“다친 데 있으면 지금 말해요.”

말을 돌리기 위해 뱉은 줄만 알았던 화두가 반복되었으나 느낌이 사뭇 달랐다. 

권채우는 미닫이문 쪽으로 걸어가 잠금장치를 단단히 걸고 돌아왔다. 그 느긋한 걸음걸이를 보고 있자니 심장 박동이 요동을 쳐 댔다. 남자는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

“내 위로 올라와요.”

그가 이연을 빤히 쳐다보며 환자복을 벗었다. 한쪽 어깨를 압박하고 있는 커다란 붕대 때문일까, 오히려 그 아래에 자리한 판판한 복근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연은 목덜미를 붉히고 머뭇댔지만 결국 다리가 움직였다.

“아까, 이연 씨가 안아 달라고 사람 들쑤셨을 때부터―”

그의 허벅지에 걸터앉자 엉덩이가 강하게 당겨지며 허리가 바투 붙었다. 어느새 딱딱하게 곧추선 페니스가 그녀의 샅 어딘가를 푹 찔렀다.

“이랬거든요.”

가까이에서, 비슷한 눈높이로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연 씨 헐렁한 환자복도 잠옷인 줄 알고 꼴렸는데.”

권채우는 돌 부스러기에 쓸려 여기저기 상처 난 이연의 얼굴을 엄지로 꾹 눌렀다. 따끔거리는 감각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참았어요. 병실에서 섹스하면, 이연 씨가 제대로 소리도 못 내고 움츠러들까 봐.”

“…….”

“그런데 거기서 떼를 써?”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권채우 씨는 아무것도 몰라요.”

이연의 투명한 눈망울이 물기로 어룽어룽 빛났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붙들어 당겼다. 

입술이 맞닿기 전, 권채우의 딱딱한 동공이 확 커지는 게 보였다.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아찔한 입술에 그는 들고 있던 것을 전부 떨어뜨린 듯 무력화되었다.

뜨거운 입김이 녹진하게 번진다. 이연이 말캉한 입술을 힘껏 누르자 그의 체향이 콧속으로 정신없이 밀려 들어왔다. 평소의 그를 따라 하듯 아랫입술을 한번 빨아 보았다. 

권채우는 움찔 떨며 곧장 반응을 보였다. 가끔씩 농염하다 생각했던 그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혀로 핥고 마음껏 문질렀다. 그러자 성급한 숨소리가 터져 나오고, 붙들린 허리가 아프게 조여들었다.

이연의 키스는 애가 탈 정도로 느릿하고 신중했다. 권채우가 갈증을 해소하듯 허겁지겁 밀어붙이고 앗아 가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그럼에도 이연은 목덜미가 후덥지근해지고 아랫배에 열이 고이는 것 같았다. 고작 입술 위만 배회하는데도 끙끙대는 권채우 때문에. 

입술을 누르고 빨아들일 때마다 그는 전기 총에 맞은 듯 그 커다란 상체를 자꾸만 들썩거렸다.

그러다 권채우의 입술을 벌리고 혀를 들이민 순간, 내내 달궈져 있던 살덩이가 창살을 부수고 튕겨 나가듯 이연의 것을 낚아챘다.

“……!”

뜨거운 콧바람이 얼굴 어딘가를 후끈하게 덮치고, 남자는 긴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이연의 입속을 흉포하게 헤집었다. 간지럽던 감각에 조금씩 감질나게 열이 붙는다.

“읍……! 하아…….”

그녀의 허리가 절로 꺾였다. 끈적하게 빨아 대는 키스에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권채우는 그녀는 부들부들한 엉덩이를 콱 움켜쥐고 제 성기를 바짝 가져다 댔다. 맞닿은 입술이 성급하게 붙었다 떨어질 때마다 젖은 소리가 났다.

“흐…….”

그는 말랑거리는 혀를 짓누르고 빨다가 다시 다른 방향에서 덮쳐들었다. 불덩이 같은 혀가 볼 안쪽의 부들부들한 점막을 누르면 영락없이 소름이 돋았다. 

이연은 어설프게나마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 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권채우는 더욱 날뛰었다.

그가 입술을 내려 그녀의 귓불, 귓바퀴를 입안에 넣고 쭙쭙 빨아 당겼다. 한기가 확 도는 감각에 권채우를 밀어내려 어깨를 짚었다가도 붕대가 거슬려 손을 거두었다. 그는 다시 입술을 내려 그녀의 목덜미를 베어 물었고 이연은 신음을 터트렸다.

“하읏……!”

그가 여린 살갗을 지분거릴 때마다 이상하게 다리 사이가 뭉근하게 욱신거렸다. 결국 그녀가 바르작대며 불편한 티를 내자 뜨거운 손이 상의 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그 순간 남자가 거짓말처럼 우뚝 멈추었다.

“속옷은 어쨌어요.”

충혈된 눈이 추궁하듯 이연을 쏘아보았다.

“그게……, 갈아입을 속옷이 없어서 그냥…….”

“아래도요?”

“……네.”

그녀가 시선을 내리자 권채우의 턱선이 한차례 불거졌다 가라앉는 것이 보였다. 

이내 그는 말랑거리는 그녀의 가슴을 그러쥐고 허기진 사람처럼 주물러 댔다. 갈비뼈 부근에서부터 확연히 봉긋해지는 가슴 밑을 넘치게 잡아 올리며 그녀의 목덜미를 더욱 게걸스럽게 빨았다. 

잠시 입술을 뗀 권채우가 열 오른 눈으로 이연의 옷 끝을 잡아 올리자 그녀도 두 팔을 들며 응했다.

눈앞에서 뽀얀 가슴이 쏟아지듯 출렁거렸다.

“하아……. 씨발…….”

그는 불룩하게 튀어나온 유두를 홀린 듯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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