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2주 전, 평범하게 왕진을 나갔다가 마약밭을 발견했던 그날.
소란스럽게 밀려드는 경찰들 틈에서 이연은 한 가지 불안에 휩싸였다.
‘이대로 경찰서에 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현재 권채우는 신분증이 없다. 고로, 주민등록번호도 모른다는 거다. 그의 지문을 조회했다가 무시무시한 전과라도 나오면 어떡하려고. 게다가 두 사람 다 전산상으로 깨끗한 미혼이라는 게 덜컥 탄로 날 수도 있다.
권채우가 그녀를 품에 가두고 놓아주지 않을 때, 이연은 그에게 안겨 그런 잔머리만 굴려댔다. 누가 봐도 기만적인 태도에 이연은 스스로에게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도…….’
들키고 싶지 않다.
경찰들은 함부로 손을 뻗어 그들을 떼어놓으려 했고, 권채우는 날을 세우고 이연을 감추기 급급했다.
완고한 힘이 이연의 두 어깨를 꽉 감싸고 더욱 끌어당겼다. 딱딱한 가슴팍에 비벼지는 뺨이 얼얼했다. 다른 게 아니라 흥분한 듯 날뛰어대는 남자의 심장박동 때문이었다.
“권채우 씨…….”
슬쩍 뭉개진 발음으로 그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이럴 게 아니라 권채우 씨 형님, 그러니까, 아, 아주버님을 부르는 게―”
그때였다. 돌연 남자의 맥박이 확 떨어진다 싶더니 묵직한 무게가 그녀에게로 쏟아졌다.
“……!”
동공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권채우가 힘없이 쓰러지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 순간이 천천히 늘어져 이연의 시야를 장막처럼 뒤엎었다. 그녀는 다급히 그의 상체를 받아내며 두 팔에 힘을 주었다.
“권채우 씨!”
“이, 연……”
그가 정신을 잃지 않으려 미간에 힘을 콱 주었다.
“집에, 같이……”
“……!”
그 모습이 꼭 처음 만났던 그날 밤을 떠올리게 했다. 이연은 왜인지 떨려오는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와락 움켜쥐었다.
그러나 끝끝내 그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휘청거리자 주변에 있던 경찰들이 다가와 부축을 도와주었다.
“탈게요, 경찰차! 대신 병원부터 가 주세요!”
벌써 두 번째 응급실행이다.
총알이 스친 것뿐인데도 살이 움푹 파인 허벅지에선 피가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검고 푸른 멍들이 썩은 살처럼 물크러진 모습은 도무지 눈을 뜨고 봐주기가 힘들 정도여서.
“당분간은 입원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주치의의 심각한 낯에 이연은 얼어붙고 말았다.
“……네?”
그녀는 자신이 무엇에 당황한 건지조차 모른 채 손바닥을 마주 잡았다.
터져서 형체가 일그러진 입술, 여기저기 살갗이 찢어진 상처, 멍들과 부어오른 광대, 피가 고여 두툼해진 눈두덩이…….
밝은 곳에서 다시 본 권채우의 모습은 패배한 권투선수처럼 애달픈 면이 있었다.
짐승처럼 날뛸 때는 언제고, 창백하게 누워있는 남자가 자꾸만 시선을 끌어당긴다.
“몸이 많이 지쳐있습니다. 체온, 맥박, 혈압이 전반적으로 떨어져요. 충분한 수면으로 일단은 몸이 회복할 여유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며칠을.”
“한 삼사일이면 괜찮겠네요.”
“…….”
그녀가 입술을 꾹 다물고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억지로 끄덕거렸다.
그 후, 경찰서에 홀로 출석한 이연은 불법 밀항 혐의를 벗고, 기물 파손에 대한 합의금을 내고, 마약밭에 대한 증거 사진까지 전부 제출하며 조사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권채우가 경찰서엔 발도 붙이지 못하도록, 제 선에서 아예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그렇게 전투적으로 일을 수습할 동안, 이연은 우습게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소음 하나 없는 집이 너무도 적막해서.
훗날, 그녀가 되찾게 될 일상이 이런 것일 텐데도,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왠지 진정이 안 돼. 입맛도 없고. 담요를 꺼내야겠어.’
여름의 초입에서 그녀는 도리어 한기를 느꼈다. 이연은 소파에도 누워보고, 제 침대에도 누워보고, 심지어는 2층에도 가봤으나 불면의 밤은 깊어져만 갔다.
‘그래도 이건 좀…… 이상한데.’
눈앞에서 골칫거리를 치우면 후련해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바싹 당겨져 있던 신경 줄이 갑작스레 끊어지면서, 그 반동이 이연을 세게 후려친 듯했다. 그 여파 때문인지 오히려 안절부절못하는 자신이 있었다.
“추자 씨.”
참다못한 이연이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전화를 걸었다.
―지금이 시방 몇 시고…….
“새벽 세 시요.”
―하이고, 내가 몬 산데이. 잠 못 자서 우야 마 좋노…….
잠에 취한 추자의 목소리도 이곳의 적막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연은 두 사람분의 생활감이 넘치는 거실을 다소 복잡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어느새 집안 곳곳이 권채우의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선이 닿는 족족 남자의 흔적이 눈에 밟혔다. 그가 마시고 놓아둔 컵, 그가 자주 쓰는 아령, 그가 등에 받쳤던 쿠션 등, 전부 다 거슬렸다.
