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3 / 0219 ----------------------------------------------
음욕의 여신에서, 사랑의 여신으로
[203]
다음날 아리스텔라가 눈을 뜬 것은 두 남자의 품 속에서였다.
“ 으응……. ”
이불을 제대로 덮지 않았는데도 춥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난 아리스텔라는 눈가를 비비며 나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따스한 손이 어깨를 감싸고, 단단한 팔이 허리를 안고 있었다. 성녀의 방에 놓인 침대는 쓸데없이 커다랗기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황량할 만큼 넓은 침대가 도리어 딱 알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남자의 체온에 감싸인 상황이 싫지는 않지만, 이미 날이 밝았다. 히페리온은 또 새벽 기도를 건너뛰고 말았다. 로이드도 이제는 기사단장이라 기사단을 이끌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아리스텔라는 서둘러서 두 사람을 깨우기로 했다.
“ 로이드……. ”
“ 예. 성녀님……. ”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며 로이드가 그녀의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아리스텔라의 가느다란 몸을 끌어안자 품안에서 야들야들한 피부가 미끄러지는 감촉에 로이드는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깨끗하게 세탁해 햇볕에 말린 이불보다도 아리스텔라의 몸이 더욱 향기롭고 포근했다.
“ 으음……. ”
안고 있던 사랑스러운 연인을 빼앗긴 것이 허전했는지, 어느새 히페리온이 다가와 아리스텔라와 몸을 밀착했다.
졸지에 두 남자 사이에 꼭 끼어버렸다. 불러서 깨워야 하나, 몸을 움직여서 억지로 뿌리쳐야 하나, 아니면 많이 피곤할 테니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나. 아리스텔라가 고민하고 있는데 음부에 단단한 것이 와 닿았다.
“ 힉……! ”
하반신을 밀착하다 잠결에 뻣뻣하게 일어선 성기가 그녀의 아랫배와 음부를 자극했다. 그뿐인가, 반대쪽 역시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잠든 주인과는 달리 새벽 일찍 일어난 분신이 아리스텔라의 엉덩이를 찔러댔다.
“ 아읏, 히페리온……. ”
“ 성녀님……. ”
이름을 부르는 달콤한 목소리에 응답하며 히페리온이 슥 허리를 움직였다.
“ 흐앙! ”
엉덩이 골 사이를 슥 훑고 지나가는 따뜻한 성기의 감촉에 아리스텔라는 화들짝 놀라 울상을 지었다. 밤새도록 두 남자에게 정신없이 범해졌는데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또 이 수난이다. 아리스텔라는 조심조심 손을 뻗어 제 엉덩이 사이에 몸을 치대는 단단한 성기를 붙잡았다.
“ 읏……. ”
작은 손이 감아쥔 것만으로 자극을 받았는지, 히페리온의 입에서 긁힌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리스텔라는 로이드의 품에서 몸을 돌려 바로 눕고는, 제 허벅지에 육중한 몸을 문질러대는 두 남자의 성기를 손으로 감싸 살살 문질렀다.
“ 아, 성녀님……. ”
로이드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눈을 반쯤 뜨고 그녀를 바라보는 자주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아리스텔라는 로이드의 입술에 스치듯이 가벼운 키스를 하고는, 그의 성기를 감싼 손을 움직여 손바닥으로 귀두를 천천히 문질렀다.
“ 읏, 아아……. ”
손이 말라있어서 아프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모양이다. 성녀의 따스하고 말랑말랑한 손바닥이 기분 좋은지, 두 남자는 스스로 허리를 움직여 그녀의 작은 손에 제 분신을 문질렀다.
아리스텔라는 자세를 조금 바꾸어 허벅지 사이에 히페리온의 성기를 끼우고, 양손으로 로이드의 성기를 감쌌다. 허벅지를 꼭 닫아 압박한 채로 허리를 움직이면서, 양손을 엇갈리게 비비면서 로이드의 성기를 위아래로 문질렀다.
