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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락의 밤
[182]
“ 하아, 하아……. ”
연결된 자세 그대로 서로를 끌어안은 두 남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오로지 쾌감만을 느끼던 몸의 신경이 되돌아오면서, 피부가 살짝 따끔거렸다.
“ 노엘, 으음……. ”
풀린 눈으로 신음하는 아리스텔라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노엘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피부를 더듬었다. 말랑말랑하고 매끈한 살결. 제 품안에 안겨있는 것이 환상이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확인한 노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끼익. 또다시 어디선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기분 탓일까?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려 했지만 침대의 차양 때문에 어차피 바깥쪽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인기척은 없다. 그렇다면 아마도 착각일 것이다.
“ 노엘. 왜 그래요……? ”
노엘이 주위를 둘러보는 것을 알아챈 아리스텔라가 조금 불안한 듯이 물었다.
“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
“ 으응……. ”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삽입하고 있던 제 분신을 천천히 꺼냈다. 한껏 예민해진 그녀의 음부는 성기가 빠져나가는 자극에도 느낀 건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이 달다. 마치 제게 쾌감을 전해주던 것이 빠져나가 아쉬워하는 듯했다.
“ 성녀님. 이대로 있어도 될까요? ”
“ 으응, 네……? ”
노엘은 아리스텔라를 끌어안은 채로 침대에 쓰러졌다.
내일 아침이면 그녀의 시종인 신관 조슈아가 찾아올 것이다. 룸메이트인 크리스가 밤늦도록 노엘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대신관 히페리온에게 보고할지도 모른다. 뒤처리를 하고 돌아가야 하는데, 그녀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 성녀님과 떨어지고 싶지 않아요. ”
“ 후우. 아직도, 부족한 건가요……? ”
“ 그게 아니라……. 성녀님과 함께 있고 싶습니다. 안 되나요? ”
노엘의 간절한 말에 아리스텔라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쾌락에 잠식되어 혼탁하게 흐려졌던 보라색 눈동자에 천천히 빛이 되돌아왔다.
“ 후후후. ”
그녀가 작게 웃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할 만큼 지쳐 보였는데, 그녀의 눈빛만은 생기가 넘쳤다.
“ 안 되지만, 허락해 줄게요. ”
아리스텔라는 노엘을 끌어안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거세게 뛰는 심장의 고동이 들린다. 신전의 사제들 가운데서는 어린 축에 속하기 때문일까, 노엘은 체향마저도 풋풋했다. 아리스텔라가 뺨을 슬슬 문지르며 품으로 파고들자, 노엘이 당황한 듯이 소리를 높였다.
“ 서, 성녀님. 저, 땀을 흘렸는데요……. ”
“ 괜찮아요. ”
“ 마, 많이 흘렸는데……. ”
“ 괜찮다니까요. ”
아리스텔라는 스킨십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타인과 몸을 부대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악취에 민감한 그녀는 땀을 흘리면 금방 목욕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노엘의 체취는 싫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체액과 땀으로 질척해진 몸을 맞대고 있는데도, 아리스텔라는 조금도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세차게 뛰는 가슴과 붉어진 뺨, 자신을 열망하듯 바라보는 뜨거운 눈빛이 그녀의 기분을 고양되게 했다.
“ 나를 안고 있는 남자가 누군지 확인하고 싶어요. ”
그 말에 또다시 심장이 요동쳤다. 노엘은 무심코 아리스텔라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가 답답한 듯이 작게 기침했지만 거부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등 뒤에 팔을 두르고, 제가 있는 힘껏 할퀴어 상처 낸 자국을 살살 문질렀다. 따끔거리는 통증과 간지러울 만큼 부드러운 손길에 노엘도 야릇한 기분을 느껴 신음했다.
“ 성녀님, 너무 좋아요……. ”
“ 나를 만지는 게 좋은가요? 아니면 내가 당신을 만지는 게? ”
그녀를 만지면 흥분되고, 그녀가 제 몸을 만져주면 황홀한 기분이 든다. 따뜻한 체온과 야들야들한 살결은 닿기만 해도 날아가 버릴 듯 기분 좋았다. 하지만 노엘을 가장 행복하게 했던 것은 그녀와 몸을 섞으면서 얻은 쾌락이 아니었다.
“ 성녀님이 좋아요. ”
그녀가 자신을 바라봐주는 것이 좋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좋았다. 시선이 마주치고, 입술을 겹치고, 몸을 탐하는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 행복했다.
이 신전의 수많은 사제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던 노엘이, 아리스텔라와 몸을 겹치는 순간은 그녀의 의식과 감각을 독점하는 유일한 남자가 된다. 여신과 종이 아닌, 성녀와 사제가 아닌, 여자와 남자가 되어 서로를 독점한다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가.
