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비에 걸린 겁니다.”
“……네?”
교장은 멍청히 입을 벌렸다. 눈앞의 나무의사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불신과 황당이 반반 섞여 있었다.
“지금 뭐라고…….”
“똥을 제대로 못 싸고 있어요.”
“…….”
교장은 다시 한번 벙찐 얼굴이 되었다.
그게 지금 말이 되는 거냐고, 젊은 처자의 기를 팍 꺾어 버리고 싶었으나, 거북이 등만 한 책가방을 메고 이쪽을 기웃거리는 초등학생들 때문에 애꿎은 얼굴만 시뻘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연은 나무줄기만 연신 쓰다듬었다.
“뭐든지 배변이 중요해요. 아시잖아요, 쾌변.”
“크흠…….”
교장이 언짢은 듯 기침을 했다. 하지만 입가를 가린 손바닥 아래로는 웃음이 비죽 새어 나왔다.
역시나 멍청하기 짝이 없는 의사다.
고작 나무 몇 그루 고치는데 작게는 몇십에서, 크게는 수천까지 든다. 그 돈을 쓰느니 그냥 베어 버리면 되는 것을, 굳이 꾸역꾸역 살려야 하는가?
그래서 교장은 시내의 큰 병원이 아닌, 만만하고 젊은 여자가 운영하는 허름한 업체에 연락을 했다.
치료 받은 나무를 다시 상하게 한 뒤, 이 웃기지도 않은 나무의사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서.
“이 나무, 우리 학교 교목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푸르른 상징이에요. 부디 꼭 좀 고쳐 주세요.”
교장이 눈썹을 팔자로 내리며 간곡히 부탁했다.
당연히 이 여자에게 치료 비용도 돌려받고 손해 배상도 받을 심산이었다. 어차피 베어 버릴 나무. 이런 식으로라도 인간에게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맡겨만 주세요.”
그때 제법 믿음직스러운 응답이 돌아왔다.
“치료 과정은 어렵지 않아요. 쉽게 말해서, 음식을 먹고 배설을 못 해서 변비에 걸린 거거든요.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도 못했네요.”
이연은 학교 운동장을 둘러보며 단아하게 뻗은 눈매를 슬쩍 찌푸렸다.
“배설이 잘 안 되면 꼭대기부터 마르는데, 여기에 있는 애들 대부분이 그래요.”
“그럼 치료는 어떻게…….”
교장은 떨떠름함을 감추고 은근슬쩍 이연을 훑어보았다.
너덜너덜한 몸빼 바지, 손톱에 낀 시커먼 흙, 은근히 풍겨 오는 진한 비료 냄새.
한눈에 확 들어오는 맑고 투명한 안색까지도 단번에 묻어 버리는 지저분함이었다. 특히나 목덜미까지 내려 묶은 머리카락은 축 처진 미역처럼 탄력이 없었다.
‘참 나, 젊은 여자가 이리도 볼품이 없어서야. 다 죽어 가는 고목이 코앞에도 있었군.’
게다가 나무를 바라볼 땐 부드럽던 눈이, 사람을 대할 땐 감쪽같이 메마른다. 그것이 비쩍 마른 몸과 어우러져 그녀를 한층 더 생기 없게 만들었다.
“교장 선생님.”
“예, 예.”
교장은 지레 제 발이 저려 극진히 대답했다.
“여기 흙 전부 마사토로 교체해야 해요.”
“그렇게나 많이요?”
“그게 원인이니까요. 흙 때문에 배수가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불현듯 그녀의 시선이 날카로워진다.
“돈 굳으셨네요?”
이연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교장의 주위를 느릿하게 돌기 시작했다.
“여기에 뭐 묻으셨어요?”
“예……?”
“최근에 학교 증축했다고 들었는데.”
“…….”
“타일?”
교장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남은 시멘트?”
“…….”
“시멘트 비닐 포대도 가능성이 있겠고.”
“크흠……!”
“아니면 전부 다?”
