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당장이라도 흉곽이 터질 듯 심장이 뛰었다. 무서워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일그러지는 얼굴을 간신히 붙잡고 이연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권, 권채우 씨. 권채우 씨.”
“…….”
“지금 권채우 씨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에요. 의사 불러다 줄게요!”
그를 보살피는 의료진은 화이도에 상시 대기 중이었다. 이연과 추자가 출근을 하거나 멀리 왕진을 나가면, 2층을 증축할 때 비밀리에 만들어 둔 뒷문으로 의료진이 들어와 권채우를 마사지하고, 씻기고, 말리고, 기기를 체크하며 정성껏 보살폈다.
이연이 해야 할 일은 딱 하나.
진범을 잡을 때까지 그를 잘 데리고 있는 것.
‘되도록이면 화이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이연은 그의 형으로부터 ‘권채우’라는 이름만을 전달 받았을 뿐이다. 그 외, 신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집안이 대단한 재력과 권력을 가졌다는 것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일사천리로 시공된 2층도 그렇고, 가진 자 특유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소이연 씨를 완벽한 가해자로 만드는 건 딱히 어렵지도 않은 일이라.’
게다가 뒷산은 깨끗했고, 권채우를 돌로 찍었던 당사자는 감쪽같이 사라진 후여서. 이연은 112에 거짓 신고를 한 죄로 벌금을 내야 했다.
귀신에 홀려도 정말 단단히 홀렸던 것이다. 출동한 경찰의 말마따나 자신이 미쳤거나, 아니면 권채우를 둘러싼 세계가 상상 이상으로 무서운 곳일지 모른다.
어느 날은 홀린 듯 경찰서로 직접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 형이라는 작자에게서 타이밍 좋게 전화가 걸려왔다. 간단한 안부 전화였다. 하지만 통화가 끝나고 보니 경찰 서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메시지로 전송되었다.
꼼짝할 수도 없었다. 이연은 싸워 보기도 전에 굴복했고, 그저 식물인간이 깨어나지 않기만을 바라기 시작했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이연의 정당방위 따위야 가볍게 입막음하는 상대에겐 감히 짖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
덤터기를 쓰고 감옥에서 썩지 않으려면, 이 살인자를 별 탈 없이 잘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채우 씨. 권채우 씨. 막 깨어나서 혼란스럽겠지만, 제가 천천히 설명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일단 이것 좀 놓고 일어나 보세요……!”
하지만 남자는 오히려 상체를 숙이고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머리맡을 덮는 큼지막한 그림자와 낯선 온기가 이연의 등을 짓눌렀다.
불현듯 그의 코끝이 목덜미에 닿았다.
“……무, 무슨, 뭐……!”
남자가 코를 파묻고 이연의 체취를 교양 없이 흡입하고 있었다. 뜨거운 숨이 살갗을 간지럽혔다.
“찍소리 내지 말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요.”
매캐한 재처럼 흩어지는 목소리가 거칠다. 이연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날 가뒀어요?”
“……네?”
“아니면, 내가 그쪽을 가뒀어요?”
두려움을 뚫고 황당함이 튀어 올랐다.
권채우 씨, 대체 무슨 삶을 사신 거예요…….
게다가 이 깍듯한 존댓말이라니.
이연은 숫제 기가 막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요, 아니에요!”
“그럼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순수함이 배인 말투가 낯설다.
하지만 그의 진짜 본성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걸까. 예의 있게 건네는 질문이 꼭 협박처럼 들렸다. 그럴듯하게 포장된 말투에선 저를 압박하는 힘이 느껴졌다.
“그, 그냥 권채우 씨는 환자였어요. 오래 누워 있다가 지금 일어난 거예요.”
“…….”
“물어보신 것처럼 위험한 상황은 절대 아니에요. 진정해도 괜찮아요.”
“…….”
그녀의 말이 퍽 효과가 있었는지, 들쭉날쭉했던 남자의 숨소리가 조금씩 차분해지고 있었다.
‘그치만 당신은 깨어나면 안 됐어……!’
모든 일이 깔끔히 정리될 때까지, 남자는 그저 식물인간으로 남아줬어야 했다.
정말, 그거면 족했는데.
살인자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여러모로 일이 복잡해진다. 무엇보다 이연은 제멋대로, 잔혹하게 굴기 시작할 그의 본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근데 왜 이렇게 떨어요?”
귀를 할퀴는 선명한 쇳소리였다.
“나한테 뭐 죄 지었어요?”
“아, 아니요?”
몸을 누르고 있던 힘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대신 억센 손아귀에 의해 계란 프라이처럼 몸이 뒤집혔다. 심장이 미친 말처럼 어지럽게 뛰어 댔다.
“…….”
“…….”
코끝이 맞닿을 듯한 거리.
목이 타는 긴장감 속에서도 눈길을 잡아끄는 건 우뚝 솟은 콧대와 옅은 나무색의 홍채였다. 불길처럼 일렁이는 밝은색의 눈동자. 그건 마치 금수 같은 이질감을 들게 했다.
