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96화 (19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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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험의 밤

[196]

“ 꺄아아아! 싫어어어! ”

“ 성녀님! ”

콰직!

성검을 뽑아든 로이드가 은색의 검날에 신성력을 두르고 결계를 내리쳤다. 그러나 결계는 이번에도 몽글몽글하게 뭉그러지며 검을 따라 푹 패일 뿐, 찢어지지 않았다. 로이드를 닮은 은빛 성검의 날이 퍼렇게 번뜩이는 것을 본 발레리아누스는 곤란한 듯이 웃음을 흘렸다.

“ 저것 보십시오, 성녀님. 당신의 종들의 모습을. ”

“ 아으응, 대체 무얼……? ”

네 남자 앞에서 알몸이 되어 희롱당하던 아리스텔라의 턱 끝을 잡고, 발레리아누스는 천천히 그녀의 고개를 들었다. 무서운 얼굴로 성검을 뽑아든 로이드가 보였다. 그 뒤에 있는 히페리온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 저렇게 사랑에 미친 종들을 곁에 두셨다가는, 언제고 큰 화가 미칠 겁니다. ”

“ 교황 성하……. ”

“ 아론 신관이 결계로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벌써 저 날카로운 성검에 목이 잘려나갔겠지요. ”

로이드는 성기사다. 그가 사제를, 그것도 교황을 죽일 리 없다. 하지만 아리스텔라는 그 말을 소리 내 말할 수 없었다. 격정적인 분노로 타오르는 자줏빛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오싹할 정도의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로이드를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 무섭고 놀라서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때도 저런 눈빛을 했던 것 같다. 아리스텔라를 능욕하던 무뢰배들을 베어버렸을 때도, 분명히.

“ 신의 사랑은 자애롭고 영원한 것이나 남녀간의 애정은 그렇지 않지요. 독점욕이 싹트고 탐욕과 질투가 일면,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평화의 균형도 깨져버립니다. 그들이 당신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해치도록 내버려두시렵니까? ”

“ 아니, 나는…, 아앙! ”

턱을 고정하던 발레리아누스의 손이 스르륵 밑으로 내려가 말랑한 가슴을 움켜쥐자, 로이드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 성녀님에게서 그 손을 떼라! ”

은색의 성검에 깃든 신성력이 보다 날카로워졌다. 사제만큼은 아니라도 로이드는 보통의 성기사보다 훨씬 뛰어난 신성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이대로는 아론의 결계를 깰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는 방법을 바꾸었다. 단지 검을 예리하게 만들기 위해 둘렀던 날카로운 신성력이 톱니 모양으로 삐죽삐죽하게 바뀌었다.

그것을 본 발레리아누스가 난감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 이런. 아론 신관. 저러다가 결계가 깨지지 않겠습니까? 저는 시험에 응하겠다고 했지 성기사에게 살해당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

“ 성검이라면, 괜찮습니다. ”

마법에는 상성이라는 것이 있다. 성검은 본래 신에 반하는 마수를 물리치기 위해 벼려진 것. 성검으로는 결코 신성력의 결계를 베어낼 수 없다. 로이드가 신성 마법으로 검을 날카롭게 만들수록 결계를 베는 일은 어려워질 것이다.

“ 타락하며 마검이 된다면 모르겠지만요. ”

쿵.

아론의 말에 아리스텔라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 로, 로이드! 안 돼요! ”

“ 성녀님! ”

“ 검을 거두세요! 지금 당장! ”

아리스텔라는 로이드를 믿었다. 그는 최고의 성기사이자 그녀의 은인이었다. 아름답고 강인하며 고고한 성기사는 결코 함부로 사람을 해지지 않는다. 아리스텔라는 로이드가 타락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리스텔라에 관계된 일에 한해서, 로이드는 종종 이성을 잃고는 했다. 지금의 그라면 그녀를 구하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 검을 거두세요, 로이드! 명령이에요! ”

절규와도 같은 외침에 로이드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명령. 그녀를 능욕하는 남자를 눈앞에 두고 검을 거두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로이드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크으읏……! ”

예전의 그였다면 성녀의 명령을 듣기보다 제 감정을 앞세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이드는 두 번 다시 그녀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제멋대로 날뛰는 분노와 질투를 억누르기 위해 수행을 하지 않았던가.

검을 쥔 손등에 힘줄이 불끈 튀어나왔다. 로이드는 결계 안의 아론과 발레리아누스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는, 성검에 둘렀던 날카로운 신성력을 거두었다.

“ 이야, 충직한 번견을 두셨군요. ”

약간의 감탄과 비아냥을 담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 로이드는 저를 지키는 성기사예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

“ 후후후.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

전혀 미안하지 않은 음성으로 사과하면서, 발레리아누스는 느긋하게 그녀의 몸을 쓰다듬었다. 야들야들한 살결이 남자의 손이 스칠 때마다 바들거리는 느낌이 참을 수 없이 기분 좋았다. 애틋하고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더욱 괴롭히고 싶어진다.

“ 이 신전 안에서 성녀님께 반하지 않는 남자는 없을 겁니다. ”

이 향기로운 몸에 취한다면 누구라도 정신이 날아갈 법했다. 외부인인 클로비스마저 그녀에게 반하지 않았나. 발레리아누스는 아리스텔라의 주위에 남자를 두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 사랑에 미친 남자는 야생의 짐승과도 같아서― 자신의 여자를 타인과 공유하는 것을 참지 못하지요. ”

제아무리 금욕과 절제를 신념으로 삼는 자라도 근본적인 욕구를 억누르는 것은 어려웠다. 질투와 탐욕, 음욕 또한 신이 인간을 위해 준비한 감정의 일부. 절제할지언정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 제가 이렇게 당신의 몸을 만지는 것만으로 분노하여 검을 뽑는데, 과연 성녀님이 이 신전에서 다른 남자를 품는 모습을 목격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

“ 흣, 아……. ”

“ 당신의 사랑스러운 종이, 또 다른 종을 베는 것을 묵인할 생각이신지요? ”

가슴의 첨단을 간질이던 손끝이 천천히 내려와 아랫배를 쓰다듬자, 아리스텔라는 작게 몸을 움찔거리면서 숨을 삼켰다.