교장은 이마에 난 땀을 훔치며 시선을 피했다.
아니, 그걸 이 여자가 어떻게 아는 거야?
폐기물 처리비용을 아끼기 위해 버려야 할 자재를 땅에 묻었다. 그리고 그건 아무도 몰라야 할 일인데. 이 꾀죄죄한 나무의사가 단박에 꼬집고 들어온다.
“그런 것들이 물을 만나면 돌덩이처럼 굳어요. 흙이랑 엉키면 식물은 자랄 수가 없구요. 그러다 뿌리썩음병에 걸리는 거예요.”
“…….”
“어차피 파 보면 다 나오니까, 오늘 내로 견적서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연은 목에 묶고 있던 꽃무늬 손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순박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매는 미동도 없었다.
“물론, 시청에 고발부터 하구요.”
“……!”
그제야 교장은 허둥지둥 비굴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저, 저기. 선생님. 잠깐 제 말 좀 들어―”
“돈 굳었다고 좋아하셨죠?”
“…….”
“이젠 몇 배로 토해 내세요. 말씀드렸다시피, 인간이나 식물이나 배설이 참 중요해서.”
이연은 후련하게 뒤를 돌았다.
동시에, 그녀가 유일하게 두고 있는 직원의 잔소리가 등짝에 달라붙는 듯했다.
한숨을 내쉰 이연은 걸음을 멈추고 다시 교장에게 삐걱삐걱 걸어갔다. 넉살은 정말 쥐약이었지만, 무엇보다 병원 홍보가 우선임은 그녀도 동의하는 바였다.
“나무의 입이 되고 싶은 의사입니다.”
“…….”
“우리 친구들 살리는 걸 가장 잘하고, 때에 따라선 살초도 잘해요.”
선생님 같은 보호자를 살처분하는 걸 제일 좋아라 하지만요. 물론 그 말은 속으로만 되뇌었다. 하지만 교장을 어떤 식으로 귀찮게 해야 할지는 이미 구상을 마친 후였다.
사람의 욕심으로 나무 수십 그루에 피해를 입히고도 푸르른 상징이라 운운하다니. 이런 사람들이 꼭 잎사귀를 재떨이로 사용했다.
“저희 가문비 나무 병원, 자주 찾아 주세요.”
그녀가 억지로 싱긋, 웃어 보였다.
이연은 서쪽으로는 통영, 남쪽으로는 남해와 근접해 있는 화양시 근일면 화이도에 위치한 섬에서 작은 나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나무의사다.
낙후된 섬인 것 같아도, 의외로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며 바다와 식물, 그리고 바위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관광지였다.
“그 아저씨, 음흉하게 쳐다보기는…….”
사다리, 칼, 톱, 가위 등의 연장을 화장품 대신 챙겨 다니고, 기본적으로 나무도 잘 타야 하는 이 업계에서 이연을 향한 시선은 어디를 가나 똑같다.
수목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 보겠다고 만만한 여의사를 불러 기 싸움을 시도하는 의뢰인들이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일일이 화를 내기에, 이미 서른이 넘은 이연은 잔뼈가 굵어진 상태였다.
그렇게 에메랄드빛 바다를 끼고 스쿠터를 쌩쌩 운전해 달리고 있을 때.
띠리리. 띠리리.
이연은 귀에 꽂은 핸즈프리를 눌렀다.
“여보세요?”
―원장아, 5분 안에 안 오면 2층 문 딸 끼다.
직선으로 쭉 가던 스쿠터가 순간 휘청거렸다. 외화를 더빙하는 성우처럼 목소리는 우아한데 말투가 구수하다. 이연은 다급히 핸들을 되돌리며 헐레벌떡 그녀를 불렀다.
“과, 과장님, 잠깐만요!”
―내 확실히 들었다. 또 뭔가 소리가 났다!
“잘못 들으신 거예요. 빈방인데 무슨 소리가 나요.”
―틀림없구마!
