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210화 (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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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의 밀고 당기기

[210] 신과 인간의 밀고 당기기

에녹은 아리스텔라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침대 옆에 앉아 손을 잡아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는 그녀가 말한 「 손을 잡아달라 」는 말을 「 옆에서 다독여달라 」는 뜻으로 이해한 듯했다.

“ 성녀님.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

“ 전혀요. ”

넓은 품에 단단한 팔이 감싸주는 것만으로 안도가 된다. 아리스텔라는 눈을 감고 가만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규칙적인 심장소리가 들린다. 비록 성의를 입은 채라고는 해도 침대에서 이렇게 끌어안고 함께 누워있는데, 에녹은 여전히 그녀의 몸에 흥분하는 일 없이 담담했다.

‘ 아니, 차라리 이 편이 나아. ’

시종이란 온종일 성녀의 곁을 지키는 역할이다. 그녀의 몸에 금방 흥분하고 욕망을 내비쳐서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히페리온이나 조슈아는 욕구를 참는 일에 능했고, 로이드는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라고 명령했기에 임무수행 중에 그녀를 곤란하게 하지 않았다.

에녹에게 성욕이 거의 없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아리스텔라는 조금 아쉬워져 그의 등에 팔을 둘러 슬슬 쓰다듬었다.

‘ 에녹과는 궁합이 좋은 것 같아. ’

그녀의 몸에 욕정하지 않는 남자가 하나쯤 있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에녹의 품에 안겨 스르륵 잠이 들었다.

◇ ◆ ◇ ◆ ◇

낡은 오두막에서, 두 남녀가 몸을 겹치고 있었다.

“ 아, 아아……! ”

높은 교성이 울렸다. 낡은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래된 나무 천장은 군데군데 틈이 벌어져 낯설었다. 아리스텔라는 제 몸을 깔아누르는 남자의 탄탄한 육체에 손톱을 세웠다. 맞닿은 가슴 너머로 전해지는 심장의 고동이 뜨겁다. 헉헉 숨을 내뱉는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이것은 꿈일까. 또 누군가의 기억을 엿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 하으, 아……. 아직도, 아파? ”

“ 으응, 기분 좋아요……! ”

비족은 속살을 억지로 넓히며 들어온 남자의 성기. 제멋대로 안을 비비고 찌르며 움직이는 난폭한 행위에 아래쪽이 시큰거리며 한계까지 벌어진 입구가 아팠지만 이상하게도 쾌감이 더욱 컸다.

“ 너무 좋아요. 이대로, 제발……. ”

“ 후우. 이대로? 아니면 더? ”

“ 아아! 아, 너무 깊어……! ”

빳빳하게 선 기둥이 내벽을 훑으며 안으로 들어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귀두가 자궁경부를 찔렀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허리를 들썩이자 안을 찌르는 각도가 바뀌면서 성기가 더욱 깊숙이 박혔다.

“ 아앙! 아아아아! ”

쾌감에 이성이 날아갈 것 같다. 여자는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며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남자 역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억센 팔로 가녀린 몸을 끌어안는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에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어떤 얼굴인지 판별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었다. 여자가 할딱거리며 혀를 내밀자 남자가 입술을 겹쳐왔다. 서로의 혀가 얽히며 밑을 찌르는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 으으으응! ”

남자의 넓은 등에 붉은 손톱자국이 새겨졌다. 여자는 제 안을 누비는 쾌감과 고통에 신음하며 연신 허리를 놀렸다. 뜨겁게 젖은 아래쪽에서 질퍽이는 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그녀의 약혼자였다. 결혼 전까지 정절을 지킬 것을 약속했던 두 사람은 결국 약속을 깨고 몸을 섞고 말았다.

「 어차피 결혼하면 첫날밤을 치를 건데, 지금 미리 한다고 달라질 거 없잖아? 」

「 하지만 약속을……. 」

「 나는 지금 너를 안고 싶어. 너는? 」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을 원한다고 말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 좋아요. 」

아무도 오지 않는 낡은 오두막에서 성급하게 서로의 옷을 벗기고 몸을 더듬었다. 타인에게 보일 일이 없던 은밀한 부위를 애무하며 입술을 겹쳤다. 하나가 되는 순간에는 고통과 함께 아찔한 쾌감이 온몸을 덮쳤다.

“ 하으, 좋아요, 너무, 아아……! ”

“ 섹스가 좋은 거야, 내가 좋은 거야? ”

“ 당신이 좋아요, 흐윽……! ”

“ 나를 사랑해? ”

남자가 물었다. 여자는 있는 힘껏 그를 끌어안았다.

“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

가슴이 두근거리며 환희가 차올랐다. 여자는 남자의 허리에 제 다리를 감았다. 하반신이 얽히면서 서로의 성기가 더욱 밀착했다. 그의 성기가 깊은 곳까지 단번에 밀고 들어왔다.

