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7/158)

#46.

“미안해요, 내가 이연 씨 놓쳐서.”

무심코 심장이 덜컹,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가까이서 본 얼굴은 더욱더 가관이었다.

머리통이 깨져 꼼짝없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때에도 이렇게까지 가슴이 바짝바짝 마르지는 않았었는데…….

어느새 쇠 파이프를 들고 모여든 무리가 두 사람을 원으로 둘러쌌다. 그런 상황에서도 권채우는 느긋하게 이연의 허벅지에 턱을 올려놓고 물었다.

“이연 씨, 배는 안 고파요?”

“……!”

“여기서 도시락이라도 까먹을까요?”

분위기만 보면 평온했다. 포근한 카펫이 깔려 있고 모닥불이 켜진 오두막집 같았으니까. 그러나 이곳은 마약 밭이었고 그들은 지금 독에 갇힌 쥐 신세였다.

“권채우 씨…….”

“예.”

“우리 지금 큰일 났거든요?”

그가 아, 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권채우는 인상을 콱 구기고 있는 아저씨를 향해 입에 고인 피를 모아 뱉으며 웃었다.

“너희들 마약 키워요?”

“……막내야, 대체 이 돌아 삔 새끼는 누구니?”

청년은 움찔 어깨를 떨며 입을 달싹였다.

“이연 씨, 우리 내일이라도 당장 이사 가죠.”

“……이렇게 갑자기요?”

“이연 씨는 산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내가 이 꼴을 보고도 아침마다 배웅을 잘 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어…….”

“난 데리고 다니지도 않을 거면서?”

“…….”

“이딴 비닐하우스까지 있는 마당에 앞으로 산속에서 살인마라도 만나게 될지 누가 알아요.”

광대가 어색하게 올라붙으려는 것을 꾹 눌렀다.

‘설마 또 만나겠어요……?’

하지만 이럴 때조차도 권기석의 지긋지긋한 당부가 먼저 떠올랐다. 절대 화이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라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부정부터 했다.

“저, 저는 화이도가 좋아요.”

“이렇게 개판이어도요?”

이연은 금세 입이 궁색해져 눈을 내리깔았다.

진짜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아름다운 화이도. 실습 차 우연히 방문했던 섬의 슬로건을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바다와 숲에 둘러싸여 있는 깨끗한 이곳에 숨어 저를 가리고 싶었을 정도로.

“이것들이 아주 웃기는 소릴 하고 있구만. 아직도 집에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기니?”

그 순간 예고도 없이 오함마를 높이 든 아저씨가 권채우의 발등을 으깼다.

“윽……!”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고통이 스치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연이 갈라진 목소리로 비명처럼 외쳤다.

“아무것도 못 본 걸로 할게요!”

권채우는 하얘질 정도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는 감당할 수 있는 통증의 역치를 넘어선 듯 이연의 허벅지에 얼굴을 박고 끙끙거렸다.

“저흰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아야,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해 봐라. 니들을 살려 두는 게 이득인지, 죽이는 게 이득인지.”

“…….”

“배에 보내게 남자부터 다져 놔.”

그 순간 깡패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연에게 붙어 있는 그를 거칠게 끌어낸 뒤 콱콱 발로 내리찍는다. 몸 위로 쇠 파이프가 연달아 떨어졌다. 권채우는 저항 한번 하지 않고 그 폭력을 전부 다 맞고 있었다.

“권채우 씨……!”

이연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그만, 그만해요! 그만해―!”

정신없이 쏟아지는 매질에 권채우의 몸이 연신 들썩거렸다. 눈썹이 찢겨 피가 흐르고, 옷 밖으로 드러난 팔뚝은 금세 얼룩덜룩 피멍이 맺힌다.

이를 악물고 참고 있는지 흰자위에 실핏줄이 터져 가는데도 이연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뭐해요……! 왜 맞고만 있어요……!”

목소리가 잔물결처럼 떨렸다. 이윽고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침 쇠 파이프 하나가 그의 머리통을 노리고 높이 들어 올려졌다. 이연은 의자째로 벌떡 일어났다가 이내 바닥에 넘어졌다.

“안 돼요……! 제발 머리는 안 돼요! 머리는 때리지 말아 주세요! 다른 데는 다 때려도 제발 머리만은……!”

“…….”

“제, 제발요……! 저 사람 머리가 약해요!”

잠깐 미묘한 정적이 흐른 것 같았지만 이연은 목이 새빨개질 정도로 진심을 담아 외쳤다.

“안 그래도 아픈 사람이에요. 이러지들 마세요! 머리 잘못 맞으면 정말 큰일 나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

이연은 바닥을 쓸다시피 하며 엉금엉금 기었다.

그럼에도 쇠 파이프가 휙 내려오는 순간.

“피해요!”

