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27화 (12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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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의 해답

[127]

“ 성녀님. 제가 질투하기를 바라시나요? ”

뜻밖의 질문에 아리스텔라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난처하게 시선을 돌렸다. 정말로 그녀를 사랑한다면 질투하지 않을 리가 없다. 실제로 로이드는 아리스텔라가 입으로 애무를 졸랐을 때 그녀가 다른 남자에게 안긴 사실을 상기하고 분노했다.

질투에 이성을 잡아먹히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대 성녀 밀리아리아를 둘러싸고 사제들이 서로 견제하고 혐오하여 결국에는 괴물이 되어 서로를 죽였던 일이 또다시 일어나게 할 수는 없었다.

“ 모르겠어요. ”

“ 성녀님의 의사를 묻는 거랍니다. ”

“ 미안해요, 조슈아. 정말 모르겠어요. ”

제 마음도 모르고, 제 소원도 모른다. 아리스텔라는 자기 자신이 정말로 한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질투해주길 바란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독점하고 싶다고, 소유하고 싶다고 말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질투심에 사로잡혀 서로를 미워하거나 상처입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아리스텔라를 보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자신 안에 모순되는 욕망이 공존하고 있다. 답도 나오지 않을 문제를 캐물은 것이 잘못이다. 아리스텔라는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며 입가를 가렸다.

조슈아는 그녀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어제는 히페리온과 다른 이들과 함께 지하 탐방을 다녀왔다고 들었다. 중간에 성녀가 사라지는 바람에 다들 걱정했지만,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아무리 다친 곳이 없다한들 성녀가 사라졌던 일이 별일이 아닐 수는 없었다. 그러나 히페리온이 대신관의 권한으로 사제들이 우려하는 의견을 내는 것을 묵살한 것을 보고, 조슈아는 흥미를 느꼈다.

아론은 히페리온의 말에 의견을 보태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안건에서 아론이 침묵한다는 것은 분명한 의사의 표시였다. 처세에 능한 아론은 침묵함으로써 그녀와 동행했을 때 일어난 사고의 책임을 전부 히페리온에게로 돌려버렸다. 아마도 앞으로 신전에서 히페리온의 입지는 조금 더 난처해질 것이다.

“ 성녀님. 지하에서 무엇을 보셨나요? ”

“ 네? ”

“ 며칠 전 뵈었을 때와는, 조금 변하신 듯해서요. ”

변했다고 할까, 꽁꽁 감추고 있던 껍질을 한 겹 벗어낸 듯하다고 할까. 토끼인형을 만지작거리는 아리스텔라의 손 위에 조슈아의 손이 얹어졌다.

“ 무엇이 성녀님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지, 제가 알 수 있을까요. ”

조용히 물어오는 조슈아의 눈빛은 여전히 다정했다. 그 눈을 보고 있노라면 제 안의 근심을 담아둔 상자의 뚜껑이 저절로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조슈아는 아리스텔라의 안에 봉인된 여신 위그멘타르가 음욕의 여신이라는 것을 안다. 그녀가 매일 밤 욕구를 풀기 위해 다른 남자와 몸을 섞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음란한 행위가 아주 오래 전, 이 신전이 세워졌을 때부터 계속되어오던 일이라는 것도.

“ 조슈아. 저는 제가……. 아니, 여신을 모신 성녀들이 어째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

아리스텔라는 이제까지 반복되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타락한 성녀라 아리스텔라를 매도하며 그녀를 범하고 정화의 의식을 일삼던 사제들이 모르는 이들이었다는 것.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울고 있던 여인이 사실은 전대 성녀인 밀리아리아였으며, 그녀의 몸에 빙의하는 꿈을 꾸었다는 것.

성녀를 범하던 사제들을 전부 죽인 촉수 괴물이 전대 성녀의 시종이었으며, 그 괴물을 향해 성녀가 <미안하다>는 말을 했던 것.

지하의 벽화 속으로 빨려들어갔을 때 보았던 거울의 방. 원념으로 이루어진 결계 안에서 아리스텔라를 능욕하며 자신을 받아달라고 요구하던, 아론을 닮은 남자를 본 것까지.

