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3/158)

#2.

온갖 선과 기계가 연결되어 있는 침대 위.

남자는 죽은 듯 자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도무지 나이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끝이 미묘하게 올라간 눈매는 사납고, 날렵하게 떨어지는 코끝은 미끈한 맵시를 자랑했다.

그러나 어두운 산속에서도 재깍 눈에 띄었던 커다란 몸은 2년의 세월을 거치며 조금씩 깎이고 깎여 갔다. 다만, 널찍하고 각진 어깨는 타고난 골격이었는지 다른 곳의 근육이 빠질 때에도 변함이 없었다.

“휴우…….”

지난 2년을 생각하자 기다렸다는 듯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식물인간.

의식은 없으나, 호흡과 순환 따위의 식물성 운동만 하는 환자.

이연은 의자에 털썩 앉아 마른세수를 했다. 제아무리 나무의사라지만,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계약이었다.

식물성 활동만 하는 환자여도 그렇지. 이렇게나 버젓이 남자의 몸을 하고 있는데.

이 물건을 덥석 받아 버린 건 겁쟁이의 섣부른 굴복과 판단력 상실이 가져온 결과였다.

게다가 그가 어디 보통의 인격인가.

‘안 도망쳐도 되겠어?’

그녀는 정신이 나가 퍽, 퍽, 연장을 휘둘렀지만 남자는 요지부동이었다. 톱 끝에 핏자국이 묻어 나오는데도 그랬다.

당황한 이연은 여기서 꼼짝없이 생을 마감하겠구나, 하고 체념했지만―

그래도 살인자 얼굴은 제대로 보고 죽자고.

밤마다 그를 찾아가 귀신으로서 할 수 있는 온갖 못된 짓으로 괴롭혀 주자고. 필시 그의 죄책감이 되겠다고. 그녀는 몸을 돌려 남자를 쳐다보았다.

후드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그의 눈동자를 또렷이 목격한 순간.

남자가 힘을 푼 것 같단 착각이 들었다. 그는 무언가에 놀라 하면서도 이연의 시선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왜인지 그가 턱을 악다물었다.

―퍽!

그리고 일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누군가 남자의 뒤통수를 돌로 퍽, 퍽, 퍽 내리찧은 것이다. 공격한 이는 생매장을 당하던 사람으로, 온몸이 흙과 피로 찐득해져 있었다.

살인자는 욕설을 내뱉으며 어떻게든 눈을 부릅뜨려 했지만, 결국 쓰러져 산비탈을 굴렀다.

“권채우 씨.”

이연은 여전히 낯설고 꺼끌꺼끌한 이름을 입에 담아 보았다.

“제발……. 깨어나지 말아 주세요.”

조용히, 길게, 잡음 없이 살고 싶다. 그건 그녀가 도망치듯 집을 뛰쳐나온 이후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유일한 소망이었다.

평범하고 지루하게 사는 것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큰 특권인지, 이연은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어서.

“당신이 그나마 식물인간이라서 받아들인 거예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니까. 나는 그런 친구들이 비교적 수월하거든요.”

“…….”

“그러니까 부디, 깨지 말아 주세요.”

“…….”

그 순간, 남자의 손끝이 튕기듯 움직였다는 것을, 이연은 알지 못했다. 

* * *

“이연아, 이젠 꿈에서 깰 때가 됐다.”

화장대에 층층이 쌓인 화분이며, 크기별 색깔별로 꽂혀 있는 삽이 눈에 띄는 사무실 안.

계추자가 느닷없이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이연은 치료 일지를 작성하다 눈을 쨍하게 비추는 프로필 사진에 고개를 들었다.

“이게 뭐예요?”

“솔레 조경 회사 아들래미.”

이연은 눈동자만 굴려 사진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둥글게 모았다. 오, 하고 짧은 감탄사가 나왔으나 금세 시선을 거두었다. 담백하다 못해 무관심한 반응에 계추자는 미간을 구겼다.

“그게 끝이가?”

“과장님 이번 연애 상대는 손주뻘이에요?”

“나 말고, 니!”

“네?”

이연이 다시 말갛게 쳐다보자, 그녀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하면 열심히 한 기다. 이대로는 우리 못 버틴다.”

“과장님.”

이연이 양 눈썹에 힘을 주었다.

“벌써 큰 계약은 다 끊겼다. D 병원 애들 수완이 마, 보통이 아이다.”

이연은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재채기처럼 훅 터지려는 패배감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녀는 온 얼굴에 힘을 주었다.

D 대학교 농생물학과 부속 병원.

5층짜리 건물을 새로 짓고, 자체 연구실까지 산하에 뒀다는 대형 나무 병원.

그렇게 요란하게 화이도로 입성한 D 병원은 조경 회사, 묘목상, 토건 공사, 농업 회사 법인 등에 공격적인 접대를 하더니, 이윽고 그 거대한 인맥 풀을 한꺼번에 집어삼켰다.

그 여파에서 이연의 병원도 무사하지 못했다.

연 단위로 하던 계약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고, 옆집 할머니의 화단, 마을 회관의 건강 검진, 흥정해 보려는 의뢰인들의 전화만이 드문드문 울렸다.

“이래 가지곤 못 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그럼 우리도 여기 정리하고 D 병원에 취직이나 할까요?”

은근히 반감이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화이도의 개인 사업자들이 하나같이 대형 병원으로 기어 들어가는 일을 비꼬는 말이었다.

