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29화 (12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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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욕의 꽃, 파토스티아

[129]

조슈아가 나가고, 바야흐로 이 온실 안의 최고권위자가 된 노엘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수업을 시작했다.

“ 신성 마법으로도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식물의 생장을 돕는 신성력을 빠르게 흘려보내면, 아직 봉오리가 맺히지 않은 꽃도 만개하게 할 수 있지요. ”

신전의 정원수가 거대한 것은 공기 중에 가득한 신성력 덕분이라고 노엘이 설명하던 것을 기억하는 아리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공기 중에 가득한 신성력 덕분에 식물이 빨리 자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위적으로 성장을 조절할 수도 있는 것인가.

“ 봉오리를 피우는 거란 말이죠, 으음……. ”

아리스텔라는 펜스에 감겨 수그러든 오후의 나팔꽃을 바라보았다.

“ 혹시 이 나팔꽃도 피울 수 있지 않을까요? ”

“ 어, 음……. 가능할 겁니다. ”

식물의 생장을 빠르게 하는 것은 가능했으나 꽃을 피울 만큼 섬세하게 신성력을 컨트롤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었다. 노엘은 잠시 망설이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씩 웃으며 크리스에게 손짓했다.

“ 크리스. 네가 시범을 보여 봐라. ”

“ 제가요? ”

“ 조교잖아. 내 지도를 보조하는 게 네 일이야. ”

시범을 보이는 것의 어디가 보조란 말인가. 크리스는 노엘에게 등짝을 맞은 불쾌함이 아직 가시지 않아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얌전히 펜스 쪽으로 걸어갔다.

“ 나팔꽃은 새벽에 피었다가 오후에 잠드는 꽃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시간을 딱 반나절만 빠르게 하면 됩니다. ”

“ 반나절은 어떻게 가늠하나요? ”

“ 먼저 신성력을 발해 테스트를 해볼게요. ”

크리스는 오므라든 나팔꽃의 밑에 손끝을 대고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나팔꽃이 활짝 펴졌다가 다시 확 오므라들었다.

“ 와아! ”

마치 꽃이 재채기를 한 것 같다고 아리스텔라는 생각했다. 우유를 가득 받아먹고 배가 불러 트림을 하고 다시 잠든 아기 같다고 할까, 신성력을 받은 나팔꽃은 빠르게 한번 피었다가 도로 수그러들었다.

“ 나팔꽃이 한번 피었다가 시들었으니, 이 정도의 신성력을 불어넣었을 때 하루 분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

“ 그렇군요……. ”

“ 그럼 여기서 딱 절반만 다시 신성력을 불어넣겠습니다. ”

노엘이 보여주는 시범은 어쩐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크리스는 아리스텔라가 알기 쉽도록 쉬운 말로 시범을 보여 가며 설명해 주었다. 오히려 크리스 쪽이 남을 가르치는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며 아리스텔라는 크리스의 손끝이 움직이는 것을 유심히 보았다.

마디가 굵지 않은 섬세한 손가락과 동그란 손톱. 형태만 보면 성인 남자의 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고운 손이다. 그 손이 제 몸을 만졌을 때가 문득 떠올라, 아리스텔라는 저도 모르게 붉어진 뺨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 자, 이 정도면 딱 알맞지요? ”

크리스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연한 분홍빛의 신성력이 나팔꽃 봉오리를 감싸더니, 보라색의 꽃잎이 활짝 벌어졌다. 오후에 핀 나팔꽃을 본 아리스텔라는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크리스를 칭찬했다.

“ 정말 굉장해요, 크리스! 이렇게 금방 꽃을 피울 수 있다니, 신성 마법은 정말 활용 방법이 무궁무진하네요. ”

“ 흠흠. 별로 어려운 마법도 아닙니다. 제가 시범을 보였으면 예행연습 없이 한 번에 피울 수 있겠지만, 성녀님은 초심자시니 크리스의 시범을 참고하시는 편이 도움이 될 듯해서 말이지요. ”

별것도 아닌 마법인데 크리스가 아리스텔라의 칭찬을 받는 것에 울컥 자존심이 상한 노엘이 끼어들었다.

사실 노엘은 자신의 신성력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발산형 마법>에는 능숙해도, 크리스처럼 다른 생명체의 신성력과 감응하여 변화를 이끌어내는 <조율형 마법>에는 서툴렀다.

그 부분을 들키지 않으려 크리스에게 시범을 맡긴 것인데, 한 번 실수를 했음에도 성녀가 저렇게 신기해하는 것을 보니 그냥 제가 시범을 보일 것을 그랬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다.

