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66화 (166/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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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방문자

[166]

대신관의 집무실 앞에 다다른 조슈아는 아리스텔라의 손에 꽃바구니를 들려주었다.

“ 어머, 조슈아. 같이 들어가지 않는 건가요? ”

“ 대신관의 집무실에는 의자가 두 개 뿐이거든요. ”

“ 으음, 그렇게 오래 머물 것도 아닌데……. ”

집무실이란 업무를 보는 공간이다. 사실도 아니고 일하는 곳에 불쑥 찾아가는 것인데 혼자서 들어가도 좋을까.

히페리온은 늘 그녀에게 친절하지만, 사실 그의 상냥함과 배려가 어떤 감정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아리스텔라는 확신이 없었다. 분명 그녀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맞는데, 아리스텔라가 가까이 다가가면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래서 혹 친해질 생각이 없는 그에게 제가 너무 들이대는 것은 아닌가, 한 걸음 다가설 때마다 이 거리가 적절한가, 아리스텔라는 늘 신경이 쓰였다.

“ 대신관께서도 선물을 직접 전해주시는 편을 기뻐하실 겁니다. ”

“ 그럴까요? ”

“ 물론이죠. ”

조슈아의 느긋한 대답에 조금 안심한 아리스텔라는 그에게 인사하고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 대신관님. 계신가요? ”

“ 이런, 성녀님. ”

업무를 보던 히페리온이 깃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무슨 일이신지요? 어째서 시종을 보내지 않고……. ”

“ 아, 아뇨. 대신관님을 뵈러 온 거예요. ”

“ 저를요? ”

청렴한 이미지의 히페리온은 실제로도 검소했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집무실은 넓지만 집기가 별로 없어 깨끗했다. 책장도 없이 작은 선반 위에 성령석과 성서가 놓여 있고, 테이블 위에는 찻주전자와 찻잔이 두 개 엎어져 있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뭔가 서류처럼 보이는 것이 여러 장 있었다.

“ 대신관님. 일하시던 중이었나요? ”

“ 교황청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

“ 어머나. 제가 방해한 건가요? 죄송해요. ”

“ 아닙니다. 중요한 안건은 벌써 올린 뒤입니다. 나머지는 급한 사항이 아니니 천천히 처리해도 됩니다. ”

성실하고 철두철미한 히페리온이 업무를 처리하는데 < 급하지 않다 >고 말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아리스텔라는 몰랐다.

그녀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다행히 중요한 일이 끝나서 그가 시간이 여유로우리라 판단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그럼 다행히 대화할 시간은 있겠네요. ”

“ 성녀님께서 부르신다면, 언제든지 찾아뵙겠습니다. 당신을 섬기는 것이 제 의무니까요. ”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아리스텔라도 살짝 뺨을 붉혔다. 정중한 태도의 히페리온 앞에서는 아리스텔라도 늘 조금 긴장하게 된다.

종이꽃을 생화로 만든 기적을 일으킨 이후로 계속 마음이 들뜬다. 혹여 말실수를 하거나 예의 없는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아리스텔라는 입 속에서 한 번 할 말을 되뇐 다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대신관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

“ 제게 말입니까? ”

“ 네. 여기요. ”

아리스텔라는 가져온 꽃바구니를 히페리온에게 건네주었다. 향기로운 색색의 꽃들은 바구니 안에서 마치 보석처럼 빛났다.

“ 이것은……. 평범한 꽃이 아니로군요. ”

“ 어머. 알아보시는군요? ”

제단에 올리는 꽃들은 사제들이 관리하기에 약간의 신성력을 띄고 있다. 하지만 바구니에 담긴 꽃에 감도는 신성력은 관리 사제의 것이 아니었다.

“ 성녀님께서 기른……. 아니, 성녀님께서 피워낸 꽃이 아닙니까? ”

한눈에 알아본 히페리온의 대답에 아리스텔라의 눈이 커졌다. 그녀의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더니, 흐드러지는 꽃처럼 활짝 웃었다.

“ 정답이에요! ”

그 미소에 히페리온의 가슴에도 꽃이 피듯 따스한 감정이 움텄다.

언제 봐도 그녀의 미소는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부드럽게 미소 지은 히페리온은 바구니 안의 꽃을 한 송이 집어 들었다. 붉은 제라늄이었다.

살며시 코끝으로 가져가 향기를 맡자, 아리스텔라를 닮은, 달콤하면서도 상큼한 향기가 났다.

“ 아름답습니다. ”

“ 대신관님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

후후 웃으며 아리스텔라는 히페리온이 집고 있던 제라늄을 건네받았다. 그 붉은 색은 히페리온의 눈동자 색을 닮았다.

“ 대신관님. 자세를 조금만 숙여주실 수 있나요? ”

“ 예. ”

아리스텔라의 요구에 히페리온이 순순히 응하며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춰주자, 아리스텔라는 방긋 웃으며 히페리온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꽃송이를 달아주었다.

