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7/158)

#6.

“……『깨어나지 말아 주세요.』”

권채우는 흐릿한 의식 속에서도 그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었다.

의사는 텅 빈 복도를 걸어가며 연신 턱을 문질렀다. 잔뜩 찌푸려진 눈썹이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권 이사님도 동생이 이 꼴이라 심란하시겠네.”

그가 허리를 뚝뚝 꺾으며 스트레칭을 했다.

기왕이면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게 훨씬 좋을 텐데도, 다시 그 허름한 집으로 보내라는 권 이사의 명령은 조금 의뭉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그럼에도 파고들지 않는다. 간병인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이 먼 타지에서 하고 있음에도 그가 받고 있는 월급은 상상을 초월했으므로.

“……아!”

그때, 그가 멈칫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걸 말 안 했네.”

후유증은 과다 수면만이 아니었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 증후군.

즉, 클라인-레빈 증후군은 보통 행동 이상, 과다한 섭취, 공격성, 과다 성욕의 증상까지 함께 나타난다는 걸.

“뭐……. 오늘은 괜찮겠지.”

기껏해야 오늘 하루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어?

그가 태평하게 하품을 쩍 했다.

* * *

그날 밤.

“흐흥흥…….”

이연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구사일생. 그녀는 잔혹한 남자가 무서워 순간을 모면하려다가, 제 꾀에 빠졌다가, 기적적으로 구조된 기분으로 오늘 하루를 보냈다.

지금 이연은 권채우를 2층에 돌려놓았다는 의료진의 연락을 받고, 마지막 불안을 털어내기 위해 그를 찾아온 참이었다.

그리고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었을 때.

“……!”

그녀는 데자뷔를 느꼈다.

“이 개나리 조팝나무가……!”

뎅, 뎅, 뎅. 밤 열두 시를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나무의사 소이연에게 이토록 종잡을 수 없는 식물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뒷문이 차로 들이박은 듯 부서져 있었다.

“이 애물단지는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이연은 삼십 분이 넘도록 낡은 전봇대가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어두운 비포장길을 도는 중이었다.

차라리 그 사람한테 연락을 할까.

권채우의 형.

이연을 ‘을’로 정한 서면상의 ‘갑’님.

그녀는 핸드폰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액정을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하지만 그쪽 사람들에겐 손톱만 한 약점도 제공하고 싶지 않아서. 그녀는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속도를 높였다.

“권채우 씨!”

그녀의 다부진 외침에 자고 있던 개들이 벌떡 일어나 컹컹 짖었다. 그렇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좁은 동네를 뒤지던 이연은 별안간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마치 커다란 뱀이 기어간 것 같은 궤적.

“……지독하기는.”

헛웃음이 나왔다. 확신에 찬 그녀는 흙이 흐트러진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걸음을 옮길수록 가까이에서 푸드득, 푸드덕, 홰치는 소리가 났다. 묘한 불길함에 심장이 크게 널을 뛰었다.

그리고 목격한 것이―

“권채우 씨! 그, 그거 내려놔요.”

이연이 기겁하며 남자가 들고 있는 닭을 가리켰다.

그러나 권채우는 혼탁한 눈으로 이미 무언가를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강하게 씹는 힘에 의해 턱 근육이 불거졌다 사라지는 게 훤히 보였다.

그가 퉤, 하고 입 안에 든 날것의 살점을 뱉었을 때. 이연은 시큼하게 올라오는 토기를 억지로 눌러야 했다. 수탉은 이미 목이 꺾여 죽어 있었다.

역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보다 손이 떨렸다. 입가에 피를 묻힌 채 권태롭게 서 있는 남자가 무서워서.

“움직이기도 힘들 텐데, 왜 나왔어요…….”

이연은 애써 걱정을 가장해 보았다.

힘없는 부류의 공격성은 기껏해야 혀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정보 교란이나 기만이 최선이자 최고의 방식인 것이다.

그때부터 이연은 필사적으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수습할 완벽한 타이밍을 재기 위해서.

“돌아가요. 여기에 있으면 안 돼요.”

“…….”

그러자 권채우는 닭을 툭 던지고 이연을 쳐다보았다. 관심을 옮기는 찰나가 불편할 정도로 빨랐다.

달빛도 들지 않는 곳에 귀신처럼 우뚝 선 남자.

185cm도 넘으려나. 그는 이연보다 머리 두 개쯤은 더 커 보였다. 내내 땅바닥을 기고, 걷고 했는지 소매와 다리, 배 부분이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불현듯 부는 바람에 옷이 나부끼자 판판한 실루엣이 속수무책으로 드러났다.

이연은 조금 멍해진 머릿속으로 예멘 소코트라섬에 사는 용혈수를 떠올렸다.

피가 흐르는 나무.

그건 핏물 같은 진액이 몸에서 나오는 괴이쩍은 나무였다.

2년 전, 권채우를 처음 보았을 때나 한 달 전, 그에게 깔렸을 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남자는 늘 피와 함께 왔다.

“……권채우 씨.”

“이름.”

“네?”

“이름이 뭐예요.”

