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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도 이혼을 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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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 저는 위그멘타르의 대변인입니다. ”
지금 이 순간에도 여신 위그멘타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리스텔라는 그녀와 소통할 수 없었다. 이 신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교황 발레리아누스와 몸을 섞었을 때는 그녀의 몸을 여신 위그멘타르가 지배했다.
원한다면 몸의 주도권을 빼앗아 헤시우스와 대화할 수 있을 텐데도 위그멘타르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리스텔라는 위그멘타르가 자신의 몸으로 저지른 음행에 책임을 졌다. 욕망에 미쳐서 아무 남자하고나 몸을 섞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도망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스스로 저지른 일이라 생각하고 책임을 지고자 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위그멘타르가, 그녀를 봉인한 아리스텔라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질 차례다.
“ 인간 세계에 대재앙을 가져온 질투의 여신, 탐욕의 여신, 음욕의 여신으로서 나 위그멘타르는 생명과 평화의 신인 헤시우스에게 고합니다. ”
위그멘타르의 이름을 말하자 헤시우스도 조금 긴장한 눈으로 아리스텔라를 바라보았다. 엄청난 권능을 가진 신일지라도 그의 반려 앞에서는 그저 철부지 남편일 뿐이다.
인간의 모습은 신의 모습을 본뜬 것이라는 말을, 아리스텔라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이혼해요, 우리. ”
◇ ◆ ◇ ◆ ◇
헤시우스는 입을 벌리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어이가 없다는 것은 이럴 때 하는 말일 것이다. 헤시우스의 이런 반응은 실로 인간적이었다. 아니, 인간의 감정은 신의 것을 나누어받은 것이라고 하니 그 반대가 되어야겠지만 말이다.
“ 위그멘타르! ”
“ 꺄아! ”
느닷없이 손목을 붙잡히는 바람에 깜짝 놀란 아리스텔라가 뿌리치자, 헤시우스는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뒹굴었다.
“ 미안해, 위그멘타르! 제발 용서해줘! ”
아름다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헤시우스는 갑자기 아리스텔라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기 시작했어.
“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장난 같은 걸 치지 않겠다! 다시는 인간 여자에게 손대지 않을 테니, 제발 용서해다오! ”
같은 사람―사실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지만 어쨌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의 헤시우스를 보고 아리스텔라는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왔다. 긴 속눈썹이 황금색 눈동자를 덮었다 올라갈 때마다 맑은 눈물이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던 헤시우스는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쿵!
생각보다 크고 둔탁한 소리가 들려 아리스텔라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이 빛의 공동에는 바닥이 없었다. 양발을 딛고 서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팔을 굽혔다 펴면 딱 팔 길이만큼만 뻗을 수 있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실제로 발로 바닥을 두드려 봐도 뭔가 부딪히거나 소리가 나지 않았다.
“ 갑자기 왜 이래요? ”
“ 용서해다오, 위그멘타르. 나를 버리지 말아줘! ”
“ 이제까지는 계속 고자세였다가, 이혼하자고 하니까 갑자기 이러는 건가요? ”
바닥에 머리까지 처박았는데도 아리스텔라에게는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그녀는 도도하게 팔짱을 낀 채 차갑게 말했다.
“ 그런 사고를 쳐놓고, 이혼하자는 말이 나올 줄 몰랐던 건 아니겠죠? ”
“ 몰랐다! 몰랐단 말이다! ”
“ 전 분명히 제 의사를 전했어요. ”
“ 흐어어엉……. ”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질질 짜면서 헤시우스가 울기 시작했다. 세계의 창조주이면서 모든 생명의 아버지와도 마찬가지인 존재가 이렇게 철이 없을 줄은 몰랐다.
어쩌면 신이 인간의 모든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슬픔이나 분노처럼 원 개념적인 감정은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들은 갓난아기부터 고령의 노인까지 모든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질투와 탐욕, 음욕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어리광이나 떼를 쓰는 태도 같은 것까지 말이다.
“ 왜 제가 강경책을 쓰기 전에 미리 반성하지 않았던 거예요? ”
“ 이, 이혼하자고 할 줄 몰랐으니까……. ”
“ 몰랐다는 게 말이 돼요? 제가 화났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요! ”
“ 화가 나면 이혼하고 싶어지는 것이냐? ”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결국 쌓이고 쌓이면 분노는 터지기 마련이다.
“ 원래 화가 나면 꼴도 보기 싫어지잖아요. 더 많이 화가 나면, 더 오래 꼴 보기 싫어지겠죠. 어쩌면 평생. ”
“ 몰랐다. 나는 정말 몰랐단다. ”
“ 전지(全知)하다는 신이 어떻게 그런 것도 몰라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
“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나는……. ”
헤시우스가 말을 토하다 말고 콜록거렸다. 눈물에 목이 멘 모양이다.
그는 훌쩍거리면서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 한 번도 너에게 화가 났던 적이 없었으니까. ”
위그멘타르는 헤시우스처럼 먼저 나서서 사고를 치는 편은 아니었다. 헤시우스가 사고를 치고 돌아오면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면서 돌아섰다가, 헤시우스가 필사적으로 애교를 부리면 못이기는 척 화를 풀고 안아주었다.