처음 꿈속에서 정화의 의식을 경험했을 때, 아론에게 안겼던 일은 생략했다. 아무리 조슈아에게라고는 해도, 아론과는 아직 몸을 섞은 적이 없는데 입 밖에 내는 것이 그에게 실례라 생각한 때문이었다.

“ 아론 신관을 닮은 사제라고요……. ”

“ 체격은 달랐는데 인상이 비슷했어요. 어쩌면 먼 친척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

“ 그럴 수도 있지요……. ”

조슈아는 애매하게 말끝을 흐렸다.

여신 위그멘타르의 신전에 들어가는 성직자를 고르는 것은 교황청의 권한이었다. 한 번 결정된 것에는 따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고르는 것은 사람의 뜻이었다.

아론은 동기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아 그들의 추대로 신관이 되었다. 실권이 막강한 그라면 교황청에서 위그멘타르 신전에 소속될 사제를 발표하기 전에 제 이름이 들어갔다는 것을 알고 빼달라고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교황청에 남아있었더라면 더 높은 직위에 오를 수도 있었을 텐데, 야욕이 있는 그가 어째서 이 폐쇄된 신전에 신관으로 들어왔을까.

‘ 신전에 들어오면 그전의 혈연은 모두 끓어지는 셈이니, 제 친족의 흔적을 찾으려……. 아니, 그래도 좀 이상하군. ’

히페리온은 책임감이 강한 남자고, 조슈아는 제가 있는 곳이 어디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주의였다. 평사제와 수습사제는 소속이동을 할 능력이 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따라왔다고 하더라도, 아론의 경우는 조금 특수했다.

미리 손을 썼더라면 이 신전에 부임하지 않고 교황청에 남아 제 야심을 이룰 수도 있었을 남자가, 그저 교황청의 지시를 따라 위그멘타르 신전의 신관이 되었다.

그것이 조슈아의 마음에 걸렸다.

“ 성녀님. 아론과도 밤을 보내신 적이 있는지요? ”

“ 어, 없어요! ”

아리스텔라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미사 전에 준비를 돕느라 그가 와서 몸을 씻겨주었을 때, 그의 손가락에 가버린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고였다.

반드시 성기를 삽입해야만 섹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때의 아론은 전혀 흥분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주 침착하게 그녀의 안에 손가락을 밀어넣고 안을 성수로 적셨다.

지금 떠올리면 얼굴을 못 들 만큼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적어도 그것은 다른 남자들과의 경험처럼 욕망을 따라 몸을 섞는 행위가 아니었다.

“ 대미사 준비를 할 때, 사고가 있긴 했지만, 저……. 조슈아와 했던 것 같은, 그런 일은 없었어요. ”

“ 그건 다행이군요. ”

“ 네……? ”

뜻 모를 조슈아의 말에 아리스텔라는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며 고개를 들었다.

“ 지금의 당신을 처음으로 섬긴 것이 저라서, 좋습니다. ”

처음 흥분한 성녀의 몸을 진정시키려 봉사했을 때, 아리스텔라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상태로 조슈아를 받아들였다. 남자와 몸을 섞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자신을 원하는 그녀의 모습이 좋았다. 눈을 깜박이는 시간조차 아까울 만큼.

음욕의 여신을 봉인한 몸이다. 어쩌면 조슈아와 관계하기 이전에 여신의 의식에 휘둘려 다른 남자와 몸을 섞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녀 아리스텔라>가 기억하는 처음은 조슈아와 함께였다.

처음이라는 것은 성서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첫날, 첫 미사, 첫 축복.

그 해에 가장 먼저 사제 서품을 받은 자, 가장 먼저 신관이 된 자는 신의 영광을 한 몸에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저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가장 큰 은총을 받았다. 주인을 섬기는 종에게 그 이상의 기쁨은 없었다. 그래서 조슈아는 욕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그녀를 소유할 수 없어도, 무엇보다도 확실한 축복의 증거가 그와 그녀의 기억 속에 있다.

