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8 / 0219 ----------------------------------------------
거울은 진실을 비춘다
[188] 거울은 진실을 비춘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몸을 끌어안고 얇은 성의 위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몸의 선을 따라 더듬어가는 남자의 손은 무척 뜨거워서, 아리스텔라는 그의 손이 제 민감한 부위를 더듬을 때마다 흠칫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 으응, 클로비스……. ”
아리스텔라는 사실 클로비스와 몸을 겹친 적이 없었다. 그와 처음 관계했을 때는 여신 위그멘타르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였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벌거벗은 채로 카펫 위에 누워 있었다. 그 다음 발레리아누스에게 안겼을 때, 클로비스는 옷을 벗지도 않았으므로 아리스텔라는 그에게 안기지 못했다.
기억에 없는 남자와 입을 맞추고 몸을 만지는 행위가 익숙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의식을 잃었을 때의 일을, 정신은 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한다. 그 기묘한 간극이 아리스텔라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 클로비스, 저……. ”
“ 예? ”
“ 당신이랑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
“ ……. ”
이상하게 들렸을까. 허리를 더듬던 손의 움직임이 멈추고, 검은 눈동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본다.
여신 위그멘타르는 전대 성녀들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아리스텔라가 깨어있을 때 경험했던 것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텔라는 위그멘타르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의 기억이 없다. 발레리아누스와 섹스할 때 마치 몸의 주도권만을 빼앗긴 듯한 경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일이었음은 분명했다.
“ 처음 당신이랑 했을 때를, 저는 기억하지 못해요. ”
“ 그렇군요. ”
클로비스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 그런 것 같았습니다. ”
“ 네……? ”
“ 그때의 당신은, 이렇게 사랑스러운 표정은 짓지 않았거든요. ”
앞머리를 살짝 넘기고 이마에 입술을 내리고, 이어서 눈가에 입맞춤을 퍼붓는다. 아리스텔라가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밀어내려 하자, 클로비스는 그녀의 양손을 잡아채 등 뒤로 돌리고는 벌어진 입술에 제 입술을 억눌렀다.
“ 으응……! ”
작고 순진하고, 티 없이 맑다. 그녀를 바라보면, 클로비스는 어린시절 목욕할 때 비눗방울을 불면 투명하고도 보들보들한 방울이 천천히 유영하던 것이 떠올랐다. 신기하고 예쁜 방울을 가지고 싶어 손으로 감싸면, 비눗방울은 톡 하고 터져버린다. 가지고 싶은데 가질 수가 없어서, 속상해서 애가 탔던 기억이 난다.
“ 지금의 당신이 좋습니다, 성녀님. ”
가지고 싶다. 그녀를 너무나도 가지고 싶다. 손 안에 잡히지 않는, 잡을 수 없는 존재라 해도.
“ 당신을 원합니다. ”
“ 클로비스……. ”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구릿빛 피부. 이자크를 닮았지만 그보다 열 살이 많은 클로비스는 확실히 아리스텔라가 보기에도 어른이라는 인상이었다.
‘ 이자크도 자라면 저런 얼굴이 될까. ’
본인이 들었다면 이미 충분히 자란 어른이라고 속상해할 터이지만, 아리스텔라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클로비스의 입술을 더듬었다.
“ 저도, 지금의 당신이 좋아요. ”
그녀를 속여 진실을 말하게 하는 꽃차를 먹이고, 오만한 태도로 대답을 종용하며 입을 맞추던 집행관 클로비스가 아니라, 지금의 그를 원한다. 그녀를 가지고 싶은 마음으로 애가 타서 견딜 수 없어 하면서도, 조금이라도 힘주어 잡으면 망가지는 것을 만지듯 소중하게 여겨주는 지금의 클로비스가 좋았다.
“ 그럼, 지금을 우리 두 사람의 처음으로 할까요. ”
“ 좋아요, 클로비스. ”
장난스럽게 코를 비비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이번에는 아리스텔라가 스스로 클로비스의 손을 제 가슴으로 이끌었다. 남자의 뜨거운 손이 가슴을 문질러줄 때마다 흐응, 하고 기분 좋은 콧소리를 내며 그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가슴을 더듬던 손길이 위로 올라와 옷깃을 벌리고, 허리띠를 잡아당겨 풀었다. 그러자 아리스텔라도 따라서 클로비스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제복의 단추를 풀고, 허리띠의 버클을 풀었다.
옷깃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간단하게 벗겨지는 아리스텔라의 성의와는 달리 클로비스의 제복은 일일이 손으로 벗기지 않으면 안 되기에 탈의는 제법 번거로웠다.
