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화 (65/158)

#64.

겁에 질려 미적거리다가는 이 좁은 굴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토사는 입구 틈새로 꾸역꾸역 넘어오고 있었다. 이연은 어느새 제 허리를 넘어 쇄골에서 찰랑거리는 흙탕물에 얼굴을 굳혔다. 

축축 늘어지는 무거운 토사 위로 바닥의 잔해가 둥둥 떠다닌다. 끈적거리는 진흙이 불쾌했지만 이연은 숨을 들이켜며 어떤 각오를 마쳤다.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설령 다치더라도,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배낭을 치우자 턱 끝까지 짙은 물이 밀려들었다.

“흐읍!”

이연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강한 수압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토석류 아래로 깊이 고개를 파묻었다. 자잘한 돌멩이가 얼굴에 소금을 문지르듯 따갑게 부딪쳐 왔다. 끈적한 토사가 눈꺼풀이며 입이며 콧구멍에 마구 엉기었고, 그녀는 간신히 배낭 하나만을 붙들고 빠져나왔다.

“하악……!”

몸을 일으키자마자 입부터 벌리고 다급히 숨을 들이켰다. 흙덩어리가 입 안으로 텁텁하게 떨어지고 눈과 얼굴이 쓰렸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도, 더 벌리지도 못하다가 그대로 퉤퉤 뱉어 내고는 곧장 상의를 들어 얼굴을 대충 문질렀다.

그러나 꾸덕한 진흙에 거꾸로 빠졌다가 나온 모습은 이미 수습이 불가능했다. 눈 주위만 꼼꼼하게 닦아 낸 터라 머리카락부터 얼굴, 목, 상체 등이 흡사 위장한 군인처럼 시꺼멨다.

이윽고 주위를 둘러보는 이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온 숲이 우중충하고 찐득한 토석류로 넘실대고 있었다. 둥둥 떠다니는 부러진 나무와 잎사귀, 이끼들이 지저분했다. 

허리까지 잠기는 흙더미로 인해 움직이는 게 쉽지 않자 이연은 배낭을 열어 등산용 자일을 꺼냈다. 그리고 부러지지 않은 나뭇가지에 키 체인을 걸고 그녀와 로프를 연결했다. 그렇게 최소한의 동아줄을 매달아 둔 후에야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권채우 씨!”

이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목청껏 외쳐 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뿐, 깨끗하게 쓸려 간 모든 것들이 권채우를 감추고 있었다. 

그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까지 휩쓸려 내려간 건지, 혹은 다쳐서 바닥에 가라앉은 건 아닌지. 이연은 섣불리 판단할 수 없어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권채우—!”

덩어리진 흙더미를 가르는 건 두꺼운 타이어 여러 개를 끄는 듯 버거웠다. 가녀린 몸은 연신 뒤로 떠밀리고 휘청거렸으나 현재 그녀가 느끼고 있는 암담함에 비한다면 별것도 아니었다.

“권채우!”

콰광, 마른번개가 친다. 안 그래도 흐렸던 날씨인데 돌연 먹구름까지 끼자 입 안이 바싹 말라 왔다. 

그 순간 하늘을 배회하고 있는 드론이 시야에 박히자 이연은 팔을 크게 휘둘렀다.

“여기요—! 여기!”

이 정도 규모의 산사태라면 이미 관계자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구조대는 곧 온다. 그러나 이 시간을 그냥 허비하기엔 실종된 권채우 생각에 피가 말랐다. 한시라도 빨리 그를 찾고 싶어 눈망울이 뿌옇게 부풀었다.

“흐……, 윽…….”

썩은 흙냄새가 코를 찌르고, 물때가 낀 바위 때문에 발이 미끄러져 다시 늪에 빠졌다 올라오길 여러 번. 양팔을 잡아당기듯 둘둘 들러붙는 더러운 잔해들이 무겁다. 이렇게 난장판인 곳 대체 어디에 권채우가 있다는 건지. 

입술이 파르르 떨리면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토해 낼 것처럼 삐쭉거렸다. 하지만 이연은 눈을 질끈 감고 돌덩이 같은 감정을 삼켰다. 연약한 점막을 바늘처럼 찌르고 넘어가는 침이 따가웠으나 아직은 울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심호흡을 한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든 순간.

두 동강이 난 나무 기둥에 빨랫감처럼 엎어져 있는 인영 하나가 이연의 눈을 사로잡았다.

“……!”

목구멍이 콱 조여들었다. 얼른 달려가고 싶은데 이상하게 관절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 눈물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뚝 떨어졌다.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가 결국엔 터져 나왔다.

“권……, 권채우……. 권채우!”

그의 꼴도 이연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찐득한 기름 떼를 뒤집어쓴 매처럼 본연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연은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후들거리는 무릎을 간신히 이끌며 그에게 달려갔다. 

