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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험의 밤
[195]
“ 남녀 간의 애정이라는 것은 주인을 따르는 종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성녀님? ”
처음에는 히페리온과 키스하는 모습을 들켰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어쩐지 그가 자신을 얕잡아보는 듯이 묻자 아리스텔라는 조금 울컥했다. 그를 기다리게 한 것은 미안하고, 이렇게 회랑에서 히페리온과 부끄러움 없이 키스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민망하긴 하지만, 비웃음당할 만한 짓을 하지는 않았다.
불쾌감을 미처 다 숨기지 못한 채, 아리스텔라는 조금 날카롭게 대답했다.
“ 제 몸에 봉인된 위그멘타르는 음욕의 여신이에요. 성욕을 참기 어렵다는 것을 교황 성하께서도 알고 계시잖아요. ”
“ 제 몸으로 확인했으니 물론 알고 있습니다. ”
구태여 꼬집지 않아도 될 기억을 끄집어내는 발레리아누스의 말에 아리스텔라는 확 얼굴을 붉혔다가,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돌렸다.
“ 저는 제 본분에 맞게, 여신의 음욕을 정상적인 형태로 풀려고 하는 것뿐이에요. ”
“ 아니요. 성녀님. 그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
고개를 가로저은 발레리아누스가 아리스텔라의 손을 잡아끌었다. 마치 히페리온으로부터 빼앗듯이.
겨우 가까워졌던 두 사람의 거리가 다시 멀어졌다. 늘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했던 히페리온이다. 교황청에서는 한 번도 내비친 적 없는 쓸쓸함과 아쉬움이 어린 붉은 눈동자를 보고, 발레리아누스는 조금 당황했다.
히페리온은 말 그대로 사제의 모범과도 같은 자였다. 그 자신에게 야욕이 없어 여신 위그멘타르의 신전 대신관이 되라는 명을 따랐을 뿐, 만약 교황청에 계속 남아있었더라면 교황 후보가 되어 발레리아누스와 경합을 벌였을 것이다.
‘ 그 히페리온이 이렇게 될 줄이야, 전대 교황께서 아셨다면 통곡을 하시겠군. ’
음욕의 여신을 섬기는 사제다. 여신의 욕망에 반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욕구와 마음은 별개의 것. 발레리아누스는 히페리온이 사제의 계율을 깨고 성녀와 밤을 보냈다는 것보다도, 그가 성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 차라리 그저 욕구를 풀기 위한 행위였다면 눈감아드릴 수 있습니다만, 이건 정말로 곤란하게 되었군요. ”
느긋하게 말하고 있지만, 발레리아누스의 하늘색 눈동자는 사뭇 진지했다.
대신관 히페리온과 기사단장 로이드. 거기에 외부인인 클로비스까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 신전에 성녀 아리스텔라에게 반한 사내는 몇 명이나 있을까. ‘ 아직 ’ 반하지 않은 사내가 과연 앞으로도 반하지 않을까. 발레리아누스는 선뜻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 없었다.
“ 성녀님. 본래 당신은 이 폐쇄된 신전에서 한평생을 수많은 종들과 함께 하셔야 하는 운명입니다. ”
“ 알고 있어요. 도망치지 않겠다고 말했잖아요. ”
“ 그러나 그 가운데 성녀님께 특별한 감정을 가지는 이들이 나와서는 이 신전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
“ 네? ”
성녀의 대역을 세우고 클로비스와 함께 도망가는 것을 아리스텔라는 거부했다. 그녀는 이 신전의 결계가 사라지고 닫힌 문이 열리더라도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발레리아누스는 그렇게 둘 수 없었다.
“ 교황 성하.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이 신전을 유지할 수 없다니……. ”
“ 사제와 성기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더는 당신을 이 신전에 모실 수 없다는 말입니다. ”
“ 하지만 분명 이 신전은 재앙의 여신을……아읏! ”
남자의 손이 가슴을 움켜쥔 탓에 말이 끊겼다. 발레리아누스의 손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얇은 성의를 넘어 피부에 스며들자, 아리스텔라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
“ 흐앗, 아응! ”
“ 성녀님! ”
로이드와 히페리온이 아리스텔라를 부르며 다가서려 했지만, 아론이 두 사람을 만류했다.
“ 성녀님께서는 저와 약속을 하셨습니다. 제가 보내는 사제와 세 번의 밤을 보내겠다고 말이죠. ”
“ 하응, 아론! 잠깐만요, 지금 여기서는……! ”
“ 교황 성하를 상대하는 것이 싫으시다면 말씀하시지요. 제가 안아드리겠습니다. ”
아론이 로이드와 히페리온을 뒤로하고 발레리아누스와 아리스텔라를 향해 다가가자, 발레리아누스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 그건 너무 매정한 소리로군요. 아론 신관. ”
미간을 좁히며 퉁명스럽게 말하는 젊은 교황의 말을 흘려 넘기며 아론이 성호를 그었다. 그러자 투명한 막과 같은 결계가 세 사람을 둘러쌌다. 로이드와 히페리온을 밖에 버려둔 채로.
