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화 (62/158)

#61.

“잘해 보자고 했었잖아요!”

제한 시간 안에 가장 많은 나무 치료하기.

두 번째 심사를 위해 폐쇄된 마을로 들어간 이연은 입술이 퉁퉁 불은 상태로 권채우를 노려보았다. 

아직 복구가 끝나지 않아 전체적으로 심란한 정경이 꼭 제 마음 같다. 여름의 태가 나기 시작한 날씨와는 어울리지 않는 흐릿한 하늘까지. 이연은 상하의가 이어진 점프슈트를 입고서 쿵쿵 힘주어 걸었다.

“24시간이라는 말은 쏙 빼놨던 게 누구죠, 이연 씨?”

“분명히 밤새울 거라고 말했어요.”

“산속에서 하는 야외 숙박 말이죠. 산기슭에서 깔판 깔고 판초 입고 자는 그거.”

권채우는 이곳에 도착하여 담당 심사관님의 설명을 들은 후부터 태도를 달리했다.

자기는 엉망이 된 꼴로도 조폭들을 잘도 조졌으면서, 고작 이연이 하룻밤 비바크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다. 

변덕스럽게 구는 남자가 성가시고 갑갑했지만, 동시에 실소도 새어 나왔다.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종류의 걱정을 속수무책으로 받고 있어서, 오히려 어쩔 줄을 몰랐다.

오늘의 상대는 <미 나무병원>.

숙련된 추자 씨를 놓고 가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마약 밭 사건 이후, 권채우를 병상에 눕혀 놓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이연은 이날을 위해 흡수가 빠르고 손재주가 좋은 권채우를 가르쳤다. 그러니 그녀의 보조 정도는 무리 없이 맞출 수 있을 것이다.

“……!”

그때 이연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미 나무병원 쪽에 섞여 있는 낯익은 한 사람. 저도 모르게 입술 안쪽을 깨물었다.

‘조경천 원장…….’

마약 밭을 관리하던 조폭들의 핸드폰에 그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그러나 수사는 유야무야되었고, 아무리 D 병원을 찾아가 봐도 원장님은 자리에 없다는 앵무새 같은 답변만 듣고 오기 일쑤였다.

반쯤은 포기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쪽을 바라본 그가 광대를 쭉 올리며 다가왔다.

“이연아.”

그 목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권채우였다. 

그는 곧장 이연의 허리를 보호하듯 두르며 상대를 지그시 노려보았고, 조경천은 그런 사내를 유심히 바라보다 시선을 옮겼다.

“요즘 날 찾았다지?”

“……대체 화이도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계신 거예요.”

이연이 목소리를 낮추고 그를 차갑게 쏘아보았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게 아니어야 할 거예요.”

“이연아, 여기에 널 처음 데려온 게 나였지.”

뜬금없는 이야기에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동시에 조경천이 말하는 그때가 언제인지 선명히 떠올랐다. 

나무병원에 취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이도로 처음 출장을 왔을 때를 말하는 것일 테다.

조경천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이연을 무표정하게 바라보았다. 그 당시, 멋모르던 사회 초년생 소이연이 복이었는지, 흉이었는지 그는 아직도 판단하지 못했다. 

그저 권 이사와 나누었던 대화가 투명한 소이연의 눈동자를 밀어내며 귓가에 울렸다.

‘그 일은 잘되고 계십니까.’

‘예,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희귀 식물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만약 그 식물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조경천의 얼굴에 짙은 어둠이 스쳤다. 

칠 년 전, 화이도의 어느 늪에서 희한한 것이 발견되었다. 실습 중, 이연이 길을 잘못 들어 늪에 빠진 것은 우연이었고, 거기서 이득을 얻은 건 조경천이었다. 

그건 세계 식물학계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종이었고, 당시에는 당연히 학명도 없었다. 그러나 암암리에 희귀 식물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할 무렵, 그것이 뿌리째 뽑혀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권 가(家)의 짓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희귀 식물을 연구하던 1차 연구원들이 흔적도 없이 처리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그는 황조윤의 사생활을 핑계 삼아 소이연을 즉각 병원에서 내쫓았다. 

그렇게 쫓겨난 애가 화이도에 정착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조경천은 왜인지 복잡한 눈으로 그녀에게 한 발 다가섰다.

“이연아.”

“거기까지.”

그때, 대기 중인 사냥개처럼 줄곧 이빨을 감추고 있던 권채우가 한쪽 팔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두 남자 사이에 말 없는 시선이 오고 가자 이연은 간지러운 혀끝을 살짝 물었다 놓으며 말했다.

“제 남편이에요.”

“……뭐?!”

조경천이 놀라 이맛살을 찌푸렸다. 남, 뭐……? 너한테 뭐? 중국 원산지인 키 작은 나무, 남천을 잘못 말한 것이 아니고? 

이연을 데리고 있으면서 그녀의 수많은 하자를 목격했기에 조 원장은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 바람에 권채우의 눈빛에서 찾아낸 익숙한 기운은 금세 뒷전이 되었다. 조경천은 헛기침을 하며 눈매를 좁혔다.

“이연아,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겠냐.”

“뭘요?”

“화이돔.”

그가 무겁게 대답했다.

“기권이라도 하라는 말이에요? 제가 왜요?”