일단 제 로프부터 풀어 권채우의 허리에 감고는 조심스레 그를 뒤집었다. 꽉 닫힌 눈꺼풀을 보는 순간 이연은 내내 갈피를 못 잡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정신을 잃은 남자는 죽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고 찢어진 이마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턱을 덜덜 떨며 그의 가슴팍에 귀를 대었다.

“권, 권채우 씨, 내 말 들려요?”

혼잣말일지라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동시에 턱 밑으로 더듬더듬 손가락을 넣어 미약하게나마 뛰고 있는 그의 맥박을 확인했다. 안도인지, 원망인지 모를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제발, 제발요.”

이연은 권채우의 고개를 살짝 기울여 놓고 입 안에 가득 들어찬 흙을 손수 빼내 주었다. 차가운 그의 점막을 훑는 손길이 다급하다. 그의 턱을 단단히 붙든 채 손가락 두엇을 넣어 입속을 싹싹 긁어냈다. 

사람 살리는 일엔 평생 관심도 두지 않았건만, 이연은 제가 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이 순간 사무치게 후회스러웠다. 

그럼에도 그가 눈을 뜰 때까지는 절대 무너지지 말자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던 찰나, 이연이 숨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

배낭을 열어 수건과 담요를 찾으려는데 문득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얼어붙은 호수 아래를 슥 지나가는 무언가. 그것을 목격한 아이처럼 이연은 속수무책으로 시선을 빼앗겼다. 관자놀이까지 둥둥 울려 대는 심장이 시끄러웠다.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권채우와 눈이 마주친 순간—.

“…….”

“…….”

담갈색의 선명한 홍채를 보자 이연은 울컥 치미는 감정에 입술을 깨물었다. 멱살을 잡고 싶다가도, 고맙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의 헌신적인 행동에 이연이 얼마나 겁을 먹었었는지.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가 진다. 다시는 혼자 남고 싶지 않았다.

“……나도 이제 알 것 같아요.”

“…….”

“내가 와이어로 묶었던 나무 두 그루요. 가끔은 그 길이 고단해 보이고, 비정상적인 것 같아도, 그렇게 해서라도 온기를 붙잡고 싶었을 거예요.”

그때 통증을 느끼는 듯 권채우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또렷하지 않고 어딘지 모르게 흐린 눈이 낯설었다. 가물가물하게 눈꺼풀을 반밖에 열지 않은 그는 평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척척하게 들러붙어 온 얼굴을 가리고 있는 진흙 때문일까. 그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뭐야.”

“……!”

“씨발, 지금 이게 무슨―”

뚝뚝 끊어지는 짤막한 말들이 천둥처럼 그녀를 흔들었다.

권채우는 엉망이 된 산속을 바라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온기와 애정이 싹 빠져나간 건조한 음성은 싸늘할 뿐이었고, 시선은 결코 이연에게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척추부터 빳빳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남자를 주시했다. 그녀가 진짜 만나고 싶었던 남자, 그의 남편을 찾아내겠다는 듯이.

그때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권채우가 한쪽 팔로 어깨를 부여잡고 윽, 신음을 내뱉었다.

“……다, 다쳤어요? 괜찮아요?”

그러나 그의 몸에 손을 올려놓기 무섭게 찰싹, 손길이 내쳐졌다.

“손대지 마.”

“…….”

약에 취한 듯, 꿈을 헤매는 듯 아직도 흐리멍덩한 동공이 매섭다.

남자는 이를 악물고 빠진 어깨를 대강 끼워 맞췄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듯 스스럼없이 처치하는 모습에 이연의 어깨가 덩달아 움츠러들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잘게 숨을 내뱉으며 통증을 삼키고 있었다. 불끈 튀어나온 턱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얼어붙은 이연이 숨까지 멈추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불현듯 그녀의 팔이 홱 붙잡혔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야. 넌 뭐고, 내가 왜 이런 꼴로 여기에 있어.”

“…….”

혼란스럽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태도에 이연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조금씩 부서지는 느낌이 생소하여 이연은 그저 주먹만 말아 쥐고 있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정 하나가 그녀의 머리를 장악해 버렸다. 숲을 뒤덮은 토석류보다도, 권채우의 안개 낀 눈동자 한 쌍이 이연의 밑바닥을 훨씬 더 끔찍하고 처참하게 흔들어 놓았다.

“묻잖아.”

“…….”

“너, 누구냐고.”

숫제 패닉에 빠진 이연이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권채우의 머리를 한 대 치고 말았다. 생각을 하기도 전에 먼저 나간 손짓이었다. 

별안간에 머리를 맞은 권채우가 차갑게 얼굴을 굳히며 이연을 노려보았다. 그가 사납게 헛웃음을 내뱉으며 이연의 팔목을 비틀었다.

“죽고 싶어?”

“아, 아니요, 아니요, 절대로 그런 게 아니라—”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살기를 띠는 그의 눈빛에 이연이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차라리 다, 다시 기절해요.”

“뭐?”

“이건, 이건 아니에요. 이건 뭔가 잘못됐어요……. 이건 아니에요……!”

머릿속이 엉망이 된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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