“ 아아아아! ”

마치 벼락에 맞은 것 같았다. 처음으로 절정을 맞이한 여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교성을 지르며 몸을 떨었다. 이윽고 여자를 따라잡은 남자가 그녀의 안에 제 씨를 흩뿌렸다.

“ 하아. 하아……. ”

두 사람은 꼭 끌어안은 채로 절정의 여운을 만끽했다. 코를 비비고 입을 맞추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웃어보였다. 비록 결혼식까지 정절을 지키자는 약속을 깨버렸지만 죄책감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으니까.

“ 섹스가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인 줄 몰랐어요. ”

“ 하하. 그랬어? ”

“ 결혼식을 올린 뒤에는……. 매일 이렇게 안아주실 거죠? ”

사랑하는 남자와 하나가 되는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매일 밤 이렇게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두근거리는 기대를 담아 묻자, 남자의 표정이 흐려졌다.

“ 나와 자고난 다음에는, 누구와 자도 만족 못할 텐데. ”

“ 네? ”

남자가 씩 웃는다. 사랑으로 가득 찼던 눈동자가 차갑게 변했다. 맞닿은 가슴에서 느껴지던 격렬한 고동이 사라졌다. 남자가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모습이 변했다.

“ 헉……! ”

여자가 숨을 삼켰다. 그녀의 몸 위로 새하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부드러워 보이면서도 빛이 반짝이는 그것은 마치 하얀 폭포와도 같았다.

“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고서는, 그 남자와 결혼할 셈인가? ”

긴 백발에 황금색 눈동자.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눈이 멀어버릴 만큼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으로 처녀를 꾀어내어 하룻밤을 치르는 바람둥이 신의 이야기를. 세상을 창조하고 계절을 흘려보내며 만물을 생장하게 만드는 신의 유희는 바로 사랑에 빠진 젊은 처녀를 홀려 범하는 일이었다.

“ 아, 으……. ”

“ 뭐,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하하하. ”

아름다운 남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 웃음소리마저 맑고 청명했다.

진정한 사랑을 맹세한 여자의 앞에,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유혹하는 장난. 신의 속임수에 걸려든 여자가 스스로 그에게 안기며 쾌락에 신음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 변신한 모습도 알아보지 못하면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도 우습구나. ”

쿡쿡 웃으며 몸을 일으킨 남자는 침대를 벗어났다. 손짓 한 번에 하늘거리는 천이 생겨나 그의 몸을 휘감았다.

“ 결혼을 축하한다. 행복하게 살려무나. ”

입술에 손가락을 짚었다 떼며 키스를 날린 그가 몸을 휙 돌리자, 안개처럼 그 모습이 사라졌다.

“ 아, 아……. ”

낡은 오두막의 침대에 홀로 버려진 여자는 덜덜 떨면서 제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음부가 시큰거렸다. 무언가 미끈거리는 것이 흘러나와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 아아아악! ”

절망과 분노를 담은 비명이 텅 빈 오두막을 가득 채웠다. 목이 찢어지도록 절규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아무에게도 닿지 못했다.

◇ ◆ ◇ ◆ ◇

“ 허억! ”

깨어났을 때 아리스텔라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악몽을 꾸었다. 헉헉 숨을 고르며 소름끼치는 꿈속의 기억을 잊으려 하는데, 문득 커다란 손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 꺄! ”

“ 악몽을 꾸신 듯하군요. ”

에녹의 목소리다. 잠들 때까지만 곁에 있어달라고 했는데, 함께 잠들었던 것일까. 목소리에 졸음기가 없다. 설마 밤을 새운 것은 아니겠지. 아리스텔라가 슬며시 눈동자를 굴려 눈치를 보자, 에녹은 눈을 감아 시선을 피하며 아리스텔라의 몸을 쓸어내렸다.

“ 성녀님께서 저를 필요로 하시는 것 같아 곁에 있었습니다. ”

“ 에녹……. ”

“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죄송합니다. ”

“ 아니, 아니에요. ”

아리스텔라는 에녹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부드러운 옷자락에 얼굴을 묻고 숨을 고르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에녹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몸의 떨림이 진정될 때까지 그녀를 쓰다듬었다.

“ 에녹. 지금이 몇 시예요? ”

“ 슬슬 기상시간입니다. 아침을 들일까요? ”

“ 아, 아뇨. 아침은 좀……. ”

악몽에 몸서리치다가 겨우 진정된 참인데, 음식이 속에 들어갈 리 없었다. 아리스텔라가 고개를 가로젓자 에녹은 난감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 성녀님. 아침을 거르시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

“ 하지만 지금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

“ 흐음. ”

등을 쓰다듬던 손이 앞으로 돌아와 아리스텔라의 고개를 들어올렸다.

============================ 작품 후기 ============================

210, 211화 연참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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