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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전야
[138]
삐―삐―우는 소리가 들려 문득 정신을 차리고 테이블을 보니, 잘게 찢어서 흩어놓았던 빵이 어느새 다 사라져 있었다.
“ 어머. 벌써 다 먹은 거야? 더는 줄 먹이가 없는데. ”
아리스텔라가 양손을 모아 테이블 쪽으로 내밀자, 작은 새는 파드득 날갯짓을 하며 그녀의 손 위로 올라왔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사람을 잘 따르는 새다.
“ 자, 이제 네 둥지로 돌아가렴. ”
창가로 다가간 아리스텔라는 열린 창문 너머로 새를 날려 보내주었다. 하지만 새는 날아가지 않고, 방향을 바꾸어 다시 아리스텔라의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 어머? ”
먹이를 준 것 때문일까? 하얀 새는 아리스텔라의 어깨 위에 앉아 그녀의 옷깃에 제 몸을 비비적거렸다.
아리스텔라가 손을 내밀면 순순히 손바닥 위로 내려앉지만, 창밖으로 날려 보내면 다시 그녀에게로 날아들었다. 아무래도 작은 새는 그녀의 곁을 떠날 생각이 없는 듯했다.
“ 이걸 어쩌지? 내 방에는 새장도 없는데……. ”
날개달린 새를 억지로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밖에서 날아든 것이 아니라, 이 신전 안의 누군가가 키우는 새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차라리 그 쪽이 가능성은 더 높을 것이다.
주인이 찾고 있으면 어쩌지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신전 안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주인을 찾기 위해 이 늦은 시각에 사제와 성기사들을 한 자리에 소집할 수도 없었다.
‘ 시간이 늦었으니까……. 오늘 밤만. ’
성녀의 방은 넓으니 새가 날아다니다가 장애물에 부딪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루 정도는 방에 두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아리스텔라는 빵 바구니를 옆으로 세운 뒤 바닥에 수건을 깔고, 바구니의 손잡이를 떼어 일자로 펴 새가 쉴 수 있도록 홰를 만들어 걸어주었다.
“ 오늘은 일단 여기서 쉬렴. 내일 조슈아에게 부탁해서 주인을 찾아 줄게. ”
작은 새에게 주인은 있을까. 없다면 이 신전에서 키우게 될까.
기왕이면 하늘을 날아가 저 밖의 세상을 누비며 사는 것이 자유로운 새에게는 더 어울릴 텐데, 굳이 이렇게 사람이 사는 방 안으로 들어온 작은 새를 아리스텔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 하지만 방안에 누군가 있는 건 좋네. ’
넓은 방에서 혼자 잠드는 것은 쓸쓸하다. 발치에 작은 조명등을 켜놓고 자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성녀가 머무는 중앙 건물은 평소에는 오로지 그녀와 시종만이 쓰는 공간이었다. 그러니 조슈아와 밤을 보낸다고 한들 들킬 가능성은 낮았다. 크리스와 노엘에게 안긴 탓에 조금 피로하기도 했고, 아론의 의심이 깊어질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탓에 돌려보냈지만.
지칠 때까지 섹스를 하고 넓은 품에 안겨 잠드는 것은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 섹스를 해야 할 만큼 굶주린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히페리온이나 조슈아의 말대로, 아리스텔라는 욕구를 잘 해소하고 있었다. 혼자서 잠들지 못할 정도로 몸이 달아오르는 일도 최근에는 없었다. 어쩌면 이대로 제 안의 여신이 얌전해질지도 모른다.
‘ 그러면 좋겠는데. ’
히페리온도 조슈아도 그녀에게 욕구가 인다면 참지 말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신전의 모두가 그녀의 안에 봉인된 여신의 정체를 알게 되기 전까지는, 조금이라도 더 자제하고 싶었다.
“ 잘 자렴. ”
바구니에 앉아있는 작은 새에게 인사를 하고, 아리스텔라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 ◆ ◇ ◆ ◇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아리스텔라는 자신의 방 안에 오도카니 서있었다.