이연은 애써 대수롭지 않은 척 반응했지만, 실제로는 부리나케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화이도의 청명한 풍경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미안하지만 이미 열쇠 수리공 불렀다.
“안 돼요!”
결국 본심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마땅한 변명을 생각하는 동안, 상대가 먼저 선수를 쳤다.
―수맥이 흘러서 막아 놨다는 거짓말은 집어치라. 고추 말린다고, 메주 쑨다는 말도 이젠 지겹다!
“그…….”
―네가 무슨 푸른 수염이가. 저 방만은 안 된다고 하게! 차라리 총각들을 차곡차곡 모아 뒀다 하면 이 계추자는 폭죽을 터트려 줄 낀데!
그 말에 턱이 빠질 듯 입이 벌어졌다.
올해로 예순이 된 계추자 과장은 이연을 도와 나무를 치료하는 엄연한 수목 치료사였다.
<가문비 나무 병원>은 32년차 솔로 소이연과 타고난 도화살로 결혼식을 다섯 번이나 했다는 계추자가 꾸려 나가는 곳이었다.
그리고 계 과장은 이연이 왕진을 나갈 때마다 온갖 이유를 대며 굳게 닫힌 2층의 문을 열고자 했다.
사실 계추자의 입장에선 서운할 법도 하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오래된 주택을 증축했는데, 한 번도 그 위를 구경하지 못했으니. 병원의 유일한 직원으로서 얼마나 심통이 났을까.
‘그래도 과장님, 2층은 진짜 안 된다구요……!’
그곳에 큰 비밀을 감춰 둔 지도 벌써 2년.
들켜서는 안 될 특이한 식물이 거기에 있었다.
* * *
고운 글씨체로 새겨진 나무판자.
가문비 나무 병원.
그러나 툭 치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삐뚜름하게 걸려 있던 그것은 역시나 부랴부랴 들어오는 이연에 의해 맥없이 떨어졌다.
일반 주택보다도 초라한 집은 때가 낀 아이보리색이었다. 하지만 도시적인 그레이 톤의 2층은 누가 봐도 이질적이어서, 마치 늙은 고양이가 매끈한 대리석을 메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사무실 겸 집으로 쓰는 1층을 지나 헐레벌떡 계단을 올라갔다.
“과장님!”
“에라이……!”
입맛을 다시고 있던 계추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마침 도어 록을 뜯을 참이었는지 열쇠 수리공은 연장까지 들고 있었다.
이연은 숨을 몰아쉬며 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그 징글징글한 모습에 계추자는 입술을 삐딱하게 휘었다.
“참말로 징하다, 징해.”
“허억…….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여긴 주인이 따로 있어서 저도 못 들어간다구. 그냥 비워 두고 있어요.”
반은 거짓이고, 반은 진짜였다.
“그런 가스나가 저기서 고추는 어떻게 말리고, 메주는 어떻게 쒔는데!”
“그, 그건…….”
“빈방 공기라도 맡게 해도!”
“환기가 안 돼서 해로워요.”
“내를 그리 못 믿나! 니가 금괴를 숨겼대도 내는 안 훔쳐 갈 낀데!”
아니요. 차라리 도둑맞으면 맘이라도 편하겠는데요……. 이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얼른 내려가란 손짓을 했다.
“알면 다쳐요, 과장님.”
“이 공갈쟁이 가스나! 고객 앞에서나 그렇게 입 좀 털어라.”
“아니, 진짠데…….”
이 무해하고 유순해 보이는 나무의사는 얼핏 보면 구슬려 먹기 좋을 것처럼 생겼다. 그러나 토목, 건축, 농업을 아우르는 사오십 대 중년 아저씨들을 계속 상대하다 보니 그녀의 인간 불신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원장아, 내는 아직 포기 안 했다.”
계추자가 엄포를 놓으며 한 발 물러서자 이연은 그제야 주르륵 주저앉았다.
이 웬수 같은 2층.
그녀는 기운이 다 빠진 얼굴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