‘ 아니, 근데 왜 내가 속이 상하는 거지? 크리스는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인데. ’

귀여워하는 동생이 성녀님의 칭찬을 받았으니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노엘은 어째서인지 아리스텔라가 크리스를 칭찬하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별 것도 아닌 마법에 매번 감탄사를 연발하는 성녀가 마법에 무지한 사실이 거슬려서 그런 것이겠지. 노엘은 억지로 이유를 붙여 납득하고는 아리스텔라를 펜스에 감겨 피어난 나팔꽃 무리 쪽으로 이끌었다.

“ 자, 이제 성녀님이 따라하실 차례입니다. ”

“ 어머, 이론을 배우지 않고 바로 하는 건가요? ”

“ 눈으로 보시지 않았습니까? 우선 한 번 해 보시고, 잘 되지 않는 부분을 봐 드릴게요. ”

“ 네에. ”

눈으로 한 번 본 것만으로 따라 해보라니, 초심자인 아리스텔라에겐 과한 요구였으나 마법 수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르는 아리스텔라는 원래 이런 것인가 보다 하고 적당히 수긍하고 봉오리 위에 손을 올렸다.

‘ 우선은 내 안의 신성력이 흐르는 통로를 열고, 그 길을 따라서 내보내면 되겠지. ’

빛의 구슬을 만들었을 때처럼 하면 될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점점이 흩어졌던 신성력이 심장 근처로 모여들고, 다시 그곳에서 신경을 타고 뻗어나가는 형태를 상상했다.

가슴이 살짝 뜨겁게 훅 달아올랐다가, 팔을 타고 손끝으로 신성력이 흘러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나팔꽃의 봉오리가 뻐끔, 오므린 입을 벌렸다가 다시 수그러들었다.

“ 지금 하신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성력을 더 많이 흘려보내세요. ”

“ 더 많이요? ”

“ 예. 방금은 잠시 벌어졌다 다문 것뿐이지 않습니까? ”

노엘이 아리스텔라의 뒤에서 등뼈를 쑥 훑어 내렸다.

“ 하윽! ”

“ 자세를 바르게 하시고, 눈 뜨세요. ”

“ 네, 네……. ”

노엘은 손을 뻗어 아리스텔라의 턱을 들어올렸다. 손끝에 촉촉한 입술이 닿아 흠칫 놀랐지만, 수업 중이었고 옆에서는 크리스가 떫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노엘은 흠흠 헛기침을 하고는 아리스텔라에게 속삭였다.

“ 성녀님께서는 신성력을 한 점에 모으는 집중력이 부족하신 것 같으니, 아예 한 번에 많은 양을 흘려보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어요. ”

성녀는 당대의 처녀들 가운데 가장 신성력이 강한 여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데 다소의 신성력을 <낭비>하더라도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조곤조곤 설명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성과를 이루고 싶었던 노엘은 아리스텔라를 채근했다.

“ 한 번에 많이요? 알았어요……. ”

눈을 뜨고 펜스에 감겨 있는 나팔꽃 무리를 바라보았다. 오후의 햇살에 수그러든 나팔꽃들은 밤이 지나고 아침 해가 뜨기를 기다리며 잠든 아이들과도 같았다. 그들의 잠을 깨우기 위해서라면 작은 소리로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마을에서 단체로 일을 할 때 일꾼들을 깨우는 관리인을 떠올렸다. 그는 새벽에 해가 뜨면 집집마다 방문하여 종을 울리고는 했다.

‘ 좋아. 한 번 해 보자. ’

이번엔 심장이 아니라, 온몸에 흐르는 신성력을 한 점에 모아 흘려보내기로 했다.

눈을 감으면 집중이 잘 되는데, 아무래도 눈을 뜨고 있으니 주의력이 흐트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결국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다. 아리스텔라는 온몸의 신성력의 통로를 열었다.

팔다리에서 배와 가슴을 거쳐 심장으로, 그리고 다시 심장에서 손끝으로 뻗어나가도록 신성력을 흘려보냈다.

―파아앗!

한 번에 과도한 양의 신성력을 뽑아낸 아리스텔라는 잠시 현기증을 느껴 뒤로 넘어질 뻔했다. 물론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뒤에서 노엘이 그녀의 몸을 받쳐주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 으아악! ”

거대한 덩굴이 아리스텔라와 노엘, 두 사람의 몸을 감싸 공중으로 치솟았다. 두 사람의 머리 크기를 합친 것 만한 거대한 나팔꽃이 온실 유리에 비치는 햇살을 가릴 정도로 활짝 피었다.

아리스텔라는 자신의 신성력을 조절하는 방법을 몰랐다. 이제까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신성력은 사실 심장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의 일부를 활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신에 흐르는 신성력을 끌어 모은 양은 노엘의 상상을 아득하게 초월한 것이었다. 비상식적으로 많은 양의 신성력을 투입한 식물은 생장을 넘어 변이를 일으켰고, 결국 기형적으로 커져버렸다.

