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남자는 셋
지이이이잉! 지이이잉!
“으허어억!”
귓가에 닿는 진동 소리에 세아가 자지러질 듯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흐릿한 눈에 언뜻 비친 둥근 모서리에 소름이 끼쳤다.
“억!”
저도 모르게 발버둥 치던 세아가 허리를 붙잡고 엎어졌다. 흠씬 두드려 맞은 몸 같았다. 거대한 트럭이 뼈마디를 작신작신 밟고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의사는 아니지만 진단은 정확했다.
이건…… 근육통이었다.
운동을 안 하던 근육들이 갑작스러운 긴장에 놀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시끄러운 진동 소리에 허리를 문지르던 세아의 고개가 돌아갔다. 다행스럽게도 핸드폰이었다. 누가 갖다 뒀는지 그녀의 것이었다.
“여보세…….”
「너 지금 어디야!」
발신인인 친구가 귀가 따갑도록 비명을 질렀다. 세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총알 같은 목소리가 다다다 날아와 박혔다.
「목소리는 또 왜 그래? 카톡으로 보낸 사진은 뭐고? 그리고 왜 연락은 이제야 받아?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무슨 생각까지 했는지 다 말해주려면 하루로도 벅차! 경찰서까지 가려고 옷 입고 있던 참이었다고! 황금 같은 토요일에…….」
“으응? 사진이라니?”
한결과 한겸의 운전면허증 사진을 말한다는 걸 알았지만 일단 시치미를 떼었다.
“나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필름이 끊겼나 봐.”
일명 술에 취해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요 작전이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친구가 무슨 얼굴을 할지 두려웠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쉽게 할 수 있는 고백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너…….」
“진짜 미안해…….”
「해장은 했어? 목소리는 왜 그래?」
“글쎄? 감기려나? 이제 챙겨 먹으려고. 혜원아, 내가 정말 미안…….”
「됐어! 또 이랬다면 봐! 밥이나 챙겨 먹어!」
혜원은 제 할 말만 다다다 쏘아붙이고 끊어버렸다.
“으으…….”
세아는 허리를 손으로 통통 두드리며 엎드렸다. 친구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이 몸뚱어리를 어떻게 하는 게 먼저였다.
목은 다 쉬어 터지고 온몸에는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섹스 한 번…… 은 아니고 여러 번에 이 꼴이라니. 열락의 밤이 대단하긴 대단했다.
“아!”
그와중에도 아래가 멀쩡한지 걱정이 되어 몸을 일으켰다. 침대 헤드에 조심조심 등을 기대고 몸을 살피는데 옷을 입고 있었다.
“…….”
관계를 나누고 기절하듯 잠들었는데 누가 옷을 입혀놓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다지 찝찝하지도 않은 걸 보면 몸도 잘 씻겨놓은 모양이었다. 누가 씻기고 입히는데 깜빡 깨지도 않고 몰랐다는 게 실로 놀라웠다.
“이걸 매너가 좋다고 해야 할지…… 독특하다고 해야 할지?”
입고 있는 건 커다란 남자의 티셔츠였다. 따로 속옷을 입힐 순 없었는지 아래는 휑했다. 다리를 살짝 벌려 아래를 살피는데 안에 고여 있던 유백색 액체가 질척하게 흘러나왔다.
“응?”
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을 더 살폈다. 음핵, 음순, 음모까지. 아픈 것과는 별개로 어디 하나 해를 당하지 않고 무탈하게 잘 달라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 거미줄처럼 끈끈한 덩어리는 뭐란 말인가. 어제 분명 셋 다 콘돔을 끼는 걸 봤는데.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 부분은 자기들끼리 잘 처신하기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뭘까?
“아무리 봐도 꼭 정액 같은…….”
“연고입니다.”
“……으아아악!”
문득 들리는 목소리에 세아가 한발 늦게 반응했다. 그러고 보니 문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이 방의 본 주인은 도하였다. 안쪽으로 어색하게 걸어오는 방의 주인을 세아도 어색하게 바라봤다.
도하는 그녀의 비명보다 거북이만큼이나 느린 반응에 더 놀란 것 같았다. 묘한 표정으로 세아를 살피던 그가 다가와 동그란 약통 하나를 건네줬다. 약국에서 파는 것은 아니었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것이었다.
“안쪽이 조금 부은 것 같아서 아침에 약을 처방받아왔습니다.”
“누가요……?”
“한결이가.”
세아는 은테 안경이 서늘한 이 집의 막내를 떠올렸다. 차분하고 싸늘한 어투로 뭐라고 말하며 약을 받아왔는지 심히 궁금했지만 묻고 싶지는 않았다. 세아는 수치스러움을 대신해준 한결에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끼며 그 약통을 챙겼다.
“고, 고맙습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네?”
“…….”
“아…… 약이 고맙다고요.”
도하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세아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는 것 같았다. 도움을 받았고 감사 인사를 했다. 이 쉬운 상황 중 대체 어느 부분에서 의아함을 느끼는 건지 세아가 더 묻고 싶었다.
“이 방 욕실을 쓰시면 됩니다.”
“아, 고맙…… 네…….”
습관적으로 나가려던 인사가 줄행랑쳤다. 도하의 오묘한 표정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가녀린 생물체를 보는 눈이었다. 어제 첫 경험을 했다는 31살의 남자에게서 받는 그 오묘한 시선에 세아는 떨떠름해졌다.
“편히 씻으시면 됩니다.”
도하는 별말 하지 않고 문을 닫고 나갔다.
혼자 남겨진 세아는 멍하니 서 있다가 방에 연결된 욕실로 들어갔다.
“미리 물을 받아둔 건가?”
심지어 온도도 적당했다. 언제 일어날 줄 알고 온도를 맞춰놨을까 고민하던 세아는 도하의 셔츠 소매가 한쪽만 걷어져 있던 걸 기억해냈다.
그가 굳이 방문을 열어둔 것도,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살금살금 방에 들어온 것도, 바늘에 엮인 실처럼 모든 실마리가 한 번에 풀렸다.
그는 틈틈이 이 방에 들러 욕조 온수의 온도를 맞춰놓았을 것이다. 세아가 잠에서 깨지 않게 조심해가며.
원나잇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일반적으로 어떻게 아침을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가 보통일 것 같지는 않았다.
“……황송한 수준인데.”
소시민 세아는 대접받는 기분이 낯설었다. 고급 레스토랑의 서비스라면 그러려니 했을 테지만 상대는 이도하였다.
딱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위압감과 이 집을 생각하면 그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상류층인지 짐작이 갔다. 아마 길거리에서 만났더라도 알았을 것이다. 그 눈빛이 범인의 것은 아니었으니까.
낯선 호의였지만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 몸도 안 좋았고 저쪽도 당장 쫓아낼 것 같진 않으니 욕실은 좀 느긋하게 써도 될 것 같았다.
세아의 짐작처럼 그녀가 아무리 오래 씻어도 누구 하나 문 두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편안하게 씻고 나왔다.
“어?”
욕실 앞에는 잘 개켜놓은 옷이 있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묻어나는 방금 사 온 새 옷.
태그는 미리 제거했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구겨지지 않게 넣은 포장지는 그대로였다. 연고를 사며 옷도 새 거로 사 온 모양이었다. 세아는 보통의 체격이니 사이즈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
“이거 입어도 되나?”
태그도 뗐으니 반품은 어려울 것 같았다. 세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어제 입은 찝찝한 옷을 입긴 싫어서 그냥 입기로 했다. 돈이야 따로 물어 주면 되는 거니까.
“이 사람들 엄청 섬세하네…….”
재주가 좋아도 속옷 사이즈는 가늠하기 어려웠는지 와이어가 없는 브라렛이 들어 있었다. 완전히 딱 맞지는 않아도 그것은 얼추 입을 수 있는 종류여서 불편하지는 않았다. 작은 것보다는 큰 게 낫다고 생각했는지 아래 속옷도 조금 넉넉한 사이즈였다.
“풉! 아하하하!”
혼자 옷을 입던 세아는 쭈그려 앉아 웃어버렸다.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 이걸 사 왔을 그들을 생각하자 웃기고 신기했다.
이런 작은 호의로 경계를 푸는 것도 웃기지만 어제부터 보아왔다. 적어도 세아에게만큼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다. 세아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억하심정이 있어 그녀의 인생을 망칠 리도 없었다. 스캔들이 터지면 그들이 더 잃을 게 많아 보였으니까.
세아는 후련해진 얼굴로 이별을 준비했다.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옷값을 치른 뒤 이 집을 나가는 게 그녀의 계획이었다.
그래. 계획은 그랬다.
그런데…… 뭘까? 이 황홀하고도 아름다운 세상은?
미남이 하나도 둘도 아닌 셋이라네. 하얀 셔츠를 입은 채 주방에서 요리하는 미남이 하나.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종이 신문을 읽는 아날로그 미남이 하나. 청량미를 폴폴 풍기며 한 마리의 대형견처럼 달려오는 미남이 하나.
오…… 정말 좋군요.
“그 옷 내가 골랐는데 마음에 들어요, 누나?”
욕조는 도하가, 약은 한결이, 그리고 옷은 한겸이었다.
그런데 식사 담당도 도하면 이건 좀 불공평해지는 거 아닐까?
세아는 하얀 셔츠를 입고 프라이팬을 든 도하를 멍하니 바라봤다. 살짝 소매를 걷은 셔츠 밖으로 드러난 근육이 압권이었다.
“누나?”
“아…… 응, 예쁘네. 그런데 이거 얼마…….”
“죽이랑 빵 중 뭐가 더 좋으십니까?”
프라이팬을 든 도하가 고개만 뒤로 돌려 세아의 질문을 능숙히 끊어냈다. 세아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아…… 저는 한식을 더 좋아하기는…… 하는데?”
