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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받는 성녀
[142]
“ 제가 만져드리면 안정이 된다고 하셨지요? ”
어질어질한 시야가 정리되고, 그녀를 바라보는 깊은 푸른빛의 눈동자가 보였다. 제 몸을 덮고 있는 거대한 남자의 그림자를 두려워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으나, 아리스텔라는 어쩐지 몸이 뻣뻣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 네, 네에……. ”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커다란 손이 겨드랑이에서부터 가슴까지 한 번에 움켜쥐었다.
“ 아읏, 케인……. ”
“ 안정시켜 드리겠습니다. ”
“ 아, 으응, 거긴……. 아! ”
양손으로 가슴을 감싸, 엄지의 배로 첨단을 천천히 굴리자 아리스텔라의 몸이 들썩이며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몸 안을 배회하는 이물감이 사라진 자리에 야릇한 쾌감이 피어올랐다.
“ 상당히 단단해져 있군요. ”
“ 아, 아아응! ”
옷 위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가슴의 돌기를 돌리다가 손끝으로 지그시 누르자, 은근한 쾌감에 약간의 통증이 더해져 아리스텔라는 짧게 신음을 토하며 케인의 망토를 붙잡았다.
“ 케인, 잠깐……. 여, 여긴 휴게실, 이잖아요. 누가, 들어오면……. ”
“ 성녀님의 기분을 안정시키는 중이라고, 사실대로 고하지요. ”
“ 아응, 그런……. 아, 아! ”
손끝으로 젖꼭지를 이리저리 굴리던 케인은 단단히 솟아오른 그곳에 입술을 대고 옷섶 째로 빨아들였다. 얇은 성의 너머로 뜨거운 입술과 촉촉한 혀의 감촉이 느껴지자 아리스텔라는 바들바들 떨면서 케인의 이름을 불렀다.
“ 잠깐, 그만. 다시 이, 이상해질, 것, 같아요……. ”
케인이 만져주면 안정이 된다고 했던 것은 차가워진 몸에 온기를 불어넣듯 천천히 쓰다듬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애무해달라는 뜻이 아니었다.
원래도 민감한 몸이긴 했지만, 이렇게 몸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 애무를 받으니 쾌감이 너무 강했다. 부드러운 손길은 기분을 안정시켰지만 농염한 애무는 또다시 그녀를 흔들었다. 아리스텔라는 케인의 망토 자락만 쥔 채로 파르르 떨며 신음했다.
“ 아, 좋아, 아……. ”
쾌감을 느끼며 신음하는 아리스텔라의 몸짓에 저항이 약해진 것을 확인한 케인은 그녀의 옷을 벗기기 위해 목깃을 살며시 붙잡았다.
―똑똑.
휴게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아리스텔라의 몸이 움찔 굳었다. 그녀의 가슴을 핥던 혀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케인은 노크를 무시하고 싶었으나 아리스텔라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결국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 성녀님께서 쉬고 계십니다. 용무라면 다음에 말씀하시지요. ”
“ 성녀님을 치료하러 왔습니다. ”
조슈아의 목소리였다.
조슈아는 의술에 능통한 사제이면서, 현재 성녀의 시종이기도 했다. 미사의 뒤처리를 다른 사제들에게 맡기고 성녀의 상태를 살피러 온 것일까. 사제를 경계하는 케인은 마뜩찮았으나 아리스텔라가 바닥에 떨어진 모포로 몸을 가리며 문을 열어달라는 듯한 눈짓을 하자 거절할 수가 없었다.
덜컹.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당연히 뒤에 사제들을 몰고 왔으리라 생각했는데, 조슈아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위의 기척을 살폈으나 누군가 숨어서 지켜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케인은 조슈아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했으나 아리스텔라가 그를 신뢰하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조슈아를 휴게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 조슈아, 미안해요. 미사 도중에 갑자기 나와버려서……. ”
“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요. 성녀님의 치료가 우선입니다. ”
평소의 조슈아라면 < 그런 것은 신경 쓰지 말라 >거나, < 다른 사제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라고 대답할 텐데, 이번에는 조슈아가 말을 돌렸다.