음욕의 여신인 위그멘타르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평화의 신인 헤시우스뿐이었다. 충족되지 않는 끝없는 욕망은 오직 그의 품에 안겼을 때 평온을 되찾는다.
하지만 그런 환희와 쾌락을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에게 베푼 것을 알고, 위그멘타르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분노로 세상을 멸망시키려 했다.
헤시우스에게 세상은 그저 장난감일 뿐이라 미련이 없었으나, 그는 사실 그녀가 이 세상을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세상이 망가지지 않도록 그녀를 인간 여인의 몸에 봉인했다. 인간의 권능은 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신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은 믿음으로써 신의 존재를 지탱해주었기에 몸에 담는 것이 가능했다.
성녀의 몸에 봉인된 위그멘타르가 치솟는 음욕을 해소하지 못해 신전의 사제들과 문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을 보면서 헤시우스는 안타까워했다. 자신이 진정시켜주겠노라 몇 번이나 간청했지만 위그멘타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헤시우스가 말을 걸 때마다 보란 듯이 남자들과 섹스했다.
그것은 음욕의 여신인 그녀의 욕망을 해소하는 동시에, 자신을 괴롭게 만든 헤시우스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다.
인간을 자신의 분신이자 생명체로 인지하는 위그멘타르는 헤시우스의 외도에 분노했지만, 인간을 그저 도구나 장난감 정도로만 여겼던 헤시우스는 위그멘타르가 난교를 벌이는 것을 보고도 질투하지 않았다.
그의 관점에서 그녀는 그저 도구로 자위를 했을 뿐이다.
자신이 안아주면 그 욕구가 금방 해소될 텐데, 혼자서 고통스럽게 자위하는 그녀가 안타까웠다. 화가 풀렸다면 해방시켜줄 테니 대답하라고 말해도 위그멘타르는 응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다.
“ 미안하다, 위그멘타르. 정말로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
“ 미안한 줄 알면 왜 그런 짓을 해요? 왜 나를 화나게 했냐고요! ”
“ 아무리 화가 나도, 내가 매달리면 네가 용서해 주었으니까. ”
아리스텔라는 기가 막혀서 대답도 못하고 헤시우스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헤시우스는 그녀의 옷자락을 붙들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네가 용서해 주었으니까, 사랑받는 기분이 들어 기뻤단다. 잘하는 사람을 예뻐하기는 쉬워도 잘못하는 사람을 예뻐하기는 쉽지 않지 않으냐. 그래서……. ”
“ 계속 받아주니까 도를 넘은 거네요. 적당히 했어야죠. ”
“ 진실한 사랑은 상대가 무엇을 하든 받아주는 것이라고 그러지 않았더냐. 너와 내가 진실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단다. 나는 정말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어. ”
그녀가 무엇을 해도 분노하지 않는 그처럼, 그가 어떤 잘못을 해도 그녀가 용서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욕망이다.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으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으로 증명해야지, 어디까지 참아주는가 확인하려는 유치한 발상을 할 줄이야.
“ 진실한 사랑이라니 말도 안 되죠. 질투의 여신이면서 탐욕의 여신인 저를 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남자의 어디가 진실한 사랑을 하는 모습인가요? 안 믿어요. ”
“ 미안하다, 위그멘타르. 제발 용서해다오. 내가 안은 여자들의 혼을 전부 소멸시켜버리겠다. 그러면 내 마음을 믿어 주겠느냐? ”
“ 미쳤어요? 그 여자들이 무슨 잘못이에요! 모든 게 당신 탓인데! ”
아리스텔라가 깜짝 놀라 역정을 내자, 헤시우스는 또다시 납작 엎드려서 훌쩍거렸다.
‘ 기가 막혀서 정말……. ’
아무리 신의 뜻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아리스텔라에게도 예상 밖이었다. 갑자기 훅 열이 올라서 아리스텔라는 손부채질을 했다.
“ 더운 것이냐? 온도를 낮출까? ”
“ 나 아직 화 안 풀렸어요. ”
“ 미안하구나. ”
헤시우스가 다시 엎드렸다.
“ 나를 밟든 걷어차든, 채찍으로 때리든 목을 조르는 마음대로 하려무나. 제발 나에게 화를 풀어다오. ”
“ 당신을 때리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어차피 생명의 신인데. ”
“ 그럼……. 그럼 내가 대체 무엇을 해야 용서해주겠느냐? ”
치마 밑단을 붙잡고 꼼지락거리는 헤시우스의 손이 느껴진다. 아름답고 섬세한 손인데 얇은 성의를 붙들고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아서 이상했다.
아리스텔라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렸다. 납작 엎드려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약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만 했다.
“ 당신이 관계한 여자들은 전부 진실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여자들이죠? ”
“ 그렇단다. ”
“ 그 여자들을 행복하게 해주세요. 이번에야말로 진실한 사랑을 이루도록 말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