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짐짝처럼 들려 침대에 던져졌을 때, 이연은 우습게도 그와의 두 번째 첫 만남을 떠올리고 있었다. 막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나 그녀를 공격하려 했던 그 순간을.
“권, 권채우 씨.”
“예.”
그는 태연자약하게 이연의 몸으로 올라왔다. 축축한 우기가 그녀를 뒤덮었다.
“이건, 이런 건…….”
“예, 다 병 때문에 그런 거죠.”
그가 나긋하게 비꼬며 이연의 옷깃을 멱살 잡듯 들어 올렸다. 냉한 얼굴이 가까워지고 입술이 사납게 달려드는 순간, 이연은 저도 모르게 아래턱에 힘을 주었다. 불현듯 눈물이 고였다.
그것을 본 권채우가 코앞에서 멈칫했다.
“…….”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그의 속눈썹이 떨리고 미간에 짙은 주름이 졌다. 상처 같은 한숨이 그의 딱딱한 입술을 가르고 새어 나왔다.
언뜻 보면 꼭 권채우가 울음을 참는 듯했다. 이연은 또 그게 억울해서 설움이 복받쳤다.
진짜 무서운 게 누군데……!
“이, 이런 식으로 화풀이하지 마요.”
“…….”
“권채우 씨, 이런 사람 아니잖아요.”
이연은 어느새 진심으로 그를 타박하고 있었다.
그녀가 새로 알게 된 권채우는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남자가 아니다.
이연의 의견을 묵살하고 그녀가 다치든 말든 제 좋을 대로만 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 내가 대체 얼마나 봐줘야 해요.”
그는 지친 듯, 그러나 흉흉함이 채 가시지 않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늘만 해도 잡아다 누르고 싶은 걸 몇 번이나 참은 줄 알아요?”
빠득, 이 가는 소리에 이연은 목을 움츠렸다.
“산에서 날 떼어 내려고 했을 때, 웬 여자한테 자기 남편 들이밀었을 때, 시답잖은 증후군 소리로 내 감정을 무시하는 지금.”
“…….”
“이연 씨가 말해 봐요. 진짜 너무한 게 누군지.”
그의 깨끗한 흰자위에 핏발이 선다.
다른 게 아니라 그는 정말로 지쳐 보였다.
생각해 보면 어제부터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깨어나자마자 황조윤을 상대했고, 안 타던 나무를 탔고, 회식을 했고, 아침부터 병원을 방문해 검사도 받았다.
거기다 화룡점정으로 멧돼지까지 잡았으니, 모르긴 몰라도 피로가 상당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모든 활동들을 합친 것보다도, 이연의 말 한마디가 그의 컨디션을 뒤집어 놓고 있었다.
권채우는 그녀의 숨결 하나에도 요동을 쳤다.
역시 머리를 다쳐서 그런지, 멘탈도 약한가 보다고, 그녀는 멍하니 생각했다.
“혹시, 내가 병신이라고 나 갖고 놀아요?”
“……!”
……어, 엄밀히 따지자면 틀린 말은 아닌데…….
이연은 속이 뜨끔하여 시선을 피했다.
“내가 얼마나 더 참아야 해요?”
“……미안해요.”
이연은 언제든 목청 높여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다. 최소한 그 정도의 당당함은 갖고 있다고, 이 사기 행각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고.
그러나 당사자의 입으로 거짓말의 본질이 꿰뚫린 순간, 이연은 엄청난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병신이라고 갖고 놀아요?’
어……, 그게 맞지…….
기억을 잃었다고 하니까 얼씨구나, 들숨에 거짓말, 날숨에 세뇌를 했지.
“나는 그냥, 혼란스러워서 그랬어요.”
일단 이연은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하고자 했다.
그를 구워삶는 것은 보통의 논리, 적당한 말재간, 튼튼한 간땡이만 있으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그는 기억이 없다는 핸디캡 때문에 근원적인 불안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었으므로, 이연의 말을 의심하기보다 수긍함으로써 자신을 바로 세우려 하는 기질이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연이 본 그는 그랬다.
그런데―
“진짜 뼛속까지 휘둘리는 게 누군데요.”
그가 이연의 머리를 제 이마로 쿵, 들이받았다. 콧대가 맞닿고 머리카락이 비벼졌다.
이연은 별안간의 딱밤에 하려면 말도 깡그리 잊고 눈을 땡그랗게 떴다.
이상하게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우후죽순 떠오르는 몇 가지 변명들이 있었지만 핑계만 대는 입은 궁핍할 뿐이었다.
“미안해요. 그래도 나는…….”
나는 감정을 믿지 않아요.
그건 본심에 가장 가까운 말이기도 했으나, 아내인 척하는 지금, 절대 들켜선 안 되는 속내이기도 했다.
“나는 그냥 권채우 씨가 걱정돼서…….”
“그래요.”
무저갱보다도 어두운 목소리였다.
“그러면 내가 그냥 미친놈 할게요.”
“……!”
그는 어느새 이연의 상의를 올리고 차가워진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고 있었다. 추위 때문인지 살갗에 금세 소름이 돋았다.
“좆 서는 병에 걸린 미친놈, 그거 할게요.”
―그게 왜 병인진 모르겠지만. 하고 읊조리는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그러니까 어울려 줘요. 남편이 아프다잖아요.”
