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권채우가 조준에 실패했던 마지막 고깃배를, 웬 낡고 덜덜거리는 통통배가 냅다 들이박고 있었다. 그 충격으로 바다에 굴러떨어진 저격수가 허우적거렸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다른 배에 옮겨 탔던 마약밭의 아저씨였다.
이 추악한 밤바다를 비추고 있는 단 하나의 불빛.
눈부신 조명 탓에 반사적으로 눈가를 찡그렸다. 한껏 조여든 동공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배를 기민하게 훑었다.
그건 그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평소와 달리 희한하게 맛이 가 있는 눈빛.
“……이연 씨?”
터무니없는 상황에 그는 딱딱히 굳어 버렸다.
나무의 요정 같았던 제 아내가 사고를 낸 배의 키를 쥐고 있었다.
그녀는 능숙하게 후진하여 권채우가 있는 쪽으로 배를 운전해 왔다.
그리고 물살에 의해 연신 흔들거리는 갑판 위에서 남자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권채우는 주저하지 않고 그녀를 번쩍 안아 들어 제 쪽으로 옮겨왔다.
그는 이연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빈틈없이 꽉 껴안고, 목덜미에 마구 입술을 비볐다.
사람 같지 않던 얼굴에 비로소 혈색이라는 게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권채우는 한 여자에게 푹 잠긴 채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이연은 바닥에 닿지 않고 붕 떠버린 발이 어색했지만, 의외로 포근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 위험하다고 했잖아요.”
그는 어리광을 부리듯 그녀의 목덜미를 연신 파고들었다.
이연은 침을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해 댔다. 남자는 또다시 피에 절여졌지만 그 냄새가 역하지는 않았다. 그저 반쯤 내려온 눈꺼풀과 까맣게 변한 눈 밑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이연 씨, 나 기분이 안 좋아요.”
꽉 잠긴 성대에서 미약한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집에 가고 싶어요.”
“……그래서 데리러 왔어요. 같이 집으로 가요.”
그의 표정이 급격히 사라졌다. 움찔, 얼굴을 뗀 남자는 기이한 것을 구경하듯 이연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살생으로 무저갱에 한 발 더 가까워졌을 동공만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한편, 그녀는 숨을 죽이고 남자의 반응을 주시했다. 그런데도 전처럼 무섭거나 소름이 끼치지 않았다.
그 빈 구덩이 속에서 홍조가 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 * *
“경찰은 이연 씨가 불렀어요?”
“……아니요.”
그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음울했다.
이연은 권채우가 초토화시킨 마약선의 키를 직접 잡고 뱃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부둣가에 가까워질수록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경찰차의 시뻘건 조명등이 불길하게 깜빡이고, 해경의 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게 아니고, 저 잡으러 온 걸 거예요.”
“내가 잘못 들었어요?”
“아니요, 맞게 들었어요. 제가 배를 훔쳤거든요.”
“…….”
권채우는 드물게도 말문이 막혔다.
“아무것도 묻지 말아요…….”
이연의 얼굴은 퉁퉁 부어있었다.
그에 권채우는 좀처럼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툭 튀어나온 입술과 두툼하게 올라붙은 양 뺨을 보다보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올라와서.
엉망인 하루였다. 제 안의 끔찍한 면을 스스로 확인한 날이었다.
기계적으로 사람을 찌르던 몸은 두렵기까지 했다. 눈앞에서 사람이 쓰러져나가는데도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 해야 지금보다 더 효과적이고 즉각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머리 한구석이 끊임없이 계산을 해 댔다.
그녀가 제 세계로 조금쯤 떨어져 주길 바랬건만.
그가 경험한 ‘진짜 권채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
그의 눈가가 어둑하게 주저앉았다.
“이연 씨.”
“네?”
“……지금 내 얼굴 어때요? 제대로 다 붙어 있어요?”
핏기라곤 하나도 없는 얼굴로 그가 간신히 목울대를 움직였다. 이연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 잠시 미간을 좁혔다.
“사람 같아요?”
“……!”
그러나 이어지는 물음에는 속절없이 시선이 흔들리고 말았다.
“아직, 나 사람이에요?”
“권채우 씨, 지금 무슨 소리를―”
그가 말없이 눈을 마주쳐왔다. 이연은 하려던 말도 까마득히 잊은 채 그가 느끼고 있는 죄악감을 함께 나누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이연은 주변에 있던 아무 수건이나 집어 들어 그의 손을 천천히 닦아주었다. 깨진 유리창 너머로 경찰차의 붉은 경고등이 한 번씩 그들을 비추었다.