“ 아론, 대체 왜 이러는 거예요? ”
“ 성녀님 당신이 타락하지 않아도, 당신을 모시는 이들은 반드시 타락하게 됩니다. ”
“ 그렇지 않아요! ”
“ 그 점은 교황 성하도 동의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 시험 >에 응하신 거고요. ”
“ 시험, 이라니……. 흐앗! ”
교황 발레리아누스가 아리스텔라의 귓전에 한숨을 불어넣었다. 따스한 숨결에 섞인 신성력이 귓속을 파고들어와 머릿속을 휘젓는다. 정신이 아찔해져 다리에 힘이 풀린 아리스텔라의 몸을 추슬러 안고 목덜미에 입을 맞추자, 그녀가 가늘게 비명을 질렀다.
“ 하, 아으! 이러지 마세요……! ”
“ 성녀님! ”
로이드가 아리스텔라를 부르며 결계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투명하고 얇은 비누방울 같은 막인데도, 물컹물컹한 표면은 내리치는 충격을 흡수해 뭉그러졌다가 손을 떼면 원상태로 되돌아간다.
신성력의 총량이 가장 많은 것이 히페리온이고, 신성력의 특성에 가장 해박한 것이 조슈아라면, 아론은 이 신전에서 가장 신성력의 컨트롤이 뛰어난 신관이었다. 평범한 방식으로는 결코 그의 결계를 찢을 수 없었다.
“ 대신관 히페리온은 사제의 모범이라고 부를 만큼 훌륭한 사제였고, 기사단장 로이드 또한 역대 최고의 성기사라고 칭송받았습니다. 그런 이들이 당신에게 마음을 빼앗겨 타락했는데, 전대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
“ 저를 따르는 사람들이 타락할 리가 없잖아요! ”
전대의 비극이라니, 히페리온이나 로이드는 전대 사제들처럼 억지로 그녀를 범하고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학대하고 흉계를 꾸미는 시종을 지하에 감금해 굶겨죽이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이 타락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리스텔라는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 제가 타락하지 않았듯이, 저를 따르는 이들도 타락하지 않을 거예요! ”
“ 당신을 사모하는 저 두 사람이, 과연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성녀님의 모습을 보고서도 정결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
대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는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아리스텔라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발레리아누스의 손이 옷섶을 벌리고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 아, 아응! ”
벌어진 옷섶 사이로 차가운 밤공기가 스민다. 추위 때문인지 자극 때문인지, 붉은 젖꼭지는 어느새 단단하게 일어서 있었다. 그것을 손끝으로 잡아 비틀자, 아리스텔라의 입에서 높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 흐아앙! ”
교황 발레리아누스의 신성력은 특수했다. 아니, 특별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남자의 신성력이 스며들면 마치 몸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처럼 의지와는 정반대로 감각이 날뛴다. 닿기만 해도 찌릿찌릿한 쾌감이 흘러, 아리스텔라는 저도 모르게 달콤한 숨을 뱉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 흐읏, 교황, 성하. 이러지 마세요……! ”
긴 손가락이 가슴을 감싸 양쪽으로 잡아당기듯 주물렀다가, 손가락을 모으고 아래에서 위로 부드럽게 쓸어올린다. 아리스텔라는 자극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깨물고 몸을 비틀었다.
“ 으응! 흐으응……! ”
“ 자. 보십시오, 성녀님. ”
“ 흐읏, 뭘……. ”
“ 이것이 제가 당신을 이 신전에 남겨둘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
귓바퀴를 핥으며 나직이 속삭이는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차가웠다. 헉헉거리며 고개를 든 아리스텔라의 시야에 두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차가운 달빛 아래서도 타오르듯 번뜩이는 자줏빛의 눈동자와 붉은 눈동자. 로이드와 히페리온은 아론의 결계 밖에서 당혹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아리스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을 단순히 ‘ 분노 ’라고 정의내릴 수 없었다. 그것보다 더욱 깊고 필사적인 강렬한 감정이 마치 불꽃처럼 넘실거렸다.
“ 로이드, 히페리온……! 보지 마세요! ”
“ 이런, 당신의 종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의식입니다. 그리 말씀하시면 곤란한데요. ”
“ 싫어요! 이러지 마세……, 흐읏! ”
젖꼭지를 잡고 비틀 때마다 찌르르한 쾌감과 함께 발레리아누스의 신성력이 점막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하지만 가슴을 애무 받으면서 느끼는 쾌감이나 열기보다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한 두 남자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 아응, 아……! ”
“ 이 매끈하고 부드러운 젖가슴을 저 두 사람에게도 빨게 하셨겠지요? ”
“ 흐앗, 아, 그만……! ”
“ 저들이 어떻게 당신을 희롱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만, 가르쳐주시지 않겠지요. ”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아래로 내려 허리띠를 풀어버리자, 옷자락이 흘러내려 새하얀 나신이 드러났다.
“ 꺄아아아! 싫어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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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96화 연참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