“ 아리스텔라 성녀님, 당신이 좋아요. ”
“ 나를 사랑하나요? ”
노엘은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애달프고 안타깝고 초조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며 행복한 고양감을 느끼는 이 특별한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이라는 것은 성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장 성스러우며 행복한 감정이 아닐 것이다.
“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저는 사랑 같은 건 평생 몰라도 좋아요. ”
서로의 몸을 꼭 끌어안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맞췄다. 섹스 후의 피로와 술기운이 뒤늦게 몰려와,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채로 잠에 빠져들었다.
◇ ◆ ◇ ◆ ◇
끼익, 덜컹.
어디선가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새벽바람이 들어왔다. 한기를 느낀 아리스텔라는 몸을 가늘게 떨며 이불을 찾았다.
“ 으응, 추워……. ”
펄럭. 어디선가 이불이 나타나 아리스텔라의 몸 위에 덮였다. 춥지 않도록 목 위까지 끌어올려 단단히 덮어주고, 등을 토닥여준다.
시종인 조슈아일까. 자신이 노엘과 섹스하고 그대로 잠들어 아직 알몸 상태라는 자각이 없는 아리스텔라는 눈을 감은 채로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
“ 조슈아……? 고마, 워요……. ”
“ 좋은 새벽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군요, 성녀님. ”
“ 흐읏! ”
귓가에 나직이 흘러든 남자의 음성은 조슈아의 것이 아니었다. 확 잠이 달아나버린 아리스텔라가 다급하게 몸을 돌려 일어나려 하자,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어깨를 억눌러 침대에 눕히고는 입술을 겹쳤다.
“ 으으응! ”
무방비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촉촉한 혀가 들어와 입안을 훑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숨결까지 다 빨아들이겠다는 듯이, 남자의 혀는 집요하게 안쪽을 파고들어 그녀의 혀를 얽어맸다.
“ 흐으! 읍! ”
잠에서 깨자마자 강제적인 입맞춤이 이어져 아리스텔라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콜록거렸다. 남자는 가느다란 목과 동그란 어깨를 더듬으며 각도를 바꾸어 깊게 입맞춤했다. 아리스텔라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나서야 겨우 그는 그녀의 입술과 혀를 해방해주었다.
“ 읍, 콜록! 하흐……. ”
“ 아무리 성녀님이라 해도 다른 남자의 방에서, 또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며 이름을 부르는 것은 너무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
“ 크, 클로비스……? ”
“ 아니면 설마 셋이서 하자는 뜻이었는데, 제가 미처 성녀님의 뜻을 몰라 뵙고 나가버린 것이 문제일까요? ”
“ 흐, 아……. 엄마야! ”
클로비스의 얼굴을 확인하고, 제가 알몸인 것을 깨달은 아리스텔라는 뒤늦게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끌어 모아 얼굴을 가렸다.
“ 왜,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거예요! ”
“ 왜냐고 물으셔도, 어제 저에게 이 방에 묵으라고 하신 것은 성녀님이 아닙니까. ”
“ 네……? ”
“ 침대를 차지하고 계셔서, 저는 밖에서 자는 수밖에 없었지만요. 아직도 삭신이 쑤시는군요. ”
쿡쿡 웃으며 이불을 벗기려는 클로비스의 손동작에 기겁한 아리스텔라는 필사적으로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방이 아니었다.
침대의 형태는 비슷하지만, 이 방은 성녀의 방보다 훨씬 작은 손님용 방이었다. 침대 맡에 알림용 종이 있고, 거기서 약간 떨어진 거리에 알람용 방울이 있는 침실은 어제 바레에게 안내해준 것과 똑같은 구조의 방이었다.
“ 자, 잠깐만요. 제가 설마……. ”
“ 성녀님께서도 참으로 기이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더군요. ”
그렇게 말하여 클로비스가 가리킨 침대 끝에는, 어떻게 된 건지 가장자리에 매달려서 쿨쿨 자고 있는 노엘이 있었다.
“ 꺄아아아! ”
그제야 모든 것이 생각난 아리스텔라는 비명을 질렀다. 어제 노엘과 함께 술에 취해 중앙 건물로 들어온 그들은 그만 층수를 착각하여 성녀의 방이 아닌 손님용 방, 그것도 클로비스의 방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술과 열기에 들떠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관계를 가져버렸다. 아리스텔라는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 흐아아, 어떻게 해……. ”
“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만, 저 또한 울고 싶은 기분이라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하는군요. ”
클로비스는 아리스텔라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고는, 몸을 침대에 반, 바닥에 반 걸치고 있는 노엘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 우우웅. ”
“ 그만 일어나시지요, 사제님. ”
“ 크리스, 5분만 더……. ”
“ 오늘 새벽 몇 분 만에 참 여러 번 제 이름이 바뀌는군요. ”
“ 어……. 응? 누구……. ”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가 낯선 남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노엘이 눈을 뜨자, 자신을 바라보는 새카만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 우와아아악! ”
이번에는 노엘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방안에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