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43화 (14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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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받는 성녀

[143]

“ 돌아가십시오, 조슈아 신관. 성녀님의 치료도 보필도, 더는 사제분들에게 맡기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기사단에서 성녀님을 모시겠습니다. ”

“ 케인, 무슨 소리예요? ”

아리스텔라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케인은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며 그녀에게 물었다.

“ 성녀님. 언제까지 사제들이 방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용납하실 생각이십니까? ”

“ 방자하다니요. 그런 표현은……. ”

“ 저에게 주어진 임무는 성녀님을 보필하는 것뿐입니다. 제가 당신을 지키는 것을 사제들이 방해한다면, 그들을 존중할 이유가 없습니다. ”

“ 케인! ”

케인은 사제와 척을 질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향한 적의에 둔감한 그는 사제들이 성기사를 무시하거나 깔보아도 분노하지 않았다.

황궁에 있을 때도 귀족은 평민 출신의 관료를 얕잡아보았고, 문관은 무관을 얕잡아보았다. 그러니 정결한 몸으로 신을 모시는 사제가, 신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더러운 마수를 물리치는 성기사를 기피하는 것은 어느 의미로 당연할 것이다.

사제와 성기사의 공통된 목적은 여신의 현신인 성녀를 섬기는 것. 보다 신에 가까운 사제들이 성녀를 더욱 잘 보필할 수 있다는 의견에 케인은 동의했다. 그래서 묵묵히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사제들이 성녀를 괴롭게 하고, 그녀의 의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오늘처럼 그녀를 분노하게 한다면 케인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 성녀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사제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제들은 자신들이 납득 가능한 행동이 아니라면, 아무리 성녀님의 의견이라 해도 이의를 제기할 겁니다. 어찌 그들을 내버려 두십니까? ”

“ 이해 가지 않는 행동에 이유를 묻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저는 저를 따르는 사람들의 의견을 틀어막고 싶지 않아요. ”

인간인 아리스텔라조차도 자신이 여신의 현신이라는 자각이 없는데, 미숙해 보이는 그녀의 의견이 정말로 따를만한 것인지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건설적인 토론이라면 아리스텔라도 얼마든지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제들을 설득하는 일이 힘들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그것이 의견의 제시가 아닌, 그녀를 모욕하는 성희롱에 가까운 사고였기에 화가 났던 것이다.

“ 이제까지는 제가 성녀답지 못한 모습을 보였으니, 다들 불안해하는 것도 이해해요. 제가 할 일은 그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이지, 폭력적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에요. ”

“ 때로는 지혜로운 말보다 물리적인 힘이 효율적일 때도 있는 법이지요. ”

주군을 지키고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것이 기사. 케인은 자신이 모욕당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자신의 주인인 아리스텔라를 모욕하는 일은 참지 못했다.

책임감이 강한 성녀라면 불편한 몸으로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억지로라도 남자와 몸을 섞으려 들 것이다. 연약한 그녀에게 그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 케인. 당신의 힘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요청할게요. 이 일은 제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에요. ”

“ 흐트러진 신성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다른 자들과 밤을 보내시려는 겁니까? ”

케인의 질문에 아리스텔라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옷을 입고 있는데도 마치 벌거벗은 몸을 보인 것처럼 부끄러워서, 아리스텔라는 모포로 몸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아직도 어지럽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이 몸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보다 더 큰 자극이 필요하다. 전대 성녀들처럼 여러 남자와 성관계를 가지거나, 다른 부끄러운 행위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리스텔라의 몸이 욕망에 약하다고는 하나 그것은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이것도 저것도 싫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내라고 엉엉 울면서 떼를 쓰고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 필요하다면, 할 거예요. ”

“ 성녀님! ”

앞으로 이틀 후면 로이드가 돌아온다. 그는 그녀의 곁을 떠날 때보다 더욱 강해져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아리스텔라도 입 밖에 내어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돌아온 로이드에게 이전보다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그러니 도망칠 수는 없었다.

케인과 성기사들에게 어려운 일을 맡겨놓고 뒤에 숨어 어리광을 부린다고 해서 그녀를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케인은 그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었다.

아리스텔라는 이 신전의, 그들의 주인이었으니까.

“ 안내해줘요, 조슈아. 우선은 대신관님을 만나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미사 중에 있었던 사고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하고……. ”

“ 아닙니다, 성녀님. 케인 기사단장의 말대로, 당분간은 기사단에서 머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

“ 네? 왜요? ”

신성한 미사를 어지럽힌 탓에 자신에 대한 사제들의 여론이 나빠진 것일까. 그렇다면 더더욱 해명을 해야 했다. 강연대 위에 놓여있던 것은 성서가 아니라 전대 대신관의 일기였으며, 그녀를 모욕할 의도로 전대 성녀의 음행을 기록한 페이지를 펼쳐놓았다는 것을.

“ 강연대에 놓여있던 것이 무엇인지 다들 알아버렸습니다. ”

“ 전대 대신관의 일기를요? ”

그야 강연대 위에 놓아둔 채로 나왔으니 보기만 해도 알 터이지만, 조슈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를 곤란하게 하기 위해 성서를 일기로 바꿔치기한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까.

“ 전대 대신관의 일기……. 정화의 의식이 이루어진 과정을, 다른 이들까지 전부 알게 되었습니다. ”

전대 대신관의 일기는 도서관에 꽂혀 있었으니 누구나 접할 수야 있었지만, 구태여 관심을 가지고 찾아본 자가 아니면 알지 못했다. 아론이 그것을 찾아보고 자신을 따르는 사제들에게 내용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들었지만, 수습사제와 성기사들에게까지 알려진 충격은 컸다.