뭐지, 이거? 말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입고 있는 옷도 외출용이라기에는 좀 이상했다. 입고 나가도 이상할 건 없지만 티 한 장과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는 집에서 입고 뒹굴어도 될 정도로 편했던 것이다. 꼭,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처럼.
이거 좀 이상한…….
“누나 자리는 여기예요. 내가 방석도 놔뒀어요.”
그때 한겸이 세아의 어깨를 냉큼 붙잡고 자리를 안내했다. 고급 원목 의자에 덩그러니 놓인 도넛 방석이 의미심장했다.
‘저거, 치질 환자에게 쓰이는 거 아닌가?’
세아는 몹시 찝찝했지만 안쪽이 벌어져 아픈 건 사실이어서 사양하지 않았다.
‘헉! 앉아버렸다!’
그리고 또 한발 뒤늦게 아무 생각 없이 앉았음을 자각했다. 세아는 좀 그런 성격이었다. 한번 날을 세우면 두꺼운 벽처럼 아무 말도 안 통하지만 반대로 경계가 좀 풀리면 허술했다.
그리고 그녀가 상대하기에는 적들이 너무나 막강하다.
“송이버섯 죽인데 괜찮으십니까?”
세아가 머뭇거리는 사이 도하가 그녀의 앞에 죽 그릇을 내려놨다. 뽀얀 죽 위에 동동 떠 오른 버섯에서 향긋한 송이 향과 고소한 기름 냄새가 올라왔다. 밤사이의 운동으로 바짝 말라붙은 뱃가죽이 용두질 치며 허기를 호소했다.
꼬르르륵.
슬쩍 주방으로 들어서던 한결이 멈칫했다. 도하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권했다.
“일단 먹고 얘기하죠.”
우리 사이에 얘기할 게 뭐가 있다는……. 틀렸다. 송이버섯 죽이 너무도 탐스러웠다.
“그럴까요……?”
세아는 먹을 것에 넘어가는 참된 성인이었다.
* * *
죽은 맛있었다. 목은 따갑고 배 속은 얼얼했지만 후루룩 넘어가는 죽을 먹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죽을 한 그릇 비우고 나니 식욕이 돋았다.
“더 드시겠습니까?”
“왜 다들 안 드시고…… 저만 먹는 기분이죠?”
“저희는 밖에서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세아는 12시가 넘어 일어났다. 그들이 아침 겸 점심을 먼저 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각이었다. 또한 준다는데 거절할 것까지는 없어서 세아는 예쁘게 담긴 계란 한 조각을 잘라 먹었다.
빠득!
“아!”
입에서 뭐가 씹혔다. 잇새에서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감각에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괜찮으십니까?”
“삼촌! 물도!”
“이것도 편하게 쓰세요.”
아린 턱에서 손을 살짝 떼어내자 테이블 위에 곱게 놓인 손수건 한 장과 물 한 컵이 보였다.
빠르기도 하지. 세아는 세 남자의 행동력에 조금 놀라며 물을 받아 삼켰다. 입안의 것을 뱉어내기에는 손수건의 질감이 너무 고급스러웠다. 그러나 한결의 눈치가 보여 젖은 입가를 닦는 데 사용하긴 했다.
“괜찮아요. 계란 껍질이라도 씹었나 봐요.”
“…….”
대수롭지 않은 말에 기묘한 침묵이 찾아왔다. 쌍둥이가 두 눈을 들어 그들의 삼촌을 흘긋 바라봤다.
“……흔한 일이잖아요? 저도 라면 끓일 때 종종 실수하는걸요. 특히 냄비에 바로 으깰 때 힘 조절을 잘못하면 하나씩 빠지기도 하고요.”
“더 있을지 모르니 계란은 안 되겠습니다. 다른 걸 드세요.”
도하가 예쁘게 담은 계란 접시를 치워냈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그의 말대로 껍질을 계속 씹을 수도 있으니 다른 걸 먹기로 했다. 세아는 소시지 하나를 집어 먹었다.
“으음…….”
소시지에서 괴상한 맛이 났다. 일단 짰다. 그리고 시큼했다. 혹시 소시지가 상한 건 아닐까 의심스러워졌다.
“…….”
눈치는 빠른 도하가 커다란 손을 뻗어 또 슬쩍 소시지를 빼냈다.
“플레이팅이 완벽해서 안심했더니…….”
“거봐요, 삼촌. 제가 그냥 다 사자고 했잖아요.”
한결과 한겸과 사이좋게 도하를 나무랐다.
“설마, 처음이세요?”
“전문적인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이 요리가 처음이라는 거죠?”
“예.”
이 남자는 처음인 게 왜 이렇게 많은지. 세아는 그의 첫날밤도 모자라 첫 요리도 삼켜버렸다.
“조금 궁금한데…… 소시지는 어떻게 조리하신 거예요?”
“합성첨가물을 빼기 위해 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후라이팬에 조리했습니다.”
“따로 뭐 넣은 건 없고요?”
“……식초랑 소금을 약간씩.”
“식초랑…… 소금이요?”
흥! 어디선가 콧방귀 끼는 소리가 들렸다.
팔짱을 턱 낀 한결이 턱을 오만하게 치켜들며 비죽 웃었다.
“다 아니라고 했는데 삼촌이 물 끓을 때는 식초 넣고 맛이 밍밍할 것 같다고 구울 때는 소금을 넣었다니까요? 차라리 설탕이 낫다고 했는데.”
설탕도 아니거든?
세아는 살짝 황당해졌다. 뭐든 완벽해 보이는 남자에게 요리라는 허점이 있을 줄이야.
“아니. 그건 아무래도 좋은데…… 지금 저를 모르모트로 쓰신 건가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집에 또 낯선 사람이 오면 당황스러워하실까 봐…… 다음부터는 데우기만 하면 되는 요리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요. 다음부터는…… 네? 다음…… 이라니요? 우리에게 다음은, 없는 것 같은데요?”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지만 그 직전에 제동이 걸렸다.
“안 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도하가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 이유 자체를 배제하는 얼굴에 세아는 고개를 가로저을 뻔했다.
세아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이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면 난감하다는 정도?
“어…… 세간의 눈이…….”
“그런 문제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정상적인 관계로 보이기를 원한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 외에 또 다른 문제는 없는 겁니까?”
“다른 문제…… 아니, 이걸 왜 생각해야 하죠? 저는 그냥 마음 편히 오늘로 끝내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즐기기만 한다고 해도?”
‘즐기기만? 생각해보면 꽤 좋았던 것 같기는 한데……. 아니지. 혹사당한 걸 잊었어? 지금도 온몸이 다 아픈데. 그래도 몇 번 더 만나는 것쯤은 괜찮지 않을까?’
빙글빙글 돌아가는 눈동자에 도하가 지그시 눈을 맞췄다. 사냥감을 안심시킨 뒤 잡아채는 날짐승의 것이었다.
“셋 다…… 요?”
“원하시는 대로.”
허락의 뉘앙스를 풍겼는지 내리꽂히는 시선이 따가웠다. 똑같이 탐욕스러운 시커먼 눈동자 세 쌍.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내기 힘들어서 부담스럽고 위험했다. 그만큼 아찔하다고 해도.
“좀 힘들긴 했는데…… 그리고 셋은 저한테 과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랬군요.”
도하는 동의한다는 듯 차분히 속삭였으나 직감은 그가 몹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잡아먹을 것 같은 눈이었다. 예의와 올바름으로 포장하지만 갈기갈기 찢어지든 발가벗겨 내던져지든 상관없이 입으로 삼키고 자기 배 속으로 밀어 넣을 탐욕자의 것.
무저갱 같은 시선을 피해 주춤거리며 밀려나던 몸이 의자 등받이를 밀었다. 끼익. 바닥을 긁는 소리와 함께 의자가 덜컹거렸다.
손을 뻗은 남자가 셋. 그 중에서 유의미했던 것도 셋. 셋이 동시에 뒤로 넘어가려는 의자를 멈췄다.
“……고, 고맙습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세아의 눈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뒤로 넘어질 뻔했던 것도 놀라운데 웬 육식 짐승 같은 시커먼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 기분이 이상했다. 하나같이 다 멀대 만큼 큰 데다가 체격도 상당해서 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위협이라도 당하는 줄 알 것이다. 실제로는 도와준 것임에도.
“누나, 어제 싫었어요?”
의자 등받이에 손을 걸치고 기댄 한겸이 몸을 낮춰 속삭였다. 싱그럽게 올라가는 눈꼬리가 유혹을 한가득 달고 있었다. 짙어지는 페로몬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안경만 낀 똑같은 얼굴이 서늘하게 빛났다.
“형이 상스러워서 싫었다면 저건 빼고 저희 셋만 지내도 됩니다.”
“서한결!”
“아니…… 입이 걸기는 셋 다 마찬가지던데…….”
“봐!”
“좋아할 게 아니라고. 멍청아.”
마주 보는 형제 사이로 불꽃이 번졌다. 그래. 솔직히 한 번쯤은 삼각관계를 꿈꿔본 적 있었다.
‘나를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두 남자가 형제일 줄은 몰랐지. 그것도 쌍둥이…….’
세아가 입을 멍하니 벌렸다. 그간 인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런 치정극은 또 처음이었다.
“네가 어제, 잠든 세아에게 좆질하려던 걸 기억하는 거라고.”
“뭐? 내가 언제! 누나, 오해하지 말아요. 나는 그냥 넣고 싶다고만 한 거예요!”
“그걸 본 삼촌이 점잖게 하지 말라고 타일렀…….”
“점잖게는 무슨! 당장 안 꺼지면 자기가 식혀준다고 했다니까요? 그래서 조카가 불쌍하지도 않으냐고 물었더니 글쎄 대뜸 자기가 잘라준다고 나서서는……. 저 진짜 불알 터지는 줄 알았어요. 자세히 보면 홀쭉하게…….”
“둘 다 조용히 해.”
조카 하나를 고자로 만들 뻔한 남자가 말 한마디로 형제 싸움을 굴복시켰다.