만나지 못해도 좋았다. 기다림이 길수록, 그리움이 깊을수록,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의 행복은 더욱 컸다. 해소하지 못하는 욕구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그녀를 섬기고 그녀를 기쁘게 했다는 사실이 조슈아의 마음을 충만하게 했다.

“ 그것으로, 충분하다고요……? ”

“ 예. 그 이상을 바란다면, 필경 당신을 곤란하게 할 테니까요. ”

조슈아는 빙긋 웃으며 아리스텔라의 손목을 잡고 손을 들어올렸다. 길고 매끈한 손가락이 가느다란 손목에 감겼다. 잡을 것도 기댈 것도 없이 허공에 뜬 하얀 손가락의 끝에 조슈아의 입술이 닿았다.

“ 아니면 제가, 다른 남자와 경쟁하기를 바라시나요? ”

안경 너머로 보이는 연녹색의 눈동자가 가늘게 기울어지더니, 색이 옅은 입술이 벌어지며 가느다란 손가락의 끝을 삼켰다.

“ 앗, 조슈아! ”

부드러운 입술이 손가락을 감싸, 촉촉한 혀가 손가락 끝을 맛보듯 핥았다. 그 간질간질하고 애처로운 감각에 아리스텔라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어깨를 떨었다.

“ 제가 다른 이들과 다투고. ”

“ 조슈아, 아……, 으응. ”

“ 서로를 미워하고. ”

손가락을 핥은 것뿐인데, 마치 온몸을 핥아주는 것처럼 찌르르한 쾌감이 손끝에서 팔을 타고 뻗어온다.

“ 당신을 독차지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질투에 마음을 잡아먹히길 바라시는지요? ”

“ 아, 아니에요! ”

크리스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아리스텔라와 그녀 주변의 다른 남자에게 질투하여 괴물이 되어버렸다. 혹여 크리스가 잘못되지 않을까, 괴물이 된 크리스가 로이드를 죽이지 않을까, 너무나도 두렵고 무서웠다. 또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만은 절대로 싫었다.

“ 싫어요, 그건……, 아읏! ”

조슈아가 살짝 손끝을 깨물자, 아리스텔라가 어깨를 움츠리며 작게 숨을 삼켰다. 그 반응에 만족한 듯 입술을 벌려 손가락을 빼내자, 붉게 물든 손끝이 겨우 시야에 들어왔다.

“ 하으으……. ”

“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네요. ”

조슈아가 손목을 놓아주자마자, 아리스텔라는 입술을 샐쭉거리며 얼른 손을 뒤로 숨겼다.

“ 조슈아. 은근히 성격이 나쁘네요. ”

“ 죄송합니다. ”

“ 사과할 건 아니지만요……. ”

손끝을 어루만지니 조슈아가 핥아준 부분만 촉촉하고 매끈해서 묘하게 가슴이 콩닥거렸다. 입을 맞춘 것도 애무를 해준 것도 아닌데, 겨우 손끝을 핥아준 것만으로 어째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몰라요, 정말……. ”

“ 성녀님은 늘 모른다고 하시는군요. ”

“ 모르면 안 되나요? ”

퉁명스런 물음에 조슈아가 싱긋 웃는다. 그 미소에 아리스텔라는 조금 분한 마음이 들었다. 시계를 확인한 조슈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리스텔라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 성녀님, 슬슬 마법 수업을 들을 시간이로군요. 함께 가시지요. ”

“ 네, 그럴게요. ”

아리스텔라는 조슈아의 손을 잡는 대신, 그의 손 위에 자신이 마신 찻잔을 올려놓았다.

“ 테이블 정리 부탁해요, 조슈아. ”

생긋 웃어보이자, 이번에는 조슈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손에 놓인 찻잔을 바라본다.

잠시간의 침묵 후 그가 실소했다. 아리스텔라도 그를 따라 쿡쿡 웃었다.

두 사람은 테이블의 찻잔과 다과를 정리하고, 마법 수업을 들으러 중앙 건물을 나와 남쪽 탑으로 향했다.

============================ 작품 후기 ============================

조아라 노블레스 77페스티벌 특별상 감사합니다!

기념으로 연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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