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60화 (1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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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와의 짧은 재회

[160] 로이드와의 짧은 재회

로이드는 아리스텔라의 곁을 떠날 때, 기사단에는 무척 많은 훈련시설이 있다고 말했다. 신전을 전부 돌아본 것은 아니니 뭔가 기사단 안에 비밀 연습실 같은 곳이 있어, 그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그런데 설마 이런 곳에서 로이드를 마주칠 줄이야.

“ 성녀님께서 왜 이곳까지……. 아. ”

아리스텔라의 방문에 의아해하던 로이드는 어제가 성기사들의 정기 훈련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분명 오늘은 훈련을 마친 기사들이 온천에서 피로를 풀며 휴식을 취할 터였다.

기사단 건물에서 상당히 떨어진 이곳은 사제들은 물론이고 성기사들조차 특별한 날이 아니면 찾지 않는 장소였다. 그래서 잠시 잊고 있었다.

“ 하지만 설마 성녀님께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

“ 성기사분들이 제게 뭔가 해주고 싶다고 하셔서……. 이런 곳에 온천이 있는 줄 몰랐거든요. ”

“ 제가 성녀님의 소중한 휴식시간을 방해했군요. 죄송합니다. ”

“ 아, 아니에요! 나야말로 미안해요. 로이드는 수련을 하고 있었을 텐데……. ”

아리스텔라는 살짝 몸을 움츠려 가슴을 가리면서, 바위 쪽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물이 뽀얗기에 몸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부끄러웠다. 로이드가 시종이었을 때는 그녀와 함께 목욕한 적도 있는데, 어째서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 로이드. 저기……. 그, 수련은 잘 되어가나요? ”

검 수련을 한 것일까? 로이드의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있었다.

“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기 위한 훈련이니까요. 이제까지처럼 안이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

“ 로이드……. ”

이미 최강의 성기사인 그에게 어째서 그런 수련이 필요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 자신이 허락한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도 잘못일 것이다.

기사도나 무인의 긍지에 대해 잘 모르는 아리스텔라는 혹 제가 무언가 말실수를 할까 염려되어, 그저 간단한 염려의 말만을 건넸다.

“ 무리하지는 마세요. ”

“ 무리는 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마지막 날에 이렇게 큰 선물도 받았고 말이지요. ”

“ 선물이라뇨? ”

“ 사랑하는 주인님을 뵙는 것 말입니다. ”

사랑하는 주인님.

그답지 않게 뻔뻔한 소리에 귀 끝까지 확 달아올랐다.

아니, 원래부터 로이드는 뻔뻔한 말을 자주 했다. 단지 침대에서가 아니면 별로 들을 일이 없기에 방심했을 뿐이다.

“ 보고 싶었습니다, 성녀님. ”

보고 싶었다면 어째서 빨리 돌아오지 않았느냐고 채근하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으나, 아리스텔라는 그 말을 삼켜버렸다. 오랜만에 로이드를 만나 반가운데 원망의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 저도 보고 싶었어요……. ”

이런 곳에서 재회할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 로이드를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

그가 그녀의 곁을 떠나 있는 며칠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북쪽 탑의 지하에서 전대 성녀를 모시던 사제의 망령에 사로잡혀 곤욕을 치르고, 그들을 구원하고, 여러 가지 마법을 배우기도 했다.

신성력이 오염되어 치료를 받은 날은 미사에서 성서 낭독을 하다가 전대 대신관의 일기를 보고 분노했다. 그녀를 의심하는 사제와 성기사들 앞에서 제 신성의 순결함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날 밤, 아론과 몸을 섞었다.

말로 하기엔 너무 긴 이야기다. 시종으로 있을 때는, 로이드는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는 고민이나, 그가 들어올 수 없는 마법 수업 중의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입을 달싹일 뿐 말을 잇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리는 아리스텔라를 보고, 로이드가 피식 웃었다.

“ 제가 곁을 떠나있는 사이에, 제가 모르는 성녀님의 모습이 늘어났겠군요. ”

아리스텔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 만나지 못했던 것은 불과 며칠뿐인데, 그 사이에 많이 변하신 것 같습니다. ”

로이드의 말에 흠칫 놀라 시선을 돌렸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는데도, 아리스텔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로이드의 시선이 느껴졌다.

“ 어,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데요? ”

욕망에 대한 경계가 약해지고, 자연스럽게 남자를 받아들이는 몸이 되었다는 것을 아리스텔라는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점을 누군가 알아채는 것은 싫었다. 아론과 몸을 섞었다고 말하면 로이드가 화를 낼까, 아리스텔라는 물속에서 손을 꼼지락거렸다.

“ 아름다워지셨습니다. ”

“ 네……? ”

예상 밖의 대답에 아리스텔라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하자, 로이드가 빙긋 웃었다. 그가 살짝 상체를 숙이자,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 더 아름다워지셨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

“ 이, 이런 때에 농담은 하지 마세요……. ”

“ 제가 어찌 감히 성녀님께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

자주색의 눈동자가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은잔에 담긴 자줏빛의 와인이 흘러넘치듯 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었다.