머리 위에서 다투던 두 거구가 사라지자 갑자기 시야가 탁 트였다. 조카들이 싸우든 말든 우아하게 앉아있던 도하가 몸을 앞으로 내밀어 세아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단어 사용의 문제라면 충분히 조율할 수 있으니 편히 말씀하시면 됩니다. 원하지 않는 단어 같은 것들.”
“어…….”
곧장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기는 했다. 입으로 쉽게 말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 여성의 생식기를 그러니까…….”
“남성의 생식기를 자지라고 하는데 여성의 생식기를 보지라고 하는 게 뭐가 문제예요, 누나?”
셋 중 가장 저 단어를 많이 사용했던 한겸이 예쁘게 눈웃음치며 동의를 구했다.
세아의 얼굴을 점점 더 발갛게 달아올랐다. 저들이 그 단어로 그녀의 수치심을 자극하며 무슨 짓을 했는지 낱낱이 떠올랐다. 간밤의 열락에 손과 발끝이 떨렸다.
아. 확실히 쉽게 포기하기 힘든 쾌락이기는 했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혹은 낙원을 삼킨 악마의 늪이거나.
“그런 게 문제라면 대체어를 정하시면 됩니다.”
한 손으로 한겸을 밀어낸 도하가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는 젤리로 하겠습니다.”
“제, 젤…… 뭐요?”
“앞으로는 유세아씨의 음부를 젤리로 지칭하겠다는 말입니다. 세아 씨의 의사를 반영해서.”
남자의 분위기 때문에 꼭 연봉 협상 테이블에 앉은 기분인데 들리는 말이 저런 거였다. 젤리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벅찬데 한겸이 활짝 웃으며 말을 보탰다.
“난 푸딩! 누나랑 닮았어요.”
“둘 다 식상하군요. 저는…….”
셋 중 가장 상식인은 한결이었는지 그가 싸늘한 눈빛으로 두 남자를 비난했다. 세아는 바보처럼 살짝 기대하고 말았다.
“딸기로 하겠습니다.”
“네가 제일 식상하잖아! 게다가 왜 다 먹을 건데요? 제가 먹거리예요?”
참지 못한 세아가 버럭 외치며 일어서자 도하의 눈동자가 그녀를 좇는다. 지고지순하여 결코 놓치는 법이 없는 사냥개의 것이었다.
“화내지 말아요. 먹은 건 누나잖아. 우리가 삼켜졌지.”
한겸이 세아의 어깨를 부드럽게 어르며 속삭였다. 손이 워낙 커서 어깨를 다 덮고 쇄골까지 밀려난 손가락이 도드라진 뼈를 야하게 지분거렸다.
남녀의 결합을 빗댄 말에 세아는 얼굴이 홧홧해졌다. 저렇게 굴 때면 긴장감과 믿을 수 없는 흥분으로 아래가 뜨거웠다. 어젯밤에 저것이 얼마나 단단하고 굵게 몸을 휘저었는지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세아는 무릎 안쪽을 꾹 조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달리 원하시는 게 있다면 뭐든 괜찮습니다.”
도하가 그러지 말고 편하게 있으라는 듯 세아의 손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아이를 잠재우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따스하고 깊었다.
“그냥…… ‘여기’라든가…… 그런 게 낫지 않아요?”
“원하시는 대로.”
“아. 그럼 그거로 해줄래요?”
“물론입니다.”
반쯤 고민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그쪽으로 기울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세아는 잘 부탁한다는 도하의 손을 붙잡고 흔들리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이상한데…… 이미 늪에 빠진 듯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발밑에 철퍽 달라붙은 덩어리가 질기고 끈끈했다. 그렇다고 시커먼 건 또 아니었다. 이미 달라붙은 게 있어서인지 마음이 자꾸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쪽으로 흐른다.
사실 한 번으로 끝내기에는 그날의 쾌락이 너무 강렬하긴 했다. 나이가 더 들고 안정을 추구하게 되면 이런 거, 다시는 못할 테니까.
“그만두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죠?”
“그만두시면 됩니다.”
“아…….”
“잡을 수 없다면 그뿐입니다.”
당신은 언제든지 발을 뺄 수 있다.
진중한 눈빛이 질릴 정도로 강렬해서 사람을 믿게 했다. 자기가 한 말을 저버릴 사람으로는 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거라면…… 몇 번쯤은 더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몇 번이라는 단서를 붙였으나 결국 긍정의 선에서 빗나가지는 않았다. 도하가 잘 생각했다는 것처럼 보드라운 눈길을 보냈다.
“짐승도 강제로는 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짐승보다 더 짐승 같은 눈을 예의 바른 겉가죽으로 덮었다. 알아보기 어려운 은밀한 위장에 협상의 추는 다시 또 그에게로 기울었다.
넷 중 오로지 세아만 몰랐다. 도하가 협상학을 부전공했으며 굉장한 달변가라는 사실을.
말이란 본디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었다.
파수꾼 몇을 가뿐히 쓰러트린 혀에는 독과 꿀이 반분 나뉘어 있었다.
* * *
세아의 회사는 주말에 무조건 쉬었다. 금요일 퇴근하면 토, 일을 연달아 쉴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녀가 금요일을 기다리는 건 그래서였고 소소한 일탈 행위를 즐기던 것도 그때였다.
하여 도하는 일주일을 제안했다. 다음 주 금요일까지 그들과 만남을 지속할지 말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세아의 손에는 그들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카드 키가 주어졌다. 그 키를 찍고 그들이 짜놓은 촘촘한 그물에 몸을 처넣을지 말지는 그녀의 선택이었다.
가지 않겠다면 카드 키를 택배로 돌려보내 주기로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편의점 택배 기계를 눈으로 훑었다. 그러나 그 키가 종이 상자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금요일’의 의미가 강렬해졌다. 그날의 지독한 쾌락과 세 사람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뜨거운 배덕감을 버릴 수가 없었다. 떠올리면 입가에 침이 고였고 내장에 불꽃이 번졌다. 가장 깊숙한 안쪽까지 그날을 되새기고 싶다는 열망이 이성을 침식하고 몸을 무너트렸다.
하고 싶다. 또 하고 싶었다.
세아는 결국 그 카드 키를 돌려주지 않았다.
「금요일에 갈게요.」
일주일간 고심한 단문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전송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돌아 그들과 약속한 두 번째 금요일. 세아는 그날 묘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다시 그 지독한 밤을 보내게 되었다는 두려움과 흥분으로.
약속한 시각이 가까워지자 하지 않던 실수도 했다. 필요한 서류를 파쇄기에 넣어버린다거나 회의 때 다른 생각을 하다 들켰다. 상사에게 혼이 나고 동료 직원에게는 걱정을 샀지만 그것이 그녀의 기분을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시각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띠. 띠리리리!
세아는 펜트하우스로 올라가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밖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집에서 보는 게 사람들 눈에 안 띌 것 같아서 그들이 제공한 출입키를 거절하지 않았다. 딱딱한 사각형의 플라스틱 카드에 열과 땀이 습하게 배었다.
「22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적빛 신호에 세아의 몸이 움찔 떨렸다. 심장은 아까부터 쿵쿵 뛰었고 아랫배가 찌릿거려 안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아래로 뜨거운 물을 한 움큼 삼키고 걷는 듯한 고양감에 무릎은 안쪽으로 조금 휘어 있었다.
걸을 때마다 철퍽철퍽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밑면이 진하게 젖은 팬티가 찝찝했다. 스타킹까지 들러붙은 기분에 음부가 슬금슬금 간지럽게도 했다.
“미쳤나봐…….”
이 꼴을 다 보일 걸 생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세아는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호흡을 골랐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헉!”
치마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진동했다. 강력한 존재감에 살갗이 바르르 떨렸다. 세아는 눈을 질끈 감고 호흡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 시간이 꽤 길었다. 찌릿거리는 진동이 배 속을 따땃이 달구고 그 아래까지 찔금찔금 건드리는 걸 그녀는 분명 즐겼다. 그런 자신이 황당하고 민망해서 세아의 눈이 질끈 감겼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이 갈고리처럼 휘어 핸드폰을 살짝 건져냈다.
“여, 여보세요?”
「집에 도착했어요?」
한결이었다.
“으응. 이제 들어가려고. 그게 안에서 보여……?”
혹시 봤나 싶어 세아의 음색이 떨렸다.
「지금 밖입니다.」
“아…….”
그녀가 뭘 상상했는지도 모를 차분한 목소리에 감정이 흔들렸다. 실망인지 안도인지 그녀 또한 알 수 없었다.
「우리 조금 늦을 것 같은데.」
“늦는다고? 한겸이도 늦는다고 했잖아.”
「형만큼은 아닙니다. 토요일에 먹일 걸 생각하고 장을 좀 봤는데 러시아워(Rush Hour)라 교통체증이 심하네요.」
삼촌을 따라 외국에서 유학했다는 쌍둥이의 영어는 어딘가 섹시했다. 발음이 유독 야하게 들리는 기분이었다.
「아. 이번에는 데워먹으면 되는 거로 샀습니다. 삼촌도 요리는 이제 안 하실 거예요. 반성 많이 하셨습니다.」
“그런 걱정 안 했어.”
「하하. 카드키를 도어락에 찍으면 열릴 겁니다. 먼저 안에 들어가 계세요.」
“응. 알았어.”
세아는 한결과의 통화를 끊고 문을 열었다. 전자음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놀라기는 했지만 주인들이 허락한 방문이었다.
“남의 집에 혼자 있으니 그런데…….”
그러나 급한 게 우선이었다. 세아는 얼른 욕실로 들어가 씻고 나왔다.
뜨거운 물에 깨끗하게 씻고 그때 그 소파에 앉았다. 주인 없는 침실은 좀 꺼려지고 그나마 타인의 침입이 쉬운 공간을 노린 것이다.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자꾸 목이 막혔다.
