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뒷머리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느낌이다.
이연은 눈썹을 까딱거린 채 그녀를 빤히 응시하는 권채우를 피할 길이 없었다. 그는 미묘하게 얼굴을 꿈틀거리며 무언의 재촉을 하고 있었고, 그녀는 눈을 아래로 깐 채 목소리를 떨었다.
“밖에서 일하는 건 상관없어요. 그런데 여자랑 일한다고 생각하니까……!”
“생각하니까?”
권채우는 괜스레 초조해져 입술을 훑었다.
“……조금 심통이 나서요.”
모른 체 하려고 했던 감정에 그렇게 못을 박는다. 꽁꽁 숨겨놓았던 마음을 내뱉는 순간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가슴이 흔들렸다. 그제야 밀려드는 질투심에 이연이 당황해하는 사이, 권채우가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겨 입술을 마주 물었다.
“……!”
키스는 급했다. 느닷없이 얽히는 혀에 입술이 한껏 벌어진다. 남자는 깊숙이 혀를 밀어 넣고 성급하게 치열을 훑었다.
“흐으…….”
질척이는 소리가 한참을 울리더니 능숙하게 타액이 넘어왔다. 이연은 그것을 얼떨결에 삼켰고 권채우는 입술을 붙인 채 슬쩍 웃어 보였다.
입천장을 긁던 혀는 이내 입술 안쪽을 진하게 문질렀다. 그 부들부들한 점막은 사람을 미치게 했던 또 다른 내벽을 떠올리게 해서. 눈썹을 와락 구긴 권채우는 더욱 고개를 비틀었다.
‘설령, 과거의 내가 돌아온대도, 우리가 왜 변하겠어요.’
그러나 입술이 빨리는 와중에도 이연은 가슴이 선득해졌다. 기미처럼 올라온 두려움은 한번 지졌다고 쉽게 사라지진 않을 모양이었다. 심장을 꾹 누르자 가장 먼저 염증 같은 불신이 배어 나왔다.
우리가 어떤 사이였는지 당신은 모르니까 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 거라고. 살인자와 목격자, 가해자와 피해자. 그녀가 끝끝내 숨기고 있는 것을 알면 그는…….
그럼에도 지금은, 모든 복잡한 것들을 밀어 두고 다급히 팔부터 뻗었다. 이 짧은 날을 누리고 싶어서, 허상인 걸 알면서도 믿고 싶어서.
권채우는 곧장 반응해왔다. 기다렸다는 듯 그녀를 와락 품 안에 집어넣고는 더더욱 큼지막하게 입술을 베어 물었다. 온몸이 으스러지게 아파왔지만 그만큼 어딘가가 달아올랐다.
남자의 커다란 체격에 푹 뒤덮인 이연은 이제 보이지도 않았다. 틈 없이 맞붙은 입술과 기울어지는 고개가 농밀했다. 어리숙한 입술을 깨물고, 각도를 바꾸고, 점막을 쫄깃하게 빨아 당기며 키스해댔다.
“흣…….”
사람과 부대끼는 건 아프고 힘이 든다. 그게 섹스라 해도 다를 건 없었다.
그러나 뭇사람들이 이연에게 했던 손가락질이나 매질, 욕설, 같은 것들도 권채우가 하면 느낌이 사뭇 달랐다.
시선 하나, 손길 하나에 부피를 줄일 수 없는 애정이 깃들어 있어서. 그가 아프게 짓치고 들어온대도 오히려 쓰다듬을 받은 아이처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훈기가 돌았다.
애정이란 게 이토록 달콤한 것인 줄도 모르고.
그저 살기에 급급했구나.
이연은 느닷없이 밀려드는 공복감에 위장이 울렁거렸다.
‘내가 기억만 안 찾으면 우리 사이가 쉬워져요?’
‘네.’
거짓말 위에 또 다른 거짓말을 쌓는다.
이 시간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건 누구보다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조건을 구태여 들먹인 이유는,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찰나의 기억을 가지고도 평생을 사는 것 같았으니까.
이건 이연이 뒤집어 놓은 모래시계였다, 끝이 조금씩 가까워 오는.
“이연 씨 반응 보니까 낮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게 맞나 보네요.”
정신없이 맞붙었던 입술이 떨어지고, 묘하게 풀어진 눈으로 그가 읊조렸다.
“심통 그거, 좀 더 내줘요. 좆이 바로 커졌어요.”
“……!”
이연은 아래로 내려가려는 시선을 간신히 붙잡았다.
“그러니까 맞벌이할 거예요, 그게 뭐가 됐든.”
권채우는 그녀의 향긋한 체향을 들이마시며 고집을 부렸다. 목 부근에 고양이처럼 콧잔등을 비벼 대는 게 간지럽다 못해 아플 지경이다. 이연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이내 먼 산을 바라보듯 눈빛이 흐려졌다.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되나 모르겠어요…….
구조를요?
권채우 씨 집안은 도축을 잘하는 것 같던데요…….
* * *
혀를 내두르며 밖으로 나온 주동미는 설명할 수 없는 미련에 잠시 대문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원장님, 제가 경솔하게 굴었던 건 전부 잊어 주시면 감사하겠슴다…….”
남의 집 사정에는 함부로 끼어드는 게 아니라고 했지만, 여기는 진짜 너무 안타깝다.
주동미는 밑바닥에 축 가라앉은 찝찝함을 떨치기 위해 머리를 긁적이며 등을 돌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대체 어디서 봤지?’
그때 이 집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흔한 행인의 피지컬이 막 거절 같은 보류를 당하고 온 그녀를 사로잡았다.