권채우는 차마 눈 뜨고 봐 주기 힘들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어딘가의 시궁창에서 막 건져낸 꼴이었다.
약품 냄새는 코를 찔렀고, 신발 밑창에 스며드는 핏물은 불쾌했다. 모든 것이 비정상이었다.
그럼에도―
“사람이죠.”
그녀의 시선이 힐끗 남자의 등 뒤를 향했다. 헐렁한 옷을 입고 있던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면 또 어때요.”
“……”
“잊었나 본데, 권채우 씨는 원래 식물인간이기도 했어요. 움직이지를 못했다니까요.”
이연은 푹 내려간 그의 고개를 잡아 올렸다. 세차게 일렁였던 두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을 가득 삼킨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 아닌 것을 고치는 의사예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속으로는 권기석과의 전화 통화를 떠올리면서.
계약이 무사해서 다행이다, 라고…….
* * *
경찰들은 배에서 내린 두 사람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체포를 한 건 여자 쪽이었다.
신분 확인을 거부한 데다 밀항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배까지 훔쳐 바다로 달아났다고 하니. 경찰관들은 지구대 순경의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 간단히 여자를 경찰차에 태우지 못했다. 아니, 옷자락조차 스치지 못했다.
무시무시한 눈길로 그녀를 품에 감추고서 절대로 놓지 않는 남자 때문이었다.
“공무 집행 방해로 같이 들어가고 싶습니까? 놓으세요!”
“네.”
“뭐요?”
“좋아요, 나도 같이 들여보내 줘요.”
“…….”
“그거, 수갑 쓸 거예요?”
남자가 무심한 눈짓으로 경찰이 들고 있는 수갑을 가리켰다.
“그거 채우려거든, 이 여자 손목에 하나, 내 손목에 하나요.”
숫제 미친놈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붙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팀장님―!”
누군가 꽥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그들이 가져온 평범한 고기잡이배. 그러나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 갑판은 어딘지 모르게 으스스했고, 씨앗처럼 박혀있는 총알은 현실감이 없었다.
게다가 여전히 쉬지 않고 마약을 포장하고 있는 뼈만 남은 노인과 아이들. 경찰들은 금세 이연을 잊고 비인간적인 마약선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편, 수많은 경찰들 중 하나로 잠복해있던 장범희는 권 가(家)의 배를 보며 신음을 삼켰다.
“도련님…….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팀 킬을 하더라도 정도껏 해야죠.
* * *
뭔가가 잘못됐다.
이연은 이 주 동안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짓.
이를테면, 권채우의 폭력을 응원한다거나, 배를 훔쳐 탄다거나, 또 다른 배를 들이받는다거나, 권채우에게 먼저 팔을 뻗는다거나. 심지어 그 품이 안락하다고 여기거나.
그것도 벌써 이 주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열되었던 머리가 조금씩 식기 시작하자 이연은 혼란에 빠졌다.
‘내가…… 내가 이상해……!’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마치 바다에 발목을 담그고 있는 기분이었다. 파도가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가는 감촉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람을 흠칫거리게 만들었다.
“추자 씨, 저 뭔가를……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요.”
“뭔데?”
돋보기안경을 쓰고 있던 추자가 심드렁하게 고개를 들었다.
“평범한 남자들이요.”
“뭐?”
“주위에 평범한 남자 없어요? 소개 좀 시켜주세요.”
“……소개? 소개애?”
추자가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이연의 입에서 나올 거라는 추호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어서. 입이 슬금슬금 벌어졌다.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맞아요.”
이연은 피곤한 듯 마른세수를 했다.
“예전에 그…… 솔레 아들이 맞선 보자고 했었죠?”
“소 원장아, 너 어디 아프나.”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연의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그러나 뜨겁긴커녕 오히려 차게 식어 있었다.
“확인해 봐야 해요.”
“대체 아까부터 뭔 말이고.”
“……추자 씨, 혹시 흔들다리 효과라고 알아요?”
“알제. 알긴 하는데…….”
추자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녀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사람을 만나면, 평지에서 만났을 때보다 호감도가 올라간다는 이론이래요. 긴장 상태에서 나타나는 흥분이나 공포를 사랑으로 쉽게 착각한다고요.”
권채우로 인해 심장이 뛰었던 건 대체로 무서울 때였다. 평범하지 않을 때. 무언가 큰일이 벌어졌을 때. 어느새 그녀는 비정상적인 흥분에 너무 깊이 물들어버렸다.
이연이 절박한 표정으로 추자를 붙들었다.
“그러니까, 평범한 남자요, 되도록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