아리스텔라의 앞으로 다가온 조슈아는 무릎을 꿇고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그가 한숨을 내뱉었다.
“ 역시 안정이 되지 않은 거로군요. ”
“ 네……? 뭐가요? ”
“ 성녀님의 오염된 신성력을 정화하느라 히페리온 대신관과 신성력을 맞바꾸셨으니까요. 그것이 불균형을 일으킨 겁니다. ”
사제 교육을 받은 자들은 자신의 신성력을 갈무리하고 안정시키는 일에 능숙했다. 따라서 어지간한 큰 치료를 받더라도 따로 안정화 기간이 필요 없었다.
크리스를 정화했을 때, 완전히 비워진 그의 신성력을 다시 채운 것은 아리스텔라의 힘이었다. 크리스는 아직 신성력의 안정화에 서툰 수습사제였기에 그 뒤로 매일매일 조슈아를 찾아가 신성력을 안정시키는 치료를 받아야 했다.
“ 미사를 보는 것뿐이니까,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는데……. ”
신성력이 가득한 아리스텔라의 몸은 그 누구의 신성력이 흘러들어오더라도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니 오늘도 큰 무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히페리온의 신성력을 온전히 제 것으로 안정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성서 대신 강연대에 놓인 전대 대신관의 일기로, 아리스텔라가 평정심을 잃은 상태가 아니었더라면.
조슈아는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자책했다. 성녀의 시종으로서, 그녀의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여 일정을 조절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너무 안이했다.
본래 그녀의 몸은 본래 엄청난 양의 신성력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기에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무너지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평정심을 잃은 순간부터 그녀 안의 신성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 것이 아닌 신성력을 몸에 가득 채운 상태로, 분노와 흥분으로 인해 심하게 요동치는 순간 아론이 말로써 쐐기를 박는 바람에 완전히 균형을 잃어버렸다.
노엘이 손을 댄 순간 자극이 크게 느껴졌던 것도 그녀의 불안정한 신성력 사이로 노엘의 신성력이 흘러들어 혼란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 그럼 케인이 만져줄 때 안정되었던 건……. ”
“ 통상 성기사는 사제보다 신성력의 총량이 적으니까요. 특히 케인 기사단장은 개중에도 신력 적성이 낮은 편이고. ”
“ 흠. ”
조슈아의 말에 휴게실 입구에 서 있던 케인이 목을 가다듬었다. 결국 그 순간 케인이 아리스텔라를 데리고 자리를 벗어난 것은 개중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다른 사제가 아리스텔라를 부축했더라면 스며드는 신성력이 그녀의 안을 더욱 어지럽혀,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 그럼……. 균형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
“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 신성력을 불어넣어 성녀님의 몸 안에서 겉도는 신성력을 하나하나 갈무리해 안정시키는 것이고. ”
그 과정에서 상당한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고 조슈아는 설명했다. 어쩌면 후유증이 남을지도 모른다고.
본래 신성력 안정화가 서툰 것은 어린 수습사제나 일반인에 국한된 이야기였다. 그래서 풍부한 신성력을 가진 사제가 강한 신성력을 쏟아부어, 고통 없이 그를 안정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리스텔라의 신성력은 조슈아의 것을 아득히 초월한 양이다. 조슈아의 힘으로 그녀의 몸 안에 겉도는 신성력을 일일이 갈무리해 곳곳에 연결해주는 것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다.
마취 없이 살을 가르고 실로 꿰매는 듯한 고통일 것이다. 연약한 성녀의 몸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 다른 하나는요? ”
“ 성녀님의 몸에 자극을 줌으로써, 몸이 외부에서 스며든 신성력을 자신의 것으로 갈무리하여 안정되게 하는 것입니다. ”
흔들다리 위에서 난간을 부여잡는 것처럼, 갑자기 투입되어 원래의 몸에 잘 섞이지 못하고 겉돌던 이질적인 신성력이라도, 강한 자극을 받으면 흘러나가지 않고 몸에 붙어있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속성을 바꾸어 몸 안에 딱 안정된다고 한다.