이 소파에서 저질렀던 일이 머릿속에 가득 배어 안에서 물이 줄줄 샜다. 실금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침을 꼴딱꼴딱 삼키고 있는데 또 진동음이 들렸다.
이번에도 한결이었는데 영상통화였다.
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통화버튼을 밀었다.
“여보세요?”
「세아, 씻었어요?」
“어? 으응.”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찔렸다. 세아는 빨아둔 속옷을 어디 걸어놨나 떠올리며 좀 더 은밀한 곳에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삼촌 방으로 들어가 봐요. 어디인지 알죠? 그날 우리가 다 같이 섹스(sex)했던 곳.」
그러니까 저놈의 영어가 문제였다. 세아는 붉어진 뺨을 숨기려 핸드폰을 아래로 살짝 내렸다.
“그 방에는 왜?”
「침대 옆에 서랍 있는데 첫 번째 칸 열어봐요. 선물이 있으니까.」
「선물? 내 방에 그런 걸 넣어놨어?」
한결의 목소리에 도하의 목소리가 겹쳤다. 도하도 모르는 일인 것 같았다.
궁금했기에 세아는 안으로 들어가 서랍 첫 번째 칸을 열었다. 네이비색 상자가 보였다. 평범한 주얼리 상자 같았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리본 끈을 푸는데 다시 한결의 말이 들렸다.
「폰섹스해봤어요?」
“…….”
폰 화면에 상자 안이 담겼다. 원목으로 만든 집게 같아 보였다. 끝에 이상한 추가 달린.
“그런 건…… 안 해봤는데…….”
「해보고 싶지 않아요? 이왕 즐기기로 한 거 여러 종류로 다양하게 해보면 좋잖아요.」
부드러운 목소리가 세아의 등을 어루만지고 떠밀었다. 어쩐지 다리에 힘이 빠져 침대 위로 풀썩 주저앉은 세아가 네이비색 상자를 꽉 움켜쥐었다.
덜렁거리며 추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스티로폼 부자재를 꼬집은 집게에 힘이 발씬 들어가 흔들리는 게 보였다.
「편백나무로 만든 거예요. 젖으면 기분 좋은 향이 날걸?」
“…….”
「얼른.」
어린아이의 장난감만큼 동그랗고 귀엽게 깎인 제품이었다. 세아는 침대에 폰을 세워두고 다리를 살짝 벌렸다. 하얀 로브가 허벅지 위로 미끄러지며 속옷을 입지 않은 안을 살짝 드러냈다. 뜨거워지는 폰의 열기에 세아의 다리가 확 곱아들었다.
“모, 못하겠어. 나중에 네가…….”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젖꼭지를 안 들춘 게 어디야.」
놀리는 말투였다. 보자마자 클리토리스에 다는 종류라고 생각했던 세아를 놀리듯이.
“하나밖에 없잖아…….”
「아쉬워하지 말아요. 가서 양쪽 젖꼭지도 다 귀여워해 줄 테니까.」
“난…….”
「으음.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는걸? 혼자 계속 심심하게 있을래요? 거기…… 이미 젖은 것 같던데.」
배 속을 휘갈기는 목소리에 안이 콱 감겨들었다. 찌걱. 세아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음란한 소리였다.
「쉬이. 솔직하기로 했잖아요. 우리 아니면 어디서 이런 걸 또 해보겠어요?」
유세아. 이런 기회가 또 있을 것 같아?
머리 한쪽을 차지한 자아가 커졌다. 지금껏 의식적으로 무의식을 억눌러왔다. 그게 너무 괴롭고 심심하여 금요일은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그래. 그녀는 늘 이런 걸 바라왔다.
깨물린 입술이 야릇하게 휘어져 올라갔다.
“으응…….”
손가락으로 안을 살짝 벌리며 입술을 핥았다. 작은 돌기는 안에 숨어있어서 손으로 비벼 끄집어내야 했다.
「중지로 살살 아기 대하듯이 얼러요.」
힘 있는 손아귀만큼이나 굵직한 목소리가 감미롭게 휘감겼다. 이슬비에 젖듯 차분히 배어드는 페로몬 같았다. 세아는 그의 말처럼 중지로 클리토리스 안쪽을 살살 만졌다.
“으, 하! 으응…… 좋아, 한결아…… 나, 응! 기분 너무 좋아…….”
「벌써 좋아하면 어떡해. 시작도 안 했는데요.」
온종일 불룩하게 솟아있던 곳이었다. 응어리진 열기를 풀어내지 못하고 고여 있었으니 틈 밖으로 물이 줄줄 샜다. 가슴이 벅차게 달아올랐다. 세아는 연신 허리를 들썩거리며 안을 살금살금 비볐다.
“아, 아아!”
안타까움이 번졌다. 더 뜨거운 것을 원했다. 크고 두터운 것이 안으로 들어와 내벽을 짓이겨줬으면 했다. 귀두 끝의 살이 다 뭉개지도록 세게 또 강하게!
「그만. 당장 손 떼요.」
“시, 싫…….”
「나한테 박히기 싫습니까? 말 안 들으면 안 박아줄 겁니다.」
한겸은 전에 먼저 잡아둔 약속으로 늦고 오늘은 한결과 도하뿐이다. 도하는 한결이 먼저 박지 않으면 박아주지 않는다. 여기서 한결의 말을 거부하면 한겸이 올 때까지 넣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으, 흐으…….”
자위로 도달할 수 있는 절정의 문 앞에서 멈춰 세워졌다. 피부 가장 말단에서 팽창했던 열기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으스러졌다. 서러워 눈물까지 뚝뚝 났다.
「울지 말고 그거 상자에서 꺼내요. 좋은 걸 물려줄게요.」
흥분이 어느 정도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다 끊기기 직전에서 건져냈다. 세아는 살아있는 생선처럼 팔딱거리며 그의 말을 따랐다. 상자에서 집게를 꺼내고 아래에 갖다 대자 한결의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빛났다.
「어떻게 하는지 알죠? 머릿속이 야해 빠졌어.」
“으흑, 흐으…….”
한결의 말투가 수치심을 돋우었다. 세아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뚝 떨어트렸다. 젖은 눈가가 액정 너머의 한결을 간곡히 바라봤다.
「어리광은. 알았어요.」
“…….”
「집게 벌리고.」
그의 목소리는 느릿하고 침착했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선생님 같기도 했다. 세아는 말 잘 듣는 학생처럼 그의 말을 따랐다.
「클리에 물려요. 아프도록 꽉.」
꽉. 그 말에 맞추어 팽팽하게 당겼던 용수철이 늘어졌다. 불뚝 솟아있던 음핵이 둥글게 마모된 집게에 물렸다. 집게 안쪽은 빨래판처럼 우둘투둘해서 모양이 형편없이 뭉개졌다. 집게가 완전히 닫힌 충격에 세아의 눈동자가 흐려졌다.
“아, 우으…… 핫!”
「다리 더 벌리고 폰 가까이 들어요. 자세히 볼래요.」
침대 한편에 놓아뒀던 핸드폰을 가져와 음부 위에 바싹 붙였다. 핸드폰 화면에는 붉은 살덩어리가 꽉 차올랐다.
「으음…… 속된 말로…… 꼴리네요. 진창까지 처박고 싶어.」
한결의 숨이 거칠어졌다. 시근대는 숨소리가 채찍처럼 휘감겨 살갗을 얼얼하게 붉혔다. 세아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흔들며 그를 채근했다.
“어, 어디야? 흐…… 언제…… 흐앙! 오는데?”
「이제 스위치 눌러요.」
“뭐……?”
「그 옆에 하얀 거 있잖아요. 그거 누르라고.」
회색 추에는 하얀 큐빅 하나가 박혀 있었다. 단순한 장식인 줄 알았던 세아의 눈이 떨렸다. 저걸 누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대충이나마 상상하면서 버튼을 눌렀다.
깜빡. 붉은 등이 점멸했다.
“꺄흐읏!”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섬뜩한 진동음에 회색 추가 침대 위에서 날뛰었다. 크게 들썩거릴 때마다 클리토리스가 떨어질 듯 줄이 팽팽하게 당겨졌지만 안쪽이 우둘투둘해서 절대 벗겨지지 않았다. 빨래판에 클리토리스를 벅벅 긁는 기분이었다. 세아가 뒤로 넘어가며 비명을 질렀다.
“아, 안 돼! 빼, 뺄래! 으하, 으하아아앙! 아흐, 아!”
「멋대로 건드리면 혼나요.」
한결이 잔인한 웃음을 머금고 속삭였다. 내장이 갈고리에 잡아채져 확 당겨졌다. 붉게 달군 인두에 지진 듯 배 속이 너무 뜨거웠다. 클리토리스에 타오르는 불꽃을 가져다 댄 건지도 몰랐다. 세아는 허리를 벌벌 떨며 빌었다.
“도, 도하, 흐핫…… 제발, 하아아앙! 말려…… 힛, 히익!”
「세아가 삼촌 찾는데 볼래요?」
집게를 매달고 덜덜 떠는 그녀의 안을 두 쌍의 눈동자가 지켜봤다. 하나는 잔혹하고 하나는 차가웠다. 이성적이고 냉철한 시선이 그녀의 천박함을 나무라는 것 같아서 목이 탔다.
“제발…… 제, 아히잇! 흐…… 앗! 하아아앗!”
세아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이거 스피커 폰이라 세아 목소리 밖에서도 다 들리겠어요.」
“아, 안 돼! 흐, 꺼! 꺼 줘……. 으아아아아!”
「뭐 어때요.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세아도 좋죠? 많은 사람이 세아의 야한 목소리 들어주는 거. 어찌나 좋은지 안이 벌써 철벅대잖아. 응? 솔직히 말하면 손으로 쑤시게 해줄게요.」
머릿속이 새하얬다. 그가 뭐라고 비난하든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그가 멈추라고 해도 멈출 자신이 없었다. 세아는 비명을 질렀다.
“조, 좋아!”