목을 덮을 정도로 길게 자란 머리는 너저분했고, 헐렁한 환자복은 초라했다. 그러나 부피가 줄었을지언정 툭 불거져 있는 뼈대는 여전히 단단했다.
게다가 저 눈빛.
찌꺼기 하나 없이 반질반질한 모양새가 무섭다. 섬뜩하리만치 깨끗한 면은 오히려 텅 빈 구덩이 같아서, 이연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깨어나자마자 사람을 포박부터 하는 본성.
그런 남자니 자신이 죽이려 했던 여자는 절대 잊지 않았겠지.
‘심지어 굴러떨어지기 직전까지 보던 얼굴이 난데!’
만약 그가 터무니없는 악의를 품는다면, 그 모든 분노가 이연에게 쏟아질 가능성도 있었다.
꿀꺽,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이연은 그런 자조적인 확신을 하면서도, 부디 권채우가 자신을 못 알아보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낯이 상당히 익은데.”
마주 본 그는 모든 것을 게워 낸 듯 완전한 공허로 채워져 있었다.
“권채우. 권채우.”
그가 이연의 말투를 따라 하듯 낮게 속닥였다.
“그건 높은 확률로 내 이름이겠죠.”
“…….”
“그럼 그쪽은 나한테 중요한 사람이에요?”
그녀의 표정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이상한 직감이었다. 아까부터 심장이 끝 모르고 뛰는 게 환희인지, 두려움인지 좀처럼 구분할 수 없었다.
“아니면, 죽여도 상관없는 사람일까요.”
권채우는 내내 숨겨 두었던 주사 바늘을 꺼내 그 위를 볼펜처럼 눌렀다 떼기를 반복했다. 엄지를 푹 찌르고 들어갔다 나온 촉이 재차 푹, 푹, 들어간다. 검붉은 핏방울이 진하게 흘러내렸다.
그 무기질적인 시선이 고기를 들춰 보는 도축업자 같아서. 겁을 한 움큼 집어먹은 그녀는 아무 말이나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 그렇게 말하면 이쪽이 섭섭합니다. 제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중요하고말고요……!”
이미 한계치를 넘은 긴장으로 인해 눈앞이 핑핑 돌았다.
“저는 권채우 씨랑 아주 상관이 많은 사람이에요! 생각보다 훨씬 더 지독하게 만났고…… 복잡하게 얽혀 있고…….”
달도 뜨지 않던 밤, 검은 양복들에게 끌려가 결국 사인을 하고 말았던 그 계약서를 떠올렸다.
“그게, 마음대로 끊어지지도 않아요.”
그때 차라리 법대로 하자고 허세라도 부려 볼 걸 그랬나? 그러면 이 포악한 식물인간은 받아 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읏……!”
권채우가 그녀의 턱을 한 손으로 붙들었다. 볼살이 얼얼할 정도로 뭉개지고 턱이 부서질 듯 아팠다. 그는 힘 조절을 전혀 하지 않았다.
“중요하다면서 왜 떨고 있어요?”
“……네?”
“혹시 손가락이라도 두엇 잘려서 팔려 왔어요?”
“…….”
“대가리는 백치고 몸은 병신인 새끼 좆 빨아 주러?”
서늘한 조소가 담긴 말에 이연은 한쪽 뺨 어딘가가 작게 경련하는 것 같았다.
“왜 기억나는 게 이딴 쓰레기 같은 말뿐일까.”
그가 혼란스러운 얼굴로 이마를 쓱 문질렀다. 그리고는 눈앞의 여자를 확 질식시킬 모양인지 농구공처럼 잡고 있던 이연의 얼굴에 더욱 힘을 주었다. 손등 위로 푸릇푸릇한 힘줄이 돋아났다.
“제발 소리 지르지 마요. 귀 아파.”
“으…….”
이연은 이를 악물었다. 얼굴뼈 전체로 찌릿한 통증이 퍼졌다.
이 남자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 고작 이름 세 글자만 적선 받듯 주워 왔을 뿐이다. 나이, 직업, 학력, 고향, 집안, 병력, 등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른다.
딱 하나.
어쩌면 사회 속에서 감추고 지냈을 권채우의 진짜 모습을 그날, 그 뒷산에서 보았다.
그렇다면―
당분간 꼼짝없이 데리고 있어야 할 이 남자로부터 안전해질 방법.
그것부터 떠올려야 했다.
살기 부적절한 땅일지라도 그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녀가 사랑하고 숭배하는 식물들의 방식처럼.
‘쓰러져도 누워서 살아가는 아까시나무 님. 바람 때문에 허리를 굽힌 단풍나무 님. 그건 사투였죠, 사투였어요. 저는 압니다. 이제야 알겠어요. 그러니 저도……!’
이연은 다급히 그의 손목을 붙들었다.
“권채우 씨, 권채우 씨!”
그래 봤자 간지럽기만 한 가냘픈 힘이다. 권채우가 손을 내리고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두 뺨에는 이미 붉은 손자국이 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