“ 아으응, 흐아……. ”

“ 성녀님. 당신을 사랑하는 종들은, 종국에는 사랑에 미쳐 당신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죽일 겁니다. ”

“ 그렇지, 않아요……. ”

“ 아뇨. 그럴 겁니다. 전대 성녀님의 종들이 그러했듯이. ”

아론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그가 어느새 그녀의 앞에 다가와 서 있었다.

“ 신의 사랑은 무한하나 인간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

“ 아론……. ”

“ 사랑하는 여인을 독차지하려는 남자의 마음이 얼마나 지독하고 잔인한 것인지 알고 있습니다. ”

조슈아는 아리스텔라에게 사랑하는 것이 반드시 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신이 수많은 종을 부리는 것과 같이, 그녀 또한 이 신전의 모든 종들을 품어주면 되는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자신이 그럴 수 있을까.

여신 위그멘타르는 음욕의 여신이며 또한 탐욕의 여신이었고 질투의 여신이었다. 성녀가 음욕을 느껴 쾌락을 갈구하면 그녀를 따르는 사제와 성기사들도 욕정하게 된다. 그러니 그들이 여신의 욕망에 감응하며 성녀를 독차지하려는 탐욕을 품고 그녀의 은총을 받는 다른 이들을 질투하는 것 또한 당연할 것이다.

“ 보십시오, 성녀님. 저들의 눈빛을. ”

아론과 발레리아누스를 향해 찌를 듯이 날카로운 시선이 쏟아졌다. 그것이 로이드의 눈빛인지, 히페리온의 눈빛인지 정신이 혼미한 상태의 아리스텔라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강렬한 감정이 발레리아누스에게도, 아론에게도, 자신들에게도 위협이 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 이 결계가 보호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당신을 탐하려 한 저희 두 사람을 도륙내고 붉은 피를 뒤집어쓴 채로 당신을 범하려들 것입니다. ”

“ 아, 아니에요! 로이드는 제 명령을 따라서……! ”

“ 지금은 참고 있지만, 과연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요? ”

아론이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천천히 뻗은 손이 아리스텔라의 허벅지에 닿았다. 단단한 남자의 손바닥이 매끄러운 허벅지를 쓰다듬자 저절로 음부가 시큰거리며 다리가 벌어졌다.

“ 흐으응……! ”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발레리아누스의 신성력이 어지럽힌 몸은 평소 이상으로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리스텔라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깨물었다.

“ 당신을 범하고 이 결계 밖으로 나가는 순간 목숨이 달아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

“ 아니에요. 그렇지, 않, 하으응! ”

촉촉하게 젖어들기 시작한 음부에 긴 손가락이 닿았다. 아직 꽉 다물린 상태의 음부를 손끝으로 천천히 문지르더니, 애액으로 젖은 음순을 벌리고 물컹한 것이 파고들었다.

“ 흐, 아아아……! ”

“ 성녀님. 당신을 섬기는 자들을 생각하신다면, 차라리 일생을 함께할 한 사람을 선택해 주십시오. ”

“ 으응, 무슨……. ”

“ 저는 전대 성녀님의 비극이 되풀이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

아론의 무거운 목소리에 시선을 내리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억센 짧은 검은머리에 넓은 어깨, 단단한 몸. 붉은 혀를 길게 빼 정성스럽게 음부를 핥아 올리던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론의 황금색 눈동자를 보고, 아리스텔라는 북쪽 지하를 탐방할 때 결계에서 만났던 사제를 떠올렸다. 전대 성녀를 모시던 아론을 닮은 사제. 그는 분명히 성녀에게 < 자신을 선택해달라 >고 말했다.

선택이라니. 그를 선택하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아니, 애초에 그는 어째서 성녀에게 선택받기를 원했나?

‘ 독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에. ’

전대 성녀를 사랑한 시종이 그녀를 구하려다가 실패해, 결국 모두가 처참한 말로를 맞이했다는 비극. 하지만 아리스텔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전대 성녀를 사랑하여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 시종 하나뿐이었을까.

‘ 진심이었구나. ’

전대 성녀를 모시던 사제와 성기사들이 그녀를 능욕한 것은 단지 육욕에 사로잡혔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성녀를 사랑했다. 자신을 어쩌지 못할 만큼 그녀에게 빠져버렸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들은 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다. 성녀에게 욕정하고 그녀를 안는 타인을 질투하며 가슴에 불길이 이는 것이 어째서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을 어지럽히는 격렬한 감정의 이름을 몰랐던 그들은 주체할 수 없이 들끓는 음심과 질투를 타락한 성녀의 탓으로 몰았다. 그녀를 매도하고 끊임없이 범했다.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성녀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여신의 저주를 받은 것은 성녀 밀리아리아 뿐만이 아니었다. 성녀의 시야에서 빛이 사라지고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사제들 또한 같은 저주를 받았다. 평생을 섬겨야 할 주인이라는 빛을 잃고, 사랑하는 그녀를 괴롭힘으로써 자유와 행복을 잃어버렸다.

그것이 바로 여신 위그멘타르가 만든 < 재앙 >이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원고료 쿠폰 모두 감사합니다.

여기서 끊기 미묘한 내용이라 한편 더 올리려고 했는데…작성하는데 생각 외로 시간이 많이 걸려 다음화는 오후 쯤에 올라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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