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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가 내리는 날
[158]
다니기 편하게 잘 정비된 길을 벗어나 숲길에 들어섰는지, 마차가 조금씩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 성녀님, 불편하시면 이 쿠션을 깔고 앉으십시오. ”
“ 아뇨, 괜찮아요. ”
여신 위그멘타르의 신전은 무척이나 넓었다. 그것은 서른 여명의 기사들이 머무는 이 기사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차를 타고 제법 달려왔음에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광은 여전히 아름다운 단풍으로 가득했다.
“ 신전은 정말 넓네요. 이자크. 이 넓은 구역을 다 순찰하는 건가요? ”
“ 평소에는 사람이 다니는 구역과 외부에서 진입이 가능한 문을 위주로 순찰합니다. 이렇게 멀리까지 나오는 일은 좀처럼 없지요. ”
다소 살풍경한 정원과는 달리 숲길은 정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리스텔라로서는 오히려 이쪽이 탁 트여 시원했다.
아리스텔라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이자크의 어깨에 기댔다. 그가 잠깐 어깨를 움찔했지만, 마차가 덜컹거린 탓에 아리스텔라는 그것을 마차의 흔들림으로 여겨 흘려버렸다.
그러나 작게 흥얼거리며 이자크의 손을 잡은 순간, 생경한 감촉에 아리스텔라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이자크? ”
“ 아, 이런! 성녀님, 저기……. ”
이자크가 서둘러 손을 빼내려 했지만, 아리스텔라는 그의 손이 완전히 감추어지기 전에 그 모습을 봐 버렸다.
“ 이자크, 손이……! ”
“ 자, 잘못 보신 겁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
“ 아무것도 아니기는요. 손 보여주세요. ”
아리스텔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하자 이자크는 머뭇거리다가 손을 내밀었다.
“ 세상에……. ”
이자크의 손은 처참했다. 종이로 꽃을 접다가 베인 것인지, 군데군데 자잘한 상처들이 나서 퉁퉁 부어있었다. 약을 바른 것 같긴 하지만, 붕대는 감지 않았다. 눈에 띌 것을 경계한 걸까.
“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금방 낫습니다. ”
“ 괜찮기는요. 아팠을 텐데……. ”
상처투성이가 된 이자크의 손을 보자 아리스텔라는 문득 가슴이 아파왔다. 아름다운 꽃마차는 색색의 종이꽃으로 가득했다.
이 많은 꽃의 거의 절반가량을 이자크가 접었다고 했다. 하루 만에 이만큼 접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기사인 그가, 검 대신 종이로 꽃을 접고 바늘과 실로 꿰어 이 마차를 꾸민 것은 그녀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제일 큰 이유는 그녀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으나 뒷사정을 모르는 아리스텔라는 이자크의 정성과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 이자크. 가만히 있으세요. ”
“ 서, 성녀님? ”
아리스텔라는 이자크의 손을 감싸고, 손끝에 천천히 입술을 내렸다.
조슈아는 치료술이 제 몸 안의 신성력을 끌어 모아 상대의 몸속에 흘려보내 흐트러진 신성력을 정리하고, 부족한 신성력을 보충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리스텔라는 제 신성력을 이자크의 상처에 흘려보냈다.
“ 읏……. ”
상처가 살짝 따끔했다가, 곧 따끈따끈하면서도 보들보들한 무언가에 감싸이는 느낌이 들어 이자크는 움찔 몸을 떨었다. 퉁퉁 부었던 손에 붓기가 빠지고, 자잘한 상처로 딱지가 앉았던 손의 상처가 사라져간다.
“ 어어……? ”
상처가 가득했던 손이 거짓말처럼 멀쩡해졌다. 이자크는 제 눈으로 보아놓고도 믿을 수가 없어 눈만 껌벅거렸다. 아리스텔라는 이자크의 손이 멀쩡해진 것을 확인하고는, 그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 이자크. 이젠 아프지 않은가요? ”
“ 예? 어, 음, 예. ”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이 든 이자크는 말을 더듬은 것이 민망했는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아리스텔라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 조화로 가득한 마차에 탄 새하얀 성녀는 정말로 꽃에 내려앉은 나비 같았다.
문득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자크는 아리스텔라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꿀꺽 침을 삼켰다. 그의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아리스텔라도 의중을 읽었는지 뺨을 붉혔다.
칠흑처럼 검은 눈동자에 정욕의 빛이 떠올랐다. 그 눈에는 그가 욕망하는 여인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예전의 아리스텔라는 이런 욕망 가득한 눈빛을 무서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원하는 남자의 눈빛을 볼 때마다, 이상야릇한 성취감마저 들었다.
“이자크.”
붙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어깨를 끌어당겨 성급하게 입술을 겹치자 아리스텔라가 흠칫 놀라 몸을 움츠렸다. 이자크는 아리스텔라의 어깨와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면서, 보드랍고 촉촉한 입술에 제 것을 비볐다.
그녀의 입술은 정말로 꽃잎 같았다. 치아로 깨물거나 세게 빨아들이면 상처가 날 것처럼 여린 입술이었다.
이자크는 조심해서 그녀의 아랫입술을 빨아 당겨 입을 벌린 뒤, 작은 입안에 제 혀를 밀어 넣었다.
“ 으응, 응……. ”
아직 망설이는 듯 작은 혀는 침입자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빴다. 이자크는 보채지 않고 느긋하게 그녀의 입안 붉은 점막을 혀로 훑으면서 아리스텔라의 날개뼈를 더듬었다. 이렇게 가녀리고 말랑말랑한 몸인데도 뼈만은 단단했다. 그러나 힘주어 잡으면 부서질 것처럼 연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뼈도 마찬가지였다.