“하이고, 얌전히 취직만 하면 다행이제. 화장실 칸마다 욕이나 끄적이지 마라.”

추자는 네가 퍽이나 고분고분하겠다며 코웃음을 쳤다.

몇 년 전, 화이도에 골프장 개발 허가가 났던 적이 있다. 그때 환경운동가들이 포클레인 앞에 드러눕고 시위를 했다면, 이 소심한 나무의사는 똥 냄새가 진하게 나는 비료를 뭉쳐 굴착기에 맞추고 튀는 일을 했다.

그리고 다시 낄낄대며 특제 비료를 반죽하는 뒷모습을 보며 ‘밴댕이들의 꾀는 생각 이상으로 찝찝하구나.’는 것을 계추자는 깨달았다.

“니 잘하는 거 있제. 약아빠지게 꾀부리기.”

그녀가 재차 핸드폰 액정을 내밀었다.

“허면 뺏긴 계약은 도로 뺏어 와야지 않겠나.”

“……!”

추자의 음흉한 눈을 확인한 이연은 곧장 얼굴을 굳혔다. 남자 사진을 냅다 들이밀고 말하는 그녀의 꿍꿍이란 뻔했다.

“가서 차만 마시고 온나.”

“무, 무슨.”

이연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솔레 아들내미가 선 보려고 한국에 들어왔다데. 이게 기회가 아니면 뭐꼬. 이 계추자가 미리 대기표도 받아 놨다. 가서 통성명이라도 하고 온나.”

그러자 희게 질린 이연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의도가 너무 불순해요. 안 가요. 저 꽃뱀 아니에요!”

“이기 무슨 나무가 떡방아 찧는 소리고!”

계추자가 황당한 듯 목청을 높였다.

“그거 아나, 이연아. 니는 어차피 꽃뱀 할 그릇도, 인성도 안 된다. 유난 떨지 마라.”

이연의 얼굴이 화악 붉어졌다. 추자는 몸빼 바지만 입고 다니는 이연과 달리, 항상 전신을 완벽하게 치장했다. 그런 아름다운 추자에게 새삼스레 시선을 빼앗겼다.

“사랑이라면 팔뚝부터 긁는 가스나가 그걸 무슨 수로 반죽하는데.”

육십이 넘어서도 여전히 힐만 신고 다니는 그녀가 이내 우아하게 삿대질을 했다.

“그리고 똑띠 생각해라. 요즘 시대에 낭만이 어딨나. 얼굴에, 몸매에, 직업에, 집안에, 요즘은 개념에다가 소비 습관까지 따진다는 머슴아들이 천지 삐까리로 널렸는데. 너는 그깟 차 한 잔에도 검열을 하나!”

“아니, 뭐…….”

이연은 책상 모서리를 문지르며 말을 흐렸다.

“내가 호텔 키를 쥐여 준 것도 아이고!”

진짜 ‘아이고’를 외치며 곡해야 하는 사람은 외려 이쪽이었다. 이연은 계 과장의 자유분방한 연애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졌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근데, 그건 누구한테 들었어요?”

“뭐를.”

성조가 분명한 억양이 자못 도도하게 들린다.

“솔레 아들 귀국한 거요. 대기표는 또 뭐구요.”

그에 계추자는 의미심장하게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솔레 영감탱이가 귀띔해 줬다.”

“예? 회장님이요? 그분이 왜…….”

“왜기는. 한때 금마랑 붙어먹는 사이였으니까 그렇지.”

“추자 씨!”

제자리에서 펄떡 뛴 그녀는 저도 모르게 옛 호칭을 부르고 말았다.

추자의 화려한 연애담은 경험이 미천한 이연이 듣기에 다소 잔혹 동화 같은 면이 있었다.

생리대 차는 법도 혼자서 터득해야 했던 이연이 추자를 만난 때는 열일곱.

추자는 보다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것들을 가르쳐 주었지만, 십 대 소녀는 보수적이었다. 추자는 최선을 다했지만, 사랑을 독이라 여겼던 이연은 귀를 막았다.

“튼실한 배우자는 운명으로 찾는 기 아이고, 선견지명으로 머리 굴려서 고르는 기다.”

“…….”

“더 좋은 것들만 먹어도 짧은 인생에, 시대착오적으로 굴다가는 썩은 빵 조각만 남는다.”

추자가 설교에 심취해 있는 사이, 이연은 그 자리에서 재빨리 도망쳐 버렸다. 극강의 유교 걸은 날라리 할머니와 달라도 너무 달랐으므로.

“야 이 문디 가스나야, 너 그렇게 평생 독수공방할 거가!”

* * *

밤은 모든 소리를 덮는다.

어둠과 적막이 내려앉은 실내에 웬 그림자 하나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삐거덕, 삐거덕, 조심스럽게 이어지던 발소리는 이윽고 끝에 다다랐다.

뎅, 뎅, 뎅―

개업 기념으로 장만했던 기다란 괘종시계가 밤 열두 시를 알렸다.

밤마다 2층에 가는 건 이연의 일과가 돼 버린 지 오래였다.

처음엔 그저 한 번쯤 확인해 본다는 핑계였다. 살인자가 무력하게 누워 있는 꼴이 우습고, 을이 된 그녀의 처지를 상기하기 위해서.

그러나 이젠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그것’을 찾아갔다. 그녀의 일상이 내일도 무사하리라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나무를 치료하는 의사가, 식물인간의 불행을 바라며 손 놓고 구경만 하는 것이다.

“…….”

이내 이연은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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