무감정한 시선이 그녀 위에 머물렀다. 불티만 탁탁 튀고 있는 고요한 눈동자는 좀처럼 그 속을 드러내지 않았다.

‘끌려가면 안 돼.’

이연은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그러나 성미가 급한 건 그녀만이 아니었다.

“대체 어디에 있었어요.”

“네?”

선수를 빼앗긴 이연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그나마 생각나는 얼굴이라곤 그쪽뿐인데.”

“…….”

“문이 열리지가 않잖아요.”

그가 낮게 목을 울리며 읊조렸다. 순진함을 닮은 무지가 흐리멍덩한 동공을 맴돈다.

이연이 드나드는 2층 문은 원래 안에서는 열리지 않는 구조였다.

그러니까 결국, 이연을 찾기 위해 주먹밥처럼 뒷문을 주무르고 바닥을 기어 움직였다는 소리다. 그 일련의 과정을 떠올리자 흠칫, 목이 움츠러들었다.

보다시피 권채우는 정상이 아니다. 그러나 열흘 하고도 이틀이 지나 깨어난 남자는 땀으로, 피로, 흙으로 엉망이었다. 파고들 틈은 분명 있어 보였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신호. 본능적으로 초록불이 켜졌다. 이건 건너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저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이연의 시치미에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내 천 자로 선명하게 갈라지는 미간에 짙은 음영이 진다.

“아마 꿈, 꿈을 길게 꿨을 거예요.”

“…….”

“저는 권채우 씨를 보살피는 의사구…….”

의도적인 생략에 목소리가 작아졌다.

“여기는 이장님 농장이라서 얼른 자리를 뜨는 게 좋아요. 그…… 닭은 제가 알아서 보상할게요.”

남자는 지그시 일그러진 표정으로 요물조물 움직이는 이연의 입술을 주시했다.

“권채우 씨, 계속 잠만 잤던 거 알아요? 그 전엔 아파서 오랫동안 깨어나지도 못했어요. 분명 뒤죽박죽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거예요.”

“…….”

“그래도 걱정 말아요. 모든 건 꿈일 테니까.”

그녀가 강조하듯 힘을 주었다.

“헛것이 보이고, 헛소리가 들리는 건 전부 뇌가 농간을 부린 거예요. 한숨 더 자고 일어나요. 그러면 편안해질 거예요.”

하지만 이연이 간과한 게 있었다. 모든 걸 꿈으로 돌리고자 했던 그 순진한 계획이야말로, 미련한 꿈이었음을.

“꿈이라.”

남자는 느릿하게 닭 피가 묻은 입술을 혀로 훔치고 있었다.

“확실히.”

그가 턱짓으로 이연의 하반신을 가리켰다.

“그게 진짜였다면 이렇게 서 있지도 못했겠죠.”

그녀는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숙여 제 다리를 살폈다. 그때 조용조용한 목소리가 이연의 정수리를 잡아당겼다.

“자는 내내 섹스 하는 꿈만 꿨거든요.”

“……!”

“아내라는 여자랑.”

“…….”

“내가 그쪽 다리 사이를 계속 들락거렸어요.”

하마터면 죽은 닭 대신 비명을 지를 뻔했다. 분명 호기롭게 마음을 먹었었는데, 그의 단순한 말 한마디에 머릿속이 꽁꽁 얼어붙는다.

“그러니까 헷갈린 게 아니에요.”

“…….”

“오히려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 말에 이연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뒷산에서의 일까지 전부 다 기억한다는 뜻일까? 그녀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나한테는 아내가 있는데.”

“…….”

“그게 겁도 없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

“……!”

“지금, 내 눈앞에서.”

권채우가 큰 보폭으로, 그러나 결코 빠르지 않은 속도로 다가왔다. 그의 지적대로 이연은 미치도록 도망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땅을 박찰 것처럼 다리가 움찔거렸다.

분명 덫을 놓고자 했던 건 자신인데, 왜 정작 올가미에 걸려 빠지지 않는 기분이 드는 건지.

손을 뻗으면 톡 닿을 만큼 그가 가까워지자, 이연은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남편이 생각보다 더 병신 신세가 된 것 같아서 이참에 확 버리고 싶어졌어요?”

그는 바보가 아니다.

“이름. 세 번 묻기는 싫어요.”

“……소이연이에요.”

보이지 않는 악력에 입술이 억지로 벌어졌다.

“소이연. 이연.”

피로 번들거리는 입 주변 때문일까. 권채우는 입맛을 다시듯 목구멍 깊이 그녀의 이름을 삼켰다.

“왜 발을 빼려고 해요. 내가 사람 구실을 못 해서 쓸모없어졌어요?”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무언가가 발목을 찐득하게 휘감는다. 그것이 쇠고랑의 찬기인지, 늪지대의 중력인지, 혹은 짐승의 꼬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연은 지금 명백히 위험 신호를 느끼고 있었다.

“권채우 씨, 그게 아니라―”

“아니라?”

이제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이연은 정말 추궁당하는 아내가 된 심정으로 발가락만 꼼질거렸다. 그래도 급한 불은 꺼야 했기에 그녀는 변명거리를 간신히 쥐어짜 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