“ 거짓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

“ 화, 확인이라니요……. ”

귓가에 로이드의 입술이 닿자 아리스텔라는 몸을 움츠리며 작게 신음했다. 민감한 아리스텔라에게 로이드의 목소리는 너무 자극이 심했다. 그의 음성을 들으면 몸의 기운이 쭉 빠지면서 달콤한 한숨이 나온다.

목소리로 사람의 혼을 빼놓을 수 있다는 것이 이런 뜻일까. 몸은 무겁게 가라앉는데, 이상하게도 감각만은 예민해진다.

아리스텔라의 경계가 풀린 것을 알아차렸는지, 로이드의 혀가 그녀의 귓바퀴를 핥았다.

“ 흐앗, 아! ”

“ 이 입술과 혀에 담긴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

“ 으응, 로이드……. ”

“ 자신의 말은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배웠으니까요. ”

로이드는 아리스텔라를 끌어안지 않았다. 그저 입술과 혀로 그녀의 귓가를 핥고 뺨에 입을 맞출 뿐이었다. 이토록 가까이에서, 알몸으로 온천에 들어와 있다고 하는데, 자신에게 닿는 부위가 입술뿐이라는 점이 어쩐지 야속했다.

“ 아, 로이드. 잠깐……. ”

몸을 움찔거리는 아리스텔라에게 스치듯 입술을 겹치고, 로이드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갔다. 뽀얗고 윤이 나는 가느다란 목덜미에 뜨거운 입술이 닿자, 아리스텔라는 바위에 등을 기대고 있는데도 넘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흐아, 로이드. 여기 밖, 이잖아요……. ”

“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

이자크와 똑같은 말을 하면서 로이드가 입술로 쇄골을 더듬어 어깨까지 입맞춤을 내렸다. 아리스텔라는 아찔해져서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 저, 저는 목욕을 하려고, 응, 했다고요. ”

“ 싫다고 말씀하시면 그만두겠습니다. ”

“ 읏, 아응……. ”

마차에서 내내 남자의 손과 입술에 쾌감을 느끼며 절정을 오르내렸지만, 아리스텔라가 거부한 탓에 그녀의 몸은 가장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다.

이곳에 도착해서도 이자크의 키스를 받으면서 몸이 달아올랐다. 그대로 관계를 가지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겨우 참아냈다.

혼자 있었으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있었을 터인데, 눈앞에는 알몸의 로이드가 있다. 따스한 물과 촉촉한 수증기 때문에 더욱 쉬이 흥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그만둘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은데요. ”

“ 하으으……. ”

욕망에 약한 그녀의 몸으로는 자극을 참을 수 있는 것도 한, 두 번에 불과했다. 오랜만에 만난 로이드의 음성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욱 부드럽고, 입맞춤은 달콤했다. 수증기 때문에 주변이 뿌옇게 보여, 정말로 꿈이라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 앗……! ”

허벅지에 커다란 무언가가 닿았다. 저도 모르게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것을 느낀 아리스텔라는 눈을 꼭 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온천물이 뽀얗게 흐려서 다행이었다. 평소처럼 투명한 물이었다면 아래가 보였을 것이다.

“ 성녀님. ”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들면 부드러운 입술이 이마에서 콧잔등을 타고 내려온다. 가볍게 입술을 비비자 허벅지에 닿는 육중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어쩐지 부끄러워져 아리스텔라는 몸을 비틀었다. 로이드와 관계하는 것이 처음도 아닌데, 오랜만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이 야외이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이자크를 거절하고 돌려보내놓고 그와 이런 분위기가 된 것이 미안해서인지, 민망하고 어색했다.

“ 로이드. 저기, 저, 원래는 이자크가 여기 함께 왔는데……. ”

“ 이자크가요? ”

“ 네. 돌려보냈지만요……. ”

아리스텔라가 우물거리면서 뺨을 붉혔다. 로이드는 이자크와 아리스텔라의 관계를 몰랐지만,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저를 따르는 젊은 기사가 성녀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했다.

‘ 가소롭군. ’

로이드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갔다.

“ 이자크를 거절했으니 미안해서, 저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

“ 그게 아니라, 당신이 여기 있는 줄 몰랐단 말이에요. ”

이자크가 그를 거절하고 로이드와 몸을 섞은 아리스텔라를 원망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었다.

“ 녀석이 성녀님께 투정을 부린다면, 흠씬 두들겨 주십시오. ”

“ 어떻게 그래요! ”

“ 성녀님께 맞는다면 녀석도 기뻐할 겁니다. ”

황당한 말을 자연스럽게 뱉으면서, 로이드가 그녀에게 밀착했다. 아리스텔라의 등 뒤는 커다란 바위로 가로막혀 있어 더 뒤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바위와 로이드 사이에 거의 끼인 자세가 된 아리스텔라는 난처하게 시선을 이리저리 피했다.

“ 로이드도……? ”

“ 예? ”

“ 제가 때리면, 로이드도 기뻐하나요? ”

그녀는 늘 순진한 얼굴로 참으로 대담한 것을 묻는다.

============================ 작품 후기 ============================

160, 161화 연참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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