「뭐가.」
“여기…… 안이, 너무…… 하아앙! 조으, 조흐!”
타액이 줄줄 새는 입술은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뚝뚝 끊겼다. 버벅거리는 세아가 안쓰러웠는지 한결이 고압적인 말투로 속삭였다.
「쑤시면서 가요. 사람들이 세아가 가는 소리를 다 듣도록.」
하얀 손가락이 음부를 벌리고 안을 파고들었다. 연분홍색 네일아트가 예쁘게 칠해진 손이었다. 얕고 가늘었지만 손가락을 타고 음액이 줄줄 흘렀다. 쑤걱거리는 소리가 빨라졌다. 뜨거운 내벽을 마구 할퀴며 절정에 올랐다.
몸을 뒤틀다가 폰을 떨어트렸다. 침대 밑으로 떨어지는 게 보였지만 세아는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엎어져서 안을 쑤셨다. 엉덩이만 들린 수치스러운 자세였지만 아래로 떨어진 추가 계속 클리토리스를 당겨왔기에 더 자극적이었다.
띠띠띠띠띠. 띠리리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세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흔들었다.
“히잇! 하아아앙!”
허연 엉덩이 안을 스스로 쑤시며 절정에 올랐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자극에 눈이 까뒤집어지는데 집게는 쉬지 않고 진동했다. 세아는 음액이 뚝뚝 떨어진 침대에 엉덩이를 뭉개며 울었다.
“히이……. 힛! 흐아…….”
“혼자 재미있게 놀았나 봐요.”
차가운 손이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엉덩이를 붙잡아 벌렸다. 손바닥 전체로 음부를 감싸고 거칠게 주물거리다가 손 틈에 집게를 끼워 당겼다.
“꺄아아아!”
그의 힘에 클리토리스가 질질 끌려가면서 빨판에 긁혔다. 가뜩이나 예민한 곳을 가장 민감할 때 헤집는 서늘함에 목덜미까지 소름이 발발 돋아났다.
팅!
용수철이 튕기며 집게가 완전히 뽑혀 나갔다. 간신히 참고 있던 무언가가 줄줄 새며 엉덩이 아래로 후두두 떨어졌다
“흐아, 자, 잘못했…… 하앙! 하, 어…….”
완전히 넋이 나간 세아가 침대 위로 쓰러져 온몸을 덜덜 떨어댔다. 아무렇게나 벌어진 로브 사이로 보이는 하얀 몸에는 열이 솟구친 흔적이 남아있었다.
“좋았어요? 저는 이제 필요 없을 만큼?”
한결과 도하가 세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가벗은 것과 다름없는 세아와는 완벽히 대비되는 모습에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너, 넣고 싶어…… 넣어줘.”
커다란 남자들을 보자 안이 급격히 달아올랐다. 방금 절정에 올랐지만 뭔가 모자랐다. 안이 북북 긁히고 싶었다. 깊게 처박아서 가장 굵은 부분으로 시원하게 긁어주기를 바랐다. 손가락은 아무리 넣어도 부족했다. 세아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한결의 바지 지퍼를 내리고 그의 것을 붙잡아 아래로 당겼다. 질척하게 젖은 음부에 뜨거운 성기가 비벼졌다. 한결의 것은 이미 뻣뻣하게 서서 그대로 넣어도 될 정도였다.
“그만.”
단호하게 선을 긋는 말투에 세아의 눈에 물기가 뱄다.
“왜…….”
“생자지는 입술로만 먹어야죠.”
한결이 세아의 몸을 침대 위로 눕히며 도하가 던지는 콘돔을 공중에서 유려하게 낚아챘다. 그의 손짓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명백히 흥분한 눈을 반질거리면서도 필요한 움직임만 정확하게 해냈다. 콘돔을 한 겹 씌워 번들대는 성기가 포악하게 꺼떡거렸다.
한결이 침대 위에 올라가서 세아를 내려다봤다. 하얀 섬광이 어린 눈빛에 소름이 확 끼쳐왔다.
“바지에 좆이 눌려서 어찌나 아프던지. 여기까지 무슨 정신으로 걸어왔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세아 ‘여기’에 넣고 싶어서 바지 안에서 쌀 뻔했어요.”
“빨리…… 빨리 넣어…….”
엉덩이를 세워 엎드린 세아가 다리를 벌리며 한결의 팔을 당겼다. 안에 깊이 넣고 싶어서 스스로 후배위를 자청하는 꼴이었다. 긴장으로 혀가 자꾸 말랐다. 세아가 몸을 덜덜 떨며 한결을 돌아봤다.
“긴장 풀어요.”
골까지 젖어 윤기가 반지르르 흘렀다. 한결이 손으로 질척거리는 엉덩이를 살짝 때렸다.
“아읏!”
“꼴려서 죽을 뻔…… 읏! 했다고!”
안이 뻐끔거리는 틈에 성기를 꽂고 단번에 찔러 넣었다. 일주일 동안 아물어가던 상처를 갈고리로 붙잡아 벌리는 잔악함에 척추가 뻣뻣이 섰다. 가뜩이나 평범하지 않은 물건이 벅찬데 안이 찢어질 것처럼 아려왔다. 그런데도 그만큼 또 좋았다.
“아아……. 아으, 하…….”
계속 이걸 바라왔다. 그날 맛본 쾌락이 너무 지독해서 일주일 내내 후유증이 엄청났다. 그녀는 안쪽 깊숙이 꽂아줘야 느끼는 편인데 그날 이 사람들만큼 그녀를 깊게 후벼 파주는 성기가 없었다.
세아는 팔뚝에 입술을 비비며 탄식을 삼켰다. 먼저 허리를 흔들며 재촉하자 한결이 엉덩이 두 쪽을 짝 벌리며 아래를 눈으로 핥는 게 느껴졌다. 성기가 들락날락하는 음부가 훤히 보일 것이다.
조카의 성기와 완전히 밀착되어 딸려 나오는 발간 살점을 삼촌의 눈이 지독스레 좇았다. 세아는 고개를 들어 집요하게 훑는 얼굴을 살폈다. 소리 지르고 자지러져도 냉철함을 잃지 않았던 단단한 남자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 좋았다.
“아…… 아흣!”
건조한 눈가의 작은 점이 일그러지고 붉은 기가 번져 야하게 물들었다. 그의 속눈썹 한 올 한 올을 핥을 듯 바라보며 허리를 흔들었다. 불알까지 넣을 기세로 달려드는 조카의 허릿짓이 점점 더 거세졌다.
“아앙! 거, 거기 더! 아…… 너무, 흐…… 뜨거워!”
폰 너머로는 반응 없던 도하가 세아의 신음에 반응했다. 단정한 바지정장 속에 수그러들어 있던 성기가 솟아나 천을 뚫을 기세로 팽팽하게 당기는 게 한눈에 보였다. 세아는 자신을 관음하는 도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두 눈으로 직시했다.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듯한 눈동자가 시커먼 늪처럼 질척하게 엉겨 붙었다.
“세아 여기 삼촌한테 빨아달라고 할까요?”
“아흣!”
한결이 성기를 꽂은 채로 자세를 바꿨다. 한결의 위에 걸터앉게 된 세아의 엉덩이가 한결의 치골을 누르며 더 깊숙이 삽입했다.
“아까 재미있게 노느라고 퉁퉁 부어서 좀 핥아줘야 할 것 같은데…… 내가 좆이랑 입술을 다 음부에 처박을 순, 없잖아요. 삼촌한테 핥아달라고, 부탁해 봐요. 삼촌도 세아는 빨아줄 것 같아.”
한결이 허리를 리드미컬하게 흔들며 세아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녀에게만 들릴 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여기서 도하에게 부탁한다면 그는 한결이 아니라 세아가 자진해서 부탁하는 거로 생각할 것이다. 그건 너무 부끄러운 일 같아서 고개를 저으려는데 한결이 세아의 턱을 붙잡아 도하 쪽으로 고정했다.
“어서.”
“도, 도하…… 하응!”
그의 이름을 부르자 한결이 보란 듯 성기를 콱 처박았다. 세아가 앙앙거리며 도하의 이름을 절박하게 불렀다.
“도하, 씨! 흣! 도…… 흐아아앙!”
조카의 성기를 꽂은 음부에 고정되었던 시선이 올라와 세아의 얼굴을 샅샅이 핥았다. 세아가 팔을 내밀자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여기, 흐읏! 빨아 줘…… 흐앙앙!”
“전에 한 번 둘 이상 상대했다고 저 혼자로는 만족 못 하게 된 거예요? 세아는 이제 빨아주면서 박아주지 않으면 못 가죠?”
“아니…… 나는, 힛! 아아아!”
한결이 클리토리스를 손가락으로 꼬집자 세아의 몸이 완전히 무너졌다. 한결의 성기가 자궁구를 뚫을 기세로 들어왔고 젖은 숨소리가 거칠게 학학거렸다.
“세아 씨는 여기를 좋아합니까? 전에도 로터에 스스로 비비며 안을 옴찔거리더군요. 그럴 때마다 좆을 끊을 기세로 조여서 요도 구멍까지 살이 달라붙었습니다.”
“히익! 아, 아니…… 하읏!”
도하의 혀가 흔들리는 돌기를 사악 핥았다. 넓적한 혀로 전체를 핥아주는 느낌에 소름이 올랐다. 상처를 핥듯 서투른 움직임에도 퉁퉁 부은 클리토리스는 예민하게 떨렸다.
“입술을 모아 쪽쪽 강하게 빨아줘요. 엉망진창이 되어서 제 형태를 잃을 때까지 잘근거려야 몸부림치며 자지러지거든요. 얼마나 야한 몸인지.”
조카의 조언에 도하의 입술이 음핵을 강하게 흡입했다. 커다란 남자가 몸을 낮추고 혀를 써 애쓰는 모습에 묘한 정복감이 일었다. 세아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얼굴에 하반신을 바짝 붙이며 색색거렸다.