“ 성녀님? ”

“ 역시 잘 어울리네요. ”

다 큰 남자가 머리에 꽃을 꽂고 있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울 법 한데도, 아름다운 히페리온에게는 붉은 제라늄이 정말 잘 어울렸다.

히페리온은 어색한지 꽃을 꼽은 방향으로 눈동자를 굴렸다가, 살며시 눈을 내리깔며 웃었다.

“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대신관님. 제라늄의 꽃말을 알고 계시나요? ”

“ 예? ”

꽃의 이름이나 습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도, 꽃말 같은 것은 배운 적이 없었다.

제단에 올려서는 안 되는 꽃의 종류가 몇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대체로 독이 있거나 무덤가에 피는 등 성서에서 멀리하라고 가르친 것들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속성에 근거하여 성서에 기록된 내용이 아닌,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꽃말을 알고 있을 턱이 없었다.

히페리온이 고개를 가로젓자, 아리스텔라가 배시시 웃었다.

“ 행복이에요. ”

그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 대신관님은 늘 바쁘시고, 열심이시고, 제게 상냥하신데. 그래서 저는 늘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대신관님은 별로 행복하지 않으신 것 같아서요. ”

“ 성녀님, 저는……. ”

“ 알아요. 대신관님은 사제시고, 이 신전의 관리자인 대신관이시니까, 다른 사제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엄격한 계율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거. 그래도 이 신전에서 저와 함께 평생을 살아가실 텐데, 조금은 자신의 행복을 찾으셨으면 해서요. ”

“ ……. ”

가슴 속에서 따뜻한, 아니 뜨거운 무언가가 일렁였다. 그런데 목이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히페리온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붉은 제라늄에서 흘러 떨어진 향기가 제 가슴을 적신다.

행복.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랑하는 그녀의 곁에 있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러면서도 곁을 꺼나고 싶지는 않다. 제 안의 갈망이 뛰쳐나올까 노심초사하면서도 아름다운 아리스텔라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눈을 깜박이는 시간조차도 아까웠다.

사랑은 사람을 충만하게 하고 은혜롭게 한다 말했지만, 사랑으로 인해 그는 방황하고 망설이고 후회하였으며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러니 행복이라는 것 또한 이제까지 들어온 대로 그저 아름답고 따스하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저마다 사랑의 형태가 다르듯, 저마다 행복의 형태도 다르다면.

그렇다면, 히페리온 자신의 행복은 < 아리스텔라 > 그 자체가 아닐까.

“ 성녀님. 제 행복은……. ”

시작도 끝도, 그 모든 것이 전부 당신에 의한 것이라고.

가슴 속에서 감정이 요동쳤다. 아무리 눌러 담아도 계속해서 솟구쳐 올랐다. 입을 꾹 닫고 어금니를 깨물어도 맹렬한 감정이 언어가 되어 혀끝을 두드린다. 제 진심을 말하고 싶다고 입술을 달싹인다.

“ 성녀님. 저는, 저는 사실……. ”

히페리온이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신음하듯 입술을 연 그때, 벽 쪽의 선반 위에 놓인 성령석이 윙윙 울리며 반짝였다.

“ 어? ”

“ 아……. ”

성령석에서 나오는 소리와 불빛에 히페리온의 표정이 굳었다. 하려던 말을 삼키고 입을 다물었다.

“ 대신관님. 무슨 일인가요? 설마 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신호는 아니겠죠? ”

“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히페리온은 잠시 아리스텔라에게 양해를 구한 뒤 서랍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를 꺼내 테이블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성령석을 올려놓았다.

성령석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빛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양피지 위에 글씨를 새겨나갔다.

“ 와아……. ”

아리스텔라는 아무것도 없는 빈 양피지에 마법처럼 글자가 그려져 나가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마법이란 참으로 신비한 것이고, 신전에도 여러 가지 신기한 물건이 있지만, 성령석으로 이렇게 문서를 작성하는 것까지 가능한 줄은 미처 몰랐다.

문장은 길지 않았다. 서너 줄의 문장을 적어낸 성령석의 빛이 훅 꺼졌다. 히페리온이 성령석을 밀어내고 양피지를 집어 들었다.

“ 히페리온 대신관님, 뭐라고 써진 거예요? ”

“ 교황청에서 온 서신입니다. ”

한 신전의 성령석에서 다른 신전의 성령석으로 전달하는 메시지가 도중에 다른 마력석에 스며들어 내용이 유출되지 않도록, 공적인 안건이나 중요한 전갈은 반드시 고대어로 변환하여 내보냈다.

사제들은 수습사제 시절 고대어로 적힌 성서 원문을 공부하기에 고대어를 읽을 수 있지만, 아리스텔라는 사제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고대어는 전혀 알아볼 수가 없었다.

“ 교황청에서 뭐라고 서신이 왔는데요? ”

“ ……. ”

히페리온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뭔가 심각한 일일까.

그의 안색을 살피던 아리스텔라가 말하기 곤란하다면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히페리온이 입을 열었다.

“ 교황 성하께서, 성녀님을 뵈러 이 신전을 방문한다고 하시는군요. ”

“ 네? 교황 성하께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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