“……!”
그가 이연의 브래지어를 억지로 올리고 하얗게 드러난 살덩이를 움켜쥐었다. 굵고 뜨거운 손가락 사이로 매끄러운 살결이 뭉개지고 삐져나왔다.
“권, 채우 씨, 잠깐만요……!”
그가 이연의 도드라진 가슴을 한입에 삼켰다.
“하읏, 권채우 씨!”
남자는 까끌까끌한 정점을 혀로 굴리며 동시에 그녀의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잡아 내렸다.
“……!”
차가운 공기가 헐벗은 하반신에 닿는 기분은 더없이 두렵고 수치스러웠다.
이연은 그의 머리를 계속 밀어냈지만, 그럴 때마다 남자는 젖꼭지를 이로 긁고 똑 따먹을 듯 깨물어 댔다. 그러다 정말 유두만 덜렁덜렁 떨어지는 건 아닌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오른쪽 가슴을 입에 물고 왼쪽 가슴을 떡 주무르듯 탐닉하면서도 그녀를 향해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흣……!”
손가락 사이에 유두가 걸리고, 부드러운 혀에 예민한 정점이 짓이겨질 때마다 이연은 허벅지 안쪽이 욱신거렸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변화가 낯설고, 달갑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뿌리치려는데 쫍, 하고 한창 빨리고 있던 유두가 튀어나왔다.
“이연 씨, 나 사랑하잖아요.”
타액에 젖은 젖꼭지는 어느새 한 겹 부풀어 올라 붉어져 있었다. 그의 입술과 똑같은 색이었다.
“그런데 남편을 의심하면 어떡해요.”
그가 묘하게 웃으며 자세를 내렸다.
이연이 필사적으로 무릎을 붙였던 것이 무색하게도 그는 뽀얀 허벅지를 간단히 잡아 벌렸다.
둔부를 움켜쥔 뼈마디가 꼿꼿했다. 권채우는 다리 사이로 거침없이 입술을 파묻었다.
은밀한 곳에 한 번도 닿아 본 적 없는 습한 숨이 들러붙는다. 그녀는 이게 거부감인지, 죄책감인지 기대감인지 구분할 새도 없었다.
“하앗……!”
그의 콧잔등이 까슬까슬한 음모를 스치고 음문을 짙게 핥아 올렸다. 먹기 좋게 도톰히 올라온 음부의 양 가장자리를 남김없이 물고 빨면서 혀 날을 세워 음핵을 자극했다.
“으……, 흐읏……!”
“대체 누가 목석이에요?”
그는 음부 전체에 침을 바르고 한입에 삼켰다. 클리토리스 주변을 둥글게 문지르다 한 번씩 그 정점만 쪽쪽 빨아 압박을 가했다.
“흣……!”
턱이 들리고 허리가 절로 움찔거렸다. 예민한 지점들이 전부 습윤한 입 구멍에 빨려 들어가자 이연은 미칠 것만 같았다.
“하아……, 하아…….”
그가 엄지로 음문을 더 노골적으로 벌렸다. 미끈거리는 선홍빛 속살이 막 까 낸 조갯살처럼 모습을 드러내자 그는 한층 집요해졌다.
살포시 덮여 있던 양 날개를 혀끝으로 들추고 훑다가, 입술로 와락 물어 고개를 흔들었다. 극점이 진동할수록 뜨거운 감각은 커져 가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앞이 번쩍하고 등바닥이 타는 듯 달아올랐다.
“아, 아, 흣, 아……!”
그는 질펀하게 흐르는 애액을 단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마셨다. 입술이 액체를 남김없이 앗아 가는 천박한 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흣……!”
이성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려고 할 때마다, 권채우는 그녀의 엉덩이를 바투 끌어당겼다. 그러면 권채우의 입술과 그녀의 성기가 빈틈없이 맞붙었다.
그는 야들야들한 살을 쭙쭙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며 마침내 뻐금대기 시작한 구멍 주위를 찌르기 시작했다. 살아서 움직이는 혀는 이연의 의지 따위야 가볍게 휘저어 버렸다.
차츰 무기력하게 몸이 축 늘어질 때였다.
텅, 텅, 텅―
흐리멍덩하던 정신이 단박에 치솟아 올랐다.
“……누, 누가 와요!”
그녀가 권채우의 머리통을 밀어내며 비명처럼 외쳤다. 누군가 2층 창문으로 이어진 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권채우 씨!”
이연은 하반신만 벗겨진 채 음부를 빨리고 있는 이 모습이, 혹여나 타인에게 들킬까 싶어 심장이 뛰고 땀이 났다.
하지만 그의 혀 놀림은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을 흘렸는지 뜨거운 바람이 음부를 한 차례 스쳤다.
“권……, 채우 씨……!”
“…….”
“곧 의사가 온단 말이에요!”
“잘됐네요.”
“뭐요?!”
이연이 상체를 번쩍 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이, 이 미친놈이!”
극한에 몰리자 저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갔다.
“내 사회적 체면은요!”
“저 새끼도 이젠 알아야죠. 남의 신혼집에 쥐새끼처럼 들어오면 무슨 꼴을 당하는지.”
“……!”
“그리고 내가 누구 남편인지.”
그의 입술이 투명한 어떤 것에 의해 미끈거리고 있었다. 이연은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아 급히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