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집까지 무슨 정신으로 왔는지 모르겠다.
“하아……!”
난폭하게 입술이 빨렸다. 정신없이 혀뿌리가 당겨지고 입 안 전체가 쉬지 않고 깨물렸다. 타인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벌어지고 짓이겨지는 기분은 키스가 아니라 숫제 벌을 받는 것 같았다.
두터운 혀가 침샘을 집요하게 건드리자 타액이 줄줄 새어 나왔다. 이연은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었지만 그럴수록 권채우는 그녀의 허리를 바투 끌어당겼다.
택시를 타고 오는 내내 붙잡혔던 손목이 욱신거렸다. 그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차창 밖만 바라보았고, 이연은 악다물고 있는 그의 턱을 곁눈질하기 바빴다.
아무렴, 놀랐겠지.
믿고 있었던 것이 전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을 테니.
소름 끼치게 웃었던 건 그저 황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상식적으로는 그게 맞는 거다. 이연은 그렇게 가까스로 결론을 냈다.
“흐읏…….”
그러나 집으로 오자마자 온기 없는 혀가 안쪽까지 들어와 속내를 헤집어 댔다. 이연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와락 삼켜진 채 목청을 높였다.
“권……!”
두툼한 혀를 깊숙이 물고 있어 발음은 죄다 뭉개지고 소리는 웅웅 울렸다. 동시에 권채우의 정강이를 발가락으로 콩콩 찧으며 다그치자 마침내 눈썹을 치켜세운 그가 이연의 혀를 세게 빨다 놓아주었다.
마주친 남자의 눈빛이 어둑했다. 이연은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을 전부 뱉어 내지도 못하고 본론부터 꺼냈다.
“우, 우리 오해가 있다면 서로 말로 풀어요!”
“…….”
서늘하고 꽉 닫힌, 협상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눈. 그 완고한 시선을 마주하고 있자니 이연은 까마득하게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권채우 씨…….”
그녀가 애원하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 그게 말이에요. 요즘은 혼인 신고 안 하고 사는 부부들 많아요. 그게 사회의 한 현상으로……”
“그 입, 다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네.”
이연은 깨갱 기가 죽어 고개를 숙였다.
권채우는 그녀의 작디작은 정수리를 응시하며 축축하게 달라붙은 옷을 벗었다. 이연도 급작스러운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앞으로 권채우가 무엇을 하려는지 본능적으로 알 것 같아서. 묘하게 날 선 분위기가 살갗을 찔렀다.
“……거짓말해서 미안해요.”
결국 그의 눈치를 보던 이연이 먼저 사과를 했다.
마음 한편에서는 그 비굴한 태도를 꾸짖는 성질이 반발을 해 댔지만, 우선순위를 아는 건 언제나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목줄을 꽈악 잡아당기기보다 넉넉하게 풀어 줄 때다. 이연의 몇 마디 말에 쉽게 흔들리는 건 권채우이니, 이런 전략은 우위에 선 자로서 마땅히―
“내가 기억이 없다고 이연 씨는 아주 신이 났네요.”
그가 고개를 비딱하게 기울이고 빈정거렸다.
“나를 죽도록 떼어내고 싶었나 봐요. 그딴 거짓말이나 쳐 대는 걸 보면.”
“……네?”
생각을 멈춘 그녀가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잠깐만요……! 제가, 거짓말이요?”
물론 권채우에 한해서는 사기꾼이 맞았지만 지금은 결단코 아니었다. 그녀가 눈에 힘을 주고 크게 손짓을 했다.
“내가 왜 거짓말을 해요? 증명도 할 수 있는데!”
“해 봐요, 그럼.”
“가서 서류라도 떼 와요?”
이연은 제 결백을 위해 목소리를 키웠다. 그러자 미간을 와락 구긴 권채우가 바지 주머니에서 웬 네모난 종이를 꺼냈다. 대략 서너 번은 접은 듯한 새하얀 서류였다.
이상하게 심장이 요동을 쳤다. 그는 젖은 머리를 가볍게 털고 얼른 펼쳐 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싸늘하게 식은 눈이 끈질기게 이연을 부추겼다.
이윽고 묘한 압박감 속에서 종이를 편 그녀는 이내 몇 톤짜리 파도에 맞은 듯 휘청거렸다.
“……!”
일시에 마비가 온 것처럼 눈앞이 깜깜해지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가족 관계 증명서. 다시 몇 번을 읽어봐도 권채우의 ‘배우자’는 소이연이었다.
“이, 이게 무슨……”
이연은 벌어진 입을 좀체 다물지 못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거 분명 위조야……. 위조겠지! 어떻게 이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겁대가리가 없는 거예요? 나를 얼마나 좆같이 봤길래 바로 코앞에서 거짓말을 또 쳐요.”
그러다 문득 두툼한 시가를 피우던 한 남자를 떠올렸다. 그녀를 완벽한 가해자로 만들겠다고 협박했던, 누군가의 인생을 주무르는 게 참 쉬워 보였던, 오만한 그 그 남자라면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그래서 뒷구멍으로는 몰래 다른 새끼들 만나다가, 이연 씨가 바라는 ‘착하고 다정한’ 남자가 나타나면 재혼이라도 할 생각이었어요?”
“…….”
“병신 같은 남편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가 초점이 나간 눈으로 이연을 헤집듯 쳐다보았다.
“혼인 신고를 안 했기는.”
그 순간 권채우가 매섭게 이연의 뒷덜미를 끌어당겼다.
“이연아, 내가 왜 네 남편이 아니야.”
