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23화 (12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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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아직 길기에

[123] 밤은 아직 길기에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가 어째서 이런 요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욕실에서의 정사로 그녀는 몇 번이나 절정에 달했고, 지금은 제 몸을 가눌 기력조차 없는 것이 분명했다. 지쳐서 이대로 잠들어버릴 줄 알았는데, 아리스텔라는 히페리온을 떠나보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바라던 바였다. 아리스텔라의 곁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던 것은 히페리온도 마찬가지였으니. 밤새 사랑하는 여인의 곁을 지킬 수 있다면 피로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 하지만 어째서? ’

욕실 안에서 그를 유혹했을 때부터, 아리스텔라는 어딘가 히페리온을 시험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녀가 원한다면 히페리온은 언제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어째서 그런 떠보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자신은 별로 충성스러운 종이 아닐 수도 있다. 거짓을 말하고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을 짐작하고 떠보는 것이 아닌가, 마음에 켕기는 부분이 있었던 히페리온의 사고는 그쪽으로 흘러갔다.

“ 성녀님. 제가 안아드리는 것이 흡족하지 않으셨습니까? ”

“ 네?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

“ 많이 지치셨습니다. 더는 몸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도 다음을 요구하시는 것은, 제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

“ 그런 게 아니에요, 대신관님. ”

흡족하지 않다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연속으로 강한 절정을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이성을 놓아버리고 부끄러운 모습까지 보이며 가버렸다.

그의 정성스러운 애무도, 다정하고 상냥한 키스도 전부 좋았다.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을 굳이 들자면 그것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가 끝난 후 히페리온이 보인 태도 쪽일 것이다.

몸을 섞고 함께 천국을 오르내리는 중에는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절정을 느끼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볼일을 마쳤으니 일이 끝났다는 듯이 개운한 태도를 보이는 상대방을 보는 순간 제가 느낀 사랑의 감정이 착각이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 싫었다.

아리스텔라는 로이드와 관계한 다음날도 그가 멀쩡한 얼굴로 그녀를 대하는 것을 보고 속이 상했다. 그래서 그에게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고, 그날 밤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

손을 잡고 대화만 나눠도 이전보다는 조금 더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법이다. 그런데 히페리온과는 섹스를 해도 예전에 비해 더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처음의 딱딱하던 태도는 많이 부드러워졌고, 그녀가 요구하면 다정하게 안아주기는 하지만, 그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여전히 망설임과 서글픔이 가득했다.

“ 사랑이 없는 관계는 싫다고 했잖아요……. ”

아리스텔라의 말에 히페리온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 성녀님. 저는……. ”

“ 아니에요, 미안해요. ”

사랑하는 척 연기하는 것뿐, 히페리온이 아리스텔라를 사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제인 그가 어떻게 여인을 사랑하겠는가. 주인의 명을 따라 잠자리는 함께하는 것만으로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아리스텔라는 그것이 싫었다. 히페리온이 제게 쾌락을 주는 만큼, 자신도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몸을 섞은 후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서로를 특별하게 여기기를 바랐다. 터무니없는 이기적인 욕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방금은 실언했어요. 잊어주세요. ”

“ 성녀님. ”

“ 대신관님께는 정말 다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받았으면서, 염치도 없이……. 제가 정말 어떻게 됐나 봐요. ”

“ 그렇지 않습니다, 성녀님. ”

또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는 아리스텔라의 손목을 잡아끌며, 히페리온은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이 사랑스러운 여인의 눈물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 두렵고 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히페리온은, 미움이든 원망이든 무엇이라도 좋으니 그녀의 감정을 온전히 자신에게 향해주길 바라게 되었다.

그녀의 시선이 온전히 제게 꽂히고, 그녀의 음성이 오로지 제 이름만을 부르며, 가냘픈 몸을 끌어안고 그 매끄러운 피부에 살을 맞대는 것이 자신뿐이기를 바라게 되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녀를 독점하고픈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미혹됨을 아리스텔라는 알아차린 것일까.

어째서인지 화가 났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아름답고 달콤하며 매혹적이었다.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 위로 그의 입술이 지나가면 서서히 분홍빛으로 물들며 땀이 배어나와 윤기가 흘렀다. 아리스텔라는 히페리온이 빛을 밝히거나 물을 끓이는 것을 신기하다 여겼지만 히페리온에게는 아리스텔라의 몸이 보이는 변화야말로 마법처럼 신비로웠다.

사제의 계율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음욕의 여신을 품은 몸이란, 어째서 이다지도 매혹적인 것인가. 과거 성녀를 모셨던 사제들이 욕망에 물든 성녀를 가리켜 타락했다 여기는 것이 아주 근거 없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사제란 경건한 마음으로 신을 섬겨야 하는 신분인데, 어째서 성녀님의 손짓 하나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일까. ’

사랑하는 여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슴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활짝 개었다가도 그녀가 얼굴을 찌푸리면 폭풍우가 몰아치고, 눈물을 흘리면 하늘과 땅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히페리온은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성서의 내용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 제 안의 세계가 이토록 얼어붙었다 꽃이 피기를 반복하는데, 바깥세상이라 한들 다를 리가 있겠는가.

