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손에 들린 전동 톱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온몸이 굳고 말았다.
어두컴컴한 산속에서 발견한 시퍼런 안광. 사지를 찍어 누르는 듯한 살기에 발목이 잡혔다.
그러니까, 사람을 생매장하던 남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
“…….”
무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사이렌처럼 왱왱 울렸다.
‘살인자……?’
9시 뉴스에서나 볼 법한 단어가 무디게 뇌리를 스쳤으나, 두드러기처럼 올라온 소름은 하나하나 선연했다.
조용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였던 자신이 어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목격했을까.
‘그냥 평범한 날이었는데.’
병원에 출근하여 밀린 고지서를 읽고, 외과 수술을 마친 나무를 살피고, 한 달이 넘도록 치료비를 부치지 않은 의뢰인과 유선으로 실랑이를 벌였다.
게다가 밤이면 몰래 뒷산에 올라 노숙자처럼 방치된 나무들을 살피는 건 나무의사 소이연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런 보통의 날이었을 뿐이다.
특히나 이 산은 산주가 분명히 존재하는 개인의 사유지다. 그런데도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아 귀신의 봉두난발처럼 보이는 나뭇가지들이 수두룩했다.
버려진 폐가에 사는 나무들이 그러하듯 이곳도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애들이 많아 마음이 쓰이던 곳이었는데.
“살, 살려 줘……!”
땅 밑에 파묻힌 이가 뭉개진 발음으로 외쳤다. 그러나 포악하게 쌓여 가는 흙에 가로막힌 비명은 고작 진동에서 그쳤다.
키가 장대처럼 큰 남자는 번들거리는 검은색 비닐 우비를 입고 있었다. 한두 번 해 본 삽질이 아닌지 흙을 파서 구덩이에 뿌리는 폼이 상당히 능숙했다.
“제, 제발……! 다 말할게, 다……!”
봉긋하게 올라온 흙을 뚫고 팔이 튀어나왔다. 필사적으로 바닥을 긁는 손짓이 다급해 보였다.
그러나 공황 상태에 빠져 허우적대는 누군가와 달리, 남자는 단조의 음을 느릿하게 흥얼거렸다.
“틀렸어, 여기선 죽여 달라고 해야지.”
따분함이 그림자처럼 길게 늘어진다.
“흐으……!”
“공연은 이제 시작인데.”
남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신발 앞코로 상대의 손가락을 툭툭 집어넣었다. 그리고 망치질하듯 그 위를 가차 없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아악!!”
표정은 평연하기 그지없는데 발길질은 미친놈처럼 사나웠다. 구부러진 손가락은 그대로 와그작, 작살이 났다.
“그아악……!”
흙 알갱이를 머금은 비명이 땅 밑에서 웅웅거렸다.
“네가 이럴수록 나만 더 신나는 거 몰라?”
“으……!”
“너처럼 멍청하고 질긴 새끼들이 가끔씩 튀어나와 주니까, 내가 이 짓을 못 끊어.”
남자는 밤에도 환히 빛난다는 자작나무를 닮았다. 그만큼 희고 매끈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도무지 산 사람의 혈색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칼날에 얼굴을 비춰 보는 그런 섬뜩함만이 있었다.
“윽……, 끄윽……!”
흙이 들썩거리며 정수리가 드러나자 남자는 담배를 비벼 끄듯 그것을 꾹꾹 눌렀다.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는 우비 후드로 인해 유일하게 보이는 건 길게 찢어진 입술뿐이었다.
살아 보겠다고, 나름의 반항을 하던 움직임이 조금씩 무뎌지자 소이연은 한 가지 생각밖엔 할 수 없었다.
‘살인 현장이잖아!’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마른침이 꿀꺽 넘어가고 손에서 땀이 났다.
그녀는 핸드폰을 등 뒤에 감추고 112를 누르기 시작했다. 오로지 직감에 의지해 액정을 더듬더듬 찾아 눌렀다.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이 쏠려 있는 그때.
파삭, 나뭇가지 하나가 밟혔다.
어쩌면 아주 사소할지 모르는 기척.
그러나 요란한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남자가, 부엉이 울음에 넉넉히 가려졌을 소리 하나에 별안간 삽질을 멈추었다.
“…….”
그리고 의도적으로 삽을 놓친 척 떨어뜨린다.
소이연은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그 찰나를 보았다. 기울어지는 삽을 따라 시선이 움직였고, 동시에 숨이 멎었다.
“……!”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그곳엔 움직이지 않는 피투성이의 남자가 축 늘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옷은 짙은 색인데 팔 부분만 하얬다. 그건 본래 하얀색의 와이셔츠였다는 뜻이다. 전부 피로 물든.
“씨발, 이건 또 뭘까.”
그녀가 사랑하던 나무숲에서 사냥 중인 짐승과 마주한 순간.
“안 도망쳐도 되겠어?”
그 나직한 중얼거림은 곧 등을 떠미는 총성이 되었다.
소이연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땅은 질퍽질퍽했다. 푹푹 빠지는 신발이 거추장스러웠지만 조금이라도 머뭇거렸다간 머리채가 잡힐 것 같았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거칠게 두방망이질을 했다. 목구멍에선 피 맛이 날 정도로 헐떡헐떡 숨이 넘어갔다.
―네, 화양 경찰서입니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구세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 여보세요?”
―네, 천천히 말씀하세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가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지금 누, 누가 사람을 땅에 파묻고 있는데요……! 빨리 와 주세요! 들켰어요!”
―전화 주신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기계처럼 잘 훈련이 된 목소리는 높낮이가 없었다.
“소이연인데요! 저 진짜 죽습니다, 선생님!”
―일단 침착하시고, 거기 위치가 어디죠?
“후욱……, 후욱……. 개잎갈나무가 수십 그루 모여 있어요! 몸에 커다랗게 구멍 난 느릅나무도 보이는데, 지금 막 그 지점 지났습니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최선을 다해 답했다.
―하아…….
동시에 경찰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말하면 몰라요. 근처에 건물 같은 건 없어요?
이연은 제 실수를 깨닫고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가문비 나무 병원이요! 그 뒷산이에요!”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거짓말이면 벌금 내셔야 되고요.
“빨리요!”
마침내 산 입구로 이어지는 내리막길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컥……!”
실처럼 얇은 와이어가 그녀의 목을 잡아당겼다. 살을 파먹고 팽팽하게 조여드는 억센 힘에 토기가 훅 올라왔다. 목을 마구 긁어도 봤으나 어찌나 얇은 줄인지 손톱에 걸리지도 않았다.
“야, 너 이거 흘리고 갔더라.”
숨통이 막힌 상황에서도 솜털이 일시에 비죽 섰다. 무엇보다 귓가에 닿는 숨소리가 소름 끼쳤다.
그가 조롱하듯 그녀에게 물건을 쥐여 주었다. 그러자 내내 잊고 있던 묵직한 무게가 아귀에 딱 맞게 들어왔다. 벌써 몇 년째 그녀와 손발을 맞추고 있는 톱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있는 힘껏 남자를 후려쳤다.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타격감이 들었다. 그녀는 퍽, 퍽, 연달아 연장을 휘둘렀다. 이미 공포에 잠식된 소이연은 차마 뒤를 돌아보지도 못했다. 뒤늦게 스위치가 눌린 전동 톱만이 굉음을 내며 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비밀스러운 환자.
2년째 누워 있는 식물인간과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