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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시험의 밤
[154]
“ 쿨럭! 하아……. ”
분명 그녀의 안에서 벗어났는데도, 성기가 욱신거리며 찌릿찌릿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론은 머리를 감싸 쥐고 신음했다.
“ 하으……. 아론……? ”
아직 몽롱한 기분으로 헉헉거리던 아리스텔라가 잘 가누어지지 않는 고개를 돌려 아론을 바라보았다. 아론은 사정을 하지 못했다. 자극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리스텔라가 손을 뻗어 말간 액체를 뚝뚝 흘리는 성기를 만지려 하자, 아론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 만지지 마십시오! ”
“ 하지만 그대로는 괴로울 텐데……. ”
“ 싫습니다. ”
아론의 눈동자에 완강한 거절의 빛이 떠올랐다. 상처받은 듯한 그 눈빛에, 아리스텔라는 머뭇거리다 손을 거두었다. 절정의 쾌감이 아직 몸 안을 배회하고 있어, 그녀도 자세를 바로잡지 못하고 시트에 얼굴을 묻은 채 숨을 골랐다.
침대에 걸리던 무게감이 가벼워졌다. 아론이 침대에서 내려간 것일까.
“ 아론……. ”
“ 내기를 수락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아론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후회하고 있는 것일까. 아리스텔라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면서, 동시에 그녀가 품어야 하는 신전의 사제들에게 자연스러운 욕구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 하지만 아론에게는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었는지도 몰라. ’
아론이 성욕을 부정하고 진저리치는 것은 단순히 사제의 계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가 어릴 적에 질리도록 보았던, 성녀 밀리아리아를 범하던 이들 때문이겠지.
아론의 성감이 이상할 정도로 둔했던 건, 어쩌면 그 충격이 만들어낸 방어기제가 아닐까. 처음에는 그녀의 신성성을 확인하기 위해 몸을 섞겠다 말했지만, 막상 경험하면서는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 내가, 당신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나요……? ”
성의를 입으려던 아론의 손이 멈칫했다. 땀을 닦는 건지 손으로 얼굴을 몇 번 쓰다듬고는, 아론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은 어느새 평소의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 저는 타락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
“ 아론. 성욕을 느끼는 건 타락하는 게 아니라……. ”
“ 그런 자들과 똑같아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
아론의 눈동자에 경멸의 빛이 어렸다. 그러나 그 경멸은 아리스텔라를 향한 것은 아니었다. 전대 성녀를 범했던 사제들의 일을 떠올린 것일까. 그는 진저리치며 다시 눈을 감았다.
“ 성녀님께서는, 이 신전이 어째서 폐쇄되어 있는지 아십니까? ”
“ 신전 밖으로 나갔다가 제가 죽기라도 하면 봉인된 여신이 풀려나 세상에 재앙이 퍼지게 되니까,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
“ 처음 이 신전이 만들어졌을 때는, 완전히 폐쇄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
“ 네……? ”
성녀는 여신의 현신이다. 아무리 재앙의 여신이라 한들 신을 모신 성녀는 교황보다도 높은 권위를 지녔다. 신성 제국에서 성녀의 상징성은 무엇보다도 뛰어났다. 그녀 자신이 아무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지라도, 성녀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접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성녀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들은 많았다. 신전을 나갈 수는 없어도, 성녀를 알현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신전에 방문하여 기도를 드리고 돌아갔다. 물자를 나르는 마차도 정기적으로 드나들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신전에 인간의 출입을 막는 결계가 둘러지고, 신도들이 방문할 수 없게 되었으며, 물자를 나르는 것은 마력석으로 움직이는 무인 마차를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 이 신전의 결계는 성녀님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신전의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요. ”
성녀의 수명이 다하면 생명의 신 헤시우스는 다음 대 성녀의 몸에 여신 위그멘타르를 봉인한다. 신탁이 내리면 새로운 성녀를 찾아 신전으로 데려온다. 새로운 주인을 맞이한 신전에는 다시 결계가 둘러진다.
“ 사제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 신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겠죠……. ”
사제들이 기록한 신전의 역사는 자기변명으로 가득했다. 성녀가 타락하여 음란해졌기 때문에, 자신들은 성녀를 정화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다. 성녀가 타락하여 재앙의 여신을 봉인하는 힘을 잃는다면 여신 위그멘타르가 뛰쳐나와 세상에 재앙을 퍼뜨릴지도 모르니까. 단지 그 이유로 자신들이 성녀를 범하는 일을 정당화했다.
“ 성녀와 사제들이 모두 죽은 후에 신전의 문이 열립니다. 새로 들어온 이들은 남겨진 기록을 믿는 것밖에 할 수 없습니다. ”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들이 강제로 성녀를 범했다는 증거가 없었다. 남은 것은 기록뿐이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의 비밀을 지켜냈다.