“비밀을 알려줄까요? 사실 삼촌은…….”
한결이 안을 거칠게 쑤시며 으르렁거렸다. 야트막한 소리는 쾌감에 취한 귀에 잠겼지만 이상하게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흥분한 게 아니라 안심한 거예요. 세아의 몸이 삽입을 즐겨서.”
조곤조곤한 밀담은 작은 귓바퀴 밖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스러졌다.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를 모르는 도하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 세아의 아래를 빠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우리 불쌍한 삼촌은…… 여자에게 삽입하는 걸 무서워하거든. 혹시 강제로 하는 걸까 봐.”
“흣, 흐아! 아…… 흐아아앙!”
“세아는 잘 삼켜줄 것 같아 안심이야.”
아래를 빨리며 뜨거운 성기에 쑤셔지는 여자에게 한결이 다정한 미소를 흘렸다. 얼핏 보면 한겸이 제일 버릇없다고 생각되기 쉽지만 셋 중 가장 오만한 건 한결이다.
한겸은 ‘누나’. 도하는 ‘세아 씨’. 한결은 ‘세아’. 그는 유일하게 아무 존칭 없이 세아를 있는 그대로 부르는 남자였다.
또한 같은 이유로 세아를 가장 존중하는 건 도하였다. 세아는 자신의 욕망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아를 기쁘게 하는 데에만 심취한 남자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한결의 말이 없었어도 눈길이 갔을 것이다.
“흐, 흐아! 이제 그만…….”
뺨을 살짝 만지려고 했는데 한결이 처박는 바람에 때리는 게 되고 말았다. 따귀를 때린 꼴이었지만 도하는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세아를 올려다봤다. 압도적인 기백이 물러난 지고지순한 암전에 세아의 눈가가 달아올랐다.
저 표정이 그녀를 흥분케 했다. 지금껏 보아온 사람 중 가장 견고해 보이는 남자가 무너지고 망가져서 흔들리는 모습이.
“당신 거, 하앙! 흐, 너, 넣어줘…….”
심리적인 흥분에 안이 바짝바짝 조여들었다. 도하의 눈빛이 짙어지고 한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한결이 세아의 엉덩이를 물어뜯을 기세로 잡아당기며 안에서 번쩍였다.
“흐읏!”
절정에 달한 조카가 콘돔 안에 정액을 싸며 세아의 안을 치켜들었다. 쩌걱 벌어진 음부로 삼촌의 눈이 박혀 들었다.
삼촌은 바지를 벗고 조카를 먼저 절정에 달하게 한 공간에 교대로 제 성기를 파묻었다.
“흐아아아!”
세아는 그렇게 흔들렸다.
* * *
세 남자 중 도하는 가장 얌전하고 점잖은 편이었다. 처음에는 흥분이 지나쳐 세아를 너무 세게 몰아붙였지만 그 이후로는 가장 부드럽게 그녀를 안는 편이었다.
테크닉이 좋은 쌍둥이에게 가슴이나 클리토리스를 빨리며 뜨겁고 커다란 도하의 성기를 삼키는 것을 세아는 좋아했다.
한결이 입을 맞추며 양쪽 젖꼭지를 붙잡아 흔들고 도하는 뒤에서 박고 있을 때였다. 세아는 잔뜩 쉬어 터진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자지러졌고 허리를 단단히 붙든 손은 그녀가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었다.
“아앙! 아으, 아하앙! 흐아아아아!”
도하가 막 사정하고 세아도 무너져내렸을 때였다. 성기를 뽑던 도하가 얼굴을 찌푸리며 멈칫했다. 아래로 떨어지려는 엉덩이를 받쳐 든 그가 엉덩이를 바짝 치켜세워 안을 확 벌렸다.
“흐앗! 하응!”
후. 불어온 입바람이 차갑게 솔솔거리며 안쪽으로 휘말렸다. 차가운 소용돌이를 빨아 삼키는 기분에 지친 근육들이 움찔거리며 경련했다. 도하는 입을 바짝 붙이고 계속 바람을 불었다.
“아픕니까?”
아프긴 뭐가. 집요한 쾌락에 지쳐있던 세아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멍하니 뺨에 이불을 비비며 그가 무얼 하든 가만히 두었다. 도하의 손가락이 안을 벌려보는 게 느껴졌다. 주르륵, 뜨거운 것이 밖으로 흘렀다.
“피?”
한결의 놀란 목소리에 세아의 눈이 떠졌다. 하얀 이불을 적신 건 세아의 피였다. 음부 안쪽에서 흐른 피.
오늘은 하나씩만 넣었는데 두 개에도 찢어지지 않던 안에서 피가 흐르니 놀라웠다. 세아는 뚝뚝 흐르는 피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 굳은 두 사람과 아무 생각 없이 늘어진 한 사람 중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린 건 도하였다. 그는 세아를 놓아주고 몸을 일으켰다.
“옷부터 입혀.”
“김 박사님께 연락할까요?”
“아니. 24시간 하는 산부인과가 어디 있을 거다. 검색해봐.”
당장 병원으로 출발하겠다는 태도에 세아의 몸이 움찔거렸다. 피는 흐르는데 아픔은 없다. 그런데 배는 얼얼하다. 하도 때려 박아 그런 줄 알았는데 배를 살살 뭉그러트리는 고통이 매우 익숙했다.
“생리혈 같은데…….”
“생리?”
방 밖으로 나가려던 도하가 침대를 빙 돌아 세아 곁으로 왔다. 차가운 손이 기분 좋아서 이마를 문대던 세아가 눈을 나른하게 감으며 손짓했다.
“내 핸드폰 좀…… 줄래요?”
바닥을 굴러다니던 핸드폰을 주워온 한결이 그걸 세아의 손에 쥐여줬다. 6시에 퇴근했는데 대체 몇 시간을 침대에서 굴렀는지 어느새 새벽이었다.
“어쩐지 졸리더라…….”
지쳐서 몸이 흐느적거리는 세아와는 다르게 둘은 멀쩡해 보였다. 비율이 안 맞긴 했지만 지친 기색 없이 반들거리는 뺨을 보자 억울해졌다.
‘인간이 아니야. 완전 괴물.’
세아는 속으로 유치하게 투덜거리며 생리하는 날을 표시해둔 어플을 켰다. 오늘 날짜에 붉은 하트가 깜빡거리는 게 보였다.
“보세요.”
“……이 붉은색 하트가 생리하는 날을 표시하는 겁니까?”
“그 전에 입력한 주기를 바탕으로 언제 생리할지 알려주는 거예요. 귀신처럼 잘 맞거든요.”
“…….”
“차 키 내려둬요. 수치스러워 죽게 만들 작정이 아니시면.”
도하가 쥐고 있던 고급 승용차 키를 서랍 위에 얌전히 내려놓았다.
몹시 귀찮았지만 세아는 몸을 일으켰다. 생리대니 뭐니 챙겨야 할 게 많았다.
“아! 이 이불을 어떡하죠? 바로 처치해야 피가 빠질 텐데. 흰색이라 색이 잘 빠질지 모르겠네요.”
“그런 건 됐습니다.”
도하가 이불을 끌어안고 주섬주섬 일어나는 세아를 붙잡아 말렸다. 힘이 빠진 몸은 작은 힘에도 철퍽 쓰러졌다.
또 안이 울컥거리며 생리혈을 뱉어냈다. 엉덩이 아래가 축축하게 젖었다.
“아아…….”
창피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안을 계속 막고 있어서 이제야 흐르는 걸까? 첫날인데 양이 많았다. 몸이 지쳐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고 주저앉아있자 도하가 이불 채로 세아를 안아들었다.
“씻고 계시면 필요한 걸 찾아오겠습니다.”
욕조 바닥에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거위털 이불이 아무렇게나 팽개쳐졌다. 그것을 작신작신 밟고 걸어간 도하가 욕조에 세아를 내려줬다. 그는 무심코 욕조 레버를 돌리려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럴, 때…… 물에 몸을 담가도 괜찮은 겁니까?”
“안 될 건 없지만 위생상 안 좋지 않을까요? 찝찝하기도 하고.”
“씻겨 드릴까요?”
“맨정신이라…… 사양할게요. 지금도 무척, 부끄럽거든요. 너무 밝아서.”
조명등만 켜고 있다가 욕실의 백열등 아래에 서니 온몸이 새하얗게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끈끈하게 달라붙는 그의 시선 탓인지도 몰랐다.
“아.”
도하가 나직이 신음하며 고개를 돌리는 사이에 한결이 걸어 들어왔다.
“생리대 사야 하죠? 아무거나 사 오면 돼요? 근처 편의점에서 사 올 건데.”
“내 가방에 하나 있을 텐데…….”
“하나로 돼요? 내일까지 있을 건데.”
집에 언제 가야 하는지에 따라 달랐다. 세아는 사실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생리를 하면 섹스를 할 수 없고 섹스를 할 수 없으면 토요일을 이곳에서 보낼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결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 내일을 꺼냈고 도하의 눈빛도 그런 것 같아서 망설이게 됐다.
“음…… 내가 일요일 아침까지 여기서 지낼 필요가 있을까요?”
“금요일과 토요일은 함께하기로 전에 합의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런데…… 생리 중이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두 남자의 얼굴에 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가임기 여성이라면 당연히 하는 생리가 무슨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난 생리 중에는 한 번도 안 해봐서, 그, 그…….”
“섹스(sex)를 말입니까?”
쌍둥이만큼이나 도하의 영어도 엄청났다. 영어 발음에 페티시라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담담하게 뱉어내는 발음에 가슴 속이 뭉글뭉글 엉켜 들었다. 깃털로 젖꼭지를 간질이는 듯한 가려움이었다. 고개를 숙인 세아가 바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생리 중에 하는 섹스가 위생상 좋지 않다는 상식은 알고 있습니다. 할 생각도 없고요.”
“그럼 왜…….”