“ 흐읏! 아, 성녀님……! ”
로이드의 신음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귓가에 닿는 히페리온의 숨결도 아까보다 더 거치로 뜨거워졌다. 아리스텔라의 허벅지 사이에서 뜨겁게 맥동하는 것이 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 아앗……! ”
허벅지 사이로 드나드는 남자의 성기에 손을 뻗어 귀두를 문지르자, 히페리온은 짧은 신음과 함께 정액을 토해냈다. 손바닥에 토해낸 미끈거리는 정액을 문질러 바른 아리스텔라는 로이드의 성기를 쥐고 손 전체를 이용해 부드럽게 애무했다.
“ 아, 성녀님. 거긴……. ”
“ 으응, 괜찮아요. ”
아리스텔라의 입에서 떨어진 허락의 말을 이해했는지, 로이드가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크게 허리를 들썩였다. 그의 성기가 크게 꿈틀, 하더니 하얀 정액이 뿜어져 나와 손바닥을 적셨다.
“ 하으으……. ”
제 음부를 찔러대던 두 남자의 성기를 간신히 진정시킨 아리스텔라는 손을 씻기 위해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 성녀님. ”
“ 성녀님. ”
두 남자가 동시에 자신을 부르더니 꼭 끌어안는 바람에 일어나지 못하고 또다시 사이에 끼어버렸다.
“ 히페리온? 로이드? 일어나야죠. 아침인데……. ”
“ 새벽 기도는 이미 늦은 모양이니까요. ”
“ 성녀님. 이대로 한 번 더 해도 될까요? ”
방금 뺐는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일어나자마자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는 두 남자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어낸 아리스텔라는 당황해서 소리를 높였다.
“ 그만! 날 죽일 셈이에요? ”
아리스텔라가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직전이 되어서야 두 남자는 욕심을 부린 것을 사과하고 그녀의 뺨에 입을 맞췄다.
기어이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 아리스텔라를 로이드가 안고 욕실로 들어가고, 히페리온은 침대 정리를 맡았다.
더러워진 시트를 걷어내 요정들에게 세탁을 맡기고 차양을 걷어 끈으로 묶어 고정했다. 침대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모아 버리고는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열었다. 밝은 햇살이 쏟아지며 기분 좋은 아침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은 무척 날씨가 맑았다.
“ 음? ”
창가에서 밖의 풍경을 바라보던 히페리온은 문득 멀리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 불인가……. ”
“ 불이요? ”
어느새 다가온 아리스텔라가 히페리온의 옆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밖을 쳐다보았다. 아마도 손을 씻고 세수만 하고는 나온 모양이다. 로이드가 성의를 입혀주었는지 차림새는 단정했지만 간밤의 정사 때문일까, 달콤한 향기가 짙게 느껴졌다.
“ 히페리온. 저기 연기가 나는데요, 혹시 화재가 난 거 아니에요? 얼른 불을 꺼야……! ”
“ 저 규모라면 화재가 아니라 무언가를 태우는 중일 겁니다. ”
“ 뭘 태우는데요? ”
“ 글쎄요. 아마도……. ”
보통 물건을 태울 때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 일이라면 짚이는 부분이 하나밖에 없다.
“ 아론……인가. ”
“ 아론이요? ”
아론이 뭔가를 태우고 있다는 뜻일까? 전날 그에게 심한 말을 한 것이 기억난 아리스텔라는 가슴이 뜨끔했다.
“ 저, 내려가 볼래요! ”
“ 성녀님? 잠깐만요! ”
아리스텔라는 머리도 빗지 않은 채로 후다닥 문을 열고 뛰어 내려갔다. 머리를 감고 나온 로이드가 황당한 얼굴로 히페리온을 바라보자, 히페리온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두 남자는 옷차림도 제대로 가다듬지 않고 서둘러 성녀의 방을 빠져나왔다.
◇ ◆ ◇ ◆ ◇
연기가 나는 곳은 성녀가 머무는 중앙 건물과 사제들이 머무는 동쪽 건물 사이의 공터였다. 회랑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회랑은 양 옆이 탁 트인 덕분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위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하얀 성의를 입은 사제가 무언가를 태우고 있다.
“ 거기서 뭘 하는 거예요? ”
“ 아, 성녀님! ”
사제가 몸을 일으켜 아리스텔라 쪽을 바라본다. 반짝이는 금발에 붉은 눈동자. 크리스였다.