목이 터져라 외친 말에 내내 늘어져 있던 권채우가 돌연 날렵하게 몸을 틀었다. 쇠 파이프가 텅 빈 바닥을 깡―! 쳤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였다. 권채우는 또다시 사방에서 날아오는 파이프에 가차 없이 두들겨 맞았다.

“대, 대체 왜…….”

이연은 그가 얼마나 능숙하게 멧돼지를 잡고, 얼마나 냉정하게 황조윤을 제압했으며, 또 얼마나 잔혹하게 사람을 파묻었는지를 전부 알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권채우 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

“왜 맞고만 있어요!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때려요, 때리라고요! 충분히 할 수 있잖아!”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가 시선을 맞춰 왔다.

“……내가 그러면, 윽, 안 되는 거잖아요.”

이내 간신히 신음을 삼키며 띄엄띄엄 내뱉는다.

“내 병증 때문에, 이연 씨, 싫잖아요.”

“…….”

“내가 거칠어지는 거.”

그녀는 귀가 먹먹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시야가 뿌예질 뿐이었다.

“……진짜 바보 아니에요? 상황 파악이 그렇게 안 돼요? 왜 꼭 이럴 때만 진짜 천치처럼 굴어?”

혼잣말처럼 조그마한 목소리가 울먹거렸다.

“병증이 뭐 대수라고…….”

그게 얼마나 좋은 핑곗거리였든, 권채우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내세우고 싶진 않다.

고민은 짧았다. 그녀는 마음 한구석에 창호지처럼 붙여 두었던 방어막을 거침없이 뜯어냈다.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부터 생각하자.

이내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다 조져 버려요!”

권채우의 입꼬리가 희열에 차 올라갔다. 아아, 달큼한 신음이 목에서 들끓었다.

숲처럼 깨끗한 그녀에게 제 몫만큼의 더러움을 묻히고 싶어서. 완고한 이연의 공간을 오염시켜 그가 들어앉을 자리를 스스로 만들었다.

‘대신 이연 씨도 내 쪽으로 떨어져 줘야 해요.’

나른했던 동공이 마침내 초점을 되찾았다.

정리는 순식간이었다.

“끄아아악! 이, 이 새끼 뭐야!”

이연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감춰두었던 단검을 꺼내 깡패들의 힘줄을 죄다 끊어놓았다. 근육을 베고 살가죽을 푹푹 찌르는 소리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권채우의 동작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단조로운 움직임만으로도 하나의 선처럼 유려하게 이동해나갔다. 몸놀림이 가히 효율적이었다.

“아아악!”

다 큰 성인들이 얼마나 크게 울부짖던지, 이연은 수수깡처럼 쓰러지는 무리를 보며 움찔움찔 몸을 떨어야 했다.

살갗을 때리고 관절을 꺾는 소리가 가차 없다. 권채우는 그들의 안면을 짓뭉개고, 머리통을 연거푸 책상에 찍으면서 온 창고를 미친개처럼 휩쓸었다.

사람들의 손에, 다리에, 바닥에 피가 흥건히 묻어날 때에는 아주 잠깐 후회가 스치기도 했지만 이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돌아간대도 똑같이 행동했어.’

아름다운 화이도에 마약 밭이 있다. 어쩌면 고작 산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화이도의 산이란 산은 전부 쏘다니는 나무의사로서 이런 비닐하우스가 곳곳에 숨어있다고 생각하니 불현듯 소름이 돋았다.

이 사실이 폭로된다면 화이도가, 아니 온 나라가 들썩이겠지. 그러니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너 뉘기야!”

그때 오함마를 든 아저씨가 목청을 높였다.

권채우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날을 옷에 문질러 닦을 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권채우는 묵직하게 휘둘러지는 쇠망치를 피하며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의 빈틈을 파고들어 한 바퀴 엎어치기를 했다. 허리부터 떨어진 아저씨가 끄윽, 끅, 하는 신음을 내뱉었다.

권채우는 떨어진 해머를 주워 그의 발등을 똑같이 쾅쾅 짓이겨놓았다. 이어서 이연을 만졌던 두 손까지 아예 곤죽이 되게 내리쳤다.

응징을 가하는 와중에도 그의 표정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냉혹했다.

“끄아아아악!”

반격을 가하는 권채우는 신속하고 깔끔했다.

‘이렇게나 빨리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쓸데없이 몸만 축내고 있었던 거야……?’

그는 덩치가 큰 몇몇을 밧줄로 결박하고, 그들의 바지를 뒤져 핸드폰을 전부 수거한 다음에야 유유자적하게 걸어왔다.

“괜찮아요?”

그가 엎어져 있던 이연을 의자 째 바로 세우고, 칼로 밧줄을 끊어주었다. 서걱서걱, 뒷머리를 잡아당기는 소리에 솜털이 비죽 섰다.

“……네, 네.”

이연은 바닥에 널브러져 꿈틀거리는 반송장을 보며 욱, 하고 신물이 올라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그러자 그녀의 안색을 살피고 있던 그가 돌연 기가 팍 죽어 눈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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