“저야말로 그럼 왜냐고 묻고 싶군요. 세아 씨는 일요일 아침에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럼 적어도 40시간 정도는 이 집에 머무르겠다는 말씀인데 당신은 40시간 내내 섹스만 할 수 있습니까? 섹스 기계처럼 섹스만 하자고 당신을…….”
“그, 영어 좀 그만해요!”
세아가 도하의 입을 양손으로 막고 소리쳤다. 영문도 모르고 입이 막힌 남자가 눈을 굴려 제 조카를 바라봤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보라는 눈빛이었다.
“영어요?”
“…….”
새롭게 알게 된 페티시를 차마 밝힐 수 없는 세아가 눈을 감고 침묵했다. 그러나 한결은 눈치가 빨랐다. 한결이 찌푸렸던 미간을 탁 펴며 알겠다는 듯 물었다.
“섹스(sex)?”
“윽……! 그만 나가줘요.”
다행히 그들은 세아가 그 단어의 의미를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순진하고 퍽 가여운 걸 본다는 눈빛이었다.
한결이 이제 안 그러겠다며 다정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죠.”
한결과 함께 욕실 밖으로 나가던 도하가 돌아와 가운 하나를 세아의 어깨 위에 걸쳐줬다. 밝은 조명 아래 알몸인 게 부끄럽다던 세아의 말을 기억한 모양이었다.
“이제 씻을 건데…… 지금 이게 무슨 소용이라고…….”
빠르게 빠져나가는 그를 삼키는 문을 바라보며 세아가 중얼거렸다.
알몸 세아는 그렇게 한결과 도하를 무찔렀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 * *
집에 돌아가니 어쩐다니 했지만 세아는 씻고 나온 그대로 침대에 쓰러졌다. 속옷과 잠옷은 집에서 챙겨온 게 있어서 그거로 갈아입은 채였다.
몸이 눅진눅진 피곤해서 또 한낮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자고 일어난 세아가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온갖 종류의 생리대가 가득 쌓인 책상이었다.
팬티라이너부터 오버나이트까지. 사람마다 사용하는 생리대 크기가 다르니 그건 그렇다고 하겠는데 온갖 브랜드를 다 가져온 이유는 모르겠다. 편의점이 아니라 대형 마트를 털어온 것 같았다.
“이게 다 얼마치야……?”
몇 년은 쓸 수 있는 양으로 보였다. 피라미드 형태로 차곡차곡 쓸데없이 예쁘게도 쌓아놨는데 세아에게 필요한 건 대형 한 팩이면 되었다.
세아는 열심히 쌓아놓은 피라미드가 흔들리지 않게 조심하며 생리대 한 팩을 꺼냈다. 패드를 갈고 씻고 나가니 주방에서는 또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굿모닝!”
새벽에 들어온 한겸이 세아를 가장 먼저 맞이하며 그녀의 뺨에 입을 쪽 맞췄다. 헤헤 웃으며 떨어지는 얼굴에 소년다운 청량미가 가득해서 순간 말이 안 나왔다.
‘얼굴이…… 좋긴 좋구나.’
세아는 손등으로 뺨을 살짝 비비며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도하와 한결이 바쁘게 움직이며 식사를 차리고 있었다.
“저도 뭐 도울까요?”
“다했습니다. 앉아 계세요.”
장을 봐왔다는 말이 사실인 듯 준비하지 못했던 저번 주에 비해 식탁이 훨씬 더 화려했다. 세아는 먹음직한 음식들을 보며 또 슬쩍 의자에 앉았다.
먹을 거로 꼬시기 쉬운 사람이었다. 세아는.
푹신. 도넛 방석이 주는 편안함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풀렸다.
이 세상은 돈만 있으면 참 살기 쉬운 세상이었다. 즉석조리 음식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었다. 고급 한정식집에서 포장해온 음식들은 하나같이 다 맛있었고 세아는 배가 불러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질 때까지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세아보다 먼저 식사를 끝낸 한겸이 냉장고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 냉동실 문을 열었다. 알싸한 냉동실의 공기에 뺨이 알알해졌다.
“아이스크림 먹을래요?”
한겸이 연분홍색 아이스크림 통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패밀리 사이즈로 나온 것이라 결코 작은 게 아님에도 커다란 손 때문에 착시 현상이 일었다.
그래. 저게 얼마나 된다고.
“그, 그럴까?”
세아는 한겸과 둘이서 아이스크림 통이 텅텅 빌 때까지 먹어버렸다.
속이 더부룩해졌다. 세아는 마성의 식탁에서 탈출해 소파 위에 늘어졌다. 누우면 배가 눌리는 기분이라 소파에 방만하게 기댄 자세였다.
그런데 도하가 또 뭘 들고나왔다.
“이제 진짜…… 더는 못 먹어요…….”
“따뜻한 매실차입니다. 소화가 잘되게 도와줄 겁니다. 너무 찬 것만 먹으면 몸에 안 좋으니까요.”
도하가 한겸을 흘긋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난 누나가 저렇게까지 먹을 줄은 몰랐지.”
손에 쥔 찻잔에서 달콤한 매실 향이 올라왔다. 매실차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세상에는 취향을 깨부수는 최고급 매실차도 존재했다.
“으음…….”
“맛은 괜찮습니까?”
“네…… 저 진짜 배부른데…….”
“그것까지만 드세요.”
소파 앞 테이블에 찻잔 접시가 덩그러니 놓였다. 뜨끈뜨끈한 느낌이 좋아서 세아는 접시 대신 배 위에 차를 살짝 내려놓았다.
“누나, 영화 좋아해요?”
“그냥저냥.”
“최신영화도 다 볼 수 있는데. 보고 싶은 거 없어요?”
“음…….”
세아는 한결이 보여주는 폰 화면으로 최신 영화들을 보다가 가볍게 볼 만한 액션 영화 한 편을 선택했다.
한겸이 스위치 하나를 탁 누르자 커다란 스크린이 내려왔다. 동시에 양옆의 새까만 스피커에 푸른빛이 들어오며 고품질의 소리를 쏟아냈다.
차는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새 없어졌고 빈 잔만 손으로 굴리고 있으니 도하가 잔은 가져가고 동그란 온열팩을 배 위에 올려놓았다.
영화는 재미있었고 부글거리는 배 속은 점차 따뜻해졌다. 정신을 차리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무서운 사람들…… 날 사육하고 있어……!’
살찌워서 잡아먹을 생각이 만만인 사람들에게 혼을 빼앗긴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에 돌아가자고 결심한 게 바로 얼마 전인데 까맣게 잊고 이 시간이 주는 평화에 몰두해 있었다. 문은 얼마든지 열 수 있지만 문 앞까지 도달할 수 없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보드게임 좋아합니까?”
세아가 잠시 정신을 차릴 만하면 그들은 또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왔다.
“고등학생 때 해보고 안 해 본 것 같은…… 엇! 할리갈리다!”
쨍! 쨍! 쨍!
방음이 완벽한 펜트하우스에서 네 사람이 열정적으로 할리갈리에 응전하는 소리가 거세게 울려 퍼졌다. 그런데 사파전이 아니라 삼파전이었다. 세아는 하나뿐인 종 위에 가득 쌓인 네 개의 손바닥 중 최상층을 차지하고 있었다. 매번. 한결같이.
“억울해! 내가 상대적으로 팔이 짧아서 자꾸 지는 거라고!”
“종목을 바꿀까요?”
한결이 다른 것도 얼마든지 있다며 보드게임판을 주르륵 늘어놓았다. 포장지도 안 뜯은 새것인데 종류는 다양했다.
“다빈치 코드는 어때?”
세아는 암기에는 제법 자신이 있었다. 다빈치 코드는 뒤집힌 판에 어떤 숫자가 적혀 있을지 경우의 수를 추리하는 것이 중요해서 머리 좋은 사람이 유리했다.
“좋습니다.”
다빈치 코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세아는 또 패배의 쓴맛을 통렬히 경험했다.
“……생각을 잘못했어. 딱 봐도 머리 좋아 보이는 사람이 둘이나 있는데.”
세아의 눈이 도하를 훑고 한결에게로 향했다. 가장 끝에 있던 한겸이 눈썹을 쓱 들어 올리더니 손을 번쩍 든다.
“저도 있는데요, 누나.”
“그래…… 너도 잘하더라. 그럼 내가 꼬, 꼴, 꼴찌…….”
공부 잘하는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세아가 어린 날에도 겪어본 적 없는 굴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해가 다 질 때 동안 게임 한 판을 못 이길 수가 있죠? 멘사 회원이라도 돼요?”
농담 삼아 한 말인데 그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셋 다?”
“피를 나눈 사이라.”
한결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천재는 1% 재능과 99% 노력으로 만들어지지만 애초에 타고나야 하는 1%의 재능이 없다면 결국 범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던 어느 선배의 술주정이 떠올랐다.
“더 하시겠습니까?”
세아는 그 후로도 다른 게임을 더 했고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들은 승부의 세계에서 냉정해서 결코 져주는 법이 없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임을 깨닫자 나중에는 오기가 사라지고 해탈했다.
승부는 개인전이 아니라 팀전으로 바뀌었고 세아도 깔깔거리며 즐기게 되었다. 져도 그것 나름의 재미가 있었고 이기면 같은 팀인 사람과 손발을 짝짝 치며 흥겨워했다.
게임으로 시간을 흥청망청 다 쓰고 배가 살짝 고파졌을 때 세아가 물었다.
“그런데 다들…… 뭐 하는 사람들이죠?”
“이제 저희가 좀 궁금합니까?”
“네?”
“의도적으로 이 주제는 늘 피했던 것 같아서.”
“그거야…… 헤어질 사이에 개인 신상 털리면 끝이 안 좋을까 봐…….”
너무 솔직하게 말했나?
세아는 말하고 나서 그들의 눈치를 살짝 봤다. 딱히 기분 나빠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도 ‘이별’을 생각해뒀구나 싶어 마음이 편안해졌다.
