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17화 (11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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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페리온의 개인교습

[117]

“ 그렇다면 제가 가르쳐 드릴까요? ”

“ 네? 대신관님께서요? ”

아리스텔라가 깜짝 놀라 눈을 깜박이며 묻자, 히페리온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지금 노엘에게 마법을 배우는 중이다. 마법 선생이 따로 있는데 그를 제쳐두고 히페리온이 아리스텔라에게 마법을 전수하는 것은 노엘을 무시하는 행동이었고, 큰 실례였다.

하지만 히페리온은 노엘의 역할을 가로채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하루뿐, 이라는 변명을 속으로 되뇌며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의 빈 찻잔에 다시 차를 따라주었다.

“ 성녀님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

“ 지금도 대신관님께서는 제게 무척 많은 도움이 되고 계신걸요. ”

아리스텔라는 진심으로 히페리온에게 고마워했지만, 히페리온에게는 그저 형식적인 인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연인처럼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요구를 받았을 때, 히페리온은 솔직히 많이 당황했다. 연애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으니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행위가 끝나고 그녀에게 소감이 어땠는지를 물을 수도 없었다. 그것이 내내 가슴에 걸렸던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와 몸을 섞는 것을 주저했다. 그녀의 몸은 미치도록 유혹적이라서, 안으면 금방 쾌감을 느끼고 절정에 올라버린다.

열락에 중독될까 저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지극한 쾌락을 느끼는 것이 자신 하나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교에 서투른 자신이 음욕의 여신을 봉인한 성녀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와 연습을 하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히페리온은 그녀와 몸을 섞는 대신 다른 일을 함으로써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 제가 가르쳐드리는 것은, 흡족하지 않으신가 보군요. ”

“ 네? 아니에요! ”

아쉬움과 쓸쓸함을 담은 히페리온의 말에 아리스텔라가 화들짝 놀라 도리질 쳤다.

“ 대신관님은 바쁘신 분이잖아요. 그리고 대단한 실력자신데, 저 같은 초보를 가르치는 일은 답답하지 않으실까 하고……. ”

“ 가르치는 처지로서는, 성녀님께서 초심자이신 편이 좋습니다. ”

“ 네? 왜요? ”

아리스텔라의 질문에 히페리온은 조금 수줍은 듯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 그래야 성녀님께 더 많은 것을 가르쳐드릴 수 있으니까요. ”

시골에서 나고 자라 사제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아리스텔라의 습득 속도는 빨랐다. 기도를 하는 법도 금방 익히고, 이제는 미사에도 제법 익숙해졌다. 신성 마법을 다루는 것에도 능숙해지면 이제 정말로 더는 히페리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히페리온은 그것이 불안했다.

이상한 일이다. 아리스텔라가 신전 생활에 익숙해지고 사제다운 태도를 보여 어엿한 성녀가 되어갈수록 기뻐해야 할 터인데, 히페리온은 그녀가 성숙해질수록 자신을 의지하지 않게 될 날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그렇다고 성녀에게 사제다워지지 말라고, 아무것도 배우지 말고 노력도 하지 말고, 그저 얌전히 있으면 자신이 다 해주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그녀를 자신과 동등한 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겠다는 것과도 같으니까.

‘ 하다못해 그날이 올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오래 곁을 지키며, 하나라도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다. ’

타들어가는 양초가 사라져가는 것을 알면서 차마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는 심정이었다. 그의 눈빛에 담긴 불안과 간절함을 읽은 것인지, 아리스텔라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결국 배시시 웃었다.

“ 저도 대신관님께 배울 수 있다면 좋아요. ”

“ 성녀님……. ”

“ 그럼 뭘 배우면 좋을까―. ”

히페리온이 따라준 차를 마시고, 아리스텔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교습을 받으려는 건가. 히페리온도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아리스텔라는 손가락 끝으로 입술을 매만지며 고개를 기울였다.

“ 빛을 밝혀서 모양을 잡는 법은 노엘에게 배우고 있으니까……. 대신관님께는 다른 것을 배우고 싶은데요. ”

“ 예. 무엇이든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

“ 으음. 신성력으로 물을 끓이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

신성 마법을 능숙하게 부릴 수 있게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막상 무언가를 배우려 하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어 막막했다. 그래서 아리스텔라는 제가 신기하게 여긴 히페리온의 마법 한 가지를 들었다.

“ 간단한 술법이니 금방 배우실 겁니다. 자, 성녀님. 이리로 오시죠. ”

“ 네. ”

히페리온은 찻주전자를 비우고 그 안에 다시 물을 채워 넣었다.

“ 안에 든 것이 보이시는지요? ”

“ 네. 물이 들어 있어요. ”

“ 지금의 모양을 기억해 두십시오. ”

그렇게 말하고는 주전자의 뚜껑을 덮고, 아리스텔라에게 손끝을 주전자 뚜껑에 올리게 했다.

“ 눈을 감으세요, 성녀님. 뚜껑을 덮기 전 물이 담겨 있던 모양을 떠올리시면서……. ”

“ 물이 담겨 있던 모양을 말이죠, 으음……. ”

“ 예. 그리고 그것이 끓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

눈을 감고 주전자 뚜껑에 손을 짚은 채로, 아리스텔라는 끓는 물을 연상했다. 머릿속에 들어있던 뚜껑을 덮기 전 물이 담겨 있던 모습과, 펄펄 끓인 물이 들어있는 모습. 두뇌가 기억하는 모습에 상상하는 모습이 겹쳐진 순간, 손끝에서 따스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아리스텔라는 눈을 감고 있고, 주전자에는 뚜껑이 덮여 있어 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물이 부글거리며 끓기 시작한다는 것을.