지금 시간이 아침인지 낮인지, 저녁인지 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미사에 나가야 할까, 마법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할까, 성기사들의 훈련을 보러 가야 할까.
이상하게 앉거나 누워서 쉴 기분은 들지 않았다. 아리스텔라는 가만히 제자리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자신은 지금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 성녀님. ”
무거운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그녀의 시종이었다.
그런데 그 시종은 조슈아가 아니었다.
“ 아론……? ”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 짧은 검은 머리에 매서운 금색 눈동자. 그녀가 기억하는, 이 신전의 아론이었다. 얼굴이 닮은 다른 남자가 아니라.
“ 어, 음……. 아론. 당신이 제 시종인가요? ”
“ 이런. 기억이 없으신가 보군요. ”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론의 답변이 뜻밖이었다. 그의 금안이 가늘게 휘어지며 성녀의 몸을 시선으로 훑었다.
“ 시종의 앞에서는 편하게 계셔야 하는데, 어찌 불안해하십니까. ”
“ 네? 아니, 저, 그……. ”
“ 역시 성녀님 안의 악마가 아직 날뛰는 모양이군요. ”
그 말에 아리스텔라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론은 성큼 다가와 그녀의 양 어깨를 감싸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무심코 아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커다란 손이 등을 매만졌다. 허리 아래쪽부터 천천히 쓰다듬으며 올라온 손이 목덜미에 닿자, 아리스텔라는 몸을 움츠렸다.
“ 으, 응……. ”
“ 추우신가 보군요. 이렇게 몸을 떠시고. ”
“ 아, 아뇨. 저……. ”
“ 목욕을 하시면 좀 나아지실 겁니다. ”
아론이 옷을 벗기려 하자, 아리스텔라는 흠칫 놀라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 왜, 왜 이러세요? ”
“ 목욕을 하기 전에 탈의를 하셔야지요. 아니면 저번처럼 입고 목욕하시겠습니까? ”
아리스텔라는 당혹스러웠다. 다른 남자가 제 옷을 벗기는 일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아론만은 예외였다. 아리스텔라는 아직도 아론이 어색하고 낯설었다. 옷을 벗는 것도 어색한데, 그와 함께 욕조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제 비밀을 들킬 것 같았다.
의심을 사면 안 된다고 조슈아가 말하지 않았나. 오감을 예민하게 하는 성수에 몸을 담그고, 아론이 몸을 만져준다면 흥분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 저어, 욕조에 몸을 담그는 대신 성수를 적신 수건으로 닦는 방법도 있다고 하던데요! ”
처음 케인이 그녀의 목욕 시중을 들었을 때, 성수의 정화를 버티지 못하고 현기증을 일으켜 의식을 잃는 수도 있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케인이 그녀를 범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을 고한 것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케인의 말을 변명의 수단으로 삼는 수밖에 없다.
“ 저는 성녀님이 하루빨리 정화에 익숙해지시길 바라지만, 당신의 뜻을 따르는 것도 시종의 의무니까요. 그리 하겠습니다. ”
아론이 어딘가에서 나타난 양동이를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함께 욕조에 몸을 담그는 일은 피했지만, 어쨌거나 그가 몸을 닦아준다면 그 앞에서 알몸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 제발 아무 일도 없었으면. ’
왜 갑자기 아론이 제 시종이 되었는지,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어쩐지 기억이 혼선을 일으키는 것을 느끼며 아리스텔라는 떨리는 두 손을 가슴 앞에서 꼭 모아 쥐었다.