“저는 궁금합니다. 어느 날 사라진다고 하여도 겉만 알고 지나치기에는 서러워서.”
도하가 담담한 목소리로 감정을 입에 담았다. 무뚝뚝한 표정은 그대로인데 사람을 홀리는 독특한 기류 때문에 휩쓸렸다. 정말 그가 서러운가 하였다. 그는 더욱이 사람과 몸을 섞은 게 처음인데. 말하자면 세아가 그의 첫 여자인 셈이다.
“제가 당신을 알아보고자 했다면 굳이 이런 방법이 아니어도 됐습니다. 좀 더 은밀하고 신속한 방법 따위야 제게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럼 왜…….”
“글쎄요. 부담을 주고자 함일까요?”
부담? 이 관계에 무거움을 더하자는 말일까 하여 가슴이 덜커덩거렸다.
“저와 이 녀석들에게.”
“네? 제가 아니라요?”
“당신을 가볍게 대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하던 대로 쉽게 당신에 대해 알아본다면 호기심은 충족되어도 당신은 내게 그저 그 종이에 적힌 몇 글자일 겁니다.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사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어…….”
세아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그녀를 가볍게 대한 적이 없었다. 어느 때나 정중했고 배려해왔다.
「우리 불쌍한 삼촌은…… 여자에게 삽입하는 걸 무서워하거든. 혹시 강제로 하는 걸까 봐.」
왜 문득 그 말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그냥 가슴이 쿵쿵 뛰며 눈앞이 하얘졌다. 원인 모를 동정심. 얄팍하고 값싸서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그런 감정. 그것이 생각보다 크고 세차서 눈앞의 남자에게 연민이 들었다.
“어느 관계나 ‘이별’은 가능합니다. 당신이 헤어짐을 생각하는 걸 압니다. 가겠다고 하시면 보내드릴 겁니다. 그에 동의하지만…… 저는 최소한 우리의 관계가 ‘섹스’이기만을 바라진 않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파트너’라고 정의하고 그것에 국한된 관계를 원하신다면 제가 먼저 사양하고 싶군요.”
도하가 차가운 목소리로 선을 그었다.
“아니, 잠깐만요…….”
세아는 너무도 당황하여 손발이 살짝 떨렸다. 왜 그걸 몰랐을까? 관계에 있어 일방만큼 위험한 건 없었다. 세아가 지금 이 관계에 만족한다고 해도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끝낼 수 있었다. 그는 세아가 원하지 않으면 보내준다고 했다. 그럼 세아도 그렇게 해야 했다. 그가 원하지 않으면 보내주고 이 관계를 끝낸다.
끝.
그래. 고작 두 번뿐인 이 관계는 그토록 얄팍했다. 손가락만 튕겨도 잘라질 관계였다.
“저는 아직은…… 고작 그런 이유로는…… 끝내고 싶지 않아요.”
세아는 솔직했다. 매달리는 건 질색이지만 아직 서로 협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자존심 세우며 돌아서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이 관계가 만족스러웠다.
“굳이 이 관계에 정의를 내려야 한다면 연인이 좋겠습니다. 최소한 저희는 당신에게 다른 남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바람을 피우지 말라는 뜻이죠.”
삼촌의 말에 조카 둘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아만 쏙 빼놓고 그들끼리는 이미 합의가 끝난 부분 같았다.
그런데 셋이었다. 여자는 하나인데 남자가 셋. 이것부터가 벌써 바람 아닐까? 세아는 황당해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바, 바…… 뭐요?”
“바람. 연인을 두고 다른 이성을 만나는 행위 말입니다.”
세아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주르륵 옮겼다. 한겸, 도하, 한결. 하나같이 다 덩치는 산만 해서 한 번 훑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꽤 걸렸다. 차지하는 부피도 세아의 여섯 배는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뭐, 바람이라고?”
“다른 남자가 더 필요하십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전 셋도 벅차다고요! 대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다행입니다. 물론 저희 셋 다 세아 씨 외의 다른 여자는 만나지 않을 겁니다. 이 관계가 지속되는 한.”
도하가 화사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미려한 얼굴이 자아내는 화려함에 꽃송이에 파묻힌 기분이 들었다.
‘우, 웃는 거 처음 봤어……!’
뺨 언저리를 붉히고 홀려 바라보는 시선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보란 듯 야릇하게 눈꼬리를 휘었다. 눈가의 작은 점 하나가 야하게 알랑거렸다.
“전 질투가 심한 편이라.”
“……질투요?”
“예. 속 좁은 남자입니다.”
“어…… 그 질투에 한겸과 한결은 해당이 안 되나요?”
도하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그녀가 아는 한 가장 상냥하고 배려심이 큰 남자에게서 본 질 나쁜 미소에 세아의 눈동자가 떨렸다.
도하는 제 조카들을 짐을 보듯 훑었다.
“썩 마음에 차지 않아도 어쩌겠습니다. 처음 시작된 관계가 그런데. 그래도 제가 연장자니 본처 자리를 주세요. 저것들은 첩입니다.”
“말도 안 돼! 내가 세아 누나 데려온 거잖아! 내 공이 제일 큰데 내가 본처지!”
“세아를 이 집으로 데려온 사람은 저입니다. 삼촌은 선물을 받은 주제에 욕심이 크시군요.”
삼촌의 말에 조카들이 즉각 하극상을 벌이며 달려들었다. 왕왕거리는 개싸움이 시작되었다. 세아는 그런 세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머리를 짚었다.
“저…… 이해가 안 가는데요.”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세아에게로 돌아갔다. 새까만 불덩이 세 쌍이 타올랐다. 맹목적이고 저돌적인 시선에 기가 꺾였다.
“무엇이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잖아요. 스스로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남자 셋이…… 연인, 저만, 아…… 이걸 뭐라고 해야 돼? 아무튼, 그럴 가치가 저한테 없을 것 같아서요.”
“당신을 삼등분으로 나눌 수는 없지 않습니까. 뚝 분질러도 되는 장난감도 아닌데.”
목덜미를 지그시 바라보는 시선이 오싹했다.
확실히 도하는 위험한 구석이 있었다. 죽이면 안 되는 걸 알아서 건드리지는 않지만 생각은 얼마든지 했다. 그의 시선에서 세아는 이미 조각났다.
세아는 자기도 모르게 목을 감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죠. 저는 인간이에요. 살아있고. 아픔도 느끼고.”
“취향이 같은 걸 어쩌겠습니까. 셋 다 원한다는데. 하나만 골라 가질 생각도 없으시잖습니까.”
세아 본인보다 그의 시선이 그녀를 더 잘 꿰뚫었다. 그렇다. 세아가 만족하는 건 셋과의 관계였다. 셋 중 더 좋은 누군가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한 사람이 세 사람의 몫을 다 채울 수는 없었다.
“저 진짜 이상하네요. 반박할 수가 없어요. 내가 이렇게 욕심이 많은 줄은 몰랐는데…….”
“그게 왜 이상합니까?”
“한 사람과 만나는 게 정상이잖아요. 셋이나 만나겠다니 잘못됐죠.”
“잘못? 그럼 일처다부의 풍습을 가진 나라는 다 잘못된 겁니까?”
“아니…… 그렇게까지 말하려는 건 아닌데…….”
다른 나라의 문화 문제까지 들먹이자 정신이 없었다. 한국 사회에 속한 이상 그것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도하의 얼굴이 너무 가까워져 다 날아갔다.
“쉽게 생각하세요.”
그가 속삭이며 세아의 입술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대로 키스해도 되냐는 듯 내려다보는 눈길이 뜨거웠다. 닿지도 않았는데 입술이 데일 것 같아서 저절로 벌어졌다. 그의 목을 살짝 끌어당기자 불꽃이 몸 안으로 침투했다.
커다란 손이 티 안으로 파고들어 속옷 위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 손은 후크를 거침없이 풀어 내렸고 흘러내린 속옷 위로 젖꼭지가 튀어 나갔다. 퉁 튕겨진 그것은 뜨거운 입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애무하던 손길이 도하의 것이 아님을 그때서야 알았지만 오히려 더 큰 흥분감이 들었다.
“둘이라고 다 정상적이고 행복합니까? 강제적인 둘의 관계는 피폐할 뿐입니다. 넷이라도 모두가 즐겁다면 그게 더 아름다워요.”
“으응!”
양쪽 젖꼭지를 한 번에 빨렸다. 함몰된 유두를 끄집어내서 빳빳하게 돌출시키고 이로 깨물었다. 척추까지 찌르르 울렸지만 가슴을 흔들어도 두 개의 입술은 끝을 깨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예민한 상단을 입술로 짓이기는 감각이었다. 유두에 불꽃을 각기 올린 것 같았다. 찌르르 울린 전율이 서혜부까지 울렸다.
도하가 세아의 입술을 벌렸다. 고였던 타액이 줄줄 미끄러지며 혓바닥이 안쪽으로 숨어들었다. 그의 손가락이 입 안쪽 예민한 부분을 세워 긁었다.
“하응!”
“당신은…… 지금이 즐겁지 않습니까?”
“하앙! 으읍!”
“지금이 더 아름다워요.”
도하가 세뇌하듯 속삭였다.
“저희의 연인이 되어주시겠습니까?”
“으응! 웁! 우으읍!”
귀에 달게 와닿는 감미로운 음색에 얼굴이 붉어졌다. 고개를 끄덕였나? 잘 모르겠다. 젖꼭지를 뜯어낼 것처럼 잡아당기는 입술에 맞추어 턱이 젖혀 들었고 그걸 본 도하가 웃음 지었다.
“좋습니다.”
도하가 세아를 내려다보며 손가락을 앞뒤로 흔들었다. 차갑고 오싹한 시선에 음액이 울컥 흘러 클리토리스까지 젖어 들었다.
“하우으…….”
그의 손가락을 세 개나 삼킨 붉은 입술이 젖은 숨결로 번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