매끄러운 등과 날씬한 허리는 성의를 입고 있어도 여실히 느껴진다. 이자크는 아리스텔라의 등에 두르고 있던 손을 더듬어 내려갔다. 남자의 손이 엉덩이를 감싸자, 아리스텔라가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허리를 움찔거렸다.
“ 성녀님……. ”
“ 아, 안 돼요. 더는……. ”
성녀가 창 너머로 경치 구경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마차의 양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에서 케인이 지휘를 하고, 뒤에서는 조슈아와 다른 성기사들이 따라온다.
마차의 앞뒤에는 창이 없으니 두 사람이 마차 안에서 무엇을 하든 엿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앞뒤로 사람들이 함께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소리는 들릴지 모른다.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공표하는 것과, 남들이 눈치챌 수 있는 자리에서 섹스하는 것은 경우가 달랐다. 아리스텔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이자크, 키스만……. 키스만 해요, 우리. ”
촉촉한 눈빛에 달콤한 한숨.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은 무척 길어서, 이토록 날이 밝은데도 그녀의 눈동자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이자크는 속에서 날뛰는 충동을 꾹 억누르며 젖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키스만, 말이지요. 알겠습니다. ”
또다시 입술이 겹쳐졌다. 이번에는 가볍게 입술을 핥고 떨어진 붉은 혀가 그녀의 뺨을 타고 올라가 눈가에 닿았다.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과 눈꺼풀에 키스하고, 이자크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귓바퀴를 핥았다.
“ 아, 으응. ”
귓전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고 숨을 불어넣자, 아리스텔라의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 이상은 안 된다며 거절했음에도 그녀의 몸은 여전히 민감했다.
몸 안에서 뜨거운 열기가 울컥 치솟았다가, 강하게 억누르는 이성에 의해 내려간다. 크게 맥동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이자크는 다시 아리스텔라의 귓불을 혀끝으로 더듬었다.
말랑하면서도 살이 얇은 그곳을 더듬는 것이 기분 좋아, 이자크는 입술로 그녀의 귓불을 감싸 빨아들였다.
“ 하으응, 이자크……! ”
민감한 부분을 자극당해 소리가 높아질 때면, 그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도 살짝 높아져 끝이 떨린다. 그 가느다랗게 떨리는 음성을 들을 때마다 이자크는 제 안의 음심이 솟구치는 것을 참기 어려웠다.
“ 성녀님. 더 들려주십시오. ”
“ 흐읏, 뭐, 뭐를……. ”
“ 제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
“ 아읏, 응. 이자크……. ”
제 이름을 부르는 물기 어린 목소리는 어째서 이토록 유혹적인가. 이자크는 아리스텔라의 가느다란 목덜미를 혀로 훑으며 재촉했다.
“ 성녀님, 더……. 더 불러 주십시오. ”
“ 앗, 이자크, 아응……. 이자크……! ”
목깃에 얼굴을 묻고 뺨을 비비며 옷섶 째로 빨아들여 훑어 내리면, 품 안의 자그마한 몸이 마치 새처럼 파드득 날뛴다. 이자크는 아리스텔라의 몸을 살짝 안아 올려 제 무릎 위에 앉혔다. 단단한 허벅지에 포동포동한 엉덩이가 닿자 또다시 몸속에서 열이 끓어올랐다.
“ 아, 앗! ”
허리를 안고 있던 손을 올려 가슴을 주무르자 아리스텔라가 당황한 듯이 소리를 높였다.
“ 이, 이자크! 키스만, 키스만 하겠다고, 읏, 했잖아요……. ”
“ 예. 분명 그랬지요. ”
굶주린 맹수가 먹음직스런 사냥감을 눈앞에 둔 기분이 이러할까. 이자크는 군침을 꿀꺽 삼키고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봉긋한 가슴에 입을 맞췄다.
“ 약속대로, 키스만 하겠습니다. ”
“ 흐, 아앙! ”
첨단을 입술로 감싸 살짝살짝 깨물고 혀로 건드리자, 얇은 성의 너머로 젖꼭지가 단단하게 일어섰다.
아리스텔라는 이자크를 밀어내려 했지만, 마차가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탓에 저도 모르게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어차피 좁은 마차 안인데도, 균형을 잃고 넘어질까 무서웠다.
“ 아아, 아, 이자크, 이자크! ”
몸을 감싼 의복이 방해로 여겨질 만큼 가슴을 타고 흐르는 쾌감은 잔잔했다. 초조한 기분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마차 안에서 옷을 벗겨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었다. 아리스텔라는 이자크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헤집으며 애처롭게 신음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났다. 조화에는 향기가 없을 터인데, 이 향기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덜컹.
마차가 흔들릴 때마다 조화가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꽃이 피어나듯 가슴에 아릿한 쾌감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무언가 단단한 것이 자꾸 고개를 들고 그녀의 엉덩이를 찌르기 시작했다. 음부에 찌릿찌릿한 쾌감이 흘렀다.
마차 안에서는 정말로 할 생각이 없다는데, 눈치없는 몸은 왜 이리도 욕망에만 충실한지.
제 몸이 떨리는 것은 분명 마차가 흔들리는 것 때문이리라. 얇은 옷감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가슴을 핥아주는 쾌감에 몸을 떨며, 아리스텔라는 그렇게 자신을 억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