성대를 긁듯 거친 쇳소리가 위협적으로 울린다.
“헛짓하지 말아요.”
번뜩이는 눈동자가 사람이 아닌 것처럼 무섭다. 이연은 또다시 심장이 쿵쾅거리고 입이 바싹 말라 왔다. 그러나 뜨거운 손바닥이 젖은 몸을 단번에 녹이는 순간, 그녀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이연 씨가 그런다고 나 얌전히 안 떨어져요.”
남자의 손이 척척하게 달라붙은 그녀의 블라우스를 들추고 들어왔다. 등을 쓸어내리며 곧장 브래지어 후크를 풀었다. 더는 거부할 수 없는 입술이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순진한 생각을 했을까.”
우악스럽게 붙잡힌 얼굴에서 그의 콧날이 사정없이 뭉개졌다. 달아오르는 숨결과 혀가 험악하게 얽힐 때마다 움칠움칠 몸이 떨렸다.
분명 소름이 돋고 추운데 어딘가가 끓는다. 그게 꼭 권채우를 향해 막 드러나기 시작한 제 양가적인 마음 같아서. 이연은 미약한 두려움을 떨쳐 내지 못한 채 그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그러자 권채우는 닿아도 닿아도 부족하다는 듯 고개를 비틀어 왔다.
“읏, 하아…….”
벌어진 입술 사이로 그가 집요하게 밀고 들어왔다. 침샘 아래쪽을 찌르고 입천장을 문지른다.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쉬지 않고 벌어졌다 다물리는 턱이 야만적이다. 이연의 입술 끝에서 타액이 흘러내렸다.
후들거리는 무릎 때문에 그의 어깨를 붙들고 매달렸다. 권채우는 그런 그녀를 훌쩍 안아 올려 제 허리에 다리를 감게 했다.
안정적으로 엉덩이를 받친 그는 걸음을 옮겨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파고드는 입술은 떨어질 기미가 없었다. 입천장이 쓸리고 점막이 마찰될 때마다 짜릿하게 전기가 통했다.
“하아, 하…….”
그렇게 한참을 몰아붙이던 그가 침대에 올라가며 입술을 뗐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입술이 붉게 번들거리고 가슴팍이 오르내렸다.
권채우는 흥분으로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홀린 듯 바라보다 짧은 욕설 끝에 다시금 입술을 찾아 물었다. 뜨거운 혀가 능숙히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아……!”
그가 이연의 앞섶을 확 뜯어 버렸다. 그녀는 놀라 움찔거렸고, 단추는 튕겨져 나가 바닥을 굴렀다.
“저, 저기, 권채우 씨―”
“이연 씨, 나는요.”
그가 이연의 청바지 버클에 손을 대며 사나운 눈매를 드러냈다. 그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게 물기인지 땀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명목상 부부로만 남고 싶진 않아요. 서로 바닥까지 빨아먹으면서 난잡하게 구는 사이가 되고 싶은데.”
그녀가 벙찐 채 쳐다보자 그가 차갑게 일축했다.
“어차피 이연 씨 동의가 필요한 건 아니었어요.”
이미 느슨해진 스킨색 브래지어 사이로 흰 살점이 도톰하게 올라와 있었다. 권채우는 입맛이 도는지 목울음을 삼켰다. 브래지어를 거칠게 올리자 빨기 좋을 크기로 알맞게 농익은 유두가 보였다. 남자는 그때부터 정신을 놓고 마구잡이로 빨아 대기 시작했다.
“하읏……! 아아…….”
몸속 어딘가에서 스파크가 튄다. 남자는 혀를 뾰족이 세우고 예민한 돌기를 문지르며 엉망으로 짓이겨 놓았다.
“하아, 하아……!”
그녀가 상체를 들썩였다. 어딘가가 뭉근하게 젖고 숨이 가빠와 견딜 수가 없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망울이 붉게 달아올랐다.
권채우는 볼록하게 솟은 젖무덤을 핥고 깨물며 이연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그리고 바지를 엉덩이 밑으로 조금만 끌어당겨 은밀한 틈새 사이로 손을 넣었다.
“하아……! 하읏, 하아……!”
그러자 신음의 온도부터가 달라졌다.
“하아, 하아……! 권채우 씨……!”
앙증맞은 알갱이를 속옷 위로 문지르던 남자는 이번엔 팬티까지 엉덩이 밑으로 내렸다. 그는 클리토리스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되직하게 비비기 시작했다. 축축하며 말랑거리는 살성에 그가 이를 꽉 악물었다.
“하아, 아아……!”
그때였다.
“권채우 씨, 약속 하나만 해요. 읏……!”
그가 예고도 없이 푹, 하고 중지를 찔러 넣었다. 열기에 젖어 울먹이는 목소리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절대로, 읏, 기억은 찾지 않겠다고요. 절대로.”
이미 잘박하며 고여 있던 애액이 그의 손가락에 끈적하게 달라붙는다. 처음으로 들어가 본 그녀의 내벽은 상상 이상으로 쫀득하고 부드러워 눈앞이 시뻘겋게 물드는 듯했다. 그저 앞뒤 없이 제 것을 푹푹 박아 올리고 싶다. 그는 꼿꼿하게 일어선 제 페니스를 일별하고 이연과 눈을 마주쳤다.
“이 상황에서 이연 씨한테 중요한 게 그거예요?”
“……네.”
“내가 기억만 안 찾으면 우리 사이가 쉬워져요?”
그녀가 흔들리는 눈으로 권채우를 빤히 응시했다. 어쩌면 그 안에 잠자고 있을 ‘진짜 권채우’를 노려보듯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