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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험의 밤
[197]
살다 보면 인간은 이따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나 아리스텔라에게는 사실상 선택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단 하나의 선택지가 주어졌고, 그 선택을 받아들이는가, 피하고 도망치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아리스텔라는 도망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단 하나뿐인 그 선택지를 잡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늘 못마땅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여러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아리스텔라는 당황했다. 늘 하나의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와는 다른 욕심이 생겼다. 어느 하나를 택하면 다른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이 싫었다.
< 사랑하는 사람은 꼭 한 사람이어야만 하는 건가요? >
조슈아의 조언은 아리스텔라에게 구원과도 같았다. 그녀 자신의 탐욕을 합리화할 근거가 되었다. 전대 성녀를 범한 사제들이 성녀의 타락을 자기합리화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성녀 아리스텔라는 모두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이기심을 ‘ 마음을 거절당한 사람이 상처받는다 ’며 포장했다.
잔인한 일이었다.
“ 선택하십시오, 성녀님. 누구를 당신의 곁에 둘 것인지. ”
“ 으응, 흐아아……! ”
저절로 허리가 뒤로 꺾였다. 발레리아누스가 뒤에서 안아주지 않았더라면 분명 넘어졌을 것이다. 아리스텔라의 저항이 한층 약해진 것을 확인한 발레리아누스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고 신성력을 흘려보냈다.
“ 아! 그만, 안 돼……! ”
아프게 움켜쥔 것은 아니었다. 매끄러운 손은 정성스럽게 가슴을 주물렀지만 맞닿은 피부를 통해 흘러든 신성력은 아리스텔라의 몸속을 가차 없이 휘저으며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어제처럼 여신 위그멘타르에게 몸을 빼앗겨, 로이드와 히페리온 앞에서 교성을 지르며 허리를 흔들게 될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자신의 흐트러지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는 일에 거부감이 있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니는 수치심일 것이다. 섹스하는 상대에게 제 치부를 보이기까지도 한참이 걸렸다. 그러나 아직도, 그것을 제삼자에게 보이는 것만은 저항이 있었다.
어제와 같은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인간이기 때문에 가지는 수치심과는 또 다른 감정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고개를 쳐들었다.
“ 아아! 싫어어! ”
“ 성녀님! ”
결계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로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리스텔라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쾌감을 참으며 소리쳤다.
“ 괜찮아요, 로이드! 저는, 괜찮으니까, 아흣! ”
발레리아누스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은 아리스텔라의 몸속 구석구석을 핥듯이 간질이며 몸 안을 배회한다. 참을 수 없이 간질간질하면서도 찌르르한 쾌감이 퍼져 아리스텔라는 고개를 비틀었다.
“ 아, 아아……. ”
“ 잘 참고 있군요. ”
아리스텔라의 목에 입술을 꾹 억누른 발레리아누스가 여린 살결을 깨물고 빨아들였다.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피부에 붉은 멍이 생겼다. 발레리아누스의 입술이 닿은 자리마다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 성녀님. 당신은 누구를 선택하실 겁니까? ”
“ 으응, 응……! ”
음순을 벌리고 들어온 아론의 혀가 질 입구에 파고들자, 아리스텔라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아직 정사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부위를 축축하고 긴 혀가 더듬어간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는 것이 입구를 들락날락하는 자극에 또다시 음부가 욱신거리면서 젖어들기 시작했다.
“ 아, 아응……! 하으응……. ”
“ 대답해 주십시오. ”
음순 사이를 훑던 아론의 혀가 위로 올라와 클리토리스를 문지르자, 오싹한 쾌감이 아랫배를 타고 피어올랐다. 아리스텔라는 쾌감에 비명을 지를 것 같은 것을 이를 악물고 참았다.
“ 아, 아아! ”
애액을 흘리는 입구에 파고든 긴 손가락이 천천히 왕복하며 물소리를 냈다. 온몸에 땀이 흐르고 긴장으로 허벅지가 떨려왔다. 저절로 허리가 앞뒤로 움직였다. 한껏 예민해진 속살을 비비는 손가락이 각도를 바꾸어 안쪽을 찌를 때마다 입에서는 가느다란 신음이, 아래서는 뜨거운 애액이 흘러나와 허벅지를 질척질척하게 적셔간다.
“ 로이드입니까? 아니면 대신관 히페리온? 그것도 아니면……. ”
“ 아응, 누구 한 사람을, 택하지는, 않을 거예요……! ”
“ 욕심이 많은 성녀님이시군요. 그들이 당신을 사랑하여 독점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계시면서도. ”
“ 흐응, 읏……. ”
로이드는 처음 아리스텔라가 알몸으로 방에 뛰어들어 왔을 때, 그녀가 다른 남자와 몸을 섞은 사실을 알고 분노했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을 곁에 두라고 애원했다.
크리스는 사제들이 성녀에게 정화의 의식을 베풀 거라며, 함께 도망치자고 말했다. 다른 누구도 가까이하지 말고, 자신 하나만 곁에 두고 사랑해달라고 말했다. 아리스텔라가 그의 마음을 부정하자 상처받은 크리스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아론과 세 번의 밤을 보내겠다고 내기했을 때, 케인이 보였던 비통한 얼굴이 떠오른다. 만약 아리스텔라가 분노하여 사제들을 내치겠노라 선언했다면, 아마 케인은 망설임 없이 사제들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누군가가 상처받고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비록 누군가 자신을 상처 입혔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복수로 남을 괴롭히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자신이 특별한 인격자여서가 아니다. 오히려 아리스텔라는 자신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벌을 내리고 원망을 사기보다, 차라리 빚을 남겨두는 형태로 자신 앞에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를 원했다. 미안해서든 용서받기 위해서든, 잘못을 저지른 계기로 그녀에게 더욱 다정하게 대해주기를 원했다. 악행에 벌을 내리기보다 그것을 빌미로 자신의 만족을 채운다니, 이렇게 탐욕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 내가 그 사람들을 처벌하고 마음을 잘라냈다면, 계속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을지도 몰라. ’
사랑받고 싶었다. 한 남자의 여자가 되지 못한다 해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사랑해주길 원했다. 마음을 접어두지도 못하고, 그녀를 완전히 독점하지도 못한 채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죄를 범한 남자들에게 아리스텔라가 내리는 진짜 벌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뭇 남자들의 마음을 농락하고 그들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자신의 죄는 어떻게 갚아야 할까. 지금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한 두 남자의 앞에서 능욕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신이 받는 벌일까.