화이도에서 보기 드문 건장한 체격에, 젊은 남자, 평일 오전에 길바닥에서 서성거리는 저 짠한 여유까지.
그녀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안녕하심까.”
그냥 지나칠 줄 알았던 주동미가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네자 장범희가 움찔, 눈썹을 떨었다. 그녀가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던 그로서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썼고, 그런 장범희를 빠르게 훑어본 주동미는 뜻 모를 흡족감에 입꼬리를 올렸다.
“실례지만 이 근처 사십니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목울대가 흔들렸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니고, 이런 사람임다.”
주동미는 대충 자신의 잠바에 붙은 로고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든 남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주동미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장범희는 곧장 고개를 돌려 길목을 벗어나려 했지만, 두 팔을 벌린 주동미가 그의 앞을 냉큼 막아섰다. 그녀는 도망치는 동물을 몰아넣는 데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저기, 이런 말 진부한 거 아는데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없습니까? 흔한 얼굴이 아닌데 이상하게 낯이 익슴다.”
초면인 상태에서 훅 들어오는 얼굴이 불쾌해 장범희가 그녀를 밀치려 할 때였다.
“아……! 기억났다!”
무표정한 남자의 낯에 일순 당황이 스친다.
그녀가 다시 한 번 얼굴을 불쑥 들이밀고 남자의 이목구비를 샅샅이 살폈다. 별안간 들이닥치는 샴푸 냄새에 장범희가 주춤, 뒷걸음질을 하며 코밑을 가볍게 막았다.
“우리 삼촌 축하연에서 일했던 그 서버 아님까? 내 잔 받아줬던!”
“……!”
장범희는 도련님과 소이연이 접촉한 모든 사람을 알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주동미의 존재도 알고 있었다.
축하연에서 그녀의 잔을 받았던 것도 반쯤은 고의였다. 그런데 그 순간을 눈앞의 여자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지라, 그는 일반인을 상대로 어울리지 않게 바짝 긴장을 하고 말았다.
“어릴 때부터 원체 눈썰미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그 옷은…….”
“…….”
“경찰이셨슴까?”
장범희는 속수무책으로 굳었고, 주동미는 아쉽다는 듯 입매를 내렸다.
요즘 그는 마약 밭 사건을 매듭짓느라 이 복장을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스쳐 지나갔던 자신을 알아보고, 또 말을 걸어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그는 본능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소형 카람빗 나이프를 만지작거렸다.
“이 동네 기운이 좋나? 어쩜 다들 태가 좋슴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뻐근한 목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그런데 경찰이 왜 우리 외삼촌 축하연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습니까? 잠복 수사 같은 거였슴까? 삼촌이 불법 자금 세탁이라도 했나? 나쁜 사람은 아닌데 충분히 그럴 사람이긴 합니다.”
그녀가 턱을 문지르는 사이, 장범희는 말없이 그녀를 밀치고 길목을 벗어났다.
“어……! 저기! 이름이 뭡니까?”
“…….”
“몇 살임까!”
“…….”
“서로 신원도 확실하겠다, 잠깐 얘기 좀……!”
호기심이 생긴 주동미는 도망치듯 빠르게 걸어가는 장범희를 끝끝내 따라잡았다.
그의 미간에 한 줄 실금이 가는 순간, 여자의 멱살을 붙잡은 장범희가 옆집 담벼락에 쾅, 하고 그녀를 몰아붙였다. 딱딱한 벽돌에 부딪친 등짝이 얼얼했다.
“윽…….”
그녀의 목 어딘가에 남자의 엄지가 꾹 닿는다. 맥박이 펄떡이는 곳을 지그시 압박하는 기세에 헛숨을 들이켰다.
“얼쩡대지 마.”
모자챙에 가려져 그늘진 눈빛이 짤막한 경고를 남긴다. 두 사람은 잠깐이나마 무거운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남자가 먼저 손가락을 거두면서 깨질 듯한 공기는 끝이 나는 듯했다.
그렇게 장범희가 길목을 나서려는데 방심한 등 뒤로 묵직한 이단옆차기가 날아들었다.
“……!”
앞으로 상체가 쏠린 그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뒤를 돌자 바닥에 고꾸라진 주동미가 주머니에서 꺼낸 올무로 그의 발목을 꽉 잡아당겼다.
“너 이 새끼 뭡니까……! 경찰이 시민을 협박해도 되는 검까!”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에 온 동네가 울렸다. 장범희는 소이연의 집을 힐끔대며 욕설을 짓씹었다.
“사람이면 사람답게 말로 해야 되는 거 아님까―!”
이 소란을 듣고 권채우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현재 장범희의 업무는 권채우 감시 및 보호, 소이연 도청 및 정탐, 화이도의 관리 및 통제를 위한 잠복이었다. 권 이사에게 일임받은 몇몇 권리를 가지고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며 호가호위하는 중이라 당연히 얼굴은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았다.
그런 비밀스러운 상황에서 뭔 놈의 힘이 이렇게 센지, 숫제 발목을 끊어 놓을 것처럼 잡아당기는 올무의 기세가 대단했다.
급소를 치고 기절시키든, 쥐도 새도 모르게 담가버리든 보통 때 같으면 뭐라도 했겠지만.
이를 바득바득 갈며 온 힘을 다해 되갚아 주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잘못 건드렸다간 골 아픈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건 어린 시절부터 권 가(家)의 사냥개로 길러진 장범희의 믿을 만한 촉이었고, 결국 그는 몸을 굽히고 주동미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꽉 막았다.
“일단 조용히 해.”
“읍……!”
“그래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순간, 주동미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