이해가 안 된다는 그녀의 얼굴에 조경천은 그저 입만 꾹 다물 뿐이었다. 볼 일은 이제 없다는 듯 그녀 곁을 지나치는 순간, 조경천이 나직하고 빠르게 속삭여 왔다.

“죽기 싫으면 입단속부터 하려무나.”

“……!”

이연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그러나 유난히 귀가 예민한 권채우가 그것을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홱 튀어 나갈 듯 다리부터 움직이자 이연이 다급히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가 고개를 저었고, 권채우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얌전해졌다.

이연은 사라진 조경천의 자리를 눈으로 더듬으며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그것이 경고인지, 충고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 * *

산림청에서 나누어 준 물품은 각 병원 측에 공평하게 지급되었다. 숙영에 필요한 용품이 들어 있는 빵빵한 배낭 두 개, 왕진 가방, 태블릿 PC, 산을 오르기에 유용한 스틱과 등산용 자일까지.

방식은 간단했다. 치료를 마친 나무를 이 태블릿 PC로 찍으면 심사관에게 바로 전송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빠른 진단 능력과 능숙한 응급 처치. 이번 판은 무조건 속도전이었다.

“권채우 씨, 이제 갈 거예요. 준비해요.”

이연은 제 몫의 배낭을 메며 지도를 탐독하는 데 여념이 없는 권채우를 흔들었다.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작게 표시된 무언가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머리에 무섭도록 입력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선 소형 드론이 날아다니고, 태블릿 PC에선 드디어 타이머가 작동되기 시작했다. 이연은 미 나무병원을 슬쩍 곁눈질하며 그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

우중충한 숲을 둘러보는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어딘가가 부러지고 꺾여 바닥에 쓰러진 나무들이 천지였다. 

어마어마한 토석류가 파도처럼 밀고 내려왔던 작년. 그 급류에 휘말린 산은 이미 어여쁜 모습을 전부 잃어버린 후였다.

늪 같은 바닥, 부스러진 바위와 온갖 나무껍질의 잔해, 벌써부터 진흙 범벅이 된 신발. 

안 그래도 흐린 날씨 때문일까,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폐허에 발을 들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늘 할 일이 아주 많겠어요.”

“…….”

묵묵부답인 그를 올려다보며 이연은 조금 고개를 갸웃했다. 숲에 들어온 이후 권채우는 현저히 말수가 줄었다. 대신에 굳은 얼굴로 자신의 귀를 잡아당겨 본다거나, 주위를 예민하게 둘러보면서 까마귀처럼 잘도 고개를 홱홱 돌렸다. 평상시와는 확연히 다른 그 모습에 이연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왜 그래요?”

“…….”

“어디 안 좋은 거예요? 머리라도 아파요?”

이연의 걱정에 권채우가 마른 표정으로 픽 웃었다.

“그러고 보면 이연 씨는 내 머리에 진짜 관심이 많았죠.”

“네?”

“마약 밭에서요, 나 맞고 있을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요?”

“…….”

그때는 아드레날린으로만 움직였을 때라 저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하나 기억하진 못했다. 

그녀가 맑은 눈을 끔벅이며 멀뚱히 보고만 있자, 권채우가 장난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제 이마로 꽁 찍었다.

“다른 데는 다 때려도 머리만은 때리지 말라고.”

그가 피식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연은 괜스레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였다.

이내 그녀는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응급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이연이 여태까지 제일 많이 한 것이 부패한 가지를 자르고, 전체적인 수형을 바로잡아 주는 일이었다. 가지와 가지를 연결하고, 쇠 조임 작업까지 정성을 다했다. 다른 말로 뼈가 부러진 나무들에게 깁스를 해주는 작업이었다.

능숙하게 처치를 끝낸 후 다른 나무로 옮겨 가는 그녀는 다람쥐처럼 빨랐다. 권채우는 그녀가 요구하는 도구를 재깍 전해 주면서도 사진을 찍기 바빴다. 

“이미 죽은 나무들이 많아요.”

그들 중 대부분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두 동강이 났거나 익사를 당한 경우였다.

“건강한 나무는 단기간에 일제히 꽃이 피었다가 떨어지는데, 그렇지 못한 나무는 잎이 나와도 몇몇 개가 남아 있어요. 이것 보세요. 이쪽 애들은 거의 다 그렇죠?”

그렇게 듬성듬성 갈변한 꽃이 남아 있는 나무들에는 유난히 벌거벗고 구부러진 가지들이 많았다. 상태가 허약해져 시들어가고 있단 징조다.

그때 이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권채우가 미간을 좁혔다.

“그건 슬픈 얘기네요.”

“네?”

“한꺼번에 꽃이 피었다가, 다 같이 우수수 떨어지는 게.”

“원래 꽃이 피는 계절은 짧으니까요.”

이연은 태연했지만 권채우의 못마땅한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럼 난 이연 씨한테 꽃은 절대 안 줄 거예요.”

“왜요?”

“짧은 날의 증거잖아요.”

“…….”

묘하게 정곡을 찔러 오는 말에 이연은 어색히 입매만 끌어올렸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그녀는 권채우에게 꽃을 선물 받고 싶었다.

이후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이연은 링거에 노란 고무줄을 잇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미리 구멍을 뚫어 놓은 곳에 주입 튜브를 꽂고 약품을 투여하는 순간―

“……!”

그의 표정이 또다시 일변했다.

이연은 권채우의 그 표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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