“저 내일 권채우 씨 깨우려고요.”
이연이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며 무릎을 더욱 끌어안았다.
“……근데요, 추자 씨.”
며칠 새 까칠해진 얼굴을 쓸어내렸다. 한껏 잠긴 목소리가 어두침침했다.
“이번엔 그 남자를 굳이 깨워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자꾸만 빨리 깨우고 싶어져요.”
* * *
“이연 씨.”
새벽녘, 병실로 찾아가 새우처럼 몸을 말고 권채우의 옆구리에 누웠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속눈썹 사이를 파고드는 얄궂은 햇살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데, 불현듯 익숙한 손이 차양을 만들어주었다.
“어때요, 좀 나아요?”
“……!”
부드럽고 낮은 음성이 귓가를 휘감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여전히 상처투성인 얼굴로 그가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얇은 커튼을 투과하여 그의 이목구비에 내려앉았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기다렸는데.”
“……아.”
“이연 씨, 나 아파요.”
“…….”
그제야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보였다.
이연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권채우를 깨우고 싶었던 충동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조금은 손에 잡히는 듯도 했다.
그가 악몽 속에 혼자 남겨질까봐. 이연은 이미 습관이 된 듯 말없이 소매를 당겨 그의 눈가를 닦아주었다.
권채우는 그녀의 손길을 얌전히 받으며 새초롬하게 눈꺼풀을 내렸다.
“이 악몽의 끝은 당신이겠죠.”
“……!”
미려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가 돌연 벼락에 맞은 듯 움찔 떨었다.
“그 끝엔 항상 이연 씨가 있어요.”
그가 천천히 눈을 뜨고 이연을 한가득 담았다.
남자의 순종적인 표정으로 보건대 그의 악몽을 깨워주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이연을 지목한 듯했다. 그러나 찔리는 게 아주 많은 이연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말이어서…….
뭔가가 잘못됐다는 위기감이 심장을 쳤다.
무서워서 도무지 이름 붙일 수 없는 불안감이 2주나 지속되었고, 그 사이 권채우는 몸에 고스란히 남아있던 지독한 사투의 흔적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문제는…… 이연 자신이었다.
뭔가가 아주, 아주, 잘못됐다. 그녀는 이 주 동안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추자씨, 저 뭔가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혹시 흔들다리 효과라고 알아요?’
‘그러니까, 평범한 남자요, 되도록 많이……!’
돌이켜보면 권채우의 수법은 항상 ‘공포’였다.
산속에서의 첫 만남부터, 침대에서의 결박, 생닭을 움켰던 날, 그 뒤로도 계속, 계속……. 황조윤 앞에서, 30m 나무 위에서, 멧돼지 앞에서, 냄새나는 마약 밭에서, 흔들리는 배 위에서.
기어이 이연이 그녀답지 않은 짓을 하게끔 부추기는 동력은―
권채우의 그 공포 정치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 공포에 억압되고, 길들여지고, 종내에는 물들어버리는.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세우고 있던 도중, 등 뒤에서 별안간 권채우가 허리를 숙여왔다.
“이연 씨, 어디 가요?”
“……!”
뜨뜻한 숨결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흠칫 놀란 이연이 뒤를 돌자,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담갈색 눈과 딱 마주쳤다. 차분한 시선이 이연의 옷차림을 느릿하게 훑어 내려갔다. 단정한 블라우스에 청바지.
괜스레 눈동자가 요리조리 굴러갔지만, 그렇다고 이실직고할 수는 없었다. 심장이 콕콕 쑤셨다.
추자 씨가 고르고 고른 화이도의 건실하고 평범한 남자들과 오늘 하루 줄줄이 약속이 잡혔다.
물론 권채우의 입장에서는 썩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간덩이 크게도 그를 속이면서까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제 마음 하나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다면, 어느 쪽으로든 나아갈 수 없을 테니까.
“또 혼자 산에 가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마약밭 사건 이후, 권채우는 이연의 행보에 무척 예민하게 굴었다. 그 탓에 혼자 왕진을 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 그가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할 때까지는 추자 씨에게 일을 미루어야 했다.
“그럼 어디 가는데요?”
“잠깐…… 친구 좀 만나고 올게요.”
“친구요?”
“네.”
그러자 그의 표정이 묘해진다.
“이연 씨한테 친구가 있어요?”
“엇―….”
저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연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 순간 권채우가 변명하듯 빠르게 덧붙였다.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도 없고, 이연 씨 손님도 없어서.”
그녀에게 창피를 주었다고 생각했는지 제 목덜미를 문지르는 손길이 상당히 조급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둘 뿐인 줄 알았어요.”
바닥을 알 수 없는 그의 깊은 눈빛이 작살처럼 꽂혀 들었다.
또다, 심장이 이상하게 울렁거렸다. 그녀가 화들짝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고르자, 권채우가 담백하게 허리를 폈다.
“저녁 해 놓고 있을게요. 일찍 와요.”
그렇게 말하며 발을 물렸다. 이연은 덫에서 벗어나듯이 후다닥 현관 쪽으로 뛰어갔다. 흙이 묻어있지 않은 깨끗한 운동화를 신으려는데 문득 서늘한 목소리가 뒷덜미에 축축이 달라붙었다.
“오늘 예쁘네요, 이연 씨.”
눈은 하나도 웃지 않은 권채우가 입꼬리만 비틀어 올린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