“ 크리스! ”
사제치고는 성의가 조금 간소하다 싶었지만 설마 크리스일 줄이야. 히페리온이 아론의 이름을 말하기에 분명 아론이 무언가를 태우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아리스텔라는 의외의 인물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크리스는 바닥에 장작을 모아 불을 붙이고 무언가를 태우고 있었다. 하얀 옷자락이 금빛으로 반짝이며 새하얀 연기를 뿜어낸다. 타닥타닥. 직물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 크리스, 지금 뭘 태우는 거예요? ”
“ 아론 신관님의 성의입니다. 태워달라고 부탁하셔서요. ”
“ 아론의 성의요? ”
새하얀 옷자락을 보고 설마 성의가 아닐까 싶었지만, 아론의 성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더 이상 입지 않는 성의는 불에 태워야 하니까요. ”
성의는 신성력으로 지어진 옷, 사제가 입기 위해 만들어진 옷이다. 신의 축복이 깃든 성의는 오직 한 벌만이 존재하며, 새로운 성의를 얻거나 더 이상 입지 않게 되면 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낸다.
타들어가는 성의에서 피어오르는 금빛 연기는 아론의 눈동자 색을 닮았다. 평범한 옷이라면 까맣게 잿더미가 되어버릴 텐데, 신성력이 깃든 성의는 불에 탈 때조차 아름다운 황금색으로 빛난다.
‘ 아론이 정말로 떠나는 거구나. ’
교황 발레리아누스가 입는 성의는 신전 위그멘타르의 사제들이 입는 것과는 달랐다. 신전을 떠나 교황청으로 돌아가면 아론은 교황청에서 지급한 새로운 성의를 입을 것이다.
한 번 들어오면 일생 나갈 수 없다는 여신 위그멘타르의 폐쇄된 신전. 아론은 두 번이나 이 신전을 빠져나가는 예외가 되었다.
‘ 몸을 섞으면 상대의 진심을 알 수 있다고 여겼는데. ’
아론과 몸을 섞었던 첫 시험의 밤. 아리스텔라는 아론에게 안겨 몇 번이나 절정에 올랐다. 그녀를 타락한 성녀라 매도하고 순결함을 증명하라던 고압적인 태도와는 달리, 아론의 애무는 무척 정중했다.
< 우리는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예요. >
그렇게 느낀 것은 자신뿐이었나. 어쩐지 감정이 북받쳐 아리스텔라는 옷소매를 꼭 붙들었다. 제가 먼저 아론에게 신전을 나가라 말해놓고 막상 그가 떠나려 주변을 정리하자 아쉬운 기분이 든다니.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아리스텔라는 깊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었다. 최대한 의연한 얼굴로 크리스에게 물었다.
“ 크리스. 아론은 어디 있나요? 교황 성하와 함께 떠나는 거라면 작별 인사를……. ”
“ 아론은 저와 함께 가지 않습니다. ”
대답은 그녀의 뒤에서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삼중관을 쓴 교황 발레리아누스와 하얀 제복을 입은 클로비스가 서 있었다.
“ 교황 성하, 클로비스. ”
“ 떠나는 것은 제 쪽인데, 정작 제게는 작별 인사를 건네주지 않으시는군요. ”
클로비스가 아쉬운 듯이 불평했다. 아리스텔라는 살짝 고개를 숙여 미안함을 표현했지만, 지금은 클로비스에게 인사하기보다 아론의 상태가 궁금했다.
“ 교황 성하. 아론이 떠나지 않는다니 무슨 말씀이에요? ”
“ 말 그대로입니다. 떠나는 것은 저와 여기 있는 클로비스 경, 두 사람이지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
발레리아누스가 어깨를 으쓱하자, 클로비스가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아리스텔라는 다시 고개를 돌려 타들어가는 성의를 확인했다. 사제의 성의는 지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새하얀 옷자락의 끝에 놓인 자수와 영대는 분명 신관의 것이었다. 그것이 히페리온이나 조슈아의 것이 아님은 한 눈에 보아도 알 수 있다.
“ 하지만 지금 크리스가 태우고 있는 것은 아론의 성의잖아요. 분명히 이 신관복은……. ”
“ 그야 더는 신관복을 입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
“ 네? ”
“ 사제가 아닌 자가 신관이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
============================ 작품 후기 ============================
오타를 수정했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