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된 성녀와 비밀의 밤-113화 (11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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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의 성녀, 정화의 조건

[113]

“ 죄송합니다, 성녀님. 그만두겠습니다. ”

“ 아, 안 돼요! ”

히페리온이 손을 떼려 하자 아리스텔라가 그의 손을 붙잡고 가슴으로 이끌었다. 작은 손이 제 손을 붙잡고 말랑한 가슴으로 이끄는 것에 히페리온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 바, 방금은……. 놀라서……. ”

붉어진 얼굴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변명하는 아리스텔라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긴장한 것은 저 하나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 또한 자신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자 미친 듯이 날뛰던 심장이 조금 진정되었다.

히페리온은 긴장으로 굳어있던 손끝에 힘을 빼서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주물렀다.

“ 아응, 아으으응……. ”

놀라울 만큼 말랑말랑하면서도 탄력 있는 가슴이다. 힘주어 잡지 않아도 쥐는 대로 몽실몽실하게 형태를 바꾸는 부드러운 가슴이지만, 손을 놓으면 곧 원래의 형태로 돌아간다.

그녀의 가슴 가운데 유일하게 단단한 부위인 첨단은 끝을 뾰족하게 세우고, 얇은 성의 너머로 제 존재를 주장한다. 히페리온은 그것을 손바닥으로 슬슬 문지르다가, 손끝으로 살며시 잡아 비틀었다.

“ 흐앗! ”

아리스텔라가 바르르 몸을 떨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여전히 민감한 몸이었다.

히페리온은 여기서 아리스텔라의 옷을 벗겨도 될지 잠시 고민했다. 비록 결계로 둘러싸여 있어 나갈 수 없다지만, 들어오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이대로 성녀의 옷을 벗겼다가 아론이나 노엘, 이자크가 두 사람을 발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물론 제일 걱정은, 그녀의 옷을 벗기고 나면 도무지 중간에 멈출 수 없을 것 같은 자신이었다.

“ 성녀님, 제 무릎 위에 앉으십시오. ”

“ 으응, 네……. ”

아리스텔라는 히페리온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등에 히페리온의 가슴이 닿았다. 두 사람 모두 성의를 입고 있지만 얇은 성의 너머로도 서로의 체온과 심장의 고동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 으으응……. ”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한 남자의 손길을 느낀 아리스텔라는 천천히 눈을 뜨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하얀 성의 위로 남자의 손이 움직이며 그녀의 가슴을 애무하고 있었다.

“ 아, 아아……. ”

흰 피부에 길고 섬세한 손가락. 우아한 남자의 손이 움직이는 모양새는 음란하기 짝이 없었다. 아리스텔라는 제 가슴을 유린하는 남자의 손에 몸을 맡긴 채 신음했다. 키스도 기분 좋았지만, 가슴을 만져주는 것도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 아아, 대신관님……. ”

옷섶 너머로 젖꼭지를 쥐고 이리저리 비트는 쾌감에 아리스텔라가 어깨를 떨며 고개를 젖히자, 바로 위에서 히페리온의 입맞춤이 떨어졌다.

“ 흐응, 읍……. ”

뒤에서 끌어안은 채 가슴을 만져주는 남자에게 고개를 돌려 입 맞추는 일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입맞춤할 때보다 조금 더 숨이 막혔다.

그래도 아리스텔라는 히페리온의 입술을 피하지 않았다. 눈을 감고 제게 주어지는 기분 좋은 감각을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것은 섹스할 때처럼 아찔한 쾌락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퍼져 나오는 따끈따끈하고 아련한 행복감이었다.

긴 속눈썹이 흔들리며 눈꺼풀이 올라가면,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에 아리스텔라의 모습이 비친다. 아리스텔라는 히페리온의 품안에서 살짝 몸을 돌려, 그를 마주보았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눈을 감고 입술을 겹쳤다.