“ 성녀님. 당신은 이대로 이 신전의 모든 이들이 질투와 탐욕에 타락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
“ 아응, 아읏, 하……. ”
아론의 어조는 담담했지만 어딘가 꾸짖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속살을 비비는 움직임이 빨라졌다. 아리스텔라는 발레리아누스의 품안에서 바르작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발레리아누스의 품에 안겨 아론에게 음부를 애무받고 있는 황당한 상황인데도, 전신에 피어오르는 쾌감은 너무나 아찔해서 금방이라도 정신을 빼앗길 것 같았다.
아리스텔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쾌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 로이드에게, 히페리온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 저는, 누구도 상처입기를 바라지 않아요……! ”
아리스텔라는 이기적이었다. 그리고 무모했다. 그녀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바보였는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모두의 관심과 애정이 자신에게 쏠리기를 바라면서도, 그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질투하지 않고, 마음을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
허무맹랑한 생각이다. 그녀에게 사랑한다며 고백해온 그들이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버티지 못할 거면서, 자신은 여러 남자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한다니.
“ 당신의 이런 음란한 모습을 다른 종들이 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 흐윽, 보이지, 않을 거예요……! ”
고집을 부리는 것이 귀엽다는 듯 쿡쿡 웃는 소리가 들린다. 발레리아누스는 그녀의 귓바퀴를 핥으며 잔인하게 속삭였다.
“ 과연 당신의 종들이 참을 수 있을까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당신을 범하는 자의 가슴을 꿰뚫고 목을 잘라내어 고깃덩이로 만들고, 자신만이 당신을 범할 자격을 얻겠다고 날뛰겠지요. ”
“ 그렇지 않아요, 로이드는……! ”
“ 로이드 뿐만이 아니지요. ”
아론이 냉정하게 대답했다.
“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녀님. 강하고 고고한 사람일수록 한 번 무너져 내리면 다시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법입니다. ”
로이드, 크리스, 케인. 조슈아에 이자크. 간밤에 사랑을 고백한 노엘과 히페리온까지. 과연 그들 가운데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이는 이가 있을까.
“ 지엄한 여신이 한낱 인간의 몸에 갇혔을 때부터, 이미 여신 위그멘타르는 타락한 존재였습니다. 남편인 헤시우스를 외면하고 당신을 따르는 종들과 음란한 관계를 가졌던 것도. ”
아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발레리아누스의 신성력 때문일까, 눈앞이 어지러웠다.
“ 당신을 사랑하는 종들 앞에서, 다른 남자의 손길에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는 지금과 대체 무엇이 다릅니까? ”
“ 흐앙, 아니에요! 나는, 아으응! ”
아론의 긴 손가락이 성감대를 꾹 누르자, 불시에 허리가 튀었다.
“ 아아, 아아아앙! ”
아랫배가 저절로 실룩거리며, 마치 제 의지를 가진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그저 손가락으로 누른 것뿐인데도 온몸이 떨려왔다. 오줌이 나올 것 같다. 아리스텔라는 울상을 지으면서 발레리아누스의 옷소매를 꽉 움켜쥐었다.
“ 나, 나는 타락하지, 않았으니까, 으응! ”
“ 성녀님의 신성력은 실로 정결합니다. 하지만 그 몸에 봉인된 여신이 타락한 존재라면, 결국 신성력의 정순함은 타락의 증거일 뿐. ”
“ 그렇다면, 내가……! ”
성감대를 자극하는 손가락에 혀를 깨물 것 같아, 아리스텔라는 입을 다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짧은 절정이 연속으로 그녀의 음부에서 머리끝까지 쭉 지나갔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빛이 번뜩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리스텔라는 정신을 잃지 않고 버텨냈다. 여기서 질 수는 없었다.
“ 내가, 여신 위그멘타르를 정화할 거예요! ”
쾌감으로 인한 흥분과 궁지에 내몰린 자제력이 만든 울음이 뒤섞여 불분명한 발음이었음에도, 그녀가 말하는 의미만은 모든 사람의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안쪽을 쑤시던 손가락의 음직임이 멈추었다.
“ 허억, 헉. 흐으으……. ”
아리스텔라는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하고 발레리아누스에게 기댄 채로 헐떡거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쾌감에 잠식되는 일 없이 여전히 맑았다.
“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질투에, 탐욕에 잡아먹히지 않게……. ”
인간이 신을 정화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애당초 그것이 가능했다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권능을 가진, 생명과 평화의 신 헤시우스가 그녀를 정화했을 터였다.
그러나 아리스텔라는 인간의 몸으로 오만하게도, 제 안의 신을 정화하기로 결심했다. 분명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그녀를 사랑하는 모든 남자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이미 상식은 소용이 없어졌다. 그러니 ‘ 불가능하면 포기하라 ’는 세간의 상식 또한, 잊어버려도 좋은 것이 아닐까.
“ 내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진행이 밀려서…우선 다음 챕터를 쓰고 보충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원고료 쿠폰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