펜스에 감겨 있던 덩굴은 굵은 기둥을 타고 올라가, 온실 유리의 창을 연결하는 창틀을 타고도 한참을 더 뻗어나갔다. 꽃의 방을 관리하는 사제가 신신당부했던 온실은 거대한 나팔꽃 덩굴에 잠식당해 엉망이 되어버렸다.

“ 성녀님! 노엘 사제님! ”

“ 크리스! ”

밑에서 크리스가 두 사람을 불렀다. 노엘과 아리스텔라는 나팔꽃 덩굴에 칭칭 감긴 채로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노엘은 거대한 덩굴이 두 사람의 몸을 감싸자 반사적으로 성녀의 몸을 껴안았지만, 어차피 이런 공중에서 그녀를 보호할 수단은 없었다.

“ 성녀님, 나팔꽃에 쏟아냈던 신성력을 거두어들이세요! ”

“ 거, 거두어들이는 건 어떻게 하는……. 꺄악! ”

덩굴이 두 사람의 몸을 확 조이는 바람에 아리스텔라와 노엘의 몸이 딱 붙어버렸다. 말랑한 가슴이 꽉 억눌려 터질 만큼 부풀자 아리스텔라는 고통에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성의가 흐트러져 하반신이 얽혀버렸다.

“ 흐앗, 노엘! 이러지 마세요……! ”

“ 저,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성녀님이야말로 이러지 마십시오! ”

“ 아읏, 이것 좀, 어떻게 해 달라고요……! ”

아리스텔라는 어떻게든 덩굴을 떼어내려 몸부림을 쳤지만 그럴수록 덩굴은 두 사람의 몸을 강하게 조일 뿐이었다. 왼쪽 다리에 감겨 있던 덩굴이 구석의 기둥을 향해 뻗어나가자 아리스텔라의 성의가 말려 올라가며 다리가 저절로 벌어졌다.

“ 꺄아아! ”

“ 으앗, 성녀님! 그, 그렇게 누르지 마세요……! ”

대낮의 온실에서 새하얀 허벅지를 드러낸 채로 성녀와 노엘이 몸을 부비는 광경을 크리스는 밑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성녀님! 머리 위! 머리 위로 지나가는 줄기가 중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줄기에서 신성력을 빨아들인다고 생각하세요! ”

크리스가 입가에 손을 모으고 큰 소리로 외치자, 아리스텔라는 헉헉거리면서 머리 위로 지나는 나팔꽃의 거대한 줄기를 주시하려 애썼다.

“ 하으, 노엘……. 저를, 조금만 더 위로 올려 보내줄 수 있어요? ”

“ 읏, 이런 상태로 대체 어떻게……. 이렇게 하면 될까요? ”

덩굴이 두 사람의 몸을 조인 상태에서는 움직이기 어려웠다. 노엘은 한손으로 아리스텔라의 허리에 감긴 줄기를 꽉 부여잡고, 다른 한손으로 아리스텔라의 엉덩이를 받쳐 위로 밀어올렸다.

“ 으응! ”

거의 전신을 맞댄 상태였다. 아무리 성의를 입고 있다지만 말랑하고 따끈한 몸이 제 위를 살금살금 문질러 올라가는 감촉은 맨 정신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노엘은 이를 악물고 아리스텔라의 몸을 위로 밀어올렸다. 휘감긴 덩굴 사이로 겨우 아리스텔라의 상체가 빠져나왔다.

“ 이 줄기에 흐르는 신성력을, 빨아들이면……. ”

덩굴이 두 사람을 강하게 휘감고 있으니 떨어질 염려도 없건만, 공중에서 붙잡을 것도 없이 매달려 있는 상황은 아리스텔라를 불안하게 하기 충분했다. 헉헉거리며 줄기를 향해 손을 뻗은 아리스텔라는 제가 무심코 노엘의 머리를 꽉 끌어안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했다.

나팔꽃의 거대한 줄기에 아리스텔라의 손끝이 닿았다. 아리스텔라는 처음 나팔꽃을 키웠을 때와 마찬가지로, 신성력의 통로를 열어 바깥의 신성력이 다시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광경을 상상했다.

두 사람의 몸을 휘감은 덩굴의 힘이 느슨해지고, 온실의 천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뻗어나갔던 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중심을 향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 꺄아아아! ”

순식간에 수그러든 나팔꽃 덩굴은 두 사람의 체중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래로 곤두박질을 쳤고, 아리스텔라와 노엘은 구석에 피어 있던 파토스티아 꽃무리 위로 떨어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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