하지만 그 번거로운 과정마저 아리스텔라는 즐거웠다. 순수하게,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옷을 벗기는 것이 재미있었다.
“ 남자 옷을 벗겨보는 건 처음이에요. ”
“ 성녀님의 처음이 될 수 있다니 영광이군요. ”
“ 헤헤. 으음……. ”
크라바트를 풀어본 적이 없는지 어깨 위로 올라온 손이 헤매자, 클로비스는 싱긋 웃고는 아래쪽 매듭을 잡아당겨 크라바트를 풀었다.
카펫 위에 두 사람이 벗어 내린 옷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오염되지 않는 성녀의 성의와는 달리 클로비스의 제복은 흰색이라 때가 타지 않도록 정리해야 할 터인데, 클로비스는 옷을 정리하려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허리띠만을 주워든 채로.
“ 클로비스, 잠깐만요. 저대로는 옷이 더러워지는데……. ”
“ 괜찮습니다. ”
입술에 쪽, 가벼운 키스를 한 클로비스는 벽 쪽으로 가 아리스텔라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 어? ”
침대로 갈 줄 알았는데, 클로비스는 아리스텔라를 데리고 방의 구석으로 왔다. 어째서일까. 아리스텔라가 의아한 듯이 바라보자, 클로비스는 웃는 얼굴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빙글, 뒤로 돌렸다.
벽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 거울? ’
아리스텔라는 화들짝 놀라 몸을 돌리려 했지만, 클로비스는 그녀의 양손을 붙잡고 거울 면에 꽉 억눌렀다. 가릴 것조차 없어진 하얀 나신이 은색의 거울에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 클로비스, 잠깐만요! 뭘 하려는 거예요? ”
“ 성녀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혼자 보기 아까워서 말이지요. 성녀님께도 보여드릴까 하고. ”
“ 그게 무슨……. 앗! ”
클로비스는 가지고 있던 허리띠로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묶었다. 그리고는 긴 허리띠의 끝을 거울의 양 귀퉁이에 잡아 묶었다. 전신거울의 높이는 클로비스가 팔을 뻗어야만 닿을 정도라서, 허리띠에 손목을 묶인 채 거울 앞을 벗어날 수 없도록 속박된 아리스텔라는 까치발을 뜨고 아슬아슬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 크, 클로비스……. ”
“ 보이십니까, 성녀님? ”
커다란 구릿빛 손이 그녀의 말랑한 가슴을 움켜쥐자, 아리스텔라가 짧게 신음했다.
“ 흐앗! ”
아찔해져서 넘어질 것 같은데도, 손목이 속박되어 넘어지지는 않았다. 대신 아리스텔라는 거울에 머리를 기댄 채, 남자의 손안에서 제 가슴이 아무렇게나 뭉그러지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 앗, 아, 아아……. ”
수치심에 양 뺨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새하얀 나신을 남자의 손이 더듬어갈수록, 그의 손길이 닿은 부위가 차츰 분홍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거울에 비쳤다. 뜨겁게 토한 한숨이 거울에 하얀 김을 만들었다가 곧 사라진다. 아리스텔라는 부끄러움에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지만, 곧 남자의 손이 다리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자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흔들었다.
“ 클로비스, 아앗! ”
“ 보이십니까, 성녀님? ”
남자의 긴 손가락이 가느다란 음모로 덮인 음부를 지나, 음순을 슬며시 붙잡고 좌우로 벌렸다. 구릿빛 손가락 사이로 말간 액을 떨구기 시작하는 붉은 성기의 노골적인 모습에, 아리스텔라는 울상을 지었다.
“ 보십시오, 성녀님. 아직 이곳은 만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 젖어 있습니다. ”
“ 흐으읏, 이러지 마세요……! ”
“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당신의 몸은―. ”
애액이 묻은 손가락을 굽혀 클리토리스를 슥 문지르자, 히익, 하는 작은 비명과 함께 그녀가 다리를 오므리려 했다.
“ 이렇게나 남자의 손길을 원하고 있는데도. ”
“ 흐아, 으……. ”
귀 끝까지 새빨개진 아리스텔라는 눈물방울을 떨구면서 젖은 한숨을 토했다. 민감한 부위를 능숙한 손길로 애무해주는 남자의 손길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아리스텔라가 쾌감을 느낄수록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음란하게 흐트러져갔다. 분홍빛으로 물든 피부에 땀이 배어나 반질반질한 윤기가 흐르고, 물빛의 긴 머리카락이 몸을 움찔거릴 때마다 흐트러지며 젖은 피부에 달라붙었다.
============================ 작품 후기 ============================
188, 189화 연참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