“ 히페리온, 대신관님……. ”

그의 목 뒤로 팔을 두르자 히페리온이 살며시 그녀를 바닥에 눕혔다. 아리스텔라의 몸 위로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여기서 몸을 섞으려는 걸까. 아리스텔라는 허락의 의미로 히페리온의 손을 자신의 목깃으로 잡아끌었지만, 히페리온은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 안 됩니다. ”

“ 네……? ”

히페리온의 눈가가 붉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도 그녀를 향한 욕망의 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히페리온은 아리스텔라의 옷을 벗기지 않고, 천천히 눈을 깜박이며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 넘겨주었다.

“ 성녀님. 지금, 욕구를 견디기 힘겨우신지요? ”

“ 네? 아, 아뇨. ”

그가 만져주면 기분이 좋으니 더 만져줬으면 싶긴 하지만, 그것은 성욕 때문이 아니었다. 불안해하는 아리스텔라를 끌어안고 등을 쓰다듬어주던 손길과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음성, 서툴지만 정성스러운 입맞춤에 아리스텔라는 편안함을 느꼈다.

“ 대신관님이 만져주시면 기분이 좋아요. 그렇지만 그……, 섹스하고 싶은 기분을 느낀 건 아니에요. ”

몇 번이나 남자와 관계를 가졌음에도, 여전히 이 단어를 말하는 데는 저항감이 있다. 히페리온은 이미 그녀의 본모습을 전부 알고 있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 부끄러워지는 걸까. 아리스텔라는 제가 말해놓고도 민망해서 얼굴을 붉혔다.

“ 그렇다면 이대로 있고 싶습니다. ”

몸을 섞는 경험은 지나치게 강렬한 쾌감을 준다. 성녀의 몸은 무엇보다도 유혹적이었다. 그녀를 안으면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히페리온은 욕망에 홀리는 것이 두려웠다. 혹 제 욕망대로 안다가 그녀를 다치게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텔라와의 관계를 피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곁에 있는 이 시간을 확실히 기억해두고 싶기 때문이었다.

몸을 섞게 되면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 버린다. 도중에는 정신도 몽롱해져, 행위가 끝나고 남는 것은 정사 후의 열기와 여운뿐이다. 그녀의 체온과 체향, 신음이 머릿속에서 뒤섞여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 오늘 하루뿐이다.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아. ’

이 사랑스러운 웃는 얼굴을, 맑은 눈빛을 기억에 새기고 싶다. 눈을 감아도 선명히 떠오르도록 오늘의 일을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한순간의 짧은 쾌락이 아니라, 그녀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자신의 행동에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를 기억에 남기고 싶었다. 둘만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새겨둔다면, 더는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이유로 괴롭지는 않을 테니까.

여인을 탐하는 것도 모자라 성녀를 기만하다니, 대신관은커녕 평사제라도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마음을 고백하지도 못하는 자신이 사제로서도 남자로서도 최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히페리온은 자신을 합리화했다.

‘ 평생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것이니 성녀님께 피해가 갈 일도 없을 거야. ’

도저히 이 사랑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숨기는 것은,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짝사랑을 계속해야 하는 괴로움은 오롯이 제 몫이다.

용기는 없으면서 미련만 많은 것은 비겁한 자신. 그녀에게 책임전가를 하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 그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

간절한 바람을 속으로 삼키며, 히페리온은 품안의 사랑스러운 여인의 모습을 제 눈동자에 새겼다.

그때였다.

< 성녀님. >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페리온과 아리스텔라가 몸을 일으키자, 두 사람의 맞은편에 있는 새하얀 벽이 일렁이더니, 한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 아……! ”

짧은 검은 머리에 금색 눈동자. 꿈속에서 아리스텔라를 범하려 했던, 무서울 정도로 강렬한 인상의 남자. 아론을 닮은 그는, 분명 전대 성녀를 모시는 사제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 성녀님, 어째서 그 남자와……. >

그는 아리스텔라를 바라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가, 그녀를 안고 있는 히페리온을 보고 무서운 얼굴을 했다. 아리스텔라는 분노가 어른거리는 남자의 눈빛을 보고 히페리온의 팔을 꽉 끌어안았다. 히페리온도 성녀가 불안해하는 것을 느끼고 그녀의 몸을 꼭 안아주었다.