“ 사실 세상에 퍼뜨려서는 안 된다는 < 재앙 >은 여신 위그멘타르의 힘으로 일으키는 재해나 전염병이 아니라―. ”
“ 사제와 성기사들이 본분을 잊고 한 여자를 범한 죄악, 일수도 있다는 거군요. ”
“ 그렇지요. ”
아론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이 남자의 웃는 얼굴에는 조금도 따스함이 없다.
“ 제가 신전을 빠져나왔을 때 그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도 그 점일 겁니다. ”
◇ ◆ ◇ ◆ ◇
사제들은 아론에게 음욕에 물든 타락한 성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너는 악마의 자식이니 한평생 신전 안에만 있어야 한다고 속삭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유혹에지지 않겠지만, 그에게는 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신전을 나가면 곧 악마의 유혹에 꾀어 마수로 변할 거라고 가르쳤다.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신전에서 잊혀진 채로 살다가 죽어버렸을 운명이었다. 그런 아론을 도와준 것이 어머니의 시종이었다.
시종은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의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아꼈다. 비록 시종이 특별한 위치라고는 하나 그에게는 권력이 없었다. 그래서 사제들이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것도 강압적으로 체벌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사랑하는 여인의 아이들을 아꼈다.
아무리 어려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애정에 기반 한 것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았다. 아이들은 시종을 따랐다.
시종은 성녀를 구하고 싶어 했다. 물론 그것은 어떠한 정의감이나 도덕심 때문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그녀를 다른 자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면 이 신전의 상황이 바깥에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녀를 범하던 사제들이 전부 처벌받으면, 자신이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다.
상식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성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미쳐버린 시종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시종은 먼저,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가장 신성력이 풍부하고 신성 마법에 뛰어난 아론을 시험 삼아 탈출시키기로 했다. 물자를 나르는 무인 마차에 숨기고, 아론으로 하여금 신성력으로 결계를 쳐 사제들이 찾지 못하게 했다.
어린 나이에도 이미 어른인 사제 수준의 신성 마법을 구사하던 아론을, 타락한 사제들이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론은 무인 마차에 몸을 숨겨 신전에서 탈출해 교황청으로 갔다.
교황청과의 교신에서 신원불명의 어린아이를 발견하여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들은 그 아이가 아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론을 신전으로 되돌려 보내라고 요청할 수는 없었다. 이 폐쇄된 신전에 어째서 어린아이가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던 사제들은 입술을 깨물며 침묵했다. 차마 그 아이가 이 신전에서 탈출한 아이이며, 성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탈출한 아론이 신전 안에서 벌어진 부정하고 음란한 행위를 소문낼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잘못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던 사제들은 피가 마르는 것을 느꼈다.
< 그래봤자 어린아이 하나가 아닙니까. 믿는 자는 없을 겁니다. >
< 하지만 이 신전에서 또다시 탈출하는 자가 나온다면 알 수 없는 일이지요. >
< 타락한 아이들이니까요. 또 무슨 간교한 수로 우리의 눈을 피해 달아날지 모릅니다. >
< 신전의 결계가 이토록 엄중한데, 어떻게 아이가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요? >
아론이 어떻게 해서 이 신전에서 탈출할 수 있었는지 조사하던 사제들은 일시적으로 신전의 결계를 약화시킨 것이 성녀의 시종임을 알게 되었다.
시종은 아론이 무사히 탈출한 일을 경험삼아 아이들을 데리고 야반도주를 계획했으나, 사제들이 성기사들을 대동하고 현장을 급습하는 바람에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사제들은 성녀의 시종과 함께 남은 아이들을 전부 지하에 가두고 문을 폐쇄했다. 당시에는 지하도 오염되지 않아 빛이 들지 않아도 신전의 맑은 공기로 어둠을 밝힐 수 있었다. 곳곳에 비치된 성령석으로 지상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갇힌 아이들과 시종이 확인할 수 있는 ‘ 지상의 상황 ’이란, 사제와 성기사들이 성녀를 범하는 일뿐이었다.
아이들과 시종은 곡기가 끊긴 상태로 매일매일 성녀의 비명과도 같은 신음만을 들었다.
이제 더는 교육을 할 필요가 없음에도 사제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화의 의식을 베풀었다. 성녀가 지치면 신성력으로 회복을 시켜 범했다.
제 힘으로 지옥을 벗어날 수 없었던 시종은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지하에 갇혔다는 압박감에 미쳐가는 아이들을 잡아먹고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정화라는 변명으로 제가 사랑하는 여인을 범하던 ‘ 진짜 괴물 ’들을 전부 죽여 버렸다.
전대 성녀를 둘러싼 비극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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