“ 지금 미사실에 가시면, 그들은 성녀님에게 해명을 요구할 겁니다. ”

단 한명의 성녀도 예외가 없었다. 이제까지 이 신전에 들어와 여신을 모셨던 모든 성녀는 타락하여, 남자들과 음란한 관계를 가졌다.

그들은 아리스텔라에게도 질문할 것이다. 그녀만이 예외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

“ 제가 순결한 여자인지 아닌지, 시험하려 들 거라는 말이로군요……. ”

“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가 막겠습니다! ”

케인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검병을 거머쥔 그의 손에 힘줄이 불뚝 튀어나왔다. 아리스텔라가 지시한다면, 그는 담장 성검을 뽑아들고 미사실로 쳐들어가 그녀를 모욕하려는 사제들의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정색하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케인의 눈빛은 완강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조슈아도 그에게 동조하는 눈치였다.

“ 성녀님께서 그들 앞에서 거짓을 말씀하실 수 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희들이 비밀을 지켜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지금은 그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

“ 거짓말이라……. ”

미사실은 신의 은총을 받는 장소다. 그곳에서 거짓말을 한다니, 아무리 아리스텔라가 사제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아리스텔라는 거짓말이 서툴렀다. 누군가 그녀에게 <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는가 >를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없다.

‘ 내가 순결한 여자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 사람들은 나를 정화하려 들까. ’

신성력이 흐트러져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태에서, 수많은 남자에게 범해질 것이다. 역대 성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 조슈아. 묻고 싶은 게 있어요. ”

“ 무엇입니까? ”

“ 성녀와 사제, 그리고 성기사들을 이 신전에 감금하고, 그들로 하여금 여신 위그멘타르의 음욕을 충족시키도록 하면서……. 그게 정말로 신의 뜻인가요? ”

제물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음욕의 여신을 몸에 봉인한 성녀는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하고, 그녀를 모시는 사제와 성기사들은 여신의 힘에 감응하여 성녀와 관계를 가진다.

이 폐쇄된 신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교황청에서는 정말로 모르고 있을까.

“ 세계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다소의 희생은 어쩔 수 없지요. ”

“ 수많은 사람들의 평온을 위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거군요. 평생 구원받지 못한 채로. ”

아리스텔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는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것을 싫어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책임을 대신 짊어지는 것도 싫어했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그럴듯한 명분이지만 그 소수에 속한 이들의 처지는 과연 어떠한가.

욕망에 미쳐버린 몸을 하고서 아무 남자에게나 다리를 벌리며 헐떡거리는 제 처지와, 그런 성녀의 힘에 동요하여 혹은 신의 종으로서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관계를 가져야 하는 사제와 성기사들의 처지는 어떠한가.

역대 성녀들은, 그녀를 따르는 사제와 성기사들은, 과연 자신들의 운명을 저주하지 않았을까.

“ 가장 신성력이 강한 처녀의 몸에 여신을 봉인하고, 그 여자를 성녀로 삼아 신전에 가두고, 성녀는 사제와 성기사들과 성관계를 가지고. 그리고 이 신전 안에서 우리가 어떤 행위를 벌이는지는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고……. ”

“ 성녀님.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 여신 위그멘타르의 신전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합니다. ”

조슈아는 난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 성녀님을 보호할 수단도 사라지면, 성녀님께 위험이 닥친다면 여신을 봉인한 힘 또한 어찌될지 모릅니다. 세상에 재앙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

“ 인간 세상에 재앙을 일으킨 것은 신인데, 그것을 어째서 인간이 책임져야 하는 거죠? ”

“ 예? ”

아리스텔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화의 신 헤시우스와 재앙의 신 위그멘타르는 서로가 서로의 짝이 되는 부부였다. 만약 여신 위그멘타르가 인간 세상에 재앙을 퍼뜨리는 것이 싫었다면 신인 헤시우스의 힘으로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도, 같은 신이라면 동등한 권능을 행사할 테니까.

“ 성녀의 몸에 여신 위그멘타르를 봉인한 것은 생명과 평화의 신인 헤시우스잖아요. 어째서 평화의 신은 여신을 정화하거나 재앙을 퍼뜨리지 말라고 설득하지 않고, 인간 여자의 몸에 가두는 길을 택했을까요? ”

아리스텔라의 질문에 조슈아는 당황했다. 그런 질문은 사제였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었다.

“ 신의 뜻은 지극히 높은 곳에 있기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법이지요……. ”

배운 대로 대답을 하면서도, 조슈아는 말끝을 흐렸다.

우스운 일이다. 성녀는 여신의 현신이니 아리스텔라가 곧 위그멘타르 자체일진데, 그녀 앞에서 신의 뜻을 운운하고 있다니. 이것은 어떤 모순인가.

“ 알았어요. 미사실로 갈게요. ”

“ 성녀님? ”

“ 신의 뜻은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거라면서요? 그걸 알았으니 됐어요. ”

아리스텔라의 반응을 조슈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제 처지에 혼란스러워 하던 그녀답지 않았다. 여전히 몸은 중심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지만, 아리스텔라는 지금 완전히 안정된 눈빛을 하고 있었다.

“ 거짓말은 하지 않아요. 사제분들께, 성기사분들께, 진실을 밝힐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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