< 어째서 저를 선택하시지 않았습니까? >

분노와 열등감과 울분이 뒤섞인 얼굴로 남자가 물었다. 아마도 그가 묻는 대상은 전대 성녀인 밀리아리아. 그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여신 위그멘타르일 것이다.

위그멘타르는 역대 성녀들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는지 몰라도, 아리스텔라는 위그멘타르와 직접 소통할 수 없었다. 그러니 위그멘타르가, 전대 성녀 밀리아리아가 남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밀리아리아의 몸에 빙의했을 때 느낀 슬픔과 괴로움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 미안하다 >면서 흐느끼던 그녀의 감정도.

“ 어째서냐고 물으셔도……. 제가 당신을 선택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

< 어째서 당신의 뒤에 있는, 그 남자를 선택하신 겁니까? 그 자와 저의 무엇이 다르지요? >

남자는 히페리온을 노려보며 물었다. 아리스텔라가 히페리온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오해한 것일까. 그야 이 방에서 두 사람이 키스하고 몸을 더듬는 모습을 보았다면 오해할 만도 하다.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변명할 수는 없었다.

‘ 하지만 대신관님은 내 요구에 따라주신 것뿐인걸. ’

또다시 흉흉한 빛을 띠는 남자의 눈빛에 두려움을 느낀 아리스텔라는 히페리온을 보호하듯 양팔로 감쌌다.

“ 대신관님과는 관계없어요. ”

“ 성녀님……. ”

히페리온을 택한 것도 아니고, 히페리온을 택했기 때문에 저 남자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아니다. 저 남자는 전대 성녀를 따르던 사제이지, 지금 아리스텔라를 따르는 사제가 아니니까.

하지만 만약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리스텔라가 아니라 밀리아리아더라도, 그녀는 저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아리스텔라는 밀리아리아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 대신관님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마찬가지예요. 제 주변의 모든 남자가 사라지더라도, 당신이 성녀에게 선택받을 일은 없을 거예요. ”

< 어째서입니까? >

“ 당신이 저를 모욕했으니까요. ”

꿈속에서 남자는 아리스텔라를 범하면서 그녀를 힐난했다. 제 몸을 희롱하는 남자의 손길에 쾌감을 느끼고 허덕이는 모습을 보고 음란하다며 꾸짖었다. 정작 욕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범한 것은 저 남자일진대, 그는 자신의 욕망을 부추기는 아리스텔라를 원망하고 매도했다.

< 그것은 성녀님이, 순결을 잃은 몸으로 부정하게……. >

“ 부정한 여자라면, 당신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건가요? ”

< 저는 타락한 당신을 정화하려 한 것뿐입니다. >

“ 저는 타락하지 않았어요. ”

매음굴의 창녀라.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여자들을 아리스텔라는 싫어했다. 그러나 창녀인 밀리아리아가 원해서 성녀가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신탁에 의해 성녀가 된 이상, 밀리아리아는 그들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성녀를 주인으로 여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음욕의 여신을 받아들인 성녀가 성욕을 참지 못하고 아무 남자나 침실로 끌어들여 관계를 가지는 것을 경멸할 수는 있다. 그녀가 음란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가두거나 잠재울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런데 어째서. ’

어째서 그들은 성녀를, 앞도 못 보고 걷지도 못하는 여자를 범했나. 정숙하지 못한 성녀를 꾸짖겠다는 명분으로 사제들이 벌인 일이 그녀가 저질렀던 음행과 무엇이 다른가.

“ 타락한 것은, 당신들이죠. ”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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