“ 제 몸에 자극을 주는 거라면……. ”
음욕의 여신을 봉인하고 있는 몸이다. 그 몸이 외부의 신성력을 자신의 것으로 갈무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면 하나밖에 생각할 수 없다.
“ 또, 또……. 남자와 몸을 섞어야 한다는 건가요? ”
“ 이제까지 경험하셨던 것보다, 더 큰 자극이 필요할 겁니다. ”
조슈아의 대답에 아리스텔라는 또다시 눈앞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정신없이 기절할 때까지 안기고도 다음날이 되면 또 욕구가 차올랐다. 매일 남자에게 안기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 되었는데, 이제는 그것보다 더 큰 자극을 얻어야 한다니.
전대 성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난교라도 벌이란 말인가.
아리스텔라는 소름이 끼쳐서 어깨를 안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 그냥 이제까지처럼, 있으면 안 되나요? 자연스럽게 안정되지는 않는 거예요? ”
“ 성녀님의 것이 아닌 신성력이 몸 안에서 한 번 흐트러진 이상, 원래대로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시일이 지나면 안정을 되찾지만, 성녀님께서는……. ”
찻잔 속의 물은 찻잔을 흔들어도 테이블에 놓으면 곧 안정된다. 그러나 바다는 어떠한가. 해일이 밀려와 육지를 뒤덮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번 흐트러져버린 성녀의 신성력을 안정시키는 데는 어쩌면 평생이라는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른다. 이대로 신성력이 안정되지 않아 제 발로 걷지도 못하고 평생을 누워 지내야만 할 수도 있다.
성녀를 섬기는 것은 사제와 성기사들의 의무이니 평생 그녀가 식물인간처럼 누워서만 지낸다 하더라도 그들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아리스텔라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 성녀님께 그런 일을 시킬 수는 없습니다. ”
문가에 서있던 케인이 딱 잘라 대답했다. 묵직한 음성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다.
“ 성녀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일을 하도록 종용하는 것이 사제분들의 충심입니까? ”
“ 이대로는 계속 힘들어하실 겁니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
“ 그것은 저희가 보필하면 되는 일입니다. ”
“ 케인 기사단장. ”
“ 애초에 성녀님의 자유를 속박하여 그분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사제분들이 아닙니까! 사제분들이 성녀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 이상, 성녀님을 더는 위험 속에 놔둘 수 없습니다. ”
케인은 신전의 교리와 사제의 계율에 대해서는 겉핥기식으로밖에 배우지 못했으나, 사제들이 성녀를 섬기는 방식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사제들은 성녀를 진심으로 주인으로 여기는 것 같지가 않았다. 말은 여신의 현신이라고 하면서, 나이도 어리고 순진한 그녀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막아서며 자기들의 입맛대로 일을 진행한다.
그게 성녀를 얕잡아보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케인은 사제들이 성녀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을 보았고, 성녀를 무시하고 억압하려 드는 것을 보았다. 주군에게 모욕을 주는 이들이 진정한 충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주군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기사. 주군이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그것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것이 그의 기사도였다. 케인에게 사제들이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그의 기사도에 반하는 자들이었다.
사제를 믿지 않게 된 케인은 조슈아도 믿을 수 없었다. 방관자인 그는 결국 싸움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귀찮아할 뿐인 겁쟁이가 아닌가. 애매모호한 태도나 중립이라는 이름의 회피를 케인은 질색했다.
성녀가 그를 신뢰하기에 방 안에 들였을 뿐, 그의 손에 성녀를 넘겨줄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케인은 허리춤의 성검을 꽉 쥔 채로 조슈아를 노려보았다.
“ 돌아가십시오, 조슈아 신관. 성녀님의 치료도 보필도, 더는 사제분들에게 맡기지 않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기사단에서 성녀님을 모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