‘ 우와, 신기해……. ’

노엘이 가르쳐줄 때나 아리스텔라가 혼자서 연습할 때는 잘 되지 않았는데, 히페리온이 옆에서 말하는 대로 따라하니 금방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감탄하던 것도 잠시, 끓는 물의 열기에 주전자는 금세 뜨거워졌다.

“ 꺄아! 뜨거워! ”

갑자기 주전자가 뜨거워지자 깜짝 놀라 아리스텔라가 손을 떼자, 부글부글 끓어오른 찻물이 주전자의 뚜껑을 들어 올리고 밖으로 넘쳐흘렀다.

“ 성녀님, 위험합니다! ”

아리스텔라가 화상을 입지 않도록 히페리온이 얼른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펄펄 끓어오른 물은 주전자를 넘어 테이블보를 적시며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 히페리온이 아리스텔라를 끌어당기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녀는 손에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 성녀님.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

“ 죄송해요, 테이블보랑 카펫이……. ”

“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

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이며, 히페리온이 아리스텔라의 손을 들어 올려 상태를 살폈다. 뜨거움을 느낀 순간 손을 뗐기에 화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역시 피부가 놀랐는지 살짝 화끈거렸다.

히페리온은 열기를 발하는 아리스텔라의 손바닥을 보고는 살며시 눈썹을 찌푸렸다. 한손으로는 허리를 안고, 다른 한손으로는 손목을 붙든 채로 천천히 고개를 숙여, 희고 보드라운 손에 입을 맞췄다.

“ 대, 대신관님……? ”

촉촉한 혀가 그녀의 손바닥을 천천히 훑어갔다. 뜨거움에 놀란 피부를 진정시키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혀의 감촉에 아리스텔라는 얼굴을 붉힌 채 쩔쩔맸다.

“ 대신관님, 저기……. ”

화상을 입은 것도 아니지만, 보통 이럴 때는 미지근한 물로 놀란 피부를 진정시키는 게 아니었던가. 이렇게 직접 혀로 핥아 식히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 괜찮아요, 이제. 괜찮으니까……, 읏……. ”

손바닥을 핥아주는 것뿐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려서, 아리스텔라는 움찔거리며 손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히페리온은 그녀의 손목을 꼭 붙든 채 놔주지 않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감촉과 제 허리를 꼭 안고 놔주지 않는 팔 힘에 아리스텔라는 적잖이 당황했다. 가슴이 점점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 그만……. 히페리온 대신관님! ”

아리스텔라가 소리를 높이자 그제야 손바닥을 핥던 혀가 떨어졌다. 야릇한 감촉에 가슴이 두근거려, 아리스텔라는 붉어진 얼굴로 히페리온을 바라보았다. 오늘 대체 몇 번이나 지근거리에서 이 남자의 얼굴을 보는 것일까. 횟수를 세지는 않았으나 세는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으니까.

“ 죄송합니다. 아프셨습니까? ”

“ 아뇨, 아픈 건 아니에요……. ”

“ 그럼 불쾌하셨습니까? ”

“ 그, 그럴 리가요! ”

아리스텔라는 당황해서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했다. 히페리온의 붉은 눈동자가 제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져, 또다시 가슴이 뛰었다.

“ 그게 아니라……. 두근거려서요……. ”

참으로 이상했다. 몸을 섞고 입을 맞추기도 했는데, 어째서 손바닥을 핥은 정도로 이렇게 부끄러운 기분이 되는 것일까.

아직 떨림이 진정되지 않아 살짝 입술을 벌린 채 짧은 숨을 내쉬던 아리스텔라의 등을 히페리온의 손이 쓸어내렸다.

히페리온은 분명 아리스텔라를 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리스텔라도 아직 성욕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히페리온이 쓰다듬어주는 것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한편 편안한 기분이라, 제 스스로도 이것이 어쩐 감정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모순된 느낌이 가득했다.

“ 대신관님……. ”

그저 확실한 것은 히페리온이 몸을 만져주면 무척 기분이 좋다는 것. 그리고 가까이서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키스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는 것 정도일까.

“ 성녀님. ”

손바닥이 화끈거리던 느낌은 가라앉았는데, 주전자에 데지도 않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럼에도 아리스텔라는 그의 눈빛을 피할 수가 없었다.

허리를 감싸던 손이 어깨로 올라오고, 등을 쓰다듬던 손이 앞으로 돌아와 그녀의 턱을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피하지도 밀어내지도 않았다. 아리스텔라는 눈을 감고 제 코 끝에 닿는 따스한 숨결을 느끼며 부드러운 것이 제 입술을 덮기를 기다렸다.

―똑똑.

누군가 아리스텔라의 방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거의 입술이 닿을 정도로 고개를 가까이 기울였던 두 사람이 얼른 떨어졌다. 아리스텔라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 오늘 정말 왜 이러지? ’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가 성욕을 느끼지 않는 한 그녀를 안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렇게 자꾸 도중에 분위기가 깨지면 이쪽도 안달이 난다. 마치 뭔가가 히페리온과 아리스텔라 사이에 색스러운 분위기가 일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았다.

‘ 오늘은 정말 날이 아닌가 봐. ’

아리스텔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하고는 히페리온을 바라보았다. 히페리온도 살짝 헛기침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신호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표정을 태연하게 가다듬고 문가로 걸어갔다.

히페리온이 문을 열자, 밖에 서있던 남자가 아리스텔라를 향해 인사했다.

“ 늦은 시각에 실례하겠습니다, 성녀님. ”

“ 이자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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