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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44화 (14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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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하다는 것은

[144] 순결하다는 것은

아리스텔라는 케인의 품에 안긴 채로 미사실로 향했다. 가능하면 부축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제 발로 걷고 싶었지만, 미사실에서 케인이 아리스텔라를 데려온 기사단의 휴게실까지는 거리가 멀어 그녀의 느린 걸음으로는 한나절이 걸릴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미사실의 문이 열리고, 기사단장의 품에 안긴 채 들어온 성녀를 본 사제들이 저마다 숨을 삼키며 쑥덕거렸다.

‘ 나갈 때도 기사단장의 품에 안겨 계셨는데, 들어오실 때까지……. ’

‘ 그러고 보니 케인 기사단장에서 노엘 사제님으로 시종을 바꾸려 했을 때, 성녀님이 거부하셨지요. ’

‘ 성기사들을 미사실로 끌어들였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설마 정말로……. ’

‘ 성녀님이 로이드 전 기사단장에게 순결을 잃었을 때부터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

아무리 작은 소리로 수군거려도, 아리스텔라의 귀에는 또렷하게 잘 들렸다.

케인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면 다들 입을 다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지만, 사실 자신들의 언행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리스텔라와 케인의 사이를 의심하고 있다. 아마도 자신을 범한 로이드를 용서하고 그를 시종으로 삼은 일까지 거론하면서 성녀가 남자와 부정을 저질렀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역대 성녀들은 사제만을 가까이했다는데, 아리스텔라는 성기사들을 사제와 동등하게 대우했으니까.

로이드가 아리스텔라를 강간한 일로 사제들이 기겁하며 그를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탁에 이르기를 성녀는 순결한 여인이었으니, 순결한 여인이란 반드시 숫처녀여야만 한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사제들에게는 로이드가 성녀를 더럽힌 불구대천의 원수였으며, 악마와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자의 죄를 사하고 곁에 두었으니 성녀 또한 순결을 잃은 충격으로 타락했으리라 추측한 것이다.

‘ 순결이라는 건,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리는 것일까. ’

음욕의 여신을 품은 성녀의 몸인데도,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면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고 여겨 비난한다. 성욕은 억제해야 하는 것이며 남녀간의 정사는 음란한 것이니, 그런 행위를 일삼은 성녀는 타락했다고 여겼다.

아리스텔라는 그것을 바꾸고 싶었다.

케인은 그녀를 단상에 앉히려 했지만, 아리스텔라는 거절하고 자리에 바로 섰다. 아직도 현기증이 일어 비틀거리지만, 가만히 서 있는 정도라면 가능할 것이다.

“ 미사 도중에 자리를 비워서 미안해요. ”

“ ……성녀님. ”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흉흉했다. 이미 그들은 성녀가 남자와 육체관계를 가진 더러운 여인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이제 아리스텔라의 입에서 사실 그녀는 로이드에게 순결을 잃은 이후로 타락해져 음란해졌으며, 밤마다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는 자백이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비난하며 정화하려 들 것이다.

“ 여신 위그멘타르를 모시는 성녀는, 당대의 순결한 처녀들 가운데 가장 신성력이 강한 여인입니다. ”

“ 네. 알고 있어요. ”

“ 전 기사단장 로이드가 성녀님께 부정을 저지른 것은 성녀님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성녀님을 용서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성서에도 강간으로 순결을 잃은 여인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

“ 용서라니요? ”

아리스텔라가 되묻자, 사제들이 또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여신을 모시는 성녀의 몸으로 남자에게 순결을 잃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뻔뻔한 여인이라 생각했을까.

“ 저는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어요. ”

“ 하지만 성녀님께서는 순결을 잃은 몸으로……. ”

“ 저는 순결을 잃지 않았어요. ”

아리스텔라의 대답에 사제들은 물론이고 성기사들까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로이드가 그녀를 강제로 범한 일을 모르는 사람은 이 신전에 없었다.

아리스텔라는 그때 로이드에게 순결을 잃었으며, 그 이후로는 어떤 남자와도 관계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것만이 최대한의 변명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텔라는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었다.

“ 성녀님, 대답해 주십시오. 성녀님께서는 전 기사단장 로이드에게 순결을 잃은 이후로, 단 한 번도 남자와 부정한 짓을 저지른 적이 없는 겁니까? ”

참으로 우스운 질문이라고 아리스텔라는 생각했다. 성녀는 여신을 모시는 존재일진대, 그들은 여신의 신성이 고작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 정도로 사라질 만큼 가볍고 덧없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 로이드와의 관계가 처음이 아니에요. ”

아리스텔라의 대답에 사제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성기사들의 눈에는 분노까지 일렁였다. 자신들이 평생을 바쳐 섬겨야 할 주인이 순결하지 않은 여인이라는 점이 그들의 자존심을 상처 입힌 까닭이었다.

“ 대미사가 끝난 후로 줄곧, 저는 신전의 남자들과 육체적인 관계를 가져왔습니다. ”

아리스텔라가 처음으로 남자와 관계한 것은 대미사 전날 밤이었으나, 그녀는 대신관 히페리온과 관계한 것을 알지 못했다. 히페리온이 말하지 않으니 아무도 알지 못했다.

조슈아와 처음으로 섹스했을 때를 떠올리며 아리스텔라는 눈을 감았다. 대미사 중에 몸이 달아올라 어쩌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면서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조슈아가 찾아왔다.