연인처럼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아리스텔라는 말했다. 연애를 해본 적은 없지만, 히페리온은 그녀의 요구에 응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만족스러운 행위였을까. 히페리온은 자신이 없었다.

‘ 신 앞에서 자기 속내를 숨기고 거짓과 속임수로 그분을 기만하는 인간이 대신관이라니. 성녀님께서 의문을 품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

고백할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이 사랑을 포기할 현명함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히페리온은 자조했다.

“ 성녀님, 눈을 뜨고 저를 보십시오. ”

“ 대신관님……. ”

“ 당신께 육신과 영혼을 바친 종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 주십시오. ”

히페리온은 그렇게 말하며 아리스텔라의 손을 잡고 제 심장 위로 이끌었다.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몸으로는 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녀를 바라보면 세차게 뛰는 가슴의 고동이, 조금은 전달되지 않을까.

넓은 가슴의 매끈한 피부 너머에 탄탄한 근육이, 그 너머에서 약동하는 심장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조각상처럼 아름다운 남자일지라도 그는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다. 여신의 종이라고 한들 침대 위의 그는 한 명의 남자였다.

성의를 입고 고고하고 엄숙한 얼굴로 미사를 진행하는 대신관이 아니라, 정사의 흥분으로 붉어진 피부를 하고 맨몸으로 여인과 몸을 겹치고 있는 청년 히페리온이었다.

“ 아름다워요……. ”

“ 예? ”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말해버린 아리스텔라는 잠깐 말을 삼켰다가, 배시시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 처음 봤을 때부터,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

아름다운 머리카락, 아름다운 외모, 흉터 하나 없이 매끈한 피부인데도 남자다움이 느껴지는 탄탄한 몸. 눈을 감고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편해지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흐르는 물과도 같았다. 그 가운데서 아리스텔라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히페리온의 눈빛이었다.

무뚝뚝한 대신관이 그녀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마음에 미혹을 띤다. 수면에 파문이 이는 것처럼 잔잔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깨끗해지면서도 장난기가 생겼다.

이 사람을 흔들고 싶다는.

아리스텔라는 살며시 손을 뻗어 히페리온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욕실에서 내내 입술을 겹쳤던 탓인가, 그의 입술은 여전히 붉고 촉촉했다.

부드러운 입술에서 단단한 턱 끝을 지나 목과 단단한 쇄골, 그리고 넓은 가슴까지. 형태를 그리듯 더듬어나가는 아리스텔라의 손길에 히페리온은 잠시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으나 곧 표정을 풀고는 아리스텔라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빗어주었다.

이 신전에 처음 왔을 때 모습을 보고,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몸을 섞었음에도, 여전히 서로의 몸을 만지는 느낌은 새로웠다. 히페리온에게는 아리스텔라의 보드랍고 말랑한 몸이 신비로웠고, 아리스텔라에게는 히페리온의 매끄러우면서도 단단한 몸이 신기하기만 했다.

기사들처럼 울끈불끈한 근육이 있는 것도 아닌데, 호리호리한 조슈아나 크리스와는 달랐다. 여자의 육체만큼이나 남자의 육체도 다양하구나, 하는 생각을 속으로 하면서 아리스텔라는 히페리온의 몸을 더듬었다.

‘ 대신관님, 피부 관리는 어떻게 하는 걸까. ’

머리카락도 그냥 감고 말리고 빗질하는 것 외에는 따로 관리하지 않는데도 굵고 건강하며 윤기가 흐른다. 입자가 고운 반죽을 꽉 눌러 형태를 잡은 것처럼 매끄러우면서도 치밀한 이 피부는 타고 난 것일까.

손끝으로 히페리온의 가슴을 더듬던 아리스텔라는 살짝 시선을 내렸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토록 아름다운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녀의 안으로 파고드는 그곳만은 험상궂기 짝이 없다. 불뚝 선 성기를 본 아리스텔라가 망설이자 히페리온은 살며시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었다.

“ 으응……. ”

“ 확인은 끝나셨습니까? ”

“ 화, 확인 같은 거 아니에요……. ”

어설프게 변명하는 아리스텔라의 반응을 살피며 히페리온은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쓰다듬었다. 간신히 평온을 되찾았던 진주색의 피부가 다시 서서히 붉은 기운을 띠어 갔다.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의 뺨을 감싸 자신을 향하게 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저를 관찰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수줍은 듯 눈가를 붉히며 눈을 깜박인다.

“ 확인하셔야지요. 이제부터 다시 성녀님을 모실 몸이 아닙니까. ”

“ 확인 같은 거 안 해도……, 아는걸요. ”

부끄러워서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히페리온이 뺨을 감싼 채라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 아리스텔라는 눈을 감고, 다리를 들어 히페리온의 허벅지에 감았다.

“ 눈을 감아도 알 수 있어요. ”

============================ 작품 후기 ============================

잠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재를 쉬었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당분간 올라오는 시간이 조금 불규칙할 듯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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