아론이 성수를 길어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성수를 길어온 아론은 양동이를 옆에 놓고 아리스텔라의 옷을 벗겼다. 허리띠를 풀고 옷섶을 벌리자 히페리온이 만들어준 새하얀 성의가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 괜찮아. 진정하자. 몸을 닦는 것뿐이잖아. 들키지 않을 거야. ’
조금 긴장한 채로 눈을 감고 성수를 적신 수건이 제 몸을 감싸기를 기다리던 아리스텔라는 아론의 손이 제 가슴을 움켜쥐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 꺄아, 아론? 지금……! ”
“ 성수에 몸을 담그신다면 타올로 닦는 정도로도 가능하지만, 이렇게 적시는 정도로는 제대로 정화가 되지 않으니까요. 특히 성녀님은 아직 정화에 익숙하지 않으시니, 제가 직접 손으로 신성력을 불어넣으면서 정화를 돕는 편이 나을 겁니다. ”
“ 앗, 정화라니, 으응……. ”
성수에 손을 적신 뒤, 정성스럽게 그녀의 가슴을 감싸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주무르는 아론의 손길은 대미사 준비 때보다도 더욱 집요했다. 커다란 손이 말랑말랑한 가슴을 쥐고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려, 그녀의 붉은 젖꼭지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비틀었다.
“ 하읏! ”
“ 참으셔야 합니다, 성녀님. 성수로 몸을 정화해야 하니까요. ”
대체 무슨 정화를 한다는 걸까. 정화를 하는데 왜 점점 몸이 뜨거워지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아론 앞에서 지금 당신이 만져주니 점점 야한 기분이 되어간다고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아리스텔라는 눈을 감고 목욕이 빨리 끝나기를 빌었다.
“ 아, 흣! 아응! ”
옆구리와 아랫배를 훑고 내려간 손이 음부를 매만지자 아리스텔라는 저도 모르게 신음하며 몸을 움찔거렸다. 아론은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한쪽 팔로 허리를 끌어안고 부들부들 떨리는 음부를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굵고 긴 손가락이 갈라진 틈으로 파고들자, 아리스텔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응, 아론, 거긴 싫어요……! ”
“ 성녀님의 음액이 성수를 밀어내어 이 안이 제대로 정화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구석구석 닦아드릴 테니 믿고 몸을 맡기십시오. ”
“ 하읏, 그런……. ”
음순에 닿은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자, 꼭 다문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리며 긴장이 느슨해졌다. 그 사이로 커다란 손을 밀어 넣은 아론은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 아아, 아……. ”
아리스텔라가 가는 신음을 흘리며 다리를 벌렸다. 손을 움직이기 편하게 되자 아론은 그녀의 음부를 손등으로 쓸었다가 손바닥으로 비볐다가 하면서 자극했다.
아론의 손은 무척 커다란데도 기사들처럼 거칠지 않고, 매끈하면서도 단단했다. 그러면서도 움직임은 섬세했다. 그가 만져준 것만으로 아랫배가 욱신거리면서 음부에서 애액이 방울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 아으, 응, 아아……! ”
“ 음란한 것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군요. 빨아내야겠습니다. ”
아론이 그녀의 음부에 입술을 대고 쯥 애액을 빨아들였다.
“ 흐아앙! ”
음부가 저릿하더니, 아랫배에서 간질간질한 쾌감이 일었다. 손으로만 자극하던 곳에 부드러운 입술이 닿자, 아리스텔라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쾌감에 초조함을 느껴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었다.
“ 아아! 거기, 핥지 마세……, 아……! ”
“ 계속 흘러나오고 있군요. 안을 닦겠습니다. ”
아론이 성녀의 클리토리스를 혀로 핥으며, 벌름거리는 그녀의 입구에 성수를 적신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 아아아앙! ”
성녀의 허리가 크게 휘어졌다. 입에서 뜨거운 숨이 흘러나왔다. 아론의 앞이니까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번 만져준 것만으로 금방 몸이 달아올라, 신음을 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역시 이 몸에 음욕의 여신이 깃들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히페리온이 만져줄 때는 참을 수 있었는데, 아론이 만져주니 몸이 저절로 덜덜 떨리면서 제멋대로 허리가 원을 그리듯 돌아갔다.
“ 아아, 아론……. 좋아요……! ”
아리스텔라는 제 안을 왕복하는 아론의 단단하고 긴 손가락에 신음하면서 눈을 감았다. 어쩐지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꿈일까 현실일까. 다른 감각은 전부 잠들 때처럼 멀어지는데, 아론의 손가락이 전해주는 쾌감만이 선명하게 그녀의 전신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