남자에게 맨몸을 보이고 그 손길과 입술에 느끼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그가 전해주는 쾌감은 싫지 않았다.

약간의 두려움과 혼란스러움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조슈아와 관계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의 품안에서 처음으로 절정을 맞이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을 기억한다. 만약 첫경험이 그저 아프고 괴롭기만 한 것이었다면 아리스텔라는 욕망을 느끼면서도 두려워했을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자신에게 섹스의 기쁨을 알려준 조슈아에게 감사했다. 그래서 그를 특별하게 생각했다.

비록 연인이 되지는 못했을지라도.

“ 예전에는 제 처지가 싫었어요. 아무 때나 성욕이 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가 만져주는데도 쾌락을 느껴 저항할 수 없게 되는 것도, 한 번 욕망에 사로잡히면 절정에 이르기 전까지 저 자신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도 싫었습니다. ”

섹스란 두 사람만의 은밀한 것이었다. 비록 그 상대가 진짜 연인은 아닐지라도, 아리스텔라는 그것을 비밀스럽고 음란한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끄러워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순간이기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도록 비밀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부정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

사제의 계율을 깨고 그녀를 안아준 히페리온이나 조슈아는 그녀가 아무리 음란한 모습을 보여도 경멸하지 않았다. 더럽다고 여기지 않았다.

로이드와 케인은 그녀의 부끄러운 부위까지 입술과 혀로 기쁘게 해주었다. 자신을 섬기는 그들이 부정하다 여기지 않는다.

아리스텔라가 섹스를 더럽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과 관계한 남자들까지 더럽다고 비난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 그럴 수 없었다.

“ 저를 사랑하는 사람이 저를 만져주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몸을 섞는 행위가 단순히 육체의 쾌락이 아닌 정신적 충만감까지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

“ 이럴 수가, 성녀님이 타락하시다니……! ”

“ 저는 타락하지 않았어요. ”

“ 하지만 성녀님께서 방금,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

“ 남자와 섹스한다고 해서, 제가 타락한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아요. ”

“ 오오, 맙소사……! ”

새하얀 성의를 입은 성녀의 입술에서 < 섹스 >라는 단어가 나온 것만으로 사제들이 기겁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 밤을 보낸다 >거나 < 잠자리를 함께 한다 >등 그럴듯하게 돌려 말할 수도 있었으나 아리스텔라는 굳이 이 노골적인 단어를 사용했다.

아리스텔라는 욕망을 느낄 때마다 남자에게 관계를 요구했고, 그들은 그녀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에게 성행위란 더 이상 부정하며 더러운, 혐오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은 신의 지극히 일부를 나누어받은 것. 인간의 성욕 역시 신께서 하사하신 소중한 욕망이다. 그 욕망을 더럽다고 폄훼하여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신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 하지만 성녀님. 여신 위그멘타르를 모시는 성녀는 순결한 여인어야 한다는 신탁이 내려왔습니다. 성녀님께서는 지금 신탁을 부정하시려는 겁니까? ”

“ 부정하지 않아요. ”

신탁은 분명 당대의 순결한 여인 가운데 가장 신성력이 강한 자에게 여신 위그멘타르가 깃든다고 전하고 있다.

신탁의 내용은 분명 성녀는 < 순결한 여인 >이라는 것.

< 남자와 성관계를 갖지 않은 여인 >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 성욕이라는 것은 인간의 욕망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자가 성욕을 느껴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

“ 여신을 모신 성녀님께서 어찌 그런 망측한 말씀을 하십니까! ”

“ 여신을 모신 성녀가, 고작 남자와 성관계를 했다고 타락했다고 말하는 건가요? ”

아리스텔라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혹스러워 하는 사제와 성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개중에는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자도 있었다. 그들은 남자와 부정한 짓을 저지른 성녀가 타락했으니 정화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텔라는 정화의 의식을 치를 생각이 없었다.

숫처녀가 아니라도,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어도, 그녀의 신성은 여전히 깨끗하고 강력했다.

순결이란 새하얀 도화지처럼 연약하고 쉬이 더러워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아리스텔라에게도 있었다. 구겨지거나 낙서를 한 것만으로 예전의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아리스텔라는 순결하다는 것이 < 아직 더럽혀지지 않은 것 >이 아니라 < 무엇으로도 더럽힐 수 없는 것 >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음란한 관계를 가져도 그녀의 신성은 조금도 더러워지지 않았다.

아리스텔라가 입고 있는 성의는 새하얀 색이었다. 성의는 본래 오염되지 않아 세탁할 필요가 없었다. 오물이 묻어도 털어내면 곧 깨끗해지고, 물에 젖어도 밖으로 나오면 금세 뽀송뽀송하게 말라버린다.

이 순결한 하얀 색이 바로 모든 것을 정화하는 힘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 제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남자와 섹스한다고 하더라도, 제 신성은 조금도 더러워지지 않을 거예요. 장담할 수 있어요. ”

여신의 신성을 고작 인간의 욕망 따위가 더럽힐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게 확신한 아리스텔라는 미사실의 오른편에 모여 있는 성기사들을 향해 다가갔다.

자신보다 머리가 하나 이상 높은 그들을 올려다보며 아리스텔라가 물었다.

“ 당신